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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피리 -초월과 현실의 화해(2)




음악 이야기 주절거렸던 것들, 옛날 글들 정리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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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학자들은 모차르트를 계몽주의자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인 기계적인 분류다. 사실은 계몽주의라는 용어 자체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표현이다. 계몽사상가로 분류되는 루소와 볼테르 사이에도 엄청난 간극이 있다.
이 간극은 어린 모차르트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어릴때 부터 모차르트는 루소에 대해서는 무한한 존경을, 볼테르에 대해서는 엄청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볼테르는 백과전서파와 그 맥을 같이하는 유물론자였지만, 루소는 어떤 초월적인 이성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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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정신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장 자크 루소
루소의 사상은 모차르트 이해에 매우 중요하다. 모차르트는 12살때 이미 루소에 심취해 있었고, 그의 전원시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를 오페라로 만들기도 했다. 루소의 사상은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모차르트 음악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루소는 당시 모든 계몽사상가들의 고민거리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을 제거한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의 미덕과 진보를 정당화 할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기계적 유물론으로는  단순히 반복하는 세계 이상을 표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을 탓하지 말자. 다윈보다 150년 먼저 활동한 사람들이니, 이들에게 자연은 변화와 발전의 도가니가 아니라 영원하고 고정된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이 변하지 않는 자연에 변화의 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에서 주어질수 밖에 없고, 결국 작용인으로서 신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계몽주의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루소는 인간 이성의 초월적인 성격을 상정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 하였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자유롭고, 각자 나름대로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입법자들이다. 인간 사회 외부에서 군림하는 초월적인 절대자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며, 이 이성은 보편적이기기 때문에 인간들은 각자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된 의지, 즉 일반의지를 형성할 수 있다. 이 일반의지의 소산이 바로 법이다. 이 이성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손대지 않을수록 원형에 가깝다. 따라서 이 이성을 더럽힌 여러 사회, 문화적 오염들을 제거하면 비로소 만민이 하나의 보편적인 원리 아래서 살면서도 자유로울수 있게 된다.

이렇게 루소는 개인의 자유와 보편적 원리를 모두 설명하는 탈출구를 열었지만, 유물론적 계몽사상가들에게 루소는 반동적인 신비주의자로 보였다. 결국 루소는 계몽사상가들 사이에 왕따 비슷한 존재가 되었던 셈이다.

인격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를 설정함이 없이 어떤 초월적인 원리를 설명하고, 인간의 자유를 정당화하면서도 그것이 무질서가 아님을 입증하려는 이러한 루소의 시도는 훗날 칸트의 실천이성 개념의 원천이 된다. 물론 자유와 필연의 이 모순의 해소는 철저히 유물론적 바탕 위에서도 초월적인 법칙을 설명해내는 사회학적 관점을 제시한 마르크스에 이르러서야 가능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마술피리를 이해하는 핵심이 바로 자유와 규칙의 화해와 지양에 있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에는 두 세계가 등장한다. 하나는  밤의여왕의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자라스트로가 지배하는 신전 구역이다. 파파게노는 철저하게 욕망에 따라 사는 자유롭고 자연적인 존재이며, 타미노는 초월을 추구하는 구도자적 존재다. 밤의 여왕의 세계는 욕망의 세계이며, 자라스트로의 세계는 초월적 이성의 세계다. 이 두 세계는 결코 화해 할 수 없으며, 단지 대립물로만 남아있다. 그러나 이 두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타미노가 등장함으로써, 또한 타미노가 이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랑'을 끌고 들어옴으로써 이 두 세계의 대립이 무너진다.

얼른 보이는것처럼 밤의 여왕의 세계만 무너진 것이 아니다. 잉그마르 베리만이 훌륭히 해석했듯이 밤의 여왕은 죽었지만, 자라스트로 역시 떠나야만 한다. 이제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것은 어떤 권력과 다른 문명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파미나(자연)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동기로 삼은 청년 타미노가 등장하여 욕망과 이성의 화해를 이끌어내었기 때문이다. 이제 욕망과 이성은 인간성이라는 보다 큰 전체의 한 계기들이 되었으며 더 이상 대립물이 아니다. 그렇게 된 이상 각 대립물의 한 부분만 대표하던 밤의여왕과 자라스트로의 세계는 해소될 수 밖에 없는것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원초적인 욕망만을 알던 파파게노는 가족을 얻어서 떠나간다. 그 역시 소박하지만 하나의 화해인 것이다.
 
모차르트가 이 정도까지 생각했을까? 의식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시절 루소에 대한 열광, 루소와 볼테르의 대립을 명확하게 파악했던 예리함을 감안하면, 그가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를 그대로 타미노와 파미나로 승화시켰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이 깊게 자리잡았기에 세계 역사상 가장 엉망인, 심지어 글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수 있는 수준이라는 형편없는 대본에도 불구하고 "마술피리"는 헤아리기 어려운 성찰과 초월적인 신비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 타미노가 처음으로 파미나에게 연정을 느끼면서 그의 여정을 시작한 계기가 된 아리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의 목소리로 들어보고, 음미하자.

타미노의 아리아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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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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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