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에서 한 토막

밀의 책을 읽다가 문득 느낌이 와서 옮겨 놓는다. 사람들이 실용, 효용을 천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효용에다 편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과 원리를 손쉽게 대비함으로써 비도덕적인 이론이라고 부당하게 낙인찍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나 옳은 것과 대립되는 의미로서의 편의는, 이를테면 정치인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이익을 희생하는 경우처럼, 일반적으로 행위자 본인의 특정 이익을 뜻한다. 이것보다 나은 의미를 굳이 찾자면 그것은 무엇인가 눈앞의 일시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용하기는 하지만, 대신 훨씬 높은 수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의미의 편의는 유용한 것과 동의어가 되기보다는 해로운 것의 한 지파를 형성한다. 일시적인 당혹감을 이기려고 혹은 당장 유용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 때로 편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진실함이라는 문제에 대해 예민한 감정을 고양하는 것은 매우 유용한 반면, 그것을 약화시키는 것은 대단히 해로운 일이다. 그리고 비록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진리를 배신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킨다. 이런 믿음이야말로 현재의 모든 사회적 복리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원군이기 때문에, 그것이 불충분할 때는 문명과 덕, 그리고 인간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변수보다도 더 심각하게 저해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현재의 이익을 위해 초월적 편의에 관한 규칙을 위반하는 것은 결코 편의를 주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나 다른 어떤 개인의 편리를 위해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깨뜨리고, 그 결과 인류의 이익을 해치고 그들에게 해악을 끼친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도 가장 나쁜 일을 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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