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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대한 조정환 선생의 논평

조정환 선생께 미안!

2008년 촛불봉기: 다중이 그려내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


조정환(자율평론)

1. 머리글

2008년 5월 2일에 시작되어 오늘(5월 26일)까지 56일 동안 지속되고 있는 촛불봉기는 연쇄적으로 확산되면서 제기된 그들의 요구들 중 그 어느 것도 아직 결정적으로 쟁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무력해 보이는 촛불봉기는 폭발의 순간에서부터 그 소용돌이치는 일련의 전개과정 속에서 기존의 낡은 고정관념들과 관습들, 그리고 관계들 모두를 송두리째 찢어버렸고 새로운 삶의 도래를 요청하고 또 증언하는 불가사의한 ‘괴물’로서 지금도 광장과 거리와 가정과 온라인 연결망 곳곳에 충격과 쇄신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잊고 거리에서 열정적인 시위와 토론에 열중하며 일상에서 눌변으로 굳게 닫혔던 입들이 다변으로 활짝 열려 감동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언설을 쏟아내고 마음 깊은 곳에 잠복해 있던 해학력과 상상력을 터뜨리며 거대한 무리의 행위예술을 공연한다. 시위가 종합예술이 되고 밤에 이루어지는 거대한 소비활동이 새로운 삶을 빚어내는 용광로가 되며 앞섰던 자가 뒤서고 뒤에 섰던 자가 앞서며 가르치던 사람이 배우는 사람이 되고 지금까지 내내 배우기만 했던 사람이 가르치며 이른바 ‘지도자’들이 훼방꾼으로 기능하고 이른바 ‘열패자’들이 투사가 되며 지식인이 무지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대중이 지성의 불을 내뿜으며 늘 지도부를 자임했던 정당이 다중의 행동을 생중계하는 매개자로 되는 이 총체적 역전과 융합(퓨전)의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촛불봉기의 이 매혹 때문에 촛불이 타오를 때는 그 열기에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촛불이 잠잠해지면 안타까움과 불안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 비가 오면 혹시나 촛불이 꺼질까 우비를 챙기고 집을 나서며 누군가 다칠까봐 지켜보는 눈이라도 되어 주어야겠다며 집을 나서고 시위대가 배고플까봐 김밥과 우유를 싸들고 집을 나서고 아예 저항의 노숙을 하자며 텐트를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쟁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지난 56일은 이 짧은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봉기대는 소라광장에서 시작하여 시청광장으로 이동했고 신세계, 퇴계로, 동대문으로 이동했으며 남대문, 명동, 종로, 대학로를 휩쓸었고 청와대로 가기 위해 청운동, 안국동을 점거했다. 이어 봉기대는 KBS, 한나라당사, 코엑스에서 촛불을 지폈으며 마침내 전국 곳곳에 뒤늦었으나 더 강렬한 촛불들이 켜지고 국경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생명의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벌떼들이 이곳저곳을 이동하듯이 지구상의 여기저기를 밝히며 촛불의 봉기(蜂起)는 지속되고 있다. 봉기란 글자 그대로 ‘벌떼들(蜂)의 일어남(起)’이 아닌가?


2. 촛불봉기의 발생조건

5월 2일의 촛불봉기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 수입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쇠고기가 유통되지 않아야 하고 소비되지 않아야 한다는 시민들의 당연한 요구가 어째서 수용될 수 없었는가? 얼핏보면 사소해 보이는 이 쟁점이 왜 범국민적 봉기를 야기시키기에 이르렀는가? 수 십 일에 걸쳐 연 수백만의 사람들이 촛불시위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왜 현재까지 생명의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고 한미간의 쇠고기 협상은 고시의 강행을 앞두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의 권력은 우리 삶의 모든 측면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면서 삶을 지배한다. 촛불봉기를 통해 연이어 의제화된 수도, 의료, 건강보험 등등의 신자유주의적 민영화는 쇠고기와 더불어 직접적으로 생명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대운하 건설, 교육 및 공기업들의 민영화 등도 생태나 사회적 삶의 생산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임금, 노동시간, 노동조건 등 노동자들의 오래된 쟁점 외에 정리해고, 노동의 불안정화 등의 쟁점이 추가된 이후 이제 생명의 안전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권력은 이처럼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관계 조정이라는 매개 역할을 넘어서 직접적으로 생명과 사회적 삶을 지배함으로써 유지되는 삶권력으로 변형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삶권력은 90%의 인구를 사회적 부에서 배제시키고 오직 10%의 인구만이 부를 독점하는 극단적으로 불균등한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유효수요를 극단적으로 감소시킴으로써 자본의 경제위기를 일상화한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과잉생산 위기, 부채상환의 곤란으로 인한 부채위기는 곳곳에서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며 이것들은 부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끔찍한 생활상의 고통으로, 요컨대 삶의 위기로 나타난다. 이러한 위기는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의 경계 지대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줄뿐만 아니라 정규직의 노동자들에게는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대중들 속에 분노의 기름을 거대한 규모로 축적하면서 발화의 시점만을 기다리는 휴화산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의제의 계급적 한계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2003년 대중들의 지지에 기초하여 집권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자신을 지지한 대중에게 신자유주의 폭탄을 돌려주었으며 2008년 집권한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이 못다한 신자유주의화를 마지막까지 밀어붙여 완성하려 했다. 돈을 벌고자 하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 부자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 전체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이들을 생존 이하의 수준으로 밀어넣는 법과 제도개편을 시도했다. 대운하, 상수도 및 의료의 민영화, 그리고 이른바 ‘미친교육’ 등은 그러한 시도의 일부이며 열린우리당이 마무리하지 못한 FTA 국회비준도 그것에 속한다.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은 이러한 시도들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었으며 실제로는 동조하고 있었다. 사회 전체의 신자유주의화에 의해 경제적 손실, 정치적 권리상실, 문화적 열악화를 겪으면서 생존의 경계선으로 밀려났거나 점차 밀려나는 사람들은 대의되지 못함에 대한 불만과 무력함에 시달렸다.

소외된 사람들을 대의하기 위해 탄생한 민주노동당이나 이에서 분당한 진보신당 역시도 이들의 불만과 무력함을 해결할 어떠한 근본적 비전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선거에 대한 광범위한 거부가 나타났다. 촛불집회에서 호소되는 ‘꽉 막힌 소통’에 대한 비판이 대의제의 절대적 위기에 대한 다중의 감각을 표현한다. 입법, 행정, 사법의 정치권력 전체가 다중들의 요구와 불만을 대의하여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내외 산업적 금융적 기업들의 자본권력과 야합하여 다중들의 능력뿐만 아니라 생명자체까지 자신들의 먹잇감으로 삼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체제! 이 체제를 유지시키는 또 하나의 권력이 미디어 권력인 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찌라시’ 신문들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관심사를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교묘하게 의제화하여 그것을 다중들 전체의 관심사로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서의 역할을 뻔뻔하게 수행하고 있다. 미디어 권력은 매일매일 권력과 자본에 이로운 여론을 생산하여 그것을 주기적으로 정치권력화하며 촛불봉기와 같은 저항적 흐름은 폭도들로 매도한다. 이를 매개로 자본의 물리적 정신적 권력들 사이의 신성동맹 체제가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실질적 대의의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중들은 로또적 요행을 기다리며 실의의 나날을 보내거나, 알콜에 의지하거나, 노숙을 하거나, 억화심정과 과로노동으로 약국과 병원을 오가다가 죽거나, 아니면 자살을 하는 수밖에 없는 비참을 강요당해 왔다. 촛불봉기는 이 비참을 거부하겠다는 다중의 결의의 표현이며 이 거짓된 대의제를 통해서는 자신들의 삶의 고통과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자각의 표현이고 직접행동으로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보겠다는 선택 그 자체이다.

이 봉기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원천들은 깊고도 넓다. 이것은 결코 쇠고기 수입의 위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대운하, 민영화, 교육 등의 정치적 사회적 쟁점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이것은 채식동물에게 동물사료를 먹여 그 동물을 미치도록 만드는 현대의 반생명적 문명, 오염된 음식을 팔아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서는 굴러가지 않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 생태계와 그 주민들을 해치는 정책들을 그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도 강행하는 부르주아 권력체제 모두가 현재의 봉기가 다투고자 하는 잠재적 문제들이며 이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한국의 그리고 전 세계의 다중들 모두가 이 문제의 이해당사자이자 이 봉기의 잠재적 동력으로 배치되어 있다.


3. 전개과정

가. 촛불봉기의 전사

촛불이 권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대중적 시위의 상징적 무기로 등장한 것은 2002년 11월 30일 광화문에서 열렸던 <효순-미선이 추모 촛불시위>에서였다. 이 날 아이디 ‘앙마’의 제안을 펌질을 통해 확산시킨 이른바 ‘네티즌’들은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1만여 촛불을 밝힘으로써 탈근대적 시민으로서의 그 모습을 오프라인 공간에까지 드러냈다. 일주일 뒤인 12월 7일엔 5만개의 촛불이 켜졌고, 다시 일주일 뒤인 14일엔 10만 여명의 사람들이 광화문을 ‘촛불 바다’로 만들었다. 이해 이들 네티즌들은 월드컵 응원전의 신화를 만들어냈고, 보수언론의 왜곡편파 보도를 견제했으며, 또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신 노무현을 당선시킴으로써 정치적 보수를 저지했다. 이 흐름은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과 파병반대운동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기존의 근대적 민중운동 및 시민운동과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촛불은 이어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점화되어 이어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국회 과반의석을 넘도록 만들고 노 대통령을 두 달간의 직무정지에서 구출하여 청와대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들었다.

나. 촛불봉기의 발전단계

1) 5월 2일~5월 23일: 촛불의 점화와 촛불집회

2008년 5월 2일 안티이명박카페 주도로 이명박탄핵을 위한 촛불집회가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열렸다. 그 중 70%가 중고생이었다. 중고생으로 표현되는 청소년들은 영어몰입교육과 공교육자율화 조치로 심한 영어학습 부담을 갖게 되었고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의 부활로 잠을 못자면서 강제로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강제교육에 이렇듯 경쟁적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광우병 협상이 타결되어 급식의 위험마저 느낀 청소년들은 현존하는 사회의 불합리와 권력의 맹목에 항의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고등학생 안단테가 주도한 이명박 탄핵을 위한 서명은 5월 2일 당시 이미 60만을 육박하고 있었다.
이어진 촛불집회에는 참교육 운동을 해온 전교조가 동참하여 미친소-미친교육 반대를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외쳤다. 대운하 건설반대, 상수도 민영화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등 이명박 정부의 일련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가 광장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이다. 다양한 쟁점이 합류했지만 초기의 요구는 이명박 정부의 퇴진 혹은 탄핵으로 집약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재구성을 통해 다양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 권력 일반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국가권력, 국가정치의 문제로 환원하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시민들, 네티즌들, 국민들, 민중들로 불리는 다양한 사회적 존재들의 촛불봉기는, 한편에서는 권력을 일자의 지배로 환원하는 위계적 중앙집권적 국가권력 대신에 다양한 존재들인 그들 스스로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권력(실제로는 권력이 아닌 권력으로서의 준권력)으로서 삶의 모든 현장에서 그 권력을 직접 행사함으로써, 그리고 그 행사되는 권력들의 연결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그 생명력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반면 그 지향에서는 이렇게 국가권력의 표상에 묶인 상태에서 출발했다.

뒤이어 17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들로 이루어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가 구성되어 집회에 연단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구성목적에 명시되어 있듯이 대책회의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이라는 문제에 촛불집회의 초점을 맞추었다. 광우병 위험은 인간이 동물성 사료를 채식동물에게 먹임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며 이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행하는 맹목적인 자본주의 질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산 소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는 모든 소(한국산 소까지 포함하여)들도 이러한 위험을 안고 있다. 요컨대 많은 단체들의 대책회의로의 결집은 촛불집회의 쟁점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한정하고 쟁점을 단일쟁점으로 환원했으며 퇴진 주장보다 좀더 문제를 민족주의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지배적인 구호도 ‘고시철회, 협상무효’로 협소해졌다. 17차 촛불집회까지 쟁점의 이러한 협소화가 진행되었다.

2) 5월 24~6월 1일: 거리시위로의 전화

이러한 흐름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 아고라이다. 아고라는 촛불의 최초의 문제제기가 협소화되고 권력문제에서 협상문제로 퇴행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5월 24일 광화문에서 독자적으로 거리시위를 준비했다. 이것은 촛불집회의 명목적 지도부를 자임하고 나선 대책회의측의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서 이후 자발적인 대중적 거리시위를 이끌어내면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다시 대중화시켰다. 그러나 대책회의와 그 내부의 주요한 동력인 다함께는 ‘고시철회, 협상무효’라는 구호에 집중했고 퇴진 구호를 장식적 요구로 밀어냈다. 이것이 5월 말 촛불봉기 내부에서 점화된 지도 논쟁의 맥락이다. 대책회의와 다함께는 거리시위대의 선두에서 현재의 핵심쟁점을 단일쟁점으로서의 쇠고기 협상에 모으기 위한 구호들을 선창했다. 아고라를 중심으로 이에 반대하면서 다양한 쟁점들을 권력 문제로 모으고자 하는 흐름은 선도차량과 확성기의 사용을 비판하면서 거리행진이 자율적으로 진행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촛불봉기는 대책회의의 공식집회(7시부터 9시), 자발적 거리시위(9시~11시), 그리고 이후 어떤 지도부도 없이 이루어지는 경찰과의 대치투쟁과 강제진압(11시~새벽까지) 등으로 진행되었다.

3) 6월 1일~6월 10일: 촛불상승

쇠고기 협상의 관보고시가 6월 3일로 예정된 가운데 마지막 맞은 토요일인 5월 31일에 10 만 명이 모인 촛불집회는 청운동과 삼청동 방향에서 청와대 진격을 시도했다. 강경진압에 나선 경찰과의 치열한 대치 끝에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고 부상당하면서 아침 8시경까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이 싸움을 통해 지금까지 방법을 둘러싸고 내적으로 긴장관계에 있었던 경향들 사이의 연대감이 싹트고 서로의 약점을 고치고 보완하는 방향에서 상당한 정서적 조정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대감 덕분에 대학생들이 동맹휴업을 하며 참가하고 노동자들까지 참가하여 6월 10일에는 전국에서 집결한 100만의 촛불이 이명박 정권에 일대 타격을 가하게 된다.

4) 6월 11일~6월 19일: 대기, 긴장, 잠복국면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협상을 한다, 대운하 계획을 포기한다, 민영화를 임기중에는 하지 않는다 등의 기만적 물타기 전술을 구사하면서 집회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렸고 실제로 촛불집회 참가인원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반면 13일에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과 16일에 시작된 건설노조파업 등의 노동자 파업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이 시기에 시청광장에서의 집회가 자유발언-거리행진-해산으로 이어지는 일상화된 공식집회의 성격을 가졌던 반면 KBS 앞에서는 아고라와 안티이명박을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이 공영방송사수를 외치면서 전선을 확대시켰다. 6월 17일에는 여의도, 코엑스, 시청 등 세 곳에서 다양한 이슈의 촛불이 켜졌다. 대책회의는 전선이 확대되는 가운데 촛불집회 참가자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향후 촛불집회의 방향을 토론하기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했다. 논점은 재협상요구인가 퇴진운동인가로 모여졌지만 24일과 27일 두 번에 걸친 후속 토론을 예정한 후 6월 20~21일을 48시간 국민행동의 날로 정해 21일에는 다시 5만 이상의 촛불이 시청에 집결했다. 정부가 기만적 조치들 외에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21일에는 시위대들의 투쟁도 격화되었다. 그 결과 6월 10일에는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서야 컨테이너 바리케이드(이른바 ‘명박산성’) 위에 올라갔던 것과는 달리 즉각적으로 모래로 만든 국민토성을 쌓아 전경차 지붕을 점거했다.

5) 6월 22일~현재: 보수반격과 대치국면

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시위대에 대한 소화기분말 분사나 불법연행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단체를 동원한 촛불시위자 폭행, 포털사이트 다음에 대한 세무조사, 인터넷 실명제 추진과 사이트카 제도 도입을 통한 언론자유 제한, 소비자 운동에 대한 협박 등 강경대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지식인 이문열은 촛불집회에 대항할 의병을 조직할 필요성이 있다며 HID, 한기총, 뉴라이트, 고엽제 피해자 모임 등의 역반란을 선동하고 있고, 최장집 교수 등은 대의민주주의만이 대안이라며 촛불봉기에서 제기된 의제를 국회로 가져가야한다는 퇴행적 주장을 하고 있다.


4. 자본권력의 대응 변화

가. 이데올로기 조작: 5월 2일~27일(배후론, 본보기 연행과 협박)
나. 탄압: 5월 27일~6월 1일(불법연행, 물대포, 소화기)
다. 일시적 후퇴와 방어, 보수단체 동원한 간접 대응: 6월 2일~6월 11일(차벽쌓기와 명박산성, HID 추모집회, 뉴라이트 서경석 목사 거리선동)
라. 기만: 6월 11일~6월 22일(촛불 소멸론, 추가협상, 기만적 사과, 대운하 민영화 포기 제스쳐, 감성에 호소)
마. 반격: 6월 23일 이후(고엽제 피해자, 뉴라이트의 시민폭행, 대책회의 탄압, 6월 24일 이명박이 불법시위 엄격대처 주문, 6월 25~26일 집회와 시위 물대포 재등장, 강경진압)


5. 촛불봉기의 특징과 새로움

가. 자발성과 창의성

2008년 촛불봉기는 촛불집회, 촛불시위, 촛불행진, 촛불항쟁, 촛불문화제, 국민토론 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발성이다. 5월 2일 첫 집회는 어떤 지도부도 없이 고등학교 2학년 ‘안단테’가 4월 6일에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에서 시발했다. 이것은 2002년의 효순-미선 추모 촛불시위가 학원강사 ‘앙마’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과 유사하다. 한 사람의 제안이 들불처럼 퍼져서 수만의 사람들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광장으로 모았다. 곧 이 자발적 촛불집회에 대형단상과 앰프 마이크를 설치한 대책회의가 결합했지만 참가자들은 자발성을 억제하는 대책회의의 행태에 비판적이었다. 마이크 사용을 자제하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5월 24일부터의 가두시위도 대책회의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발적 움직임들에게 넓은 공간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운동을 일사분란한 계획 속에서 지도하는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책회의의 진행방식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거리시위가 시작된 후 이번에는 대책회의에 소속된 다함께가 거리시위대오를 선도하기 위해 대오의 선두에서 행진방향을 제시하고 구호를 선창했다. 이것도 자율적 참가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했다. 다함께는 결국 대량으로 배포해온 손피켓에서도 자신의 조직 이름을 삭제해야 했다.
5월 하순 이후 청와대 진출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전경대와의 치열한 접전 역시 대책회의의 관리범위를 벗어나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여의도, 코엑스로의 촛불의 확산이나 전국 곳곳에서 불붙은 지역 촛불들도 자발적인 것이었다. 피켓제작을 비롯하여 집회나 시위를 풍부하게 만든 많은 재기 넘치는 형상물들도 참가자들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구호들도 즉석에서 무작위 개인들의 임의적 선창에 호응하여 그때그때 창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연호되어나갔다.
물론 대책회의에서 구상되고 제안되어 참가자들에게 받아들여진 많은 행동들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특히 72시간 릴레이 집회, 국민대토론회, 48시간 집중행동 등을 비롯하여 굵직굵직한 일련의 행사들과 일정들은 대책회의에서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그 일정을 따른다기보다도 자신들의 계획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그 일정을 활용했고 그것이 자신들의 계획과 부합하지 않을 때에는 독자적으로 집회나 시위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런 의미에서 대책회의도 광범위한 봉기의 바다에 떠있는 무수한 배들 중 규모가 큰 한 척으로 기능하는 셈이었다.
광장과 거리의 다중들은 정치의 새로운 표현방식을 창조해 내고 있다. 경찰서를 지날 때는 연행자를 석방하라, 연도의 시민을 향해서는 민주시민 함께해요, 조중동 앞을 지날 때는 전기 아깝다 불꺼라! 당황한 경찰이 도망칠 때는 ‘놀아줘! 가지마!’ 뒤따라오던 전경이 멈춰서면 ‘오빠 같이가!’ 물대포가 쏟아질 때는 ‘온수! 온수!’ 해산을 종용하는 경찰에게는 ‘노래해, 춤춰봐!’ 창조적 시위는 해학과 익살이 넘치는 봉기공간을 구축했다.

나. 자율성과 권위에 대한 거부

자발성은 자율성과 자연스럽게 결합되었다. 자율성은 권위에 대한 거부를 특징으로 했다. 봉기 참가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폭넓게 관용하면서 타인이 자신에게 어떤 생각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했다. 촛불봉기의 최대의 집중점이 대통령 이명박의 일방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였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나 대운하 건설, 교육 의료 건보 상수도 등등의 민영화를 추진함에 있어서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권위적 태도를 보였다. 촛불봉기 참가자들은 이러한 태도에 분노하면서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그것은 6월 10일 세종로와 안국동에 설치되었던 거대한 컨테이너 장벽이 상징하듯 국민의 소통 요구에 대한 철면피적 거절의 태도를 보였다. 그는 한편에서 촛불봉기의 요구에 반응하는 듯한 기만적 추가협상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물대포 소화기 등의 살상위험이 있는 무기를 시위대에게 사용하는가 하면 평화적 거리행진을 전경의 몸과 방패와 몽둥이로 강제해산시키고 HID 고엽제피해자모임 등의 준군사적 사조직을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하고 조선 중앙 동아 등의 미디어와 한기총 뉴라이트 그리고 학교의 교장 교감 등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을 동원하여 촛불집회에 대한 정신적 폭력을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LPG 가스통, 각목, 파이프 등이 이용되는가 하면 ‘좌익’ ‘빨갱이’ ‘배후’ 등의 낡아빠진 이데올로기적 무기들이 사용되었다. 권위주의 정부는 이처럼 물리적 정신적 폭력장치를 기회 있을 때마다 사용하면서도 어떤 형태로건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폭력-불법 집단, 즉 ‘폭도’로 몰기 위한 선동을 계속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봉기자들은 봉기대오 내부에서 어떤 다른 유형의 권위주의도 발생하지 않게끔 억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권위주의적 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면서 자신들이 권력과 동질적이거나 대칭적이지 않은 전혀 새로운 존재들임을 세심하게 입증해 나갔다. 폭력사용을 최대한 피하자는 광범위한 비폭력 호소는 스스로의 행동반경 행동방식 행동능력을 제한하는 것으로도 작용했지만 권력의 폭력이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낼 만큼 과격하지 않은 한에서 폭력적 권력과 자신을 질적으로 구분하고 윤리정치적 우위성을 획득함에 있어서 유효한 것으로 작용했다. 바로 이러한 반권위주의는 촛불봉기 내부에서 조직적 권위가 형성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모두가 동등한 권한을 갖는 참가자로서 서로 연결되어 ‘다르게 그리고 함께’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봉기문화를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 촛불운동의 주체구성

지금까지의 민중운동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농민, 빈민, 학생, 지식인 등을 중심으로 운동의 주체들이 꾸려졌다. 시민운동은 계급성에 의거하기보다 어떤 출신이건 국가를 혁신하는 데 관심을 갖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을 주체로 호명했지만 그것은 주로 소비자, 유권자, 납세자로서의 사회적 존재들에 의거했다. 촛불운동의 주체는 매우 다양하다. 촛불운동 속에서 우리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주체들의 거대한 합류를 볼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주체들의 부상을 본다. 무엇보다도 인터넷과 핸드폰 등 디지털 정보매체에 의해 연결된 넷티즌이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나섰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있는 세대, 연령, 직업, 계층 등을 불문한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교복 입은 10대들, 팔짱 낀 20대 연인들, 하이힐 신고 명품가방을 든 여성 직장인들, 유모차 앞세운 주부들, 아이들 무동 태우고 나온 가장들,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이 촛불집회를 선도하기 시작했으며 민주노총의 노동자들, 전교조의 교사들, 한총련의 학생들, 각급 시민단체의 회원 등 전통적 시위세력들은 나중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예비군, 예술가, 작가, 의사, 해커 등도 각자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갖고 결합했다. 촛불봉기는 글자그대로 잡색부대이며 생각, 욕망, 성향, 기질, 경험의 엄청난 다양성을 갖고 있다. 촛불운동이 단일한 목적과 방향을 갖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촛불들의 이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성을 넘어서 서로를 이어주는 공통지반을 찾고 이 잡색부대가 매일매일의 촛불의 삶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는 공통되기의 물질적 과정이 오히려 필요하다.

라. 단일한 목적과 방향, 단일한 조직, 단일한 투쟁방식에 대한 거부

지금까지의 민중운동은 운동의 목적과 방향에서 대개는 단일한 목적, 단일한 방향을 추구해 왔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뚜렷한 방향설정과 이를 위한 민중의 국가권력 장악이 그것이다. 그것은 대중의 자발적 투쟁 외에 당의 지도를 통해서 달성할 수 있는 목적으로 간주되었고 당의 지도에 대중의 운동이 복종하는 것이 필요했다. 노동조합들, 농민조직들, 학생조직들 등이 일사분란하게 당의 지도를 따를 수 있는 통일된 조직구조로 배치되는 것이 또한 필요했다.
시민운동은 민중운동에 비해 다양한 조직형식을 허용하고 사회운동단체 사이에 단일한 목적을 갖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운동을 통한 국가개혁이라는 단일목적 아래로 그 활동들은 수렴되었다.
촛불운동은 어떠한가? 촛불운동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되었지만 즉각 미친교육 중단과 결합되었고 다시 운하사업과 민영화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여러 부자편중의 산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집단적 거부로 연결되었다. 요구들, 거부들, 불만들의 거대한 합류가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서로의 문제로 빠르게 공유되어 갔다. 그것은 재협상 운동으로 한정되기를 거부하면서 계속 그 목적들을 증폭시켰다. 그렇다면 이명박 퇴진은 촛불봉기의 단일한 목적으로 될 수 있는가? 재협상이라는 목적보다 이명박 퇴진이라는 목적은 일거에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촛불봉기가 이미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체제, 문화, 권력의 현 단계의 발전에 의해 발생되고 있는 만큼 이명박 정부의 퇴진만으로 그 원인 전체를 해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권력에 대한 항의에서 출발한 2008년 촛불봉기는 2002년 이후 이어져온 미군에 의한 무고한 죽음에 대한 항의, 전쟁에 대한 반대와 파병에 대한 반대, 보수적 의회권력의 횡포에 대한 항의 등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들이 보여주듯이, 촛불은 단일쟁점 운동인 듯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우리 시대의 어둠을 고발하고 규탄하고 해결하려는 존엄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누구나가 동의할 수 있고 사전에 규정되어 있는 어떤 정치적 목적에 의해 규정되기보다 개개의 사안 속에서 목적과 방향을 생산하고 발명해 나가는 성격을 갖는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국민대토론회는 이중성을 갖는다. 한편에서 그것은 촛불봉기에서 제기한 다양한 목적들과 방향들을 합류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고 촛불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전황점검의 자리가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단일한 정치적 목적으로 환원되기기 어려운 다양한 목적과 방향을 내적으로 갖고 있는 촛불운동을 단일한 정치적 목적으로 한정지으면서 전통적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의 상 아래로 촛불운동을 포섭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단일한 전략, 단일한 전술이라는 관념은 위험하다. 개인들, 소모임들, 단체들 각각이 각기의 생각과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전술들을 구사할 수 있는 분위기와 문화의 조성이 단일한 전략, 전술의 설정보다 훨씬 더 중요하며 촛불의 잠재력을 살려나가는 길이다. 이 공통관계를 해치지 않는 한에서는 대립적인 전술들과 행위들까지 관용되는 것이 필요하다. 촛불들이 지금까지 제기한 문제들과 쟁점들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재협상으로도, 이명박 퇴진으로도 충분히 풀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촛불들은 지금까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한계를 넘어 그것들이 풀 수 없는 근원적 생명존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 고유성이 있다. 촛불봉기의 요구들을 잠재적 차원까지 고려할 때 촛불들은 자신을 제헌권력으로, 준-권력으로 자각하고 또 실제로 행사하는 영구적 과정을 통해서만 자신의 내재적 목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 촛불의 권력

촛불의 권력의지--이것은 결코 국가권력에의 의지와 동일한 것이 아닌 반권력 혹은 준권력의 의지이다--는 잠재되어 있고 분산되어 있고 간헐적으로 표현된다. 지금 그것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1조에 의지해서 협소하게 그러나 맹아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직까지 촛불의 권력의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권력의 틀 속에 갇혀 있다. 스스로를 이명박을 퇴진시키거나 탄핵할 수 있는 권력주체로 사고하고 대통령, 국회의원 등의 대표자들을 소환할 수 있는 주체로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촛불의 자기 권력의지의 표현들이다. 신임연계 국민투표나 심지어는 차기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하자는 주장들도 촛불의 권력의지를 부분적으로는 담고 있다. 촛불봉기에서 제기되는 권력에 대한 현실적 생각들은 국가권력으로 집약되는 대의주의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촛불의 권력의지는 대의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많은 잠재력들을 갖고 있다. 수십일 넘게 매일매일 지속되고 있는 촛불봉기 자체가 실제로는 현존하는 국가권력을 제한하면서 스스로 행사되는 준권력이다. 그것은 기존의 국가기구를 해체하자는 맹아적 생각들로 나아가고 있다. 조중동은 오늘날의 부르주아 권력을 떠받치는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이다. 조중동을 폐간시키자는 생각은 국가기구를 해체하자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전경과 같은 억압적 국가기구를 해체하라는 주장도 생산되어 나오고 있다. 그런데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총체적 해체 없이 생명을 지키고 존엄을 되찾고자 하는 촛불의 취지가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오직 잠재되어 있을 뿐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다.

마. 윤리정치적 우위성, 해학, 그리고 폭력의 최소화

지금의 다중들은 적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드러낸다. 비대칭적 적대, 절대적 우월함 속에서 적대를 표현하고 있다. 자신을 밀어붙이던 전경들에게 쉴 때에는 물과 먹을 것을 나눠준다. 시위의 전체 분위기는 축제적이며 자유스럽다. 비장함보다는 즐거움. 막히면 돌아가는 방황 행진. 이러저리 움직이며 사람들을 결합시키고 또 새롭게 배치한다. 이것은 역량들의 새로운 배치를 생산한다.
촛불봉기의 참가자들은 분명히 자신들을 현존하는 권력들과는 다를 뿐만 아니라 절대적 우위에 있는 새로운 유형의 권력으로 느끼고 또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집회와 시위에서 나타나는 집단적 해학과 익살에서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행정권력의 이명박, 경찰권력의 어청수, 언론권력의 최시중 등은 쥐들로 조롱되며 낮은 지력과 윤리적 감각을 가진 존재로 통렬하게 풍자된다. 부패와 폭압과 기만에 대한 분노는 해학과 익살로 승화되어 촛불봉기는 웃음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한 바탕의 축제처럼 발전된다. 집회대와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 중에서 많은 것들은 현장에서의 상황을 놀랄만큼 깊이 통찰하는 예리한 풍자와 비판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참가자들은 다른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특이성과 능력에 놀라면서 자신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이것들의 상승작용이 수많은 사람들을 광장과 거리와 온라인 커뮤니티 앞으로 끌어 모은다. 6월 21일 청와대로 가기 위해 ‘비폭력, 비타협, 한 발 더 전진!’을 주장하며 전경차 바리케이드를 넘었던 소금사탕은 즉시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틀 후 석방된 후 그가 아고라에 자신의 석방 소식을 알리면서 남긴 다음의 질문은 촛불봉기자들의 특성을 간결하고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제가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님들! 어쩜 그렇게 재기발랄하고 유쾌할 수 있나요? ^^ 물대포를 맞고도, 군홧발과 방패에 짓이겨 져도, 닭장차에 실려갈 때도, 폭우 속에서도... 그 낙천성의 기반은 무엇인가요? 폭넓게 발굴되고, 순식간에 공유되는 정보들, 날카로운 분석과 과학적인 전망들... 그 지혜는 어디서 오는 것이죠?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내 돈 내가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워 가며 애씁니다. 목은 쉴 대로 쉬고, 땀에 흠뻑 젖어 몸은 녹초가 됩니다. 인터넷 정보 검색하랴, 숙제하랴, 직장에서 일하랴, 살림하랴, 애기들 키우랴, 교육하랴, 거리 시위하랴, 전경들이랑 몸싸움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온갖 손해와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 합니다. 그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 입니까? 어떻게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착해 빠질 수 있나요? 폼 나게 “재협상 즉각 실시! 명박퇴진!” 구호 한 번 외치지 않고, 시위 처음부터 끝까지 봉투를 들고 거리의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줍는 님들, 모두가 떠나고 없는 자리에서 바닥에 떨어진 촛농을 긁어내고 있는 님들, 실신해서 실려 갈 정도로 시위대를 보위해 주는 예비역님들, 밤새워 준비한 듯 한 김밥과 주먹밥들... 하루 이틀 새에 모여지는 수천만 원의 광고비, 병원비, 행사관련 비용들... 그렇게 순수하고 헌신적일 수 있는 그 비결이 뭔가요?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님들은 어디 숨어 있다가 이렇듯 갑자기 나타났습니까?

만약 이 힘들에 어떤 원천이 있다면 서로가 배우면서 차이들을 합류시키고 공통되어 나가는 혁명적 협력의 구성과정일 것이다. 공통되는 힘들, 제헌의 힘들은 이미 제정된 것들의 경직성을 넘어 측정될 수 없고 불가해한 능력으로 그 절대적 우위성을 보여준다. 이 촛불의 제헌권력은 낙천성의 원천이며 새로운 과학의 원천이고 새로운 윤리를 정초하는 바탕이며 새로운 삶을 열어내는 신성한 힘이다.
촛불봉기에서 일반화된 구호인 비폭력은 이 신성하고 절대적으로 우위인 힘의 절대적 폭력을 표현했던 한 방식이었던 것인가? 권력의 폭력진압 앞에서 그것은 서서히 저항적 비폭력으로, 방어폭력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절대적 폭력의 비폭력 형태나 저항적 비폭력 형태 혹은 방어폭력의 형태는 권력이 항시적으로 사용하는 선제폭력(현존하는 부르주아적 권력체제 그 자체가 구조적으로 실존하는 선제폭력의 형태이다)과 결코 대칭적인 것이 아니다. 대칭적이고 대항적인 폭력의 구사가 현존하는 폭력에 대한 부분적 부정일 뿐이라면 비폭력이나 저항적 비폭력, 그리고 그것의 높은 수준인 방어폭력은 다중의 공통된 힘이 갖는 절대적 폭력에 기초하면서 상황에 따라 표출되는 현상형태이다. 절대적 폭력은, 결코 행사됨이 없는 상태에서 국지적 폭력을 억제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 우위의 폭력, 신성하고 자연적인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어떠한 저항이나 방어도 없는 굴복의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폭력들이 결국 이 절대적 폭력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엄중한 선언이 아닐까? 절대적 폭력은 모든 시민상태들을 근본에서 규정하는 자연상태이다. 그것은 행동하고 저항하고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선제폭력으로 표현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비폭력, 저항적 비폭력, 방어폭력 등으로 현현하면서 자신을 생명의 존엄과 삶의 (비록 잠재적일지라도) 절대적 공동체로, 생명들 사이의 혁명적 협력을 가능케 하는 절대적 폭력으로서 선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촛불은 총과 다르다. 그것은 국가정치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삶정치의 무기이자 절대적 폭력에 기초하여 발생한 모든 사람의 보편적 협력, 공통되기이며 인류 공동체의 실재성을 알리는 상징이 아닌가?

바. 새로운 민주주의

촛불봉기는 직접민주주의를 표현한다는 것이 일반화된 해석이다. 확실히 봉기자들은 일체의 대의자들을 불신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정치적 열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과 핸드폰은 직접민주주의에 광대한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붕괴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된다. 하지만 이 절대적 폭력으로서의 제헌권력에게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사이의 구분은 의미를 잃는다. 대의는 직접적인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대체하는 것이 촛불운동의 목표가 아니라 절대적 제헌권력의 실재성을 입증하고 그것을 확장적으로 구축하며 그에 걸맞는 정치적 제헌양식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의민주주의로의 수렴론은 반혁명적이다. 반면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직접민주주의로의 복귀 주장은 낮동안의 노동에 이은 밤시간의 야간집회를 항구화해야 하는 떠안기 어려운 부담을 준다. 직접인가 대의인가가 쟁점이 아니라 다중의 절대적 구성역능과 제헌권력의 압도적 우위를 승인하는 것이 문제이고 이것에 걸맞는 제헌의 기술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기 삶의 운영자로 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가능한가는 지금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에서 발명되어 나와야 할 절대민주주의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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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 한번에 안 들어가네요^^(첨부파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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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