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구원, 찰나의 행복(영화 블랙북에서 모차르트)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 Black Book은 첩보물의 모양을 띄고 있지만 매우 불편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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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우선 흔한 설정에서 시작된다. 가족을 나치에게 모두 잃어버린 유태인 소녀가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와 만난다. 그렇다면 영웅적인 투쟁이 시작될 것이고, 여성주인공은 반드시 독일군 장교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캐내는 미인계를 쓰게 되어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독일군 장교는 알고봤더니 깊은 교양과 인품을 가진 훌륭한 기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장교와 정말로 사랑에 빠졌다. 이 미쳐돌아가는 전쟁판에 과연 이들의 사랑이 유지될 수 있을까?

어쨌든 독일군 장교는 그 지긋지긋한 나치 노릇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주인공과 함께 도망친다. 저 잔혹하고 무자비하고 미쳐돌아가는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유태인 레지스탕스와 독일군 장교라는 정말 이루어질 가망 없는 한쌍의 연인은 그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공간인 은신처의 텐트 안에서 처음으로 평화와 안식을 누린다.

이때 들려오는 음악이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K136의 2악장이다. 시종 긴장과 살상과 총성이 난무하던 영화 한 가운데 잠시 들려오는 모차르트의 선율은 그야말로 블랙인 영화속에 비추이는 잠깐의 빛이 되어준다. 폴 버호벤 감독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모차르트를 삽입했으리라....

제도권 교회에서 모차르트를 꺼려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은 신이 할 일을 대신한다. 비록 찰라간일지라도 그 순간은 이 세상을 넘어선 초월의 경지를 느끼게 하며, 한없는 편안함과 기쁨을 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미친듯이 확성기를 울려대는 바그너 음악을 들으며 만행을 저질렀던 독일군이 숙소에 돌아와서는 모차르트를 목마른 사람처럼 갈구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리라... 하긴 스탈린조차 죽기 직전에 모차르트를 듣고자 했다. 피아니스트를 새벽에 소환해서 연주하라는 독재자스러운 요청을 했지만 잘 진행되지 않자 피아노협주곡 레코드를 들으며 임종했다고 한다. 아, 그는 구원받았을까?

그러니 모든 지배자들에게 모차르트는 버겁다. 그는 지배자에게 필수적인 잔인함을 거세시킨다. 그는 피지배자에게 필수적인 불안과 공포를 제거한다.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K136의 2악장을 잠시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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