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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대화 소재

어지러운 교무실(교무실에 대해 쓴 이전 포스팅 참조)가운데 몇몇 교사들이 모여있다. 이들이 의자들을 모아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걸 어찌 다 알겠는가? 하지만 절대 이들의 대화소재가 아닐 것 같은것은 골라볼수 있다.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은 절대 교사들의 대화소재가 아닐 것이다.

1. 전공분야의 최신 이론들에 대한 대화(예: 과학교사들이 과학이야기 하거나, 사회교사가 사회학 이야기 하는 경우)
2. 교육학이나 교육철학에 대한 대화(교수법이라거나 교육관에 대한 이론적이고 심각하고 진지한 대화)
3. 각종 고전이나 인문학과 관련된 대화(예컨대 역사라거나, 혹은 예술작품이나 비평에 대한 이야기)
4. 학생, 청소년의 권리 증진과 관련된 대화


이건 내가 정말 장담한다. 교사들끼리 모였을때 위의 네가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문제는 위의 네가지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흔히 하기를 기대받는 그런 이야기라는 것이다. 즉 교사들은 절대 지식인스러운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럼 대체 교사들은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장담은 못하지만 다음 네가지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1. 전문적이지 않은 가십 수준의 학생 이야기(몇반의 아무개가 이렇다더라, 우리반 아무개네 집이 어떻다더라, 아무개가 참 수업태도가 나빠지더라 등등)
2. 연예가 중계성 대화
3. 사교육에 관한 대화(어디에 학원이 좋아서 우리 애도 보내야지. 영어학원은 어디가 좋아 등등)
4. 자기 자식 자랑

한 마디로 그냥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들이 자기들 거실에 모여 앉아서 할만한 이야기들이 교무실에서도 여전히 이야기되고 있다. 이들이 교사다. 이들이 "교직은 전문직이기 때문에 죽어도 학생, 학부모로부터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교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앞서 네가지의 소재로 이야기를 하려 하면 "잘난척 한다"고 핀잔을 듣거나 "아, 머리아프다."소리 듣기 일쑤다. 소위 선진국 같으면 대졸자들의 통상 교양 수준에서 이야기를 해도 소위 전문직인 한국 교사들은 "그렇게 수준높은 이야기"취급을 한다.

도대체 모여 앉아서 연예가 중계나 자기 자식 이야기나 하는 교사들, 정작 아이들 가르칠 내용에 대해서는 중학교 교과서 수준밖에 모르는, 그리고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교사들을 보면 앞날이 깜깜하다. 이들에게 퍼들어가는 월급들을 생각하면 내가 학부모라도 퇴출소리가 절로나온다. 퇴출은 변태짓을 하거나 폭력적인 교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교육, 자식자랑, 연예가중계가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사들 역시, 아니 그런 교사들이야말로 퇴출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시장화 저지 등의 나름 이유가 있기는 했겠지만, 교원평가 등등을 악착같이 반대해서 결과적으로 이런 교사들의 든든한 방패막이로 전락해버린 전교조를 보면, 그리고 저 연예가 중계 따위 대화판에 전교조 조합원들도 어김없이 끼어있고, 이들을 비조합원과 전혀 구별할수 없게된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전교조의 회생은 이런 조합원들에게 "그런 무식한 이야기나 하면서 교무실을 더럽히고 있느냐"라고 일침을 가할수 있는 그런 냉혹하고 비판적이고 비인간적인 조합원들이 좀 늘어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교조는 너무 인간미가 넘쳐 차마 그 말들을 못하는 것 같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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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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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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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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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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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