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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아이들

알리는 오늘도 지각을 했다.

오전반인 여동생과 운동화를  교대로 신고 학교에 와야 했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호랑이 교장선생님!

"알리! 오늘도 지각을 했구나!"

이런 저런 변명을 해야 하는 알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사실대로 말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집안 사정...


엄한 교장 선생님은 여러번 지각을 하는 게으른 학생은 학교를 다닐 자격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한다.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교장의 오지랍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교장이 지각생까지 지도하다니...

우리 상식에는...적어도 우리가 학교에서 보는 광경으로는 우리네 교장들이 체신없이 할 일은 아니다.

지각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거나 모두 담임 몫이다.


교장은 학교에서 무엇을 하나?

학생들은 교장을 잘 모른다. 아주 높은 곳에서 가끔 방송 조회를 통해 훈화를 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쯤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매우 넓고 쾌적한 직무실에서 고요하게 앉아 무엇을 할까?


이렇게 지위는 있으나 역할을 잘 수행하지 않거나 역할조차 알 수 없는 그 자리가 편해서인지 교장 되려는 사람이 많다. 적어도 승진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최종 목표는 '교장'이다.  

더러는 존경 받는 교장도 있다. 그러나 난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어느새 다섯 번째 학교에 6~7명의 교장을 만나보았으나 그 가운데는 없었다.


교장이 되려는 사람들 얘기를 간 혹 전해 듣다 보면 말도 믿을 수 없는 사례들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가장 최근에 들은 얘기다.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려면 근무성적을 1등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1등을 받으려면 학교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으로 인정 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때로는 무언의 약속을 하고 서로 돌려가며 점수를 주고 받는단다. 어느 야심찬 부장 교사가 당시 교감에게 1등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교감이 총애하는 부장은 따로 있었고, 요청한 사람은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거절당한 그 사람 " 나는 꼭  필요해요! 그사람은 얼마 주던가요? 얼마면 되겠어요? " 기가 찰 일이다. 얼마를 어떻게 주었는지 모르지만 그사람은 현재 승승장구 중이고 조만간 교장이 될 것이다. 당시 교감이 총애하던 부장교사는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교감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해주었다는데...군대에서 상관에게 잘 보이려고 하위 군인의 부인들이 김장해주러 가고 청소해주러 간다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교육계에서 일어나는 이 웃지 못할 이야기들은 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학생들이 지각을 하는지, 누가 전학을 오는지 일탈 학생을 담임교사가 지도하느라 얼마나 힘드는지 알지 못하는 교장. 들어도 '참! 쯔쯔' 하고 마는 교장. 뒺짐지고 위세를 보이며 걸어다니고, 엄연히 금연구역인 교내 당직실 한 귀퉁이에서 흡연을 하는 위법자...내가 아는 교장의 모습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경사로운 일에는 교장의 덕을 내세우고  불미스런 일에는 뒤로 꽁지를 숨겨버리는 교장.


그런 교장자리에 오르겠다고 그 교장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따라 해주는 똥닦게 교사들이 다시 그 자리에 오르면 다시 그런 교장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천국의 아이들...

어려운 형편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지각을 하더라도, 지각을 하면 안된다며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꾸중을 하는  학교의 제일 엄한 선생님이 교장이고 , 그런 교장의 관심과 지도를 받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네 학교 보다는 천국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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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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