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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직이나 보내줄 것이지....

"이런, 기능직이나 더 보내주지..."
이 대사는 어느 학교 교감이 한 말이다.
사연인즉슨, 이 학교 학급수가 늘어서 복수교감 학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학기부터 교감이 한 명 더 배치된다고 하자, 원래 있던 교감이 "교감은 뭐하러?" 하면서 한 말이다.

바로 이 말이 학교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실제 학교는 교감보다는 기능직 직원 한명이, 행정직원 한명이 더 간절히 필요하다. 아니면 교감이 기능직이 하는 일, 행정직이 하는일을 도맡아서 하던가....

초중등교육법상 교사는 법이 규정한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하도록 되어있다. 그 외의 어떤 일도 교사의 일로 규정된 일은 없다. 생활기록부 등 학생관련 서류와 기록의 작성및 관리 담당자는 교육법상 교장,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교감으로 되어있다. 즉, 현행법은 수업과 학생지도를 제외한 모든 문서작업을 교장, 교감, 그리고 행정직원의 일로 사실상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각종 교무를 통할하도록 되어 있는 자리는 교장인 것이다.

이는 제법 꼴을 갖춘 거의 모든 나라의 공통된 현상이다. 오죽하면 일본에서는 너무 일이 많아 고되다고 도로 교사가 되겠다고 신청하는 교장이 늘어날까? 미국에서도 교장, 교감, 그리고 행정직원 네명이 학교의 모든 행정사무를 처리한다. 그래서 교장 교감은 3D로 통한다. 정작 교사는 수업이 끝나면 연구실로 들어가며, 일단 연구실에 들어간 교사는 학부모나 학생도 방해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시간이 남아 터져 난초에 물질이나 하는 교장, 고개 쳐박고 인터넷 쇼핑이나 하다, 수업하느라 바쁜 교사가 시간을 쪼개어 쪼개어 작성한 각종 행정문서에 빨간줄이나 그어서 다시 써오라는 가학놀이을 즐기는 교감들이 득실거린다. 심지어 그 부족한 행정직원조차 그 중 한명이 기껏 주사나 주사보에 불과한데도 행정실장입네 하며 마치 기관장이나 된양 일 안하고 건들거리며 어른 행세를 한다.

이러니 학생 가르치고 연구하기에도 빠듯한 교사들이 엉뚱하게 남이 해야 할 일 하느라 정신을 못차린다. 교사의 잡무, 행정업무는 얼른 보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교육하는 와중에 그 일을 한다면 그게 장난이 아니며, 비생산적이며 무척 짜증스럽다. 비생산적인 일로 짜증이 난 교사가 학생을 어떤 식으로 대할지는 안봐도 삼천리다.

그래서 학교가 학원에게 밀리는지 모른다. 학원 선생은 오직 수업만 신경쓴다. 각종 비즈니스, 사무는 모두 원장과 총무가 도맡아서 한다. 고객관리와 면담은 부원장의 몫이다.

공교육 강화. 그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일손 바쁜 학교에서 탱자탱자 놀고먹는 소위 관리직들에게 일감을 잔뜩 주고, Teacher 들을 문자 그대로 teach에 전념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기능직보다 쓸모없는 교감이 계속 존속하는 한 공교육의 미래는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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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