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천재 미하일 플레트네프

디누 리파티 이후 그의 포스를 대체할만한 피아니스트는 나오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EMI에서 짝퉁 디누리파티 음반을 발매하다 걸려서 망신을 당했을까?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다 되어서야 그런 포스를 가진 피아니스트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바로 미하일 플레트네프다.

2005년의 일이다. 6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피아노 독주회를 갔다. 6년 전에 공연 도중 기침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짜증을 숨기지 않은 이 성격 까다롭고 민감한 천재는 공연 시작하기 전 부터 그 성깔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공연 시작한 다음에 뒤늦게 들어오기 일쑤인 몰지각한 청중을 의식해서 아예 공연시간을 20시로 30분 늦추었다. 그리고 신경 거슬리는 기침소리들을 의식해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전혀 인터벌을 두지 않고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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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주는 한 마디로 연습해서 할 수 있는 연주가 아니었다. 첫번째 곡목인 베토벤의 7번 소나타. 1악장에서는 마치 수학공식처럼 피아노 소리를 정교하게 재구성한 그는 2악장에서는 폐부를 찔러대는 깊은 정서로 노래했다. 그리고 3악장에서는 미뉴엣이 단지 춤곡이 아님을 증명했고, 4악장에서는 프레스토 템포로도 여유있게 노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사단이 일어났다. 원래 공연에 늦으면 인터미션때 입장해야 하고 1부 공연은 포기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1부 첫번째 순서가 끝나면 입장을 시킨다. 그 순간의 어수선함은 정말 화가날 정도다. 이는 나 뿐 아니라 플레트네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7번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이 끝나고 당연히 박수가 나와야 할 상황인데 그는 1초의 짬도 두지 않고 바로 8번 소나타 연주를 시작했다. 중간입장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몰지각한 홀 매니저가 입장을 시켜버렸다. 이제 큰 일이 났다. 저 성질 까다로운 천재가 연주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무려 200여명이나 되는 지각생들이 우르르 입장하고, 구두소리를 딸깍이고 휴대폰 소리를 냈던 것이다.

일이 벌어졌다. 피아노, 지휘, 작곡 세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가히 음악계의 황제라 할 만한 그리고 그런 만큼 겸손함을 전혀 미덕이라 생각하지 않는 오만한 천재가 웅성거리며 서성대는 청중들 사이에서 연주해야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내심 나는 저 예민한 인물이 화를 버럭내며 연주를 중단하고 퇴장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실제 그의 얼굴에는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그 짜증과 분노를 엉뚱하게 표현했다. 바로 연주로!

그가 연주한 베토벤 8번 소나타는 여태까지 들었던 그 어떤 연주보다 빨랐다. 프레이징은 기존의 정석과 너무나 동떨어졌고, 터치 하나하나마다 짜증이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짜증과 분노를 연주했다. 사실 그 순간 플레트네프는 한시라도 빨리 이 몰지각한 청중 앞에서 연주해야 하는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법은 단 하나 빠른 템포로 가볍게 연주하는 것. 정상 속도보다 1.5배 빠르게 연주하는 베토벤 8번 소나타는 '비창'이 아니라 '짜증'으로 닉네임이 바뀌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분명 플레트네프는 짜증스런 상태에서 한시라도 빨리 연주를 끝내려고 가벼운 터치로 빠르게 연주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새로운 해석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에는 일점 반획의 오차도 없었고, 밸런싱과 프레이징은 완벽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짜증마저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천재로 태어난 자의 비운이다. 천재의 정서는 표현되는 순간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표현이 되어버린다. 화를 내던 슬퍼하던, 짜증을 내던, 공포를 느끼던,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 일반인들은 그것을 감상한다. 화를 내면 그 격렬함의 파도를 즐기고, 슬퍼하면 그 비극적 정서를 즐긴다. 불행히도 일반인은 천재의 즐거움이란 정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바로 저 플레트네프의 짜증처럼 천재의 부정적인 정서를 좋아한다.

그의 짜증은 정말 경이로웠고 또 아름다웠다.

그리고 2부... 쇼팽의 24개 전주곡을 연주한 2부는 너무도 훌륭한 연주였기에 따로 서술하지 않겠다. 그리고 몰지각한 청중들이 시계를 보며 미리 퇴장해 버린 다음 커튼콜을 계속하고 있는 진짜배기 청중들에게 선사한 기나긴 앵콜 공연에서 보여준 그의 연주는 전율스러웠다.

아마도 피아노 공부하는 사람에게 미하일 플레트네프라고 하는 이름은 영원한 저주이자 경외이자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참고로, 그는 두시간에 달하는 공연 내내 단 하나의 미스터치도 범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한국에 도착 한 뒤 단 한번도 연습이나 리허설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단하다 못해 얄미운 존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50대가 된 플레트네프는 피아노에 손을 잘 대지 않는다. 이제 그는 지휘자가 되었다. 에셴바흐에 이허 또 한명의 아까운 피아니스트가 지휘대에 흡수되었다. 대체 왜들 그러는지. 쩝.
여기서 플레트네프의 연주 한 자락.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의 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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