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vs 컴퓨터

10여년 전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바흐, 바그너, 모차르트 애호가들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그 논쟁은 나중에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져서 결국 그 음악 동호회가 폭파되는 결과까지 불러왔다. 이때 바흐, 바그너 파(?)가 한 편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 우상의 정교하게 계산되고, 한치의 오차도 없고,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더 많은 분석거리를 제공하는 그 세심한 짜임에 대해 이야기 했다. 거기에 비하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단순하고, 그 가치도 항상 "뉘앙스", "아우라"같은 추상적이고 입증불가한 근거에 의해서만 평가받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논쟁을 보면서 그들이 어쩔수 없는 근대인들임을 느꼈다. 그런 예리한 분석적 속성이 어떤 음악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한다면, 즉 베버가 말한 도구적 합리성으로 음악의 가치를 결정하려 한다면 갈수록 음악은 그것이 실제로 연주되고, 수용되고 사용되는 생활세계로부터 벌어질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성학적으로, 대위법적으로 오묘한 작품이지만, 음악으로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 그런 작품들이 음악가들의 세게에서 높이 평가받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안톤 베베른이 그런 음악의 전형이 아닌가?

어쨌든 나는 분석적인 측면을 들어서 음악의 우열을 논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매우 걱정스럽고, 자칫 음악에서의 계몽의 변증법이 될까 두렵다. 그 귀결은 무엇일까? 바로 다음의 연주다.  이 연주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연주자가 과연 누구일까? 정답은 다 듣고 나면 가르쳐 주겠다.


먼저것의 연주자는 바로 컴퓨터다. 컴퓨터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굴드의 음반을 분석해서 건반 누르는 강도, 길이, 페달시간 등을 수치화한 뒤 기계적으로 피아노를 연주시킨 것이다.


아래 것은 글렌 굴드의 연주다.

이 둘의 차이가 있다 없다를 놓고 논란이 많이 있었는데, 음악 평론가나 학자들은 "글렌굴드의 연주와 같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느낌이 다르다"식의 "비분석적"이유를 들어 비판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연주를 듣고 나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런식으로 글렌 굴드 뿐 아니라 클라라 하스킬, 디누 리파티, 게자 안다 등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면, 우리는 앞으로 인간 피아니스트의 존재를 완전히 컴퓨터에게 대체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앞의 연주가 실제 글렌굴드의 연주보다 모자란 면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던, 현재 저 컴퓨터보다 바흐를 더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기에, 디누 리파티의 쇼팽, 게자 안다의 바르톡, 하스킬의 모차르트, 길레스의 베토벤 연주를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우리는 피아노 혼자 최고수준의 연주를 입력된 데이터에 따라 언제나 같은 퀄리티로 들려주는 엽기적인 풍경에 직면할 것이다. 개런티가 들지 않으니 음악회 티켓도 저렴해 질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설적 연주자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게다가 컨디션에 따라 실수마저 하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인간 피아니스트들은 대체 어떤 무대에 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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