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8.

글렌 굴드 vs 컴퓨터

10여년 전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바흐, 바그너, 모차르트 애호가들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그 논쟁은 나중에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져서 결국 그 음악 동호회가 폭파되는 결과까지 불러왔다. 이때 바흐, 바그너 파(?)가 한 편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 우상의 정교하게 계산되고, 한치의 오차도 없고,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더 많은 분석거리를 제공하는 그 세심한 짜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거기에 비하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단순하고, 그 가치도 항상 "뉘앙스", "아우라"같은 추상적이고 입증불가한 근거에 의해서만 평가받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논쟁을 보면서 그들이 어쩔수 없는 근대인들임을 느꼈다. 그런 예리한 분석적 속성이 어떤 음악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한다면, 즉 베버가 말한 도구적 합리성으로 음악의 가치를 결정하려 한다면 갈수록 음악은 그것이 실제로 연주되고, 수용되고 사용되는 생활세계로부터 벌어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성학적으로, 대위법적으로 오묘한 작품이지만, 음악으로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 그런 작품들이 음악가들의 세게에서 높이 평가받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안톤 베베른이 그런 음악의 전형이 아닌가?

어쨌든 나는 분석적인 측면을 들어서 음악의 우열을 논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매우 걱정스럽고, 자칫 음악에서의 계몽의 변증법이 될까 두렵다. 그 귀결은 무엇일까? 바로 다음의 연주다.  이 연주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연주자가 과연 누구일까? 정답은 다 듣고 나면 가르쳐 주겠다.


먼저것의 연주자는 바로 컴퓨터다. 컴퓨터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굴드의 음반을 분석해서 건반 누르는 강도, 길이, 페달시간 등을 수치화한 뒤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연주시킨 것이다.


아래 것은 글렌 굴드의 연주다.

이 둘의 차이가 있다 없다를 놓고 논란이 많이 있었는데, 음악 평론가나 학자들은 "글렌굴드의 연주와 같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느낌이 다르다"식의 "비분석적"이유를 들어 비판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연주를 듣고 나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런식으로 글렌 굴드 뿐 아니라 클라라 하스킬, 디누 리파티, 게자 안다 등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면, 우리는 앞으로 인간 피아니스트의 존재를 완전히 컴퓨터에게 대체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앞의 연주가 실제 글렌굴드의 연주보다 모자란 면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던, 현재 저 컴퓨터보다 바흐를 더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에, 디누 리파티의 쇼팽, 게자 안다의 바르톡, 하스킬의 모차르트, 길레스의 베토벤 연주를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우리는 피아노 혼자 최고수준의 연주를 입력된 데이터에 따라 언제나 같은 퀄리티로 들려주는 엽기적인 풍경에 직면할 것이다. 개런티가 들지 않으니 음악회 티켓도 저렴해 질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설적 연주자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게다가 컨디션에 따라 실수마저 하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인간 피아니스트들은 대체 어떤 무대에 서야 하는가?



2008. 9. 24.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음악의 발생학(1)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말씀은 그 발생학적 순서상 소리에 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구절은 바뀌어야 한다.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소리와 함께 살았다. 화산이 터지는 소리. 비가 쏟아지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짐승들이 울부짓는 소리. 벼락 치는 소리. 좌우지간 온 갖가지 소리가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기를 통하여 전달되는 온 갖가지 파동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파동들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위험을 예측하거나, 먹을거리(먹거리란 말은 문법적으로 틀립니다. 먹을거리란 말을 씁시다. 바른말 고운말)를 찾거나, 서로 동료들을 알아보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이 파동들이 자신들의 감정에 묘하게 작용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울하게 하는 밝기, 기분 좋게 하는 밝기, 경쾌하게 느끼는 온도, 짜증나게 만드는 온도가 있듯이, 소리라고 부르는 이 파동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기쁘게도, 슬프게도, 즐겁게도, 고통스럽게도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고 조작하는데 소리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주: 인지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 즉 대뇌 변연계에 활발한 변화를 야기하는 감각은 시각>청각>후각>촉각 순이지만, 사실상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한다. 후각은 금새 마비되어버리기 때문에 너무 지속성이 없고, 촉각은 너무 단순하여 복잡미묘함이 부족하며, 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지적이고 구체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있는 청각이야 말로 충분히 복잡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시각과 달리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절묘한 위치에 있는 감각인 것이다. )

그 다음에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불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온도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조명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빛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내었듯이 사람들은 그런 소리들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하였다. 보기에 좋은것, 즐거운 것만 보고 싶다는 욕망이 미술을 만들었듯이 듣기에 좋은 소리, 그리하여 유쾌한 감정만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음악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음악은 이러한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공통감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하였다. 루소가 최초의 언어는 노래였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였으리라. 인간의 언어가 서로간의 공통감을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 최초의 형태는 구체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그런 언어가 아니라, 단지 감정적 진폭만을 담고 있는 음악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원시적인 부족일수록 노래와 담화의 구별이 모호하며, 사실상 노래에 가깝다. 이렇게 인간은 소리를 조작함으로써 좋은 감정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이를 타인에게도 전달하여 좋은 공통감, 즉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다. 물론 이 가설은 최초의 언어가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 소통하는 도구였다는 하버마스를 따를 때 가능하다. 최초의 언어가 타인을 조작하고 지배하기 위한 명령어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들뢰즈를 따른다면, 음악의 설 자리는 없다.

이것은 사람뿐 아니라 신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성경에는 하느님의 예술적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신은 왜 세상을 만들었을까? 성경에 나오는 답은 이렇다. “ 보시니 좋더라.” 하느님은 세상을 예술작품으로 창조한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기에 좋기 때문에 만든 것이다. 그러니 성경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의 일종의 즉흥연주다. 그래서일까?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노래”로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이렇듯 신이 예술적이니, 즉 유쾌한 감정을 느끼고 유지하고자 하니, 그 신의 영혼의 입김을 부어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필경 사람들은 세상의 여러 소리들을 듣기에 좋은 것과 나쁜 것,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종류에 따라 분류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듣기에 좋은 소리를 내는 여러 경우들을 나름 데이터 베이스화 했을 것이며, 후손에게 전승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그 데이터는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슈퍼 컴퓨터 역할을 대신 하던 노인의 머리 속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테이타 베이스의 출력 도구로서 언제든지 저장된 듣기 좋은 소리를 인위적으로 낼 수 있는 도구, 즉 악기를 만들어서 자연에서 저절로 그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원할 때면 언제든지 그 소리를 만들어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가 유희라고 하는 것을 시작하면서부터 인류는 이 소리의 성질을 유희에 이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유희의 역사는 상상보다 훨씬 길 것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들이 유희의 개념을 알고 있다. 개와 고양이를 보라. 어쨌든 인류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듣기 좋은 소리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모방하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많이 사용된 도구는 자신의 성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차츰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을 이용해 악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음악이라는 것이 기분을 좋게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온갖가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도구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면 어떤 성질의 소리가 나는지 오랜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축적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에게는 듣기에 좋은 소리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혹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할 때 소통적 행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방, 혹은 집단을 대상으로 다양한 감정을 조작할 필요도 생긴다. 즉 전략적 행위가 요구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감정의 조작을 위해 소리가 유용하게 활용 될 수 있음은 이미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면 전투를 하기 전에 사람들의 호승심을 일으키기 위해 타악기를 두드리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걸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것 보다는 타악기의 소리 속에 사람의 심정을 씩씩하고 호전적으로 만드는 성질이 있음을 경험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한결 합리적이다.

물론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만 음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신성함, 숭고함을 통한 집단적 일체감을 일깨우고 이를 통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 할 때도 특별한 종류의 소리는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또 평소에 두렵다고 느꼈던 소리들을 흉내 냄으로써 그 두려움의 대상을 무력화시킬수 있다고 믿는 주술의 도구로도 소리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을 사용했을 것이다.

2008. 9. 23.

음악, 그 존재론적 모순 (2)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이 두 현자들의 음악관은 기술적 의미를 넘어 그대로 평가적 의미까지 가지게 된다. 즉 음악가가 지녀야 하는 혹은 지녔다고 간주되는 전형적인 자질이나 속성, 즉 그가 제대로 된 음악가인가를 판단하는 준거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적 측면에서도 두 사람의 견해는 정 반대가 된다. 플라톤이 생각한 타고난 음악가는(부정적 의미지만) 규율과 속박을 싫어하고, 정열이 과도하게 넘쳐서 간혹 정신이 나가기도 하는, 즉 자주 신들리는 그런 사람이다. 이런 견해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강력한 예술가 상으로 남아있다. 베토벤이나 반 고호의 과장된 초상화들 속에, 엄청나게 화려하게 포장된 푸시킨이나 바이런의 그 많은 일화들 속에, 이중섭이나 이상의 신화들 속에, 파가니니나 리스트의 귀신같은 모습 속에 말이다. 반면에 피타고라스가 생각한 타고난 음악가는(그에게는 긍정적 의미) 무질서한 소리들을 수학적 규칙을 통하여 조화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역시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예술가 상으로 남아있다. 바하나 괴테의 그 심각한 모습의 초상화 속에, 마치 성자와 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 속에, 지휘봉을 마치 정교한 실험도구처럼 들고 있는 카를 뵘이나 빌헬름 프루트벵글러의 사진 속에, 파블로 카잘스나 아르뚜르 루빈시타인의 마치 철학과 교수 같은 경건하고 매서운 모습 속에.

그렇다면, 이 둘 중 어느 것이 음악의 진짜 모습일까?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지명도에서나 내공에서나 서로 만만치 않은 고대의 두 거인들. 과연 누가 음악을 잘못 바라본 것일까? 이게 화끈하게 결론이 나버리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옳고, 또한 둘 다 틀리다. 한마디로 둘 다 우리가 음악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아니, 기껏 플라톤이니 피타고라스니 끌어들이더니 결국은 불가지론 아니면 상대론이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러나, 나를 탓하지 마시라. 그래서 애초부터 존재론적인 모순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모순. 얼마나 편리한 말인가? 게다가 존재론적인 모순이라니. 이거야말로 세상의 모든 무지와 불가지론을 가장 멋지게 포장할 수 있는 근사한 수사법이 아닌가?

그러나, 이쯤에서 난 모순에 더 이상 기대지 않으려고 한다. 마르크스가 저승에서 내 뺨을 갈기려고 달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아, 그가 뭐라고 나를 비난하고 있다. 뭐, 모순이란 용어를 더럽히지 말라고? 아, 그러니까, 대립되는 존재가 서로 투쟁하는 과정 중에 새로이 발전되어나가는 것이 모순이라고? 그러니까. 미래에의 전망이나, 단초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단지 부정이라고? 허, 거 참 따지기는. 그러나 일리는 있다. 발전의 단초라.

단초를 찾아보자. 이 모순을 해결해서 종합으로 나아 갈 수 있는 단초를. 종합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나의 정신적 멘토인 아도르노가 매섭게 나를 째려보지만, 일단 모른 척 하자. 왜냐하면 내가 탐구하는 방법, 나의 사유 방법은 항상 그의 ‘부정변증법’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단초는 바로 플라톤과 피타고라스 두 현자가 모두 빼먹은 관점이 있다는 것이다. 즉 플라톤의 체계에서도, 피타고라스의 체계에서도 공통적으로 결여된 관점이 있다는 것이다. 정 반대의 주장을 편 두 사람은 과연 공통적으로 무엇을 빠뜨렸을까? 그것은 바로 음악이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음악은 귀신의 장난이었고, 피타고라스의 입장에서는 음악은 태초에 이미 확고하게 존재한 법칙이었다. 그렇다면 음악가나 음악을 듣는 청중은 무엇인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지만 쇼펜하우어 이전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미학자들은 늘 음악을 작곡자의 입장에서만 설명했다. 그리고 청중은 늘 수동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음악의 실제 현상화는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음악은 귀를 통해 청취자의 대뇌 속에서 어떤 반응을 야기 시킬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듣는 것이지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음악의 본질은 뮤즈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태초의 법칙에 있는 것도 아니며 오늘날도 꾸준히 음악을 듣고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청취하는 사람들의 뇌 속에 있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음악이라고 하는 행위를 만들어 내었고, 그 행위의 결과를 즐기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행위의 의미 또한 사람들의 일상적으로 음악을 듣는 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좀 더 현실적이 되어서 즉 청중의 입장이 되어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음악을 듣는가?”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래저래 따져보면 결국은 플라톤이 우려하는 바로 그 열광을 얻기 위해서 음악을 듣지, 직각이등변삼각형과 장음계와의 연관성을 통한 행성의 궤도증명을 하자고 음악을 듣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일단 플라톤의 판정승이라고 해도 좋을까?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음악을 만드는 이, 즉 작곡가나 연주자에게 물어본다면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작곡자나 연주자에게는 음악이라는 것이 유희나 해방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일종의 노가다일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노가다의 결과물을 일반 대중들은 해방의 도구로 접수하는 것이다. 메탈리카의 공연에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열광하는 청중들은 메탈리카의 음악이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된 방정식인가를, 그래서 메탈리카가 얼마나 초긴장 상태에서 소리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지(비록 입으로는 다 같이 로큰롤! 놀자!라고 하지만) 왕왕 망각한다.

결국 플라톤과 피타고라스가 비긴 셈이다. 음악은 결국 플라톤 적인 요소를 내용으로 삼고 피타고라스적인 요소를 형상으로 삼아 형성된 모순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둘 중 하나만 빠져도 음악이 성립되지 않는다. 플라톤만 존재하는 음악은 괴성과 광성의 연속일 뿐이고 피타고라스만 있는 음악은 따분한 음향 실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감상자는 플라톤을 요구하고 작곡자는 피타고라스에 의지한다.

즉, 감상자와 작곡가가 음악을 하는 목적이나 태도가 애시당초 아예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예술분야에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창조자가 되기보다는 감상자가 된다. 작곡은 그것과 다른 별도의 일이 되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사실 우리는 무의식중에 플라톤적인 열광을 음악의 본질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도 역시 그런 무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실제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음악의 역사는 플라톤을 쳐부수는 피타고라스 승리의 역사였다. 이게 점점 자라서 문제가 된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을 살찌웠고, 그리고 나서는 음악의 목을 조르고 있다. 마치 아이들을 살찌운 뒤 잡아먹는 마녀처럼. 오, 무시무시한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실제로 밀교 집단의 우두머리였고, 집단의 비밀을 누설한 자는 가차없이 숨통을 끊었다고 하는데, 음악이 무슨 죄가 있다고....그런데, 잠깐 여담....자, 이쯤되면 내가 아도르노의 방법론을 따라가고 있음이 느껴지는가?

2008. 9. 21.

음악, 그 존재론적 모순(1)

 

음악, 그 존재론적인 모순

 일찌기 화이트헤드가 서양의 모든 철학이 그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했던 플라톤은 그의 대표작인 ‘공화국’에서 모든 서사 시인들을 폴리스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 영리하게도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서 말이다. 플라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저작인 ‘이온’에서는 비극 시인과 서정 시인들을 매섭게 공격한다. 서사 시인들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대어 사실을 호도하기 때문에 위험한 사람들이며, 서정 시인들은 건전한 이성을 혼란케 하는 지나친 정념에 사로잡힌 존재들이라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플라톤이 시인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오늘날의 시인, 문학가와는 별 관계가 없다. 당시 시인이란 직접 노래를 만들어서 즉흥적으로 부르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요즘말로 한다면 싱어 송 라이터라고 할까? 밥 딜런이나 닐 영이 플라톤적인 의미에서의 시인에 가깝다. 따라서 플라톤이 말한 시인은 문학가가 아니라 음악가다. 당시 문학가는 주로 헤로도투스나 투키디데스 같은 저술가들이나 사용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단어였다. 플라톤은 여기에서 서사적인 예술과 서정적인 예술 전반을 공격한 것이며, 특히 음악과 결합된 예술을 공격한 것이다.

오늘날은 교양 있는 척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필수 아이템인 음악을, 그래서 3류 치정극도 주인공이 음악가가 되면 난데없이 수준 높은 드라마로 변신하는(아 꼭 베토벤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 음악을, 고명하시고 덕망 높으신 플라톤 선생께서는 왜 이리도 싫어하신 것일까?(물론 플라톤은 국가의 수호자 교육에서 당시 그리스 전통에 따라 플루트 교육을 정식으로 배치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지만). 선생의 한마디를 들어보자. 편의상 내가 좀 거칠게 뜯어 고쳤다.

“시인이란 뮤즈-음악의 여신-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뮤즈에 사로잡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코레이아(일종의 열광이라고 하자)라고 하며, 음악이란 (원문에선 서정시) 바로 이 코레이아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음악이란 정신 나간 상태에서 귀신들린 소리이며, 사이비 골수 개독들이 잘 내지르는 이른바 방언과 비슷한 것이다.”

자.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플라톤이 구상했던 이상적인 폴리스는 타고난 이성을 갈고 닦아, 세상의 모든 원리를 완전히 관통하는 그야말로 순수하고 무조건 옳을 수밖에 없는 그런 법칙, 즉 이데아를 관조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본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당연히 순수 합리의 세계인 수학의 세계이다. 그런데 음악이란? 정신 나간 사람들이 귀신들린 상태에서 내지르는 마성이고 귀곡성이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상실하고 방탕한 마음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독약일 뿐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자기 혼자 비이성적인 열광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빠져들게 하는 집단 광란의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은 시민들의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는 적이 되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플라톤은 음악에서 정확하게 “디오니소스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며, “아폴론의 세계”를 세우고자 하는 자신의 기획의 가장 큰 방해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1960년대 미국이나 유럽의 록 공연에서 볼 수 있는 그 오도방정 완전개판(어른들의 눈으로)의 모습을 플라톤이 본다면 “그래. 바로 저것 때문에 내가 음악을 두려워하는 것이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플라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음악이 오도방정의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더하여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중우정치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즉, 이렇게 코레이아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며, 급기야 잘못된 사실과 이야기를 확신의 대상으로 삼아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플라톤은 아주 어렵게, 자신의 젊은 시절 우상이었던 호메로스의 작품들조차 폴리스에서 추방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아름답고 매혹적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 속에 기록된 허구적인 역사와 허구적인 신화가 사실로 그럴듯하게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히틀러가 플라톤의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또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놓고 살육을 즐기는 장군의 섬찟한 모습을 통해서도 그러한 사실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플라톤이 두려워 한 것은,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감정 조작적 속성이었다. 음악은 감정을 조절하고 그것을 극대화함으로써, 이성까지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 조작적 속성이 마냥 선전, 선동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음악의 속성은 또한 도전적이고 전복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력 앞에 굴복한 노예들의 마비된 의식 속에 어떤 이성적인 설복으로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불어 넣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쇼 생크 탈출”에 보면 폭력과 명령에 복종하는데 완전히 길들여진 죄수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유를 순간적이나마 갈망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감옥이라는 제도는 사실상 무너지는 것이다. 또 영화 “라스트 액션 히어로”에는 막강하고 거친 액션 주인공인 쉬왈쩨네거가 피가로의 결혼을 들으면서 부드러운 남자로 변모한다. 이렇게 되면 액션영화의 세계는 전복되고 만다. 혹은 그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의 합창은 어떠한가? 이것을 오스트리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열망과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며, 그 오페라를 관람한 거의 모든 이탈리아인들은 특별한 해설없이 이를 직관했다. 완고한 노예제 옹호자였던 플라톤이 실제로 두려워 한 것은 바로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감쪽같이 이를 폴리스 전체의 이해관계로 포장한 것이다.

어쨌건 우리는 플라톤이 두려워했던 것을 통하여 음악의 중요한 속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현인이란 반드시 옳기 때문에 현인이 아니다. 그는 틀리기도 하고, 교활하게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그가 그릇된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 혹은 왜곡에 동원한 수법이 또한 가르침이 되기 때문에 현인인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현인임에 분명하다. 그가 두려워한 나머지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왜곡한 사실 속에서 음악의 중요한 속성을 유추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두려워한 바 음악의 속성, 그것은 모든 기성의 굳어진 사고를 집어던지고(현상학자들 말대로라면 판단중지), 그것을 음악에 맡겨버리는 열광을 통한 해방감과 그 감정의 집단 전이였던 것이다. 음악의 이러한 속성을 반드시 정확한 의미는 아니지만 흔히 쓰이는 용례대로 “디오니소스적 열광”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제 기왕 플라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그리스 노인분을 한 사람 더 초대하기로 하자. 플라톤을 전후하여 음악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사람을 열심히 뒤지다가 보면 수학 선생님들 한테는 좀 황당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단연 피타고라스의 이름 앞에 눈이 가서 멈추게 된다. 더욱이 흥미로운 사실은 피타고라스는 플라톤과 정 반대의 관점에서 음악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음악이라면 진저리를 쳤던 플라톤과 달리 피타고라스에게 음악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최고로 조화로운 세계의 표식이었다. 그는 음악이 조화의 세계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음계와 음정 등을 수학적으로 풀이해 내었다. 즉, 시인들이 정신 나가서 마구 내지르는 그 소리가 가만히 뜯어보니, 어떤 수학자의 공식보다도 정확한 조화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수학공식으로 환원시키는 일을 거의 필생의 작업으로 삼다시피 했다.

그런데 실제로 음악에는 그런 수학적인 신비함이 있다. 예컨대 ‘도’ 소리를 내는 현의 길이를 절반으로 줄이면 한 옥타브 위의 도가 된다. 그러니까 현의 길이를 계속 1/2, 1/4, 1/8로 줄이면 여전히 높이만 다르지 같은 음정이 나오는 것이다. 1/3로 줄이면 레가 되고 1/5로 줄이면 솔이 된다. 이런 방법으로 1/12까지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계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오묘한 조화의 세계인가? 음악은 사실상 수학적으로 짜여진 법칙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피타고라스는 음악이야말로 소우주이며 모든 법칙과 조화의 총아임을 확신했고 결국 “우주는 거대한 교향곡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도를 완전히 완성해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정말로 교향곡을 들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물론 피타고라스한테 물어보면 “네 귀에는 안 들리지만 내 귀에는 들린다”라고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플라톤과 달리 그는 음악을 무질서와 혼돈이 아니라 조화의 극치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2008. 9. 19.

코지판투테를 보는 어린이

오페라 하우스의 엄마들. 그리고 거기서 몸을 뒤틀며 소음을 만들어내는 아이들. 그리고 분위기 잡친 청중들..... 한국에만 볼수 있는 괴이한 현상이다. 그 엄마들의 속셈은 무엇일까? 아마 세계 명작이니 무조건 들려야 한다. 그 놈의 세계명작.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앉혀놓고 귀에 고문을 강요한다. 아이들은 칭얼대고 뒤척이고, 주변의 진지한 청중들은 짜증이 난다. 몇만원을 들여서 나온 자리인데 저 아이들이 내는 소음때문에 감상이 엉망이되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명작을 쑤셔넣기 식으로 감상시킬수 있다는 저 믿음, 억지로 쑤셔 넣어도 명작이니까 뭔가 좋을 것이라는 저 괴상한 신념은 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그런데 무대에서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판투테"가 진행되고 있다. 이 오페라의 주된 내용이 뭔지 알기나 하나? 그건 스와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란 말이다. 물론 음란한 의미로 이 주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절이니 정조니 정숙이니 하는 부르주아의 도덕을 야유하면서 인간에 대한 진실, 자신에게 솔직함의 새로운 도덕을 역설하는 고차원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스와핑이다.

저 아이들이 뭘 이해할수 있을까? 스와핑, 아니면 억지 도덕을 초월한 진실한 도덕?
하긴 말러 교향곡 연주하는 음악회에 6살짜리 아이 데려와서 아이는 징징대고 부모는 쿨쿨 골아떨어진 참변을 본 적도 있으니...
내가 알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타인의 기준, 타인의 평가에 의해 자식들에게 강요하는 저 비주체적인 부모들을 보고 누가 부모님 은혜 운운하겠는가? 무지한 사랑은 차라리 지혜로운 학대만도 못한것을...

기왕 얘기 나온 김에 코지판투테에서 한 곡. 피오르딜리지가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

2008. 9. 18.

음악에세이 1 -음악과 음악감상

음악과 음악감상

우리 나라에서 취미에 대한 설문 조사라도 할라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음악감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취미로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 하면 음악 연주, 혹은 음악 비평이나 음악 작곡이 취미로 등장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나라는 엄청나게 광범위한 음악 소비계층을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적어도 음악 생산자와 음악 소비자의 비율을 보면 그렇다. 턱 없이 부족한 음악 공그자와 무지막지하게 많은 음악 소비자의 비율.

그렇다면 이명박이 그토록 숭상하는 시장경제의 법칙에 따라 -그런데 주제에 벗어나는 말이지만 시장경제는 그 출발점부터 모순이다. 일견 가장 정확해 보이는 수요공급곡선이라는 대전제부터가 틀렸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에게 따로 문의하기 바란다.- 우리 나라의 음악 공급자는 엄청난 독과점이윤을 누려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취미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한국어의 원초적 어휘 빈곤 때문에 할 수 없이 영어를 병용해서 표현한다면, 아니 김대중이랑 신낙균이 좋아하게 한자까지 같이 병용 한다면 한국인은 취미(趣味 Hobby), 취향(趣向 Taste), 관심사(關心事 Interest )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것들을 그 중독성에 따라 수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취미>관심사>취향의 순서가 된다.따라서 “나의 취미는 음악감상이다.”라는 문장과 “나는 음악감상에 관심이 있다.”라는 문장은 그 의미가 다르며 더더군다나 “나는 음악 쪽에 취향이 있다.”라는 말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약간 관심이 있거나 그쪽으로 좀 구미가 당기는 정도를 모조리 취미라고 해버리는데, 그것은 비약도 엄청난 비약인 셈이다.

적어도 취미라고 할 수 있으려면, 노동하는, 즉 생존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벌어 들이는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이, 심지어는 노동의 시간을 방해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투자되는 생산 외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이른바 레져의 시대를 맞이해서 취미와 노동시간의 비율이 상류층과 하층민을 나누는 중요한 잣대(엥겔 지수를 밀어내고)가 되고 있는 마당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 음악감상이 취미인 사람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 수는 얼마나 되는가? 바로 여기에 통계상의 거품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 갑자기 뜬금 없이 왜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하는가? 그것은 나의 가장 강력한 취미는 음악감상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고, 그때 그 취미로서의 음악감상이 흔히 달리 적을 것이 없을때 취미로 적어 넣는 음악감상과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나의 음악감상은 손으로 획득하는 음악기술을 성공적으로 획득하지 못한 나의 한을 온통 귀에다가 쏟아 부은 한풀이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예민하고 고급스러운(?) 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음악을 전공하는 것과 고급의 귀를 가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명 가수가 명 프로듀서나 명 기획자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또 반대로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나 연주하는 사람이 뜻밖에도 다른 사람의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다거나, 다른 사람의 음악을 쉽게 오해하는 경향을 보이는 일도 왕왕 있다.비단 음악뿐이 아니다. 위대한 영화감독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천재감독 팀 버튼이 정작 영화 감상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팀 버튼은 심지어 자신은 영화를 보는 눈이 형편없다고 스스로 떠벌리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에드 우드’ 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형편없는 영화 보는 안목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공개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기인은 기인이다.

어디 그 뿐일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이 사람의 작품을 좋아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요한 세바스챤 바흐의 경우는 평생토록 독일의 한 제후국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고, 당시 유럽의 다양한 음악을 거의 들어보지 못한 편벽된 귀를 가지고 있었다.물론 음악을 듣는 안목도 썩 신통치는 않았다고 한다. 그가 접한 음악은 공연이 아닌 단지 악보인 경우가 많았다. 하긴 바하는 뛰어난 수학자지 음악가는 아니니까

만약 필자가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역시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남의 글을 읽지 않는 인간도 드물테니까. 특히 문학작품은 거의 읽지 않아서 돈 주고 사 본 시집은 이백 시선과 굴원의 초사 두권, 만약 시경을 시집으로 넣어 준다면 세권 뿐이었고, 그 외에 읽어본 시라고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 오페라 대사, 그리고 케케묵은 역사책에 실린 한시들 정도였다. 아참! 앞서 소개한 시집들 외에 돈 주고 산 시집이 세 권이 더 있다. 하나는 중학교 때 용돈을 모아서 산, 화려하게 그림으로 치장된 워즈워드의 시집이었고, 또 하나는 대학교 때 산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Ausgewaehlte deutche Lyriken'이라고 하는 독일 시인 선집이다. 어쨌든 나의 시 쓰는 능력과 시 읽는 능력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나의 음악을 듣는 능력이 음악을 연주하거나 작곡하는 능력과는 무관하게 발달되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가능하다.

어쨌거나 나는 오랜 방황 끝에 나의 진정한 재능이 손 보다는  귀와 주둥아리에 있다는 것을 차차 깨달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 마의 80년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음악 미학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길. 그렇다고 내가 80년대 때 좌익 폭력학생이었던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니까. 난 지금도 정치적으로는 좌파이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1)좌익 폭력학생, (2)회색분자, (3)우익, (4)정치에는 무관심하며 나에게만 충실 이 네 가지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1)번을 다시 고를 테니까. 그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내가 나의 모든 것을 꽃 피우지 못하고 이렇게 된 원인이 좌익폭력학생들이 벌려 놓은 일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시절의 좌익폭력학생들의 꿈과 이상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데 있다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물론 이때 내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상주의자로서의 좌익학생은 결코 통일을 부르짖는 민족주의 그룹, 일명 주사파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르크스는 인정하지만 레닌에서부터는 뭔가 변질되어간다고 느꼈고, 그 이후 현실 사회주의권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오히려 나의 이상은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혁명분자들, 예컨대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 라파르그, 그리고 뜨로츠키쪽에 가까웠었다. 19세기의 젊은 혁명가 게오르크 뷔히너 -당통의 죽음, 보이체크 등의 작가- 도 나를 온통 사로잡았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실패한 현실사회주의 조차 한국보다는 훨씬 행복해 보였었다. 내가 한국이 아니라 공산당 치하의 소련에 태어났더라면 과연 지금과 같이 한심한 어른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그렇다.만약 내가 구 소련에 태어났더라면 그들의 정교한 사회주의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훌륭한 조기교육훈련을 받고 뭐가 되어도 되었을 것이 아닌가? 공산주의 사회는 재능 있는 자에게는 천국인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돈 있는 자에게 천국이듯이.(이걸 고무찬양이라고 잡아가고 싶다면 잡아가라, 이 떡검들아).동구권의 몰락은 재능은 없으면서도 돈과 명예는 차지하고 싶어 했던 다수의 열등분자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지, 결코 자본주의의 우월성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단연코 미국과 소련 중 진정한 기회의 나라는 소련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주제와 관계없는 얘기는 여기에서 접어두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지는 그 동안 나의 음악을 듣는 귀가 매우 훌륭해 졌다는 것이고, 그것은 대체로 초등학교 6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용돈과 참고서 값을 아껴가며 판을 사 모았고, 그렇게 사 모은 판이 고등학교 졸업 할 무렵에는 마침내 수백 장에 이르렀다. 그것도 오로지 고전음악만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어서 이사 갈 때마다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엘피판들이지만(때로는 경매 붙여서 목돈 좀 챙겨볼까 생각도 하게 만드는), 청소년 시절에 클래식 음반을 그 정도로 사 모은 사람은 별로 없었으리라. 나의 음반과 나의 음악생활은 나의 문학적 소양과 더불어 많은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그 덕택에 나에게는 추종자도 꽤 많이 있었다. 그중 가장 열성분자가 한때 영화감독으로 뜨는 것 처럼 하더니 소식이 끊긴 진원석이란 녀석인데, 대학교 2학년 이후 그 녀석과 교류가 끊어진 것이 참 안타깝다. 조금 더 나의 영향을 받았으며 좀더 알맹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어쨌거나 신기한 것은 팔방미인으로 불리던 내가 음악을 직접 만드는 것도 아닌 단지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 행위에 그렇게 깊이 몰입 했다는 것, 그것도 무려 30년이나 지나버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점점 그 도가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이토록 오래 동안 한 우물을 판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다.그토록 미쳐있었던 등산조차 요즘은 시들한데 그 보다 더 오래된 음악 듣기는 오히려 도가 더 심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한때 음악을 연주하는 일과 작곡하고 지휘하는 일에도 빠져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락 한다면서 끄적대었던 20대 후반을 끝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예전처럼 흥미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의 관심은 오로지 듣는다는 그 하나의 행위에만 몰입되어 버렸던 것이다. 연주도 싫고, 작곡도 싫지만 듣는 것은 좋다?여기에서 난 한가지 의문을 던져야 했다. 그렇다면 작곡, 연주 그리고 음악 듣기라는 이 세가지 활동은 모두 음악이라는 범주하에 포섭되어 왔지만 사실은 상당히 다른 감성 코드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가 모조리 음악활동이라고 뭉뚱그리는 이 세 가지가 사실은 전혀 다른 감성과 능력을 요구하는 전혀 다른 활동이 아닐까?연주도 작곡도 아닌 음악을 듣는다는 단 하나의 행위가 지닌 마약과 같은 힘. 나를 20년간이나 사로잡고 앞으로도 계속 사로잡을(최근 3년 동안 사 모은 음반이 무려 싯가로 천만원 어치다. 나의 연봉을 고려해 보면 정말 무모하다시피 사 모은 셈이다. 그러고도 파산하지 않은 게 신기하다.)그 힘이 무엇인가 한참 고민하던 끝에 마침내 나는 아주 요상한 문장 하나를 만들어 내었다.


“음악의 존재론적 모순에서 파생되는 갈등과 긴장이 엮어내는 역동적인 자기 파멸적인 힘이 음악을 오로지 듣게 만든다. 연주와 작곡은 이와 다른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아니 대관절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벌써 야유 소리가 들린다. 진중권이 흉내 내려고 하는 짓거리면 이쯤에 그만 두라고 하는. 그러나, 염려하지 마시라. 난 진중권 보다는 훨씬 겸손하니까. 그래서 난 앞으로 이름 깨나 알려졌다고 하는 양코백이 철학자들의 글은 가급적 인용 안 하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들먹여야 하겠지만, 난생 처음 들어보는 학자의 이름과 그의 야릇한 문장이 인용됨으로써 읽는 이들의 기를 죽이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개똥철학 같은 문장을 만들어낸 것은 순전히 복잡하기 짝이 없이 생겨먹은 음악의 탓이지 절대 내 탓은 아니다. 그러니 탓하려면 음악을 탓하시길. 나도 음악이 너무도 복잡해서 울궈도 울궈도 끝이 없어서 지쳐 쓰러질 지경이니까. 어쨌건 이제 함께 개똥철학을 시작해 보자.

2008. 9. 16.

얄미운 천재 미하일 플레트네프

디누 리파티 이후 그의 포스를 대체할만한 피아니스트는 나오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EMI에서 짝퉁 디누리파티 음반을 발매하다 걸려서 망신을 당했을까?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다 되어서야 그런 포스를 가진 피아니스트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바로 미하일 플레트네프다.

2005년의 일이다. 6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피아노 독주회를 갔다. 6년 전에 공연 도중 기침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짜증을 숨기지 않은 이 성격 까다롭고 민감한 천재는 공연 시작하기 전 부터 그 성깔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공연 시작한 다음에 뒤늦게 들어오기 일쑤인 몰지각한 청중을 의식해서 아예 공연시간을 20시로 30분 늦추었다. 그리고 신경 거슬리는 기침소리들을 의식해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전혀 인터벌을 두지 않고 연주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의 연주는 한 마디로 연습해서 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니었다. 첫번째 곡목인 베토벤의 7번 소나타. 1악장에서는 마치 수학공식처럼 피아노 소리를 정교하게 재구성한 그는 2악장에서는 폐부를 찔러대는 깊은 정서로 노래했다. 그리고 3악장에서는 미뉴엣이 단지 춤곡이 아님을 증명했고, 4악장에서는 프레스토 템포로도 여유있게 노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사단이 일어났다. 원래 공연에 늦으면 인터미션때 입장해야 하고 1부 공연은 포기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1부 첫번째 순서가 끝나면 입장을 시킨다. 그 순간의 어수선함은 정말 화가날 정도다. 이는 나 뿐 아니라 플레트네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7번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이 끝나고 당연히 박수가 나와야 할 상황인데 그는 1초의 짬도 두지 않고 바로 8번 소나타 연주를 시작했다. 중간입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몰지각한 홀 매니저가 입장을 시켜버렸다. 이제 큰 일이 났다. 저 성질 까다로운 천재가 연주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무려 200여명이나 되는 지각생들이 우르르 입장하고, 구두소리를 딸깍이고 휴대폰 소리를 냈던 것이다.

일이 벌어졌다. 피아노, 지휘, 작곡 세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가히 음악계의 황제라 할 만한 그리고 그런 만큼 겸손함을 전혀 미덕이라 생각하지 않는 오만한 천재가 웅성거리며 서성대는 청중들 사이에서 연주해야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내심 나는 저 예민한 인물이 화를 버럭내며 연주를 중단하고 퇴장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실제 그의 얼굴에는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그 짜증과 분노를 엉뚱하게 표현했다. 바로 연주로!

그가 연주한 베토벤 8번 소나타는 여태까지 들었던 그 어떤 연주보다 빨랐다. 프레이징은 기존의 정석과 너무나 동떨어졌고, 터치 하나하나마다 짜증이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짜증과 분노를 연주했다. 사실 그 순간 플레트네프는 한시라도 빨리 이 몰지각한 청중 앞에서 연주해야 하는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법은 단 하나 빠른 템포로 가볍게 연주하는 것. 정상 속도보다 1.5배 빠르게 연주하는 베토벤 8번 소나타는 '비창'이 아니라 '짜증'으로 닉네임이 바뀌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분명 플레트네프는 짜증스런 상태에서 한시라도 빨리 연주를 끝내려고 가벼운 터치로 빠르게 연주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새로운 해석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에는 일점 반획의 오차도 없었고, 밸런싱과 프레이징은 완벽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짜증마저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천재로 태어난 자의 비운이다. 천재의 정서는 표현되는 순간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표현이 되어버린다. 화를 내던 슬퍼하던, 짜증을 내던, 공포를 느끼던,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 일반인들은 그것을 감상한다. 화를 내면 그 격렬함의 파도를 즐기고, 슬퍼하면 그 비극적 정서를 즐긴다. 불행히도 일반인은 천재의 즐거움이란 정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저 플레트네프의 짜증처럼 천재의 부정적인 정서를 좋아한다.

그의 짜증은 정말 경이로웠고 또 아름다웠다.

그리고 2부... 쇼팽의 24개 전주곡을 연주한 2부는 너무도 훌륭한 연주였기에 따로 서술하지 않겠다. 그리고 몰지각한 청중들이 시계를 보며 미리 퇴장해 버린 다음 커튼콜을 계속하고 있는 진짜배기 청중들에게 선사한 기나긴 앵콜 공연에서 보여준 그의 연주는 전율스러웠다.

아마도 피아노 공부하는 사람에게 미하일 플레트네프라고 하는 이름은 영원한 저주이자 경외이자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참고로, 그는 두시간에 달하는 공연 내내 단 하나의 미스터치도 범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한국에 도착 한 뒤 단 한번도 연습이나 리허설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단하다 못해 얄미운 존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50대가 된 플레트네프는 피아노에 손을 잘 대지 않는다. 이제 그는 지휘자가 되었다. 에셴바흐에 이허 또 한명의 아까운 피아니스트가 지휘대에 흡수되었다. 대체 왜들 그러는지. 쩝.
여기서 플레트네프의 연주 한 자락.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의 3악장


2008. 9. 15.

수석교사제에 대하여(작년에 썼던 글)

승진이 교사의 보상이 될 수 있는가?
   
교직사회에서는 “수석교사제” 시범운영 계획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한국교총은 이것이 자신들의 교섭의 개가라며 기세를 올리며, 교육부는 이것이 교육현장을 왜곡시키는 승진병의 해법이라며 환상을 유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내용을 살펴볼수록 이번에 발표된 수석교사제는 목적이 모호할 뿐 아니라, 그것을 달성할 수단도 부재하다. 수석교사제의 목적은 승진제도의 대안이거나, 그동안 부족하다고 지적되어온 교사의 외적 보상의 보완일 것이다. 이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옥상옥이며 예산낭비다.
승진부터 살펴보자. 교사 승진제도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심지어 교육 왜곡의 주범으로 지목당한 이유는 교육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현재 교사의 승진은 교감, 교장이 되거나 장학관, 혹은 연구관이 되는 것 외에 없다(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장학사, 연구사는 교사와 동급이다). 그런데 교감, 교장이나 장학관 등은 행정직이다. 따라서 행정 업무에서 우수한 실적을 올린 사람이 선발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교사의 각종 행정사무가 원칙적으로 “잡무”라는 것이다. 유일한 승진사다리인 교감이나 장학관 코스에 올라타기 위해 교사들이 주무인 “교육”이 아니라 “잡무”에 몰두해야 하는 것이 기막힌 현실이다. 교육법에 따르면 교사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행정직원은 “각종 행정사무를 수행한다”. 현재 교사들이 분담하고 있는 행정사무는 엄밀히 말해 행정실 인력이 충분치 않은 현실을 감안해 도와주는 것이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경기장 직원이 부족해서 부득이 야구선수가 각종 뒷정리도 분담하고 있는데, 누가 청소를 잘했냐를 기준으로 4번타자를 결정한다면 여기에 누가 승복하겠는가?
물론 교육부도 이를 인정하여 행정사무가 아니라 “교육에 충실한” 교사들에게도 승진의 기회를 주기 위해 수석교사제를 실시하는 것이라 한다. 즉 행정직 승진 코스와 교육직 승진 코스를 두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문장들을 진지하게 읽어보면 행정직이 승진코스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교감, 교장, 장학관은 명백히 행정직이다. 따라서 그들의 적성은 교사의 그것과 판이하며, 그 직종으로의 전환은 승진이 아니라 업무 변경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즉 교사경험이 있는 행정직원인 것이다. 구청 서기가 교사의 상관이 아니듯, 교감과 장학관도 교사의 상관이 아니다. 교감, 교장은 학교의 각종 재정과 행정을 책임지는 실무자가 되며 장학관은 필요한 지원과 조언을 제공하면서 행정적 조정을 담당하는 관청 직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학교에서야 비로소 수석교사가 학교의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나 장학 등을 지원하면서 교육 3주체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진정 이런 학교를 만들 의지가 있는가?
그들의 계획에 따르면 수석교사들을 교육청 소속으로 해서 자기 학교가 아니라 지역 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사실상 장학사 일을 시키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게 과연 수석교사인지 아니면 교육청 하급 심부름꾼인지 참으로 혼란스러워진다. 마치 행정관청 일을 조금 나눠서하는 것이 곧 승진이라는 터무니없는 공식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십년을 단지 평교사로 늙어가는 것이 교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혹은 그저 시간만 채우고 월급이나 받아가는 교사와 열심히 연구하고 교육한 교사간에 아무런 차등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처럼 신규교사나 수십 년을 매진한 원로교사나, 혹은 그저 호봉만 올린 교사나 웬만한 교수와 맞먹는 학식과 덕망을 갖춘 교사들이 거의 동일하게 막교사로 취급되는 현실은 큰 문제다. 노고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필요하다. 보람과 긍지라는 내적 보상에만 의존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수석교사제가 묵묵히 학식과 덕망을 축적하고 아이들을 사랑해 온 교사들에 대한 보상이 전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보상은 자신들의 지식과 덕망에 대한 합당한 사회적 대우와 존경이지, 무슨 지위나 금전 따위가 아니다. 그리고 사회적 대우와 존경은 바로 자율권을 확대해주는 것, 신뢰를 보여주는 것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이미 교사에 대한 각종 포상, 표창이 승진에 눈먼 교사들의 쟁탈물로 전락한 현실을 감안하면 현재의 교감, 교장 승진제도가 온존한 상태에서 장학사 비슷한 수석교사제가 도입된다고 한들, 그 자리가 진정 학식과 덕망을 축적한 분들에게 돌아갈 것 같지 않다. 더구나 교육부 계획에 따르면 어느 정도 수준의 경력과 실적이 누적되면 자동적으로 수석교사라는 등급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미리 정해놓고 경쟁을 붙여서 관청이 최종 선발하는 방식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단을 황폐화시켜온 교육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승진점수에 만 몰두하는 목적전치 현상의 대상만 하나 추가시킨 꼴이 된다. 승진점수 채우는 고등수학에 능한 사이비 교사들이 “교감 못되었으니 하다못해 수석교사라도”하면서 몰려들 것이 불 보듯이 훤하기 때문이다. 결국 마땅히 보상을 받아야 할 교사들은 또 다시 소외되고 말 것이다.
참교육에 매진해온 교사들이 바라는 보상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후배교사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픈 것이며, 거기에 합당한 명예를 받는 것이다. 그들을 교대/사대의 겸직교수로 보임하여 앞으로 강화될 것이 예상되는 교생실습을 전담하게 한다거나, 혹은 학교 내에서 멘터나 컨설턴트의 역할을 맡게 하면 충분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현행의 각종 교육청 장학은 폐지되어야 한다. 수석교사의 잔소리가 장학사의 잔소리에 추가되는 형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다 한 번 와서 신소리나 해대는 장학사보다는 같이 근무하면서 조언해줄 수 있는 존경받을 만한 중견교사가 젊은 교사들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어느 경우에나 지금까지 시대를 거슬러 어거지로 유지해온 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교사에 대한 행정 관료의 우위를 포기해야 한다.
요약하자. 수석교사제가 승진제도의 개선이 되려면 교육직이 아니라 행정직이 승진으로 간주되는 현행 승진제도 자체가 개편되어야 한다. 즉 교장, 교감, 장학관은 상급자가 아니라 다른 직종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수석교사가 제대로 된 승진제도가 될 것이다. 수석교사제가 보상에 대한 보완이 되려면, 관청이 선발하려는 발상을 버리고, 덕망과 학식이 입증되면 숫자와 무관하게 모두 그 자격을 획득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 업무도 교생실습이나 학교 내 각종 자문으로 해야지 계획안처럼 교육청이 배당하는 엉뚱한 남의 학교 돌아다니며 잔소리나 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수석교사제는 아무짝에 소용없는 승진병의 확대판에 불과할 것이다. 여기에 낭비할 예산이 있다면 교사들의 도서구입비를 세금 공제라도 해주는 것이 교육에 훨씬 보탬이 될 것이다.

2008. 9. 14.

사르트르 "실존주의란 무엇인가?"에서 한토막

.....

도스또에프스키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바로 이것이 실존주의의 출발점입니다. 실제로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따라서 그 결과 인간은 홀로 남겨지게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인간은 자기 안에서도, 또 자기 밖에서도 그가 매달릴 만한 그 어떤 가능성도 찾을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는 핑계를 찾지 못합니다. 만약 정말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인간은 결코 응고된 채 주어진 그 어떤 인간 본성에 의존하여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즉, 결정론이 없습니다. 인간은 자유로우며, 바로 그 자유인 것입니다. 한편 신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 행실을 정당화시켜줄 가치나 질서를 우리 앞에서 찾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변명 또는 핑계를 우리 앞에서도, 뒤에서도, 가치의 밝은 영역 속에서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핑계도 배제된 채 홀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고 말하면서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고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유롭습니다. 그 자신이 세계속에 던져진 이상, 인간은 자신이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자는 정념의 힘을 믿지 않습니다. 강한 정념이 인간을 어떤 행위를 향해 숙명적으로 이끌어가는,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격류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 정념이 하나의 핑계거리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는 인간은 자신의 정념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은 그 어떤 뒷받침도, 어떤 도움도 없이 매 순간 인간을 발명하도록 선고받았다고 생각합니다. ....

 

2008. 9. 12.

하스킬/그뤼미오의 라이벌 커플 해블러/셰링

해블러/셰링 커플은 역사적으로 라이벌이지, 엄밀히 말하자면 하스킬/그뤼미오 커플의 대체재다. 하스킬의 급작스런 죽음은 저 환상 듀엣으로 많은 돈(?)을 벌던 필립스사를 당황하게 했다. 그리하여 그뤼미오와 함께 당시 세계 바이올린계를 양분하고 있던 헨릭 셰링(1918~1988)과 역시 클라라 하스킬 이후 최고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이자 여성피아니스트였던 잉그리트 해블러(1929~)의 역사적 커플이 만들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빠와 누이같이 구수하고 안정된 연주를 보여준 셰링, 헤블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후 이들은 모차르트의 모든 바이올린,피아노 2중주 소나타, 베토벤의 모든 2중주 소나타를 음반으로 남기는 등 빛나는 활약을 펼친다. 이들은 각자 솔로연주자로도 맹활약했으며, 또한 셰링의 건강상태가 문제가 된 1980년대 이전까지 듀엣으로도 맹활약했다. 그리하여 아직까지도 이 장르에서는 하스킬/그뤼미오, 헤블러/셰링 짝이 여전히 전범이자 교과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하스킬/그뤼미오 짝이 감성적이고 표현적인 연주자들끼리의 조합이라면, 원래 모차르트가 아니라 바흐 스페셜리스트인 셰링과, 빅토리아풍 요조숙녀인 헤블러는 단정하고 구조적인 연주자들끼리의 조합이다. 따라서 두 커플은 상당히 대조적인 연주를 보여주며, 같은 음악이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되었다. 또한 음악적 표현에서 표현과 구조라는 두 축의 가장 좋은 모범으로 꼽히게 되었다. 한 마디로 하스킬 팀 연주가 서정적이고 가슴에 파고든다면, 헤블러 팀 연주는 편안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

또 하스킬 커플은 피아니스트가 연장자, 누나이며, 셰링 커플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장자, 오빠다. 이 점도 역시 두 커플 연주에서 상당히 다른 소리를 만들어낸다. 전자는 귀여운 남동생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가 주도하며, 후자는 어여쁜 누이 피아니스트 해블러가 주도한다. 양자 모두 연장자는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후배의 활약을 지켜보며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공교롭게 한쪽은 피아노가, 다른 쪽은 바이올린이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 역시 상당히 대조적인 연주로 이후 많은 연주자들이 비교, 참고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럼, 이전에 올렸던 하스킬/그뤼미오 의 연주와 비교하기 위해 똑같은 모차르트의 K378번 소나타의 1악장을 헤블러/셰링의 연주로 올려본다.


교감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학교에 참 요상한 자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감이다.
요상한 이유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가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교감은 완전히 교장의 땜방이다. "교장을 보좌하여 ~, 교장 유고시에~"

그런데 같은 법에서 "교장은 필요시 교사중 한 사람을 지명하여~ 담당하게 할수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즉 교감은 교장이 일이 많거나 도움이 필요할때 지원하는 역할이며, 교장에게 일이 생길 경우 백업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교장은 평소에 교사중 하나를 지정하여 그런 역할을 맡길수도 있다. 즉 교사중 아무나 백업을 준비해 두면 그만인 것이다. 굳이 있을 이유가 없는 자리다.

결국 현실 학교에서 교감들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는 오직 하나다. 교사가 바로 교장이 되는게 아니라 거쳐가는 단계를 하나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교감의 가장 중요한 일은 "교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사실은 할 수 있는 일도 그것밖에 없다.

과거에는 교감이 하는 일이 퍽 많았다. 그것은 "교사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유신, 5공시절, 지식인들의 동향에 민감하던 독재자들은 그 중 가장 위험할수 있는 집단인 교사들의 동태를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교장은 교사들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서 한계가 있었기에, 교무실 한 가운데 감시탑처럼 박아놓은 교감이야말로 그 적격자였다. 심지어 교감에게 정보비라는 수당까지 지급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교감은 교육적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이런저런 행정 문서에 서명하고, 공문 날짜 체크하는게 전부다. 사실 이런 일은 상고에서 잘 배운 비서직 사원들이 훨씬 더 잘한다. 뭣하러 500만원씩 월급줘가면서 저딴일을 시키는가? 결국 교감의 역할은 교무실 가운데 앉아있는거다. 아무일 안해도 좋다. 인터넷으로 야구중계를 보거나 바둑을 두어도 좋다. 그저 가운데 버티고 앉아서 교사들이 알아서 기게 만들면 된다. 호통과 위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친밀감과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혹시 있을지 모르는 교사들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사전에 차단해서 충실하게 사회재생산도구로 기능하게 감시하고 조율하는 자, 그게 교감인 것이다.

그런데, 권위주의 독재시대가 끝나고, 게다가 학교라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낡은 틀이되고,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집권형 공교육이 석양에 서자, 그만 교감이라는 자리라 붕 뜨고 말았다. 아무 권한도 없고, 이제는 감시, 통제라는 역할도 미약해진 교감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교장이 되기 위해", "교장에게 충성하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교장이 될 것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교장의 의향을 먼저 살펴서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이를 위해 호통이던, 인간적 유대든 동원하는 것, 그것이 교감의 역할이 되었다. 말하자면 영혼을 교장에게 맡긴 수족이 된 것이다.

도대체 이런 직책이 학교에 왜 있어야 하는가? 노인네가 심심해지면 성질 고약해진다고, 할일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먹은 교감(교장되는 것도 포기한)들은 교사들과 되지도 않는 언쟁을 벌리며 교무실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든다. 지금 상태로서 교감은 백해무익한 존재이며, 한시라도 빨리 폐지되어야 할 직책이다.

만약 교감이 가치가 있으려면, 지금 교사들이 하고 있는 온갖 행정잡무를 모조리 전담해야 한다. 혼자하기 힘들면 교감 수를 늘리면 된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교감되서, 저 승진병 환자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일인 행정잡무만 하루종일 하게하면 된다. 아마 교감 두세명이 달라붙으면 교사 50명이 아까운 수업시간 사이사이에 스트레스 받으며 해야 했던 각종 행정업무를 모조리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교감을 폐지하거나, 모든 행정업무를 전담케 하는 것. 어렵지 않고, 돈 더들지 않는 교육개혁의 쉬운 방법이다.

2008. 9. 11.

전교조내 운동권 정파를 비판함(2) -정파가 어쩌다가 생겼나?

지난번에 전교조내 운동권 정파들의 경직된 믿음과 그것이 야기한 갑갑한 상황에 대해 개관하였다. 이제 구체적으로 전교조내 정파들의 현황과 실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것을 보고 분개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기가막힐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포스트가 조중동 잡것들에게 이용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다 현재보다는 났다. 어차피 깨져야 할것들이니.

우선 전교조내 정파가 무엇인지 정의하자. 정파란 조합원들 중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여론 주도층, 즉 활동가들이 일정한 사회, 정치적 견해에 따라 모인 의견집단을 말한다. 얼른 보면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임의적인 모임 같지만, 뿌리깊은 인맥으로 엮어져서 지금은 단지 의견집단이라기 보다는 마치 조선시대 노론, 소론 같은 단단한 당파로 고착되어 있다.

이하의 내용은 이금자 선생님의 성공회신학대학 석사논문에서 상당부분 따온 내용이다.

그 뿌리는 전교조가 세워지기도 전인 전교협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교협 건설의 두 주역은 YMCA, 흥사단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공개조직과 서울 남부지역에서 서서히 수를 늘려나가고 있던 비합법 지하조직이었다. 아무래도 전자는 시민운동, 개혁운동적 성향이 강하고, 후자는 레닌주의, 좌파적 성향이 강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교협 발족까지 그 뜻을 같이한다. 공개조직 활동가들이 주로 대표와 공식적 직함을 맡았고, 비공개조직 활동가들은 각 현장 조직을 감당했다.

이들이 처음 갈라선것은 전교협을 노동조합으로 전환하자는 공개조직파에 대해 시기상조이니 제2교직단체로 출범해야 한다는 비공개조직파가 반대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노동조합으로 발족했고, 다 알다시피 가혹한 탄압으로 1500명이 해직되었다. 해직되지 않은 20000여명의 교사들은 자신이 조합원임을 숨기고 활동해야 했다.

이때 비공개조직파를 중심으로 대량해직 사태를 더욱 쟁점화하면서 공세적으로 돌파하자면 20000명의 이름도 다 밝히면서 즉, "어디 다 짤라 봐라!"하면서 밀어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비판안"이라 불렀다. 반대로 무리한 투쟁은 그나마 남은 조합원들의 탈퇴를 불러오니 현장  교사대중의 수준과 이해에 맞추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붙었는데, 이를 "기존안"이라 불렸다.  이로써 "과감한 선도투쟁"과 "현장의 대중정서"라는 두개의 대립적인 전술이 분명해졌고, 처음으로 정파라 불릴만한 집단이 이 두 전술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 기존안에서 다시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른바 10인안 그룹이라 해서, 교원노조가 문제가 되면 교사조합이라는 이름으로라도 합법화를 먼저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기존안 진영의 나머지와 비판안 진영이 합세하여 이들을 공격하였고, 결국 10인안 그룹(주로 YMCA 출신들)은 기존안 진영에서 분리되어 나름의 인맥을 바탕으로 참교육교사연대(참교연)라는 별도의 정파로 독립하게 된다. 이후 뜻밖에도 "노동조합으로 합법화"가 이루어지며(사실은 비정규직 입법과 교환한 더러운 뒷거래의 결과), 노조사수론을 끝까지 움켜쥐었던 기존안 그룹이 합법화 이후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자, 족보를 그려보면 이렇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족보를 보면 알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전교협 시절부터 이루어진 인맥이 주장을 달리해가면서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찾사를 이루는 진영이 시종일관 원칙론과 강경론을 주장하는 반면, 반대쪽 진영은 일정한 경향성이 없이 선거때마다 이합집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 해두고, 다음부터 각 정파별로 하나하나 비판해 보도록 하자.

2008. 9. 10.

니체 "안티 크리스트"에서 한 토막

......
나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믿음을 갖는 행위는 무례한 짓이다’라고. 믿음을 갖는 것 자체가 타락한 인간이라는 증거다. 아무래도 크리스트교에는 ‘효력의 증명’이라는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는 듯하다. ‘믿으면 행복해진다. 그러므로 믿음은 진리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그 ‘행복’은 증명된 것이 아니라 단지 약속이기 때문이다. 즉 믿음과 행복을 제멋대로 결부시켰을 뿐이다. 신자가 살아 있는 동안 ‘저 세상’일은 모른다. 약속이 정말 지켜지는지의 여부는 죽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정확히 판단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심오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와 반대로 가르친다. ‘진리’란 인간이 오랜 세월을 거쳐 차근차근 애써 쟁취한 것이라고. 그 때문에 인간은 희생을 많이 했고 훌륭한 영혼이 필요한 적도 있었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럼 정직한 생각,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아름다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양심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든 믿는 사람은 가치를 판단할 줄 모른다. 믿는다 함은 감옥 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나 다름없다. 외부세계는 물론 자기 자신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위해서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것이 자기 발언의 중심이 되므로.

그래도 위대한 정신은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모든 종류의 확신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뭔가를 생각하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확신에 대한 저항이다. 그들은 확신에 절대 굴복하지 않으며 자신이 사고의 주체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뭐든 믿는 사람은 사고의 주체가 아니다. 그는 믿는 대상에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을 이용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신자는 자기 상실을 명예라고 믿는다. 그의 지혜와 경험 그리고 허영심이 그 원인이다. 결국 자기 상실, 즉 자기 자신을 소홀히 하는 것이 신앙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외부로부터의 강제나 구속을 필요로 하는 노예다.

아이들이 원하는걸 해 주어야, 교사들이 원하는 걸 얻는다

교원평가가 다시 화급의 이슈가 되었습니다.잠잠하던 교육계에 다시 논쟁의 불분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교사들은 억울해 합니다. 정부가 원하는 그런 계량화, 수치화, 획일화된 평가로 어떻게 교육성과를 재단하느냐며 불만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참 심각한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 억울해하는 교사들이 결국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치화, 계량화, 획일화된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안간 바담풍, 바담풍 속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학생들을 수치화해서 평가할테니, 너희는 우리를 그러지 마라.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치화된 평가를 하겠지만, 너희는 우리에게 그러면 안된다. 대략 이런 뜻이 됩니다. 누가 봐도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입니다.

교사는 자기가 받기 원하는 대우를 학생들에게 해주어야 합니다. 혹은 학생들에게 가하는 대우에 걸맞는 대우를 사회로부터 받아야 하며, 그렇게 될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이던 시절, 교사는 통제받았습니다. 학생들을 닥달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이던 시절, 교사는 닥달받았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자유를 개발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라면, 교사들은 자유로울것입니다. 학생들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 교사의 업무라면, 교사들은 창조적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그렇게 일하게 하라는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낼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가하는 대우는 교사가 받을수 있는 대우의 최대한입니다.

억울해 하는, 피해의식에 가득찬 교사들에게 묻습니다. 그대들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었는가? 그러면 또 "수요자 논리, 시장논리"어쩌면서 반박할 준비가 되어있는 고집불통의 교사들 모습이 떠올라 머리부터 아파옵니다. 그러나 사회는 교사에게 항상 이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답하지 못하는 한,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교원정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지금 상황은 교사만 자유로워지고 학생들에 대한 대우는 예전과 그대로인 불균형 상태입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그 자유는 지키고, 그 억압은 유지하려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교조가 결과적으로 이런 이기적 욕망을 앞장서서 지키고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게 전교조 위기의 원인이며, 욕을 먹는 원인입니다.

해답은 매우 간단한 곳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라!" 그러나 이는 감정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과정부터 매우 지적이고 과학적인 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부하지 않는 교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는 아이들이 그걸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그 서운함이 심해지면 복수심과 원한을 품고 사디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일찌기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악의 근원은 무지에 있음이니... 아렌트가 말했듯이 생각없음은 바로 절대악이니.... 니체가 말했듯이 확신이야 말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니....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이 글은 지금 중학교 3학년 어느 학생의 글이다.
현재 진행중인 학습활동을 한 후 그날의 일지와 사진을 보내왔다.  

글을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 틈에 어울려 아이들이 밝고 맑은 표정을 짓고있어 학교에서 못보던 모습들을 보아 서로,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고 재밌는 추억을 많이 만들게 되는 것같다."

'학교에서 못보던 모습' 에 대해 ...아이들이 바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서 부터 학생의 글이다.


<9월 9일 화요일 촬영일지>


인구고령화조 이덕희


오늘은 학교 근처 공원에 가서 촬영을 하였습니다.

공원에가서 촬영을 하게된 사람은 박소연,양건주,박경재,이덕희,안영은,박주영,김지환 이렇게 일곱명이 필요했습니다.

나머지 두명은 촬영에 등장할 필요가 없기때문에 빠지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굉장히 NG씬이 많이 난 날이었습니다. 한 장면을 무려 열번이 넘게 스무번정도까지 찍어야만 했습니다.

아직 서로의 연기가 어색한 아이들은 연신 웃으며 많은 NG 에도 힘이들었지만 재밌게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주영이가 공원에서 고쟁이같은 할머니 복장을 하고 김지환등 여러명도 할머니 할아버지 들의 사이에서 고령화에 대한 대사를 하며 연기를 하여야해서 쑥스러울수도 있었지만 모두들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어 촬영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분명히 부끄럽고 많은 NG때문에 힘들었을텐데 모두들 서로 서로 도와가며 즐겁게 촬영을했습니다. 급하게 배역이 바뀐 표익관과 박경재. 박경재는 얼떨결에 대사가 많은 역을 맡게되었는데 많은 대사 때문인지 몹시 힘이 들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색했지만 멋진연기였습니다.

특히 김지환은 오늘 많은 대사가 없어 지루했을것이지만 밝은 모습으로 즐겁게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건주는 캠코더로 촬영하는데 몹시 지치고 힘들었겠지만 끝까지 마음에 드는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함께 촬영을 하고 분식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나서 즐거운 얼굴로 각자 헤어졌습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잡아내는 솜씨 좋은 건주도, 계획을 세워 아이들에게 전달해주는 소연이도 민망함을 무릅쓰고 촬영해준 아이들도 모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또한 의외의 인물들이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서로 서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재밌고 활기차게 진행되는 촬영에 몹시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정말 NG가 많이 난 날이어서 그다지 많은 씬은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초록색으로 찬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 틈에 어울려 아이들이 밝고 맑은 표정을 짓고있어 학교에서 못보던 모습들을 보아 서로,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고 재밌는 추억을 많이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08. 9. 9.

전교조의 최하급 직원은 부장님

이 글은 전교조를 비판하거나 두둔하는 글이 아니다. 그냥 실상을 그대로 건조하게 기록하는 글이다.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전교조 본부나 지부에는 전임자와 상근자라는 두 종류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전임자는 전교조에서 근무하기 위해 학교를 휴직한 교사들이다. 이 휴직은 교원노조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으며, 휴직기간동안 봉급은 전교조에서 휴직당시 호봉에 맞추어 지급한다. 이들은 휴직기간(1~2년)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복직한다. 전임자가 되기 위해 휴직한 기간은 호봉승급기간과 경력에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전임자는 교사가 전교조에 파견근무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상근자는 전교조가 직접 고용한 직원이다. 상근자는 같은 경력의 교사의 95%의 보수를 받도록 전교조 규약에 못박혀 있다. 필경 이는 해직되었다가 복직하지 못한 교사들을 위한 규정이었겠지만, 이제는 그냥 채용직원들로 충원되고 있는 전교조의 실정과 비교하면 상당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 아마도 각종 시민단체, 노동조합 직원들 중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이 전교조 상근직원들일 것이다. 민주노총과 비교하면 거의 두배에 달한다. 게다가 상근직원들은 1년에 연가 15일, 매달 월가, 여름과 겨울에 특별휴가 각 5일씩, 그리고 매년 특정한 달을 지정하여 안식월 휴가 30일 등 근 50일에 달하는 휴가혜택도 가지고 있다. 이 역시 해직교사가 방학이 있는 학교생활과 비슷한 리듬을 유지하라고 배려한 것 같지만, 다른 시민단체, 노동조합과 비교하면 정말 파격적인 대우가 아닐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신이내린 직장을 넘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불리는데, 그 내막은 나중에 다시 말하겠다.

어쨌든 이렇게 전임자와 상근자가 본부에는 합하여 근 50명, 16개 지부에 각 4명 정도씩 근 100명 정도 된다. 게다가 이들 100명은 모두 직책이 화려하다. 전교조는 가히 직책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할만한데, 우선 본부에 위원장, 부위원장 이하 사무처장과 각 실장들이 있다. 각 실장들 휘하에 상근직과 전임자가 서너명씩 배당되는데, 이들의 직책은 모두 국장이다. 따라서 전교조 사무실에서 국장이라고 하면 최 하급 직원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간혹 신규채용 직원이나 비정규직 직원이 채용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들의 직책은 부장이다. 나이 스무살 경리직원이 "부장님"소리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이 아마 전교조 사무실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본부와 지부의 직책이 같다는 것이다. 본부뿐 아니라 각 시도 지부에도 똑같이 사무처장과 각 실장들이 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최하위 직원은 부장이다. 전교조 사무실은 그래서 수많은 국장들과 약간의 부장, 꽤 많은 실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라도 이렇게 불리면 기분 좋을지 모르지만, 이들 수많은 부장, 국장, 실장의 인건비로만 연 40억 가량이 소모되고 있다. 세상에 인건비로 수십억을 쓰는 NGO는 대한민국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인건비를 쓰고, 이렇게 많은 부장님, 국장님들을 모시고 있는 전교조가 교원평가 대안 하나 변변히 내놓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합비 그만내고 싶다는 생각이 욱 하고 치미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편지들 중 일부

.......우리가 “쾌락이 목적이다.”라고 할 때, 이 말은 우리를 잘 모르거나 우리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나 육체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다. 왜냐하면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계속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일도 아니고,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도 아니며, 물고기를 마음껏 먹거나 풍성한 식탁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모든 선택과 기피의 동기를 발견하고 공허한 추측들(신과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추측들)-이것 때문에 마음에 가장 큰 고통이 생겨난다-을 몰아내면서, 멀쩡한 정신으로 계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가장 큰 선은 사려깊음이다. 사려깊음은 심지어 철학보다도 소중하다. 왜냐하면 모든 다른 탁월함들은 사려깊음에서 생겨나며, 이는 우리에게 “사려깊고 아름답고 정의롭게 살지 않고서 즐겁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며, 반대로 즐겁게 살지 않고서 사려깊고 아름답고 정의롭게 사는것도 불가능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탁월함은 본성적으로 즐거운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즐거운 삶은 탁월함으로부터 뗄 수 없다.

정말로 그대는 신에 대해 경건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연의 목적을 잘 계산한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사람은 우리가 좋은 것들의 한계를 충족시키거나 얻기쉽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으며, 반대로 나쁜 것들의 한계는 시간적으로 짧을뿐더러 경미한 고통을 가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또한 그는 운명 -어떤 이들은 운명을 만물의 주인이라 불렀지만- 을 비웃으며, 우리의 행동 -이들 중 어떤 것은 필연에 의해 생겨나며 어떤 것은 우연에 의해, 또 다른 것은 우리 힘에 의해 생겨난다- 을 결정할 힘이 우리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려 깊은 사람은 다음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연에는 아무 책임이 없으며, 우연은 유동적이며, 우리 힘에 의해 생겨나는 일은 다른 주체를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칭찬이나 비난이 따라붙도록 되어 있다.”

정말로 자연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운명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는 신에 대한 신화를 듣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화에 따르는 것은 신들을 존경함으로써 달랠 수 있다는 희망을 암시해 주는 반면, 운명의 노예가 되는 것은 달랠 수 없는 필연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우연을 신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왜녀하면 신의 행동에는 무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사려 깊은 사람은 우연을 알려지지 않은 모든 것들의 원인이라고 간주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 좋은 것 또는 나쁜 것이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큰 선 또는 악을 위한 기회가 우연에 의해 주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생각에 의하면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큰 성과를 이루는 것보다는 이성적으로 숙고했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편이 낫다. 왜냐하면 잘못된 판단을 내렸으나 우연 때문에 성공하는 것보다는 옳게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자신의 판단을 입증하지는 못한 편이 낫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들을 그대 스스로뿐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밤낮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내는 자나깨나 고통받지 않게 될 것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신과 같이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불멸하는 선 속에서 사는 사람은 사멸하는 존재들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

2008. 9. 8.

그들만의 리그, 블랙센스

 

학교 교장이 새로 부임 했다. 부임식 날, 아직 새 교장이 도착하기도 전의 상황이다.

학교 프린터는 여러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는 공유 형이다. 내 문서 인쇄물을 찾으러 프린터 앞으로 갔는데...오지도 않은 ‘교장 취임사’가 이미 출력되어 있었다.

오! 새 교장이 취임사를 먼저 파일로 보내 출력 하도록 지시하였을까?

물론 아니다. 대충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 국어과 교사가 교장의 연설문이나 교지의 원고를 대필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아마도 부탁도 하기 전 미리 취임사를 만들어 ‘올리기’ 위한 어느 세심한 부장의 블랙센스임이 분명하다. 교직 경력이 30년 가까이 되는 교사가 취임 연설문 정도를 스스로 쓰지 못할 리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교장과 부장교사들이 만드는 그들만의 리그는 일반 교사들을 매우 바보로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새 교장이 부임한 다음 날 부장교사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부임기념 모임이 거나하게 있었을 것이다. 교장은 평교사에게는 관심이 없다. 특히 부장 교사중 승진을 위해 꼼꼼한(?) 준비를 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알아서 보고하고, 그 대화 속에서 학교내 상황의 진실이 왜곡되는 일은 부지기수다.

“내가 잘 말해줬어. 선생님 열심히 한다고...” 담당 부장교사가 하는 말이다. 참 기가 막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 내 평가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러한 소통 방법은 일반 교사를 여지없이 소외시킨다.

교장, 교감과 부장 교사들이 간부회의라는 명목 하에 학교의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직원회의는 명령의 하달이나 계획의 집행을 위한 협조 요청 시간과 다름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언가 의견이 있어 ‘벌떡’ 일어나 발언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매우 곤란한 일이다.

늘 시간 관계상 일찍 마쳐야 하는 시간에 회의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들은 자주 모이고, 식사하고, 여행도 간다. 그들끼리.

방학이면 해외여행도 간다. 내 친구는 경기도 어느 학교 부장인데, 교장을 모시고 가는 해외여행의 계획과 총무 일을 맡아 하느라 겪는 고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안할 수 없는 일이다. 교장이 평가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또 그들 안에서 별 무리  없는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위에서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 ”

거슬리는 말이다. ‘위’. 엄연히 위로서 군림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학교 교장이다.


교장의 사적인 행사에 식구처럼 동원되는 교사도 있다.  때로는 운전기사, 때로는 촬영기사, 혹은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달라고 자주 부탁을 해서, 거절했다가 미움을 산 부장도 있다. 그 이후 다른 평교사에게 촬영 편집을 계속 부탁해서 그 교사가 울상이 된 적이 있다. 아마도 무슨 교회에서 하는 행사를 찍은 것이었는데 대상이나 내용이 학교 교육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으니...젊은 교사가 난감해 하면서도 노력봉사 했다고 한다.


스스로 원고를 써서 연설을 하는 교육계의 선배, 학교 정책에 대해 심사숙고 하다가 교사들에게 의견을 묻고, 좋은 의견을 수렴할 줄 아는 교장이 있다면 얼마나 , 어디에 있을지 정말 한번은 만나보고 싶다.


그들과 자주 식사를 하고, 따로 여행도 가고, 명절 때면 그들의 대접을 받는 그들만의 리그...그들의 교장모시기에 연출되는 갖가지 블랙센스를 볼 때 , 학교 현장의 의사소통이 어떨지는 안 봐도 알만한 상황이다.


다만, 필요도 없이 그들의 리그를 위해 교사들을 동원하는 일이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에서 용기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를 ‘교육자’ '되기'를 원하는 교사에게 바랄뿐이다.



‘외곬’으로 치닫는 전교조…조직 내부서도 갈등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사다. 한겨레, 시사인에 이어 경향신문까지 교원평가와 관련한 전교조의 방침에 지지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교원평가 반대는 우군이 없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아, 우군이 있다. 바로 교총이다. 생각해보라. 교원평가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구겠는가? 늙은 교사 모임인 교총이다. 교원평가 반대같은 집단이기주의의 오해가 가능한 그런 사안에서는 교총을 앞세워야 하고, 개혁적인 사안에서는 전교조가 앞서야 했는데, 포지션이 잘못되어 완전히 교착되고 말았다.(이하 기사)

‘교원평가제’를 둘러싸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갈등을 빚고 있다. 전교조는 일단 논란의 당사자인 현인철 대변인의 사표를 8일 수리해 내홍을 정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곪을 대로 곪은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발 단은 현 대변인이 지난달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교원평가에 찬성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됐다. 현 대변인은 “학교 내에서 학생들은 성적경쟁에 내몰리고 있는데 학부모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수준을 높이기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 같은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다면 소통을 거부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전교조가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로는 지지층을 넓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공식적으로는 정부의 교원평가방식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전교조가 지지한 주경복 후보가 낙선한 주 요인도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교원평가제에 미온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상황은 전교조에 녹록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원평가는 참여정부 때의 ‘절대 평가’보다 더 강력한 내용으로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 단체에서는 ‘상대 평가’를 승진·보수와 연계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달 말에 확정안을 내놓고 오는 11월쯤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정부안이 확정되면 한나라당이 과반인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좌파성향의 전교조에 대해 연일 강공을 펴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전교조 고위 관계자는 이런 상황 때문에 현 대변인의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초강력 안이 준비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전 정부의 교원평가제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2004년 참여정부 안에 대해서도 ‘교원의 승진·퇴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해온 전교조로서는 이명박 정부 안은 더욱 ‘논외’ 대상이다. 이 관계자는 “국제중, 영리학교법인 등 이명박 정부의 공격적인 교육정책이 쏟아져나오는 때에 교원평가제를 거론해 조직역량을 떨어뜨린 것은 조직을 해치는 행위”라고 고개를 저었다.

전교조 내에서는 교원평가가 노선 대립의 핵심 현안인 만큼 이번에 합리적인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은 “학부모들 사이에 교육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교원평가 도입요구가 있다는 현실을 전교조가 무조건 무시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거치면서 교육운동 진영 내에서는 전교조의 역할에 대해 비판이 많고, 정파싸움에 휘말린 전교조가 이제 한계에 달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있었다”고 전했다.

학부모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 윤숙자 회장은 “기본적으로 학생을 위한 교원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와 무조건 반대하는 전교조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으면 피해를 입는 것은 현장의 학생들”이라고 우려했다.

<최민영기자 min@kyunghyang.com>

연설문을 쓰지 않는 어른들

학교에는 교장이 있다. 전교조에는 위원장이 있다. 현재 한국 사회 지형에서 이들은 서로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남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이다. 즉 각종 공개적인 행사에서 남이 쓴글을 폼나게 읽으면서 연설한다는 것이다.

교장이야 워낙 내가 이 블로그에서 자주 밝혀놓은것처럼 찌질대는 듣보잡질을 해야 될수 있는 것이니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런 왜곡된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대안집단의 수장인 전교조 위원장이 똑같은 짓을 한다는 것은 좀체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이미 작성된 연설문의 의미를 제대로 몰라서 더듬거리는 것까지 똑같으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이들은 왜 연설문을 작성하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한국에서는 어떤 단체든 그 단체의 "어른"즉 "장"은 무슨 일이든 직접 하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장은 남이 깔아준 멍석에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서 카메라와 스포트라이트만 받는게 너무 당연시되었다. 단체의 모든 영광과 자랑스러운 순간은 장에게 집중되고, 온갖 나쁜 일과 자잘한 비난과 힐난은 담당자에게 쏟아지는 것 역시 너무도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이런 일을 개혁하고자 만든 전교조조차 이런일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뿌리깊은 문화가 아닐수 없으며, 전교조 활동가 역시 헤겔의 말을 빌리면 즉자적 존재를 결코 벗어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필자 역시 전교조 위원장을 위해 몇 편의 연설문을 써주었다. 참으로 심혈을 기울여 쓴 감동적인 연설문이 남의 이름으로 건성으로 읽힌뒤 소모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불쾌한 일이다.

요즘 전교조가 동네북이되고 있다. 시사인, 한겨레에 이어 경향신문에서조차 전교조를 비판하고 있다. 가히 우군이 없다고 해야할 지경이다. 그건 전교조가 나빠서가 아니라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쏟아지는 질타일 것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까? 먼저 지도부, 특히 위원장이 직접 일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 위원장이 직접 연설문을 작성해야 한다. 홀로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어떻게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풀어 나갈까 고민한다면, 그 속에서 전교조 혁신의 필요성과 그 방안은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전교조 위원장에게 간절히 고한다. 연설문을 직접 작성하라.


2008. 9. 7.

교사가 학교에 등돌리는 나라(매일경제)

[기자 24시] 교사가 학교에 등돌리는 나라


매일경제  기사전송 2008-09-05 18:06 

인터넷 강의가 없던 1990년대 후반 EBS 교육방송 강의는 사교육과 맞설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당시 대입 수험생들은 EBS 강의를 녹화해서 봤다. 학생들이 EBS 강의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하는 시설은 고등학교 앞 독서실에서 필수였다.

EBS 강의의 인기로 스타 강사들도 줄지어 출현했다. 이 중 단연 돋보인 강사들이 '언어 트로이카'로 불리던 이남렬, 이만기, 이석록 교사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 스타 강사 3인방 중 공교육 틀 안에 있는 사람은 이남렬 씨(현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연구사) 뿐이다.

이남렬 연구사에게 부와 명성을 누리는 두 사람이 부럽지 않냐고 물었을 때 의외의 답변을 했다.

이씨는 "그 둘이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며 "사석에서 만나면 '교단에 설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교단에 서는 모습이 부러운 데도 왜 떠났을까?

"열심히 노력해도 대가없이 고생만 할 뿐이에요.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오히려 학원이 낫고, 가르치는 보람도 느껴요."(이석록ㆍ현 메가스터디 평가연구소장)

"경쟁이라곤 교감, 교장이 되려는 가산점 경쟁뿐이에요. 올바른 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은 없어요."(이만기ㆍ현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으면 학원선생님을 꼽는다.

이들이 학교를 떠난 이유는 가르치는 학생이 싫어서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교사를 제풀에 지치게 하는 학교가 싫어서였다. 이만기, 이석록 두 사람 모두 사교육 업계에서 나름의 위상을 세웠지만 아직도 학교 현장을 그리워한다.

2008년 학교 현장은 여전히 열심히 하는 또 다른 교사를 학원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공교육 현장의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떠넘겨지고, 공교육 불신만 키워갈 뿐이다.

[사회부 = 김대원 기자 egofree@mk.co.kr]

하스킬의 친구들 -그뤼미오

흔히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잘못 불리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2중주는 매우 사랑스러운, 혹은 사랑의 장르다. 잘못 알려진 바와 달리 이 형식은 바이올린이 연주하고 피아노가 반주하는 것이 아니다. 엄연히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2중주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균형잡힌 2중주가 말이 그렇지 쉬운것은 아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르뛰르 그뤼미오

이 매우 불균형한 상대기 때문이다. 그 음량에서나 음역에서나 바이올린은 피아노의 상대가 아니다. 실상 피아노를 제대로 상대하려면 바이올린, 첼로가 함께 서야 한다. 그래서 피아노트리오가 피아노를 포함한 실내악의 보편적 장르로 자리잡은 것이다. 갸냘픈 바이올린 홀로 거대한 피아노를 상대하려면 피아노의 활약에 그저 추임새나 넣어주거나, 혹은 바이올린을 위해 피아노가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이 2중주는 작곡가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까다로운 형식이며, 그 결과 초1류급 작곡가의 작품 외에는 거의 살아남지 못한 장르이기도 하다. 이 형식으로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 정도가 있고, 그 외에는 기껏 한 두개의 작품을 남기거나, 남기긴 했으나 무시당하거나 했다.

하지만 작곡가가 훌륭히 밸런스를 맞추었다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다. 연주자도 또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단 두명의 연주자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실력이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금새 균형이 무너진다. 따라서 이 장르는 최고의 작곡가가 작곡한 곡을 최고의 피아니스트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해야만 하는 초절한 장르다. 물론 잘 맞아떨어지면 음악의 극치를 느낄수 있지만, 잘못하면 그야말로 최악을 경험할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르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 모두에게 크게 부담되는 장르다. 특히 이 장르가 레파토리의 주종을 이루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자신의 짝이 될수 있는 수준급 피아니스트를 확보하는 것이 화급의 과제가 되곤 했다. 하지만 화려한 솔로악기인 피아노에서 최상급의 위치를 가진 연주자가 선뜻 2중주를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흔하지 않다. 결국 관건은 우정이다. 우정이 없으면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이 장르에 뛰어 들어서 더군다나 장기간 솔로를 접어두고 다른 연주자와 박자를 맞추어야 하는 상황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중주를 해야 함은 서로 자신의 음악관을 상대방의 그것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집세기 마련인 음악의 대가들에게는 무척 짜증스러운 일이다. 3중주, 4중주의 경우는 애초에 솔로보다는 앙상블을 전공으로 한 연주자들이 감당하기에 이런 일이 드물지만, 2중주에서는 필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장르는 특히 더 아름다운 장르다. 결국 살아남은 2중주 짝배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두 예술가가 서로 우정으로 뭉쳤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며, 서로 자신의 소신과 고집을 양보했거나, 우연히 서로의 예술관이 일치한 행운을 누렸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피아노, 바이올린 2중주의 이런 행복한 커플은 얼마 나오지 않았다. 자주 나온다는게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커플 중 최고로 치는 커플이 클라라 하스킬과 바로 아르튀르 그뤼미오 짝이다(물론 해블러, 셰링 짝, 펄만, 바렌보임 짝, 최근의 바딤, 베레조프스키 짝도 훌륭하지만 역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풍성한 감성을 우아하게 표현할줄 아는 연주자들인데, 현명하게도 연장자인 하스킬은 자신의 표현력을 절제하면서 그뤼미오의 바이올린이 가진 호소력있는 정감을 최대한 살려주면서 완벽한 하모니를 연출한다. 마침 하스킬의 또 다른 베스트 프렌드 게자 안다와 동갑이기도 했던 그뤼미오는 이후 하스킬이 세상을 떠날때까지 늘 무대에 함께 올라 수많은 명연주를 남겼다.

피아노 2대로 연주할때는 게자 안다와, 바이올린으로 연주할때는 그뤼미오와... 디누를 잃은, 가족이라곤 하나도 없던 하스킬이지만, 그녀의 말년은 가히 외롭지 않고 참으로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이 두 친구는 모두 하스킬보다 나중에 죽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뤼미오와 함께 지낸 하스킬 만년의 행복한 모습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스킬이 남긴 마지막 말도 그뤼미오에 대한 것이었다. “내일 공연은 힘들 것 같구나. 그뤼미오 씨에게 죄송하다고 전해주렴.” ...이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나는 살면서 진정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만났다.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한 사람은 처칠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누구보다도 현격히 차이 나는 두뇌의 소유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 챨리 채플린

하스킬과 그뤼미오가 함께 연주한 모차르트의 소나타 K.378의 1악장을 올려본다.


결국 도덕이란 자유의지가 법칙에 따라 행하는 것?(칸트의 윤리형이상학정초에서)

....인과성 개념은 법칙들의 개념을 동반하는 바, 이 법칙들에 따라, 우리가 원인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의해 다른 어떤 것, 곧 결과가 정립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유는 비록 자연법칙들에 따르는 의지의 성질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전혀 무법칙적이지 않고, 오히려 불변적인 법칙들에 따르는 원인성이되, 그러나 특수한 종류의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유의지란 무물일 것이니 말이다. 자연필연성은 작용하는 원인들의 타율이었다. 왜냐하면 각각의 작용결과는 다른 어떤 것이 작용하는 원인을 원인성으로 규정한 법칙에 따라서만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의지의 자유가 자율, 다시 말해 자기 자신에게 법칙인 의지의 성질 말고 다른 무엇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의지는 모든 행위에 있어 자기 자신에게 법칙이다’라는 명제는 단지, 자기 자신을 또한 보편적 법칙으로서 대상으로 가질 수 있는 준칙 외에 다른 어떤 준칙에 따라서는 행위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표시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정언 명령의 정식이자 윤리성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자유 의지와 윤리 법칙 아래에 있는 의지는 한가지다.

그러므로 자유 의지가 전제된다면, 윤리성 및 그것의 원리는 그로부터 그 개념을 순전히 분배만 하면 나온다. 그럼에도 윤리성의 원리는 언제나 하나의 종합 명제, 즉 ‘단적으로 선한 의지는 그것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법칙으로 보인, 자기 자신을 자기 안에 함유할 수 있는, 그런 의지이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선한 의지라는 개념의 분해에 의해 준칙의 저런 성질이 발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종합 명제들은, 두 인식이 그것들과 양쪽으로 만날 수 잇는 제3의 것과의 연결에 의해 서로 결합됨으로써만 가능하다. 자유의 적극적 개념이 이 제3의 것을 마련한다.....

2008. 9. 5.

전교조 지도부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걱정과 고생이 많으시죠? 도대체 왜 우리 노고를 몰라주고 공격만 하는지 안타까우시죠? 하지만 드릴 말씀은 드려야겠습니다. 물론 저 역시 전교조 간부인지라 누워서 침뱉기지만, 그래도 침은 입안에 있는 것보다는 얼굴에 묻는 것이 더 낫습니다. 닦을 수 있으니까요.

정부는 합법화 이전에는 전교조의 주장을 그냥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교조의 주장을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비합법 시절에는 지구장(위원장-지부장-지회장-지구장-분회장 순서죠?)조차 유력인사 대접을 받아서 지역 신문에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무시하지 못할 힘이 합법화를 이끌어 낸 동력이었습니다. 그런데 합법화 이후에는 서서히 정부가 전교조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임명장도 받기 전에 교육부 장관을 반대 성명 하나로 교체할 수 있었던 전교조는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지금은 지구장은 커녕 지부장도 그냥저냥한 사람 취급 받습니다. 합법화 이전이나 이후나 이명박 이전에는 정부가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변수는 전교조에 있습니다.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 합법화 이전에 오히려 더 영향력이 있었나?

전교조가 언제 대안을 내지 않았냐 볼멘소리를 합니다. 네, 전교조에서 나온 각종 정책은 총론부터 각론까지 산더미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아무도 그것을 하고있지 않는 걸. 단지 정책안에 불과하지, 정작 교실에서 학교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 승화된 것이 아닌걸.

비합법 시절에는 교사들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먼저 변했습니다. 전교조 본부는(당시는 본조) 제일 나중에 말했습니다. "봐라. 선생님들이 이렇게 하지 않느냐?" 합법화 이후에는 거꾸로 되었습니다. 본부가 먼저 말합니다. 지부가 말합니다. 분회장에게 공문이 날아옵니다. 전교조는 이러자, 저러자고 말하는데, 실제 조합원 교사들이 그걸 바라는 것인지, 그럴 단초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받기 시작합니다. 그 이러자, 저러자도 항상 총체적이었습니다. 국가의 교육 제도 전반을 뒤집어야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걸 "관념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전교조 교사들은 "국가 교육제도가 이런데, 나 하나 뭐 해서 바뀌겠어?"하는 환원론자가 되어갔습니다. 말은 복잡하고 감동적으로 하지만 결론은 항상 "입시교육철폐","교육과정전면개편"이 되었습니다. 그럼 그 동안에 전교조 교사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할것이며,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전교조 교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사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단협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학교의 이런저런 관행에 맞서 싸우기나 했습니다. 그러나 단협으로 이런것도 깨끗하게 해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층부가 해결해주며 조합원은 돈만내는 구조로 바뀌어갔습니다.

비합법시절 전교조의 업적은 주로 필부필녀 조합원 교사들의 세세하고 소박한 실천들의 집대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합법화 이후 전교조의 연구실적은 거의 대부분 상층부 활동가들이 머릿속에서 끄집어 낸 것들입니다. 참교육실천대회에 논문들이 몇트럭분씩 나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은 해가 갈수록 낮아져서, 이제는 거의 유명무실해져서 이 행사를 계속 존치할 이유가 있는가 까지 논의되고 있습니다.

여러 선배님들! 조합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자칫 냉정한 현실을 외면할까 작은 걱정이 됩니다. 지나온 과거는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럽지만, 그건 과거입니다. 과거는 단지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정"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단 부정 해서 그 외부로 눈을 돌린 뒤, 부정했던 그 과거의 유산을 한 계기로 포괄할수 있는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여, 이제부터 제가 여러분들을 부정해 드리려고 합니다. 부디 널리 혜량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학생 인권유린은 어디까지? -학교라는 괴물(퍼온 기사)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직도 일어나는 곳이 학교입니다. 학생들이 언제나 사람대접을 받을지? 학교, 검찰, 경찰은 반드시 시민적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내부의 권력을 완전히 분산하는 것입니다. 교장이 좌지우지하는 학교, 총장 멋대로인 검찰, 청장 맘대로인 경찰은 반드시 괴물이 됩니다.(이하 퍼온 기사입니다.)




'



[TV리포트] 해외 토픽감인 사건이 평택의 E고등학교에서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6월 체벌을 받던 한 여학생이 생리통을 호소하자 선생님이 직접 생리혈을 확인한 사건이다.

2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에 따르면 여교사는 화장실 앞에서 여학생에게 화장지를 두른 나무막대기에 생리혈을 묻혀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믿을 수 없는 사건에 학생들은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그것은 인간으로서 정말 해야 할 짓이 아닌 거죠"
해당 사건의 교사는 거짓말을 하는 학생이 많아서 검사를 했다고 해명했다. 방송 인터뷰를 통해 대수롭지 않은 듯 그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렇게 나무막대에다가 휴지를 테스터 개념으로 이렇게 (감았어요) 니코틴 검사하는 것처럼 생리혈을 검사하는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 끝에다가 생리혈을 살짝만 묻혀서 선생님에게 보여 달라 그렇게 확인했습니다."





교사는 화장실 앞에서 확인한 후에야 학생을 돌려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선생님들은 왜 학생들이 체벌을 받기 싫어 거짓말했다고 오해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학교 자체 교화 프로그램 '푸른 교실'이라는 체벌 때문이었다.

신발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양말의 작은 무늬와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피하기 위해 걸친 체육복으로 학생들은 선생님으로부터 복장불량 지적을 받아야 했다. 1분의 지각도 허용이 되지 않았다.

우연히 풀어진 단추 하나 때문에 "퇴학감"이라는 교장의 폭언을 들은 고3 학생도 있었다. "수시원서도 써야 된다. 선생님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울며 매달리는 학생에게 "네가 대학가서 뭘 하냐"고 인격 모독을 한 것이다.

교 사에 의한 지적을 받은 학생들은 저녁 6시 20분부터 8시 40분까지 체력 단련 훈련인 '푸른 교실'에 참여해야 한다. '푸른 교실'은 운동장 달리기, 오리걸음, PT체조 등 마치 군인들이 받는 훈련과도 같았다. '푸른 교실'에 한 달에 4회 이상 적발될 경우 2주 연속 체력훈련을 받게 되는데 이를 '녹색교실'이라 했다.

방송에 따르면 매일 저녁 '푸른 교실'과 '녹색교실'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70여명 가량으로 "일부 학생들에 국한되었다"던 교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푸른 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은 녹초가 되어 학업에 큰 지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각에 대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체력저하로 인해 수업시간에 집중 할 수 없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성적 하락의 원인이 된다고 증언했다.





E고등학교 학생들의 인권 유린 현장은 '푸른 교실' 뿐만이 아니었다. 남자 선생님으로부터의 은밀한 신체접촉 성추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볼을 비벼 보라고 여학생의 얼굴을 만지고, 등을 감싸며 가슴을 만지는 등 상상도 못할 성추행이 교사에 의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여 학생들은 상담교사에게 성추행 사실을 털어놨다. 상담 교사는 즉시 교감 선생님(9월 교장 취임예정)에게 보고했지만 어떠한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립학교 특성상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 대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 셈. 덕분에 성추행을 일삼는 남자 교사들은 여전히 교단에 설 수 있었다.

또한 교사들의 구타로 학생들은 몸과 마음이 멍들어 가고 있었다. 동아리 모임에 나오지 않아 음악실에서 뺨을 맞았다고 증언하던 여학생은 그 때의 일이 생각난 듯 울음을 터뜨렸다.

선 생님들의 무차별적인 폭행으로 고막이 찢어진 남학생의 인터뷰도 이목을 끌었다. 방학하기 이틀 전 교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민석(가명)은 선생님에게 적발돼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민석인 현재 인공고막을 한 상태. 민석이를 구타한 남자 교사는 폭행 사실을 끝까지 부인했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인권 유린으로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다. '푸른 교실'에 의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학생들이 생긴 것이다.

한 편, 취재도중 문제가 불거지자 경기도교육청은 '푸른 교실'에 대한 인권 침해 요소를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장학사들은 '성추행', '폭행' 사건에 대한 어떠한 혐의 내용도 찾지 못했다. 학생들의 증언 없이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만 조사한 것이 화근. 장학사들은 취재진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나서 재조사를 약속했다.

방송에 따르면 교감(9월 교장 취임예정)은 '푸른 교실'의 문제점을 인지, 폐지한다고 했다. '성추행'과 '폭행'으로 얼룩진 E고등학교 학생들의 인권 회복을 기대해 본다.


[구혜정 기자 august1410@naver.com]
'가이드 & 리뷰' 방송전문 인터넷 미디어 'TV리포트'
제보 및 보도자료 tvreport.co.kr < 저작권자 ⓒ 파이미디어 TV리포트 >

2008. 9. 4.

비교육적 공간, 교무실

교사는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까? 물론 교실과 교무실이다. 그 중 교무실은 교사가 8시반에 출근해서 16시 반에 퇴근할때까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의 절반을 보내는 공간이며, 수업활동을 위한 각종 준비나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교사가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공간은 다음과 같다.
1) 수업공간 2) 연구공간 3) 사무공간 4) 휴식공간

믿기 어렵지만 교무실은 이 중 연구, 사무, 휴식이 모두 이 곳에서 이루어지도록 되어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즉 교사는 교실 아니면 교무실이며, 수업 아닌 모든 것을 교무실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교무실은 이 셋중 어느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다.

먼저 사진을 보기 바란다.

왼쪽 사진이 한국 학교의 전형적인 교무실 풍경이다. 이 풍경을 보면 무엇이 느껴지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오른쪽 사진과 같은 관공서다. 즉, 관공서의 사무실이다. 그것도 낙후된 관공서의 사무실이다. 다른 학교를 뒤져 보아도 마찬가지다. 거의 대부분의 학교 교무실은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교감이 한 가운데 있고, 각부부장이 남면하고 있는 가운데 각 업무별로 사무용 책상들이 쭈욱 정렬해 있다. 그나마 고등학교는 5명, 6명씩 한 방을 쓰는 경우도 많고, 초등학교는 교실에 교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방과후면 아수라장이 되는 교무실

용 책상과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어, 방과후에 자기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지만, 중학교는 수십명의 교사들을 교실 두칸 정도의 공간에 닥지닥지 몰아 넣는다. 요즘은 동사무소도 이런 곳은 없다.

이러니 교무실은 방과후나 쉬는 시간에는 수십명의 교사들과 그들을 찾아오는 학생, 학부모들로 일대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 곳에서 앞에서 제시한 세가지중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휴식? 절대 불가능하다. 연구, 눈이 있으면 보라. 무슨 연구가 가능하겠는가?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형식적인 서류작업 뿐이다. 즉 여기서 교무실의 비밀이 밝혀진다. 교무실은 결코 교사들이 연구하라고 있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푸코가 말한 무슨 미시적 공간의 장인 것 같지도 않다. 그러기엔 너무 엉성하다. 교무실에는 그런 깊은 뜻이 없다. 있다면 오직 하나 "무성의한 공간"이다. 즉 국가가 자기 하수인들을 대충 공간 정해두고 닥치는대로 몰아 넣은 공간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교무실은 교사들의 수용공간이다.

그나마도 단지 잡무이며 결코 교사의 업무라고 볼 수 없는 행정업무에 따라 배치되어 있는 비교육적 공간이다. 교육법 어디에도 교사가 이런저런 행정사무를 보아야 한다는 규정은 찾을 수 없다. 교사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할 뿐이다. 각종 교무를 통할하는 것은 교장의 업무다. 교장은 이를 행정직원과 교감에게 지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너무 힘들기에 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만 그것이 주무가 되고, 그것을 기준으로 공간이 배치되고 말았다.

교사들에게는 연구를 위한 공간도 없고, 자료를 모아둘 공간도, 개인소유의 책장도 없다. 오직 한평도 안되는 비좁은 공간에 책상 한대가 전부다. 여기서 무슨 연구를 하고 무슨 경쟁력을 키우는가? 교사들에게 선진적인 교육을 원한다면 먼저 그들에게 연구실을 주어야 한다. 실제 교육 선진국중 교무실이 있는 나라는 없다. 각 교사들의 연구실이 있고, 필요할때 모이는 라운지와 회의실이 있을 뿐이다. 교육 선진화? 먼 데서 찾을것 없다. 교무실부터 바꾸자.










2008. 9. 3.

하스킬의 친구들. 디누 그 이후....게자 안다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 우정, 동료애, 그리고 결코 잊지않는 그들의 소명의식은 그 어떤 종교보다도, 혁명적 사상보다도 감동적이다. 어쩌면 그들이야 말로 진정 인류의 구세주이자 대속자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고통을 대신한... 그런 점에서라면 클라라 하스킬은 참 야속하게 살았다. 마치 신이 약이라도 올리듯....

1950년 디누 리파티를 잃어버린 클라라 하스킬은 거의 최악의 외로움과 번민에 허덕인다. 하지만 신은 그녀에게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주며 단련 시키려 한듯하다.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하스킬 앞에 젊은 디누를 연상시키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또 한명 나타났다. 그는 바로 피아노의 음유시인이라 불리게 될 게자 안다(1921~1976).

헝가리 출신인 게자 안다는 같은 동유럽계이기도 해서 더욱 하스킬에게 친근하게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스승에게 배워, 같은 계열의 음악을 한 디누 리파티와 달리 게자 안다는 바르톡, 코다이의 제자였다. 따라서 하스킬이 쇼팽 계보를 이어온 프랑스 피아니즘의 후계자라면 게자 안다는 리스트의 계보를 이어온 헝가리 피아니즘의 후계자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그럼에도 헝가리에서 온 이 샤프한 피아니스트는 그 동안 세밀한 감성에 치중해온 하스킬에게 강철같이 단련된 손가락의 힘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피아니즘을 선보이며 깊은 감명을 주었다. 반면 게자안다는 기교와 힘만으로는 표현할수 없는 하스킬의 깊이있는 연주에 또한 감명 받는다.

마침내 이들은 1955년 바흐와 모차르트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들을 함께 연주하며 정반합의 새 경지를 이끌어낸다. 하스킬은 안다를 통해 낭만파와 현대음악으로 안목을 넓히고, 안다는 하스킬을 통해 고전파쪽으로 안목을 넓혔다. 마침내 초절한 기교파 연주자였던(당연히 리스트의 후예니...) 안다는 하스킬의 권유와 설득으로 주전공을 모차르트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역사에 길이 남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집을 녹음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게자 안다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주는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최고의 음반으로 손꼽히고 있다. 안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음악을 말할때 반드시 첫손에 꼽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바로 클라라 하스킬이라는 정신적인 스승이자, 무대 위의 동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스킬은 안다의 전설적인 모차르트 연주를 듣지 못한다. 안다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녹음은 하스킬이 죽은 1960년 뒤에야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하스킬의 죽음이 안다로 하여금 그 작업을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고의 모차르트 연주자로 불렸던 클라라 하스킬은 정작 모차르트 음반을 몇장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마치 유언을 집행이라도 하듯, 게자 안다는 바로 이어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주를 완성했다. 그 과업을 완수한 1976년 게자 안다는 마치 소명을 다했다는 듯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와 게자 안다 콩쿠르가 공교롭게 모두 스위스에서 개최되고 있어, 이들의 우정을 기념하고 있다.

여기에 클라라 하스킬과 게자 안다가 함께 연주한 단 하나의 음반에서 음악을 올려본다. 바하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맑고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하스킬의 터치와 정교하고 명석한 안다의 터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당신의 감식안을 시험해 보시길

2008. 9. 2.

클라라 하스킬- 평생을 고통속에 산 여신

15세의 하스킬

15세의 하스킬

고통과 싸워 이긴,아니 평생 고통과 함께 살아간 예술가들의 작품은 눈물겹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고통의 소산을 너무 쉽게 받아먹는지도 모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피아니스트로 손꼽히는 클라라 하스킬, 이제 전설, 아니 여신처럼 추앙받고 있는 하스킬도 그렇다. 그녀는 1895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에서 알프레드 코르토에게 배웠으니, 같은 루마니아 출신 천재 디누 리파티의 동문 선배가 된다. 실제로 디누를 무척 아꼈으며, 디누가 백혈병으로 고통받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엄청난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남 걱정할 처지가 못되었으니,

그녀 자신도 "평생토록 병마에 시달렸다.". 한창 젊은 18살, 여자 모차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음악계를 평정할 준비를 하고 있던 하스킬은 세포경화증이란 불치병에 걸린다. 이 병으로 온 몸의 신경이 모두 마비되고 말았는데, 무려 7년 간의 투병생활을 하게 된다. 그럭저럭 활동을 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간신히 일어난 하스킬은 등과 허리가 모두 굽어 꼽추가 되었고 아름다웠던 미모도 모두 잃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와중에 부모님은 일찍 죽었고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친 세월이 무려 7년이었다. 그 불치병은 치료가 된게 아니라서 평생 그녀의 뼈와 근육을 괴롭혔으며, 그 외에도 온갖 잡병으로 늘 고통을 달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사진에는 웃는 모습이나 밝은 모습이 없다. 그렇게 평생을 고통속에 싸우면서도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동료의 고통을 먼저 애닮아 하며, 항상 수줍고 겸손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부모를 일찍 잃어버리고, 세계대전뒤에는 완전 외톨이가 되었으며(남은 가족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는....),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아끼고 가족처럼 사랑했던 디누 리파티마저 먼저 저세상에 보내야 했던....

젊어서는 천재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정신적 지주이자, 플라토닉 연인이었으며(거의 엄마 같은 존재), 나이 들어서는 역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튀르 그뤼미오의 환상적인 파트너였다. 그렇게 하스킬은 고통속에서 꽃피었기에 더욱 신성한 위대한 연주를 들려주다가 65세에 눈을 감았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65년이나 살았던 것이다. 하스킬에 대한 평가는 이 한마디면 족할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전설이요, 두번다시 태어나지 않을것이라 칭송한 천재 디누 리파티가 말했다. "여러분, 하스킬에 비하면 내 연주는 하찮은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스킬 사진

안타깝게도 하스킬은 음반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전성기를 거의 다 지난 50대에야 이미 자신을 엄습하고 있던 죽음과 싸우며 녹음을 했다. 그나마도 피아노 독주보다는 총애하던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를 위한 녹음이 많았다.

하지만 몇 안되는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종종 올려보려 한다. 용량이 많지만 무리해서 그녀의 가장 중요한 레파토리였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2,3악장을 올려본다.(아이고, 호스팅 용량이...)

2008. 9. 1.

승진 하려면 교사이길 포기해야 하는 현실(1)

교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학교. 갈수록 교육부는 초중등교육을 지자체로 이관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교장의 권력은 더욱 세진다. 교사들은 교장이 되기위해 해바라기가 되어간다.

그런데, 교장들 세계에 "교장으로 부임한 첫날 자리에 앉으면 눈 앞에서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이 흘러간다."라는 말이 있다. 교장이 되기 위한 과정이 정말 지난하고 길고 험했단 뜻이리라. 학교를 책임지는 수장이 쉽게 되는 것도 문제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지난하고 험한 길이 학생들의 교육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영어 교사가 운동장에 구덩이를 100개를 파고,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일했는데 왜 인정해 주지 않느냐라고 따지면 "삽질"이라고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런데 교장이 되기 위해 주마등이 떠오를 정도로 파란만장했던 그 고생들도 학생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삽질"이라는 것에 한국 교육의 비극이 있다.

이제부터 그 삽질을 하나하나 분석해 볼 것이다.

교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교장 자격증을 획득해야 한다. 교장 자격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장 자격연수를 받아야 한다. 그럼 그 연수는 어떻게 받나? 그건 국가가 연수대상자 명단에 포함시켜 주어야 받을 수 있다. 즉 일정 요건이 되면 연수를 받고 자격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수를 정해 놓고, 순위를 매겨 일정 인원수에서 자른다는 것이다. 그럼 그 연수에 지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교감자격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이 삽질의 시작은 교감이 되기위한 경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자, 그럼 한 사람의 교사가 교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챙겨 보자.

사실 이 시점에서 필자도 곤란을 느낀다. 그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학 박사이면서, 나름 유능한 교사로 자부하는 필자도 승진을 하려면 그 분야를 따로 시간내어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정리해보면 교사가 교감이 되기 위해서는 승진후보자 명단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야 하며, 그 상위권에 오른 교사들을 추려서 교감 연수를 실시하고, 교감자격증을 준다. 그럼 승진후보자 명단에 이름 올리는 순서의 기준이 되는 점수는 어떻게 산출하나?

1. 경력평정 2. 근무평정 3.연구가산점 의 합께로 산출한다.

경력평정은 교사가 근무한 햇수를 의미한다. 근무평정은 근무할때 교장으로부터 받은 평가를 의미한다. 연구가산점은 문자 그대로 우수한 연구실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렇다.

"오래 근무하고, 그 근무실적이 우수하면서 특출한 연구성과가 있는 교사가 교감이 된다."
과연 그럴까? 안타깝게도 그 반대라는 것이 문제다. 먼저 경력평정부터 살펴보자. 문구상으로는 기본15년, 초과 5년 모두 20년이 평정 대상이 된다. 

그런데, 두가지 고약한 것이 있다. 바로 경력 등급과 경력 가산점이다. 경력 등급은 같은 개월수를 근무하더라도 서로 다른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가 경력이 가장 많은 점수를 받고, 나, 다 순서로 이어진다.

문제는 교사만 하다가 교감이 된 사람보다 장학사나 연구사 좀 하다가 교감이 된 사람이 교장승진에 필요한 가 경력이 더 많아서 교장되기 더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만 하다 교감이 될 경우 그냥 교감으로 정년퇴임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장학사나 연구사가 되려고 거의 발악을 한다. 기실 거의 강등에 가까운 이동인데도 그걸 마치 승진한것처럼 여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교감이 되기위한 경력에는 불행중 다행으로 교사 경력과 장학사 경력이 함께 가 로 분류되어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력 가산점에 있다. 만약 이 가산점이 없다면,
무탈하게 징계없이 20년을 근무한 교사는 모두 경력점수가 만점이 되고 말 것이다. 이래서야 줄세우기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저런 명목을 달아 같은 개월수를 근무하더라도 매달 작지만 몇점식의 가산점이 추가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명목이야 가지가지다. 말많고 탈많은 벽촌오지 근무, 시범학교 근무, 부장교사 근무, 교사대부속학교 근무, 기타 등등이 있다. 이 중 농어촌에서는 오지 근무, 도시 지역에서는 시범학교 근무가 가장 말썽을 일으킨다. 아무런 교육적 소신 없이 점수를 위해 벽촌에 근무하는 교사가 그 지역에 무슨 애정을 가질 것이며, 단지 승진 가산점을 위해 온갖 프로젝트를 벌려놓고 보고서야 발표회야 정신없는 교사가 무슨 교실 수업을 제대로 하겠는가? 그
시범사업이라는 것도 온갖 해괴한 것들로 교실수업과 직접 관련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심지어 음악교사가 과학수업개선 시범팀에 끼여들기도 한다.

 그것도 그 학교 교사 전체가 가산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열댓명의 프로젝트 팀이 가산점을 받는 것이니, 그 팀에 끼기 위해서는 교장,교감의 눈에 들어야 한다. 심지어는 프로젝트 사냥꾼들이 있어서 그런 사업 벌리는 학교만 골라가며 전근다니는 교사가 있을 지경이다. 문제는 그런 시범사업이 하나 벌어지면 그 열댓명이 아니라 전체교사, 전체 학생들이 이런저런 일치다거리 하느라 부산스럽다는 것이다. 결국
열댓명의 승진점수를 위해 온 학교가 들썩거리는 상황이 되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경력점수를 만점을 채우고 다시 가산점까지 보태야 겨우 교감 승진 경쟁에 명함을 내밀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각종 시범사업 쫓아다니다보면 나중에는 자기 교과목이 뭐였는지 잊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며, 시범사업 하는 학교 리스트와 그쪽 연줄관리하는데만 도가 트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을 어찌 교사라 하겠는가? 하지만 교감이 어디 교사인가? 그러니
교감이 되기 위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교사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니 참으로 오묘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점수차도 많이나는 근무평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 참.....(다음에 계속)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에서 한 토막

밀의 책을 읽다가 문득 느낌이 와서 옮겨 놓는다. 사람들이 실용, 효용을 천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효용에다 편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과 원리를 손쉽게 대비함으로써 비도덕적인 이론이라고 부당하게 낙인찍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러나 옳은 것과 대립되는 의미로서의 편의는, 이를테면 정치인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이익을 희생하는 경우처럼, 일반적으로 행위자 본인의 특정 이익을 뜻한다. 이것보다 나은 의미를 굳이 찾자면 그것은 무엇인가 눈앞의 일시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용하기는 하지만, 대신 훨씬 높은 수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의미의 편의는 유용한 것과 동의어가 되기보다는 해로운 것의 한 지파를 형성한다. 일시적인 당혹감을 이기려고 혹은 당장 유용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 때로 편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진실함이라는 문제에 대해 예민한 감정을 고양하는 것은 매우 유용한 반면, 그것을 약화시키는 것은 대단히 해로운 일이다. 그리고 비록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진리를 배신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킨다. 이런 믿음이야말로 현재의 모든 사회적 복리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원군이기 때문에, 그것이 불충분할 때는 문명과 덕, 그리고 인간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변수보다도 더 심각하게 저해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현재의 이익을 위해 초월적 편의에 관한 규칙을 위반하는 것은 결코 편의를 주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나 다른 어떤 개인의 편리를 위해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깨뜨리고, 그 결과 인류의 이익을 해치고 그들에게 해악을 끼친다면,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도 가장 나쁜 일을 하는 셈이 된다.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윌리엄 제임스처럼 그 이름만 알려진 철학자는 드물 것이다.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실용주의(이명박은 당장 이 이름에 대한 모독을 중지해야 한다)에서 퍼스, 제임스, 듀이 3인방의 이름은 얼마나 단골로 시험문제에 등장했던가?

하긴 칸트는 의무론, 밀은 공리주의 등등도 참 자주 나왔던 문제지만... 그래도 칸트와 밀은 제법 책으로도 읽혔지만, 그리고 같은 프래그머티스트 중에서도 듀이, 그리고 최근의 로티는 무척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지만, 사실상 그 운동의 핵심이었던 제임스의 책은 구하기도 힘들고 읽히지도 않는다. 그의 주저 "실용주의"조차 소개되지 않았으니....

그래도 꿩대신 닭으로 제임스의 명저 "종교적경험의 다양성"을 읽음으로써 아쉬움을 달랠수 있다.

여기서 종교가 아니라 종교적 경험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 부터 심상치 않다. 즉 어떤 교리가 옳네 그르네, 천국이 있네 없네 따위에 대해서는 관심 가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제임스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경험들 중 "종교적"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경험이다. 그리하여 여러 경험들 중에서 "종교적"이라 칭할만한 경험의 여러 양상들을 교파, 교단과 무관하게 제시하면서 이런 경험들의 총체로서 종교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유신론과 무신론에 대해서모 말하지 않는다. 그건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종교적"이라고 불리는 경험이 개인과 사회에 어떤 "효용"을 가지는가가 그의 유일한 관심사다.

설사 가장 위대한 신이 실재한다 할지라도, 종교적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제임스는 그 종교를 거부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또 설사 미신의 잡신이라도 그것과 관련한 경험이 효용이 있다면 그것을 긍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되면 종교의 가치는 각 시대, 각 사회의 맥락에 종속된다. 영원한 종교는 없고, 다만 그 시대, 그 상황에서 의미있는 종교적 경험만 남는 것이다. 따라서 1500년대의 개신교와 오늘날의 개신교도 그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어떤 경험을 제공할까? 우리가 판단해야 할 근거는 오직 그것이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