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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블랙센스

 

학교 교장이 새로 부임 했다. 부임식 날, 아직 새 교장이 도착하기도 전의 상황이다.

학교 프린터는 여러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는 공유 형이다. 내 문서 인쇄물을 찾으러 프린터 앞으로 갔는데...오지도 않은 ‘교장 취임사’가 이미 출력되어 있었다.

오! 새 교장이 취임사를 먼저 파일로 보내 출력 하도록 지시하였을까?

물론 아니다. 대충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 국어과 교사가 교장의 연설문이나 교지의 원고를 대필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아마도 부탁도 하기 전 미리 취임사를 만들어 ‘올리기’ 위한 어느 세심한 부장의 블랙센스임이 분명하다. 교직 경력이 30년 가까이 되는 교사가 취임 연설문 정도를 스스로 쓰지 못할 리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교장과 부장교사들이 만드는 그들만의 리그는 일반 교사들을 매우 바보로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새 교장이 부임한 다음 날 부장교사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부임기념 모임이 거나하게 있었을 것이다. 교장은 평교사에게는 관심이 없다. 특히 부장 교사중 승진을 위해 꼼꼼한(?) 준비를 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알아서 보고하고, 그 대화 속에서 학교내 상황의 진실이 왜곡되는 일은 부지기수다.

“내가 잘 말해줬어. 선생님 열심히 한다고...” 담당 부장교사가 하는 말이다. 참 기가 막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 내 평가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러한 소통 방법은 일반 교사를 여지없이 소외시킨다.

교장, 교감과 부장 교사들이 간부회의라는 명목 하에 학교의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직원회의는 명령의 하달이나 계획의 집행을 위한 협조 요청 시간과 다름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언가 의견이 있어 ‘벌떡’ 일어나 발언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매우 곤란한 일이다.

늘 시간 관계상 일찍 마쳐야 하는 시간에 회의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들은 자주 모이고, 식사하고, 여행도 간다. 그들끼리.

방학이면 해외여행도 간다. 내 친구는 경기도 어느 학교 부장인데, 교장을 모시고 가는 해외여행의 계획과 총무 일을 맡아 하느라 겪는 고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안할 수 없는 일이다. 교장이 평가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또 그들 안에서 별 무리  없는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위에서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 ”

거슬리는 말이다. ‘위’. 엄연히 위로서 군림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학교 교장이다.


교장의 사적인 행사에 식구처럼 동원되는 교사도 있다.  때로는 운전기사, 때로는 촬영기사, 혹은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달라고 자주 부탁을 해서, 거절했다가 미움을 산 부장도 있다. 그 이후 다른 평교사에게 촬영 편집을 계속 부탁해서 그 교사가 울상이 된 적이 있다. 아마도 무슨 교회에서 하는 행사를 찍은 것이었는데 대상이나 내용이 학교 교육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으니...젊은 교사가 난감해 하면서도 노력봉사 했다고 한다.


스스로 원고를 써서 연설을 하는 교육계의 선배, 학교 정책에 대해 심사숙고 하다가 교사들에게 의견을 묻고, 좋은 의견을 수렴할 줄 아는 교장이 있다면 얼마나 , 어디에 있을지 정말 한번은 만나보고 싶다.


그들과 자주 식사를 하고, 따로 여행도 가고, 명절 때면 그들의 대접을 받는 그들만의 리그...그들의 교장모시기에 연출되는 갖가지 블랙센스를 볼 때 , 학교 현장의 의사소통이 어떨지는 안 봐도 알만한 상황이다.


다만, 필요도 없이 그들의 리그를 위해 교사들을 동원하는 일이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에서 용기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를 ‘교육자’ '되기'를 원하는 교사에게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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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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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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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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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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