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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즈... 저항과 해방의 음악

지금은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은 롤링 스톤즈지만, 소식적에는 이런 혁명적인 노래를 불렀다. 롤링 스톤즈의 혁명성은 이 노래처럼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가사를 쓴 노래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의 가사는 주로 연애와 섹스에 대한 것이며, 어떤 규율도 규제도 거부하는 심신의 유목주의로 가득차있다.

그들은 하모니를 무시하며, 음악 기법을 무시하며, 비틀즈처럼 예쁜척 하지도 않고, 배운척 하지도 않는다(역설적이게도 롤링스톤즈의 멤버들은 모두 배운 사람들이다. 반면 지적 이미지로 보이는 비틀즈 멤버들은 교육계층이 아니다).

그래서 롤링스톤즈의 음악은 머리가 아니라 바로 심장에 꽃힌다. 그 중 미국과 영국 정부의 관용의 한계를 넘어버린, 그래서 금지곡이 되어버린 이 곡 "거리의 투사"는 이후 의식이 깨어있는 수많은 로커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다. 영화 '식코'의 삽입곡으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식코의 주제와 너무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었다.

저항하고, 고발하되, 당당하고 즐거움을 잃지 않는 스톤즈의 세상을 뒤흔들었던 노래... 공연만하면 바로 폭동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어났던 롤링스톤즈의 가장 대표적인 폭동음악. 레코드 자켓부터 노골적이었던... 68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2008년 서울에 너무 어울리는 노래.... 가사의 런던을 서울로 살짝 바꾸어서 들어 보기를......


두개의 버전을 비교해보기 바란다. 나중것은 롤링스톤즈가 언플러그드 공연때 부른 실황녹음이고, 앞의 것은 원곡(1969)이다.



 

The street fighting man(거리의 투사)


Ev'rywhere I hear the sound of marching, charging feet, boy
'Cause summer's here and the time is right for fighting
in the street boy
But what can a poor boy do except to sing for a
Rock'N'Roll Band 'cause in sleepy London Town
There's just no place for Street Fighting Man!

소년이여, 사방에서 행진하고 돌진하는 발소리가 들려와.소년이여, 여름은 왔고, 여름이야말로 거리에서 싸움을 치러야 할 때니까.

락밴드에서 노래하는 것 말고 가난한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 말해봐.이 무기력한 런던에는 거리의 투사를 위한 곳은 없으니까.


Hey! Think the time is right for a Palace Revolution
But where I live the game to play is Compromise Solution!
Well then what can a poor boy do except to sing for a
Rock'N'Roll Band 'cause in sleepy London Town
There's just no place for Street Fighting Man!!

이봐,이제야말로 뒤집어 엎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내가 사는 곳에서 허용되는 놀이라고는 타협적 해결 뿐이네

좋아, 그렇다면 락밴드에서 노래하는 것 말고 가난한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 말해봐.
이 무기력한 서울에는 거리의 투사들을 위한 곳은 없으니까.

Hey! Said my name is called Disturbance
I'll shout and scream, I'll kill the King I'll rail at all his servants
Well then what can a poor boy do except to sing for a
Rock'N'Roll Band 'cause in sleepy London Town
There's just no place for Street Fighting Man!!

이봐, 내 이름은 반란분자로 불리지.

난 끝까지 고함지를 것이고, 난 왕을 죽여버릴 것이고, 그의 똘마니들에게 욕을 퍼부을거야.좋아. 그렇다면 락밴드에서 노래하는 것 말고 가난한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 말해봐.

이 무기력한 런던에는 거리의 투사들을 위한 장소따위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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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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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