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도피

일찍이 로마제국 말기에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인생의 가장 참혹한 순간에 "철학의 위안"을 썼다.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진 그 책은 문자 그대로 철학이 의인화 되어 작가에게 위안을 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 책을 처음 비웃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철학과는 너무 멀다고 생각했다. 세계를 해석만 할 것이 아니라 변혁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경구가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을때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근래 다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하긴 요즘 철학책을 무척 많이 읽는다. 얼마 전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그냥 워드질로 옮겨놓기까지 했다. 이제는 "정신현상학"을 읽을 참이다. 그 정밀하고 두뇌를 혹사시키는 문장들 속에서 씨름을 하다보면 삼매지경에 빠진다. 어쩌면 내가 철학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삼매지경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쇼펜하우어가 예술에서 찾던 것을, 나는 철학에서 찾는것인지도....

그냥 만사를 잊고싶다. 윌리엄 제임스는 "정신현상학"을 읽고 철학이 골방이 아니라 세계와 사회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나는 도리어 정신현상학을 읽으면서 세상으로부터 퇴각해서 골방속의 삼매경에 빠지려 하고 있다. 비겁하고 비겁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슬픈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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