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문을 쓰지 않는 어른들

학교에는 교장이 있다. 전교조에는 위원장이 있다. 현재 한국 사회 지형에서 이들은 서로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남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이다. 즉 각종 공개적인 행사에서 남이 쓴글을 폼나게 읽으면서 연설한다는 것이다.

교장이야 워낙 내가 이 블로그에서 자주 밝혀놓은것처럼 찌질대는 듣보잡질을 해야 될수 있는 것이니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런 왜곡된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대안집단의 수장인 전교조 위원장이 똑같은 짓을 한다는 것은 좀체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이미 작성된 연설문의 의미를 제대로 몰라서 더듬거리는 것까지 똑같으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이들은 왜 연설문을 작성하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한국에서는 어떤 단체든 그 단체의 "어른"즉 "장"은 무슨 일이든 직접 하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장은 남이 깔아준 멍석에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서 카메라와 스포트라이트만 받는게 너무 당연시되었다. 단체의 모든 영광과 자랑스러운 순간은 장에게 집중되고, 온갖 나쁜 일과 자잘한 비난과 힐난은 담당자에게 쏟아지는 것 역시 너무도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이런 일을 개혁하고자 만든 전교조조차 이런일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뿌리깊은 문화가 아닐수 없으며, 전교조 활동가 역시 헤겔의 말을 빌리면 즉자적 존재를 결코 벗어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필자 역시 전교조 위원장을 위해 몇 편의 연설문을 써주었다. 참으로 심혈을 기울여 쓴 감동적인 연설문이 남의 이름으로 건성으로 읽힌뒤 소모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불쾌한 일이다.

요즘 전교조가 동네북이되고 있다. 시사인, 한겨레에 이어 경향신문에서조차 전교조를 비판하고 있다. 가히 우군이 없다고 해야할 지경이다. 그건 전교조가 나빠서가 아니라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쏟아지는 질타일 것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까? 먼저 지도부, 특히 위원장이 직접 일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 위원장이 직접 연설문을 작성해야 한다. 홀로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어떻게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풀어 나갈까 고민한다면, 그 속에서 전교조 혁신의 필요성과 그 방안은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전교조 위원장에게 간절히 고한다. 연설문을 직접 작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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