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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아뉴스 데이(Agnus Dei)

아뉴스 데이는 통상 미사곡의 마지막 부분이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Agnus Dei qui tolis pecata mundi
천주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여
Miserere nobis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Donna nobis pacem
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미사 전례의 순서상 이 부분은 최후의 간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최후의 간청에 화답하여 영성체가 이루어지고 그 덕에 평화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아뉴스 데이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간청하는 부분은 첫부분인 키리에로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영광을 찬미하고, 사도신경으로 신앙까지 확인했는데 다시 간청하는 부분이 나온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아뉴스 데이는 미사의 마무리답게 모든 걱정과 번민을 털어내는 역할을 한다. 특히 오페라 아리아 풍의 대단히 투명하면서 아름다운 곡을 많이 집어넣는데, 그 결과 듣는 이들은 이미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 부분인 '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부분은 간청이 아니라 '주여 우리는 평화를 얻었습니다.'라고 외치는듯 기쁨과 환희에 가득찬 부분이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듯 하다.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를 얻을만큼 노력한 다음에라야 주의 은총을 갈구할 수 있다. " 그의 오페라에서 자주 반복되는 주제처럼 용서는 충분히 반성해서 사실상 용서가 아니라 응징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일수 있는 상태라야 주어지며, 은총은 충분히 노력하여 은총이 아니라 저주를 내리더라도 즐겁게 받을수 있는 상태라야 받는 것이다. 아! 기복신앙에 물든, 수동적인 ㅂ자판기 신앙에 물든 한국 교회(성당도 마찬가지)가 이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데......

먼저 K137 장엄미사의 아뉴스 데이.... 간절한 갈구에 이은 영적 기쁨으로 충만한 도나노비스파쳄이 이어진다. 이곡은 모차르트가 16세에 작곡했는데 아무리 모차르트라도 이 나이에 이런 곡을 쓴다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동시대 어느 작곡가도 이 정도의 작품을 남길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어린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결론이 났다.다음의 아뉴스 데이는 그의 미사중 가장 규모가 작은 일명 참새미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얼른 들으면 가볍고 세속적이지만, 그것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엄숙함의 단계를 넘어 기쁨의 단계에 이른 영성이다. 바흐의 음악이 영적인 여행의 과정이라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이미 그 여행이 끝난 다음의 경지다. 그래서 처음 들을때는 세속적이고 거의 동요처럼 들리지만, 많이 들으면 오히려 엄숙한 바흐, 헨델의 음악보다 더 초월적임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대관식미사의 아뉴스 데이... 교회음악이 아니라 오페라 아리아에 가깝다. 그래서 많은 성직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세상의 어떤 아리아보다 아름답다는 것만은 부정하지 못한다. 왜 교회음악은 무게잡고 침침해야 하는가? 모차르트의 신은 천상의 아프로디테였지 지옥불로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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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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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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