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세이 1 -음악과 음악감상

음악과 음악감상

우리 나라에서 취미에 대한 설문 조사라도 할라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음악감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취미로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냐 하면 음악 연주, 혹은 음악 비평이나 음악 작곡이 취미로 등장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나라는 엄청나게 광범위한 음악 소비계층을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적어도 음악 생산자와 음악 소비자의 비율을 보면 그렇다. 턱 없이 부족한 음악 공그자와 무지막지하게 많은 음악 소비자의 비율.

그렇다면 이명박이 그토록 숭상하는 시장경제의 법칙에 따라 -그런데 주제에 벗어나는 말이지만 시장경제는 그 출발점부터 모순이다. 일견 가장 정확해 보이는 수요공급곡선이라는 대전제부터가 틀렸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에게 따로 문의하기 바란다.- 우리 나라의 음악 공급자는 엄청난 독과점이윤을 누려야 할텐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취미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한국어의 원초적 어휘 빈곤 때문에 할 수 없이 영어를 병용해서 표현한다면, 아니 김대중이랑 신낙균이 좋아하게 한자까지 같이 병용 한다면 한국인은 취미(趣味 Hobby), 취향(趣向 Taste), 관심사(關心事 Interest )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것들을 그 중독성에 따라 수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취미>관심사>취향의 순서가 된다.따라서 “나의 취미는 음악감상이다.”라는 문장과 “나는 음악감상에 관심이 있다.”라는 문장은 그 의미가 다르며 더더군다나 “나는 음악 쪽에 취향이 있다.”라는 말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약간 관심이 있거나 그쪽으로 좀 구미가 당기는 정도를 모조리 취미라고 해버리는데, 그것은 비약도 엄청난 비약인 셈이다.

적어도 취미라고 할 수 있으려면, 노동하는, 즉 생존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벌어 들이는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이, 심지어는 노동의 시간을 방해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투자되는 생산 외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이른바 레져의 시대를 맞이해서 취미와 노동시간의 비율이 상류층과 하층민을 나누는 중요한 잣대(엥겔 지수를 밀어내고)가 되고 있는 마당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 음악감상이 취미인 사람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 수는 얼마나 되는가? 바로 여기에 통계상의 거품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 갑자기 뜬금 없이 왜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하는가? 그것은 나의 가장 강력한 취미는 음악감상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고, 그때 그 취미로서의 음악감상이 흔히 달리 적을 것이 없을때 취미로 적어 넣는 음악감상과는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나의 음악감상은 손으로 획득하는 음악기술을 성공적으로 획득하지 못한 나의 한을 온통 귀에다가 쏟아 부은 한풀이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예민하고 고급스러운(?) 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음악을 전공하는 것과 고급의 귀를 가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명 가수가 명 프로듀서나 명 기획자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또 반대로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나 연주하는 사람이 뜻밖에도 다른 사람의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다거나, 다른 사람의 음악을 쉽게 오해하는 경향을 보이는 일도 왕왕 있다.비단 음악뿐이 아니다. 위대한 영화감독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천재감독 팀 버튼이 정작 영화 감상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팀 버튼은 심지어 자신은 영화를 보는 눈이 형편없다고 스스로 떠벌리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에드 우드’ 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형편없는 영화 보는 안목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공개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기인은 기인이다.

어디 그 뿐일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이 사람의 작품을 좋아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요한 세바스챤 바흐의 경우는 평생토록 독일의 한 제후국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고, 당시 유럽의 다양한 음악을 거의 들어보지 못한 편벽된 귀를 가지고 있었다.물론 음악을 듣는 안목도 썩 신통치는 않았다고 한다. 그가 접한 음악은 공연이 아닌 단지 악보인 경우가 많았다. 하긴 바하는 뛰어난 수학자지 음악가는 아니니까

만약 필자가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역시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남의 글을 읽지 않는 인간도 드물테니까. 특히 문학작품은 거의 읽지 않아서 돈 주고 사 본 시집은 이백 시선과 굴원의 초사 두권, 만약 시경을 시집으로 넣어 준다면 세권 뿐이었고, 그 외에 읽어본 시라고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 오페라 대사, 그리고 케케묵은 역사책에 실린 한시들 정도였다. 아참! 앞서 소개한 시집들 외에 돈 주고 산 시집이 세 권이 더 있다. 하나는 중학교 때 용돈을 모아서 산, 화려하게 그림으로 치장된 워즈워드의 시집이었고, 또 하나는 대학교 때 산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Ausgewaehlte deutche Lyriken'이라고 하는 독일 시인 선집이다. 어쨌든 나의 시 쓰는 능력과 시 읽는 능력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나의 음악을 듣는 능력이 음악을 연주하거나 작곡하는 능력과는 무관하게 발달되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도 충분히 가능하다.

어쨌거나 나는 오랜 방황 끝에 나의 진정한 재능이 손 보다는  귀와 주둥아리에 있다는 것을 차차 깨달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 마의 80년대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음악 미학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길. 그렇다고 내가 80년대 때 좌익 폭력학생이었던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니까. 난 지금도 정치적으로는 좌파이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1)좌익 폭력학생, (2)회색분자, (3)우익, (4)정치에는 무관심하며 나에게만 충실 이 네 가지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1)번을 다시 고를 테니까. 그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내가 나의 모든 것을 꽃 피우지 못하고 이렇게 된 원인이 좌익폭력학생들이 벌려 놓은 일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시절의 좌익폭력학생들의 꿈과 이상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데 있다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물론 이때 내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상주의자로서의 좌익학생은 결코 통일을 부르짖는 민족주의 그룹, 일명 주사파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르크스는 인정하지만 레닌에서부터는 뭔가 변질되어간다고 느꼈고, 그 이후 현실 사회주의권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오히려 나의 이상은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혁명분자들, 예컨대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 라파르그, 그리고 뜨로츠키쪽에 가까웠었다. 19세기의 젊은 혁명가 게오르크 뷔히너 -당통의 죽음, 보이체크 등의 작가- 도 나를 온통 사로잡았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실패한 현실사회주의 조차 한국보다는 훨씬 행복해 보였었다. 내가 한국이 아니라 공산당 치하의 소련에 태어났더라면 과연 지금과 같이 한심한 어른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그렇다.만약 내가 구 소련에 태어났더라면 그들의 정교한 사회주의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훌륭한 조기교육훈련을 받고 뭐가 되어도 되었을 것이 아닌가? 공산주의 사회는 재능 있는 자에게는 천국인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돈 있는 자에게 천국이듯이.(이걸 고무찬양이라고 잡아가고 싶다면 잡아가라, 이 떡검들아).동구권의 몰락은 재능은 없으면서도 돈과 명예는 차지하고 싶어 했던 다수의 열등분자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지, 결코 자본주의의 우월성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단연코 미국과 소련 중 진정한 기회의 나라는 소련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주제와 관계없는 얘기는 여기에서 접어두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지는 그 동안 나의 음악을 듣는 귀가 매우 훌륭해 졌다는 것이고, 그것은 대체로 초등학교 6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용돈과 참고서 값을 아껴가며 판을 사 모았고, 그렇게 사 모은 판이 고등학교 졸업 할 무렵에는 마침내 수백 장에 이르렀다. 그것도 오로지 고전음악만

지금은 애물단지가 되어서 이사 갈 때마다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엘피판들이지만(때로는 경매 붙여서 목돈 좀 챙겨볼까 생각도 하게 만드는), 청소년 시절에 클래식 음반을 그 정도로 사 모은 사람은 별로 없었으리라. 나의 음반과 나의 음악생활은 나의 문학적 소양과 더불어 많은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그 덕택에 나에게는 추종자도 꽤 많이 있었다. 그중 가장 열성분자가 한때 영화감독으로 뜨는 것 처럼 하더니 소식이 끊긴 진원석이란 녀석인데, 대학교 2학년 이후 그 녀석과 교류가 끊어진 것이 참 안타깝다. 조금 더 나의 영향을 받았으며 좀더 알맹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어쨌거나 신기한 것은 팔방미인으로 불리던 내가 음악을 직접 만드는 것도 아닌 단지 만들어진 음악을 듣는 행위에 그렇게 깊이 몰입 했다는 것, 그것도 무려 30년이나 지나버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점점 그 도가 더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이토록 오래 동안 한 우물을 판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다.그토록 미쳐있었던 등산조차 요즘은 시들한데 그 보다 더 오래된 음악 듣기는 오히려 도가 더 심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한때 음악을 연주하는 일과 작곡하고 지휘하는 일에도 빠져들었던 적이 있었지만, 락 한다면서 끄적대었던 20대 후반을 끝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예전처럼 흥미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의 관심은 오로지 듣는다는 그 하나의 행위에만 몰입되어 버렸던 것이다. 연주도 싫고, 작곡도 싫지만 듣는 것은 좋다?여기에서 난 한가지 의문을 던져야 했다. 그렇다면 작곡, 연주 그리고 음악 듣기라는 이 세가지 활동은 모두 음악이라는 범주하에 포섭되어 왔지만 사실은 상당히 다른 감성 코드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가 모조리 음악활동이라고 뭉뚱그리는 이 세 가지가 사실은 전혀 다른 감성과 능력을 요구하는 전혀 다른 활동이 아닐까?연주도 작곡도 아닌 음악을 듣는다는 단 하나의 행위가 지닌 마약과 같은 힘. 나를 20년간이나 사로잡고 앞으로도 계속 사로잡을(최근 3년 동안 사 모은 음반이 무려 싯가로 천만원 어치다. 나의 연봉을 고려해 보면 정말 무모하다시피 사 모은 셈이다. 그러고도 파산하지 않은 게 신기하다.)그 힘이 무엇인가 한참 고민하던 끝에 마침내 나는 아주 요상한 문장 하나를 만들어 내었다.


“음악의 존재론적 모순에서 파생되는 갈등과 긴장이 엮어내는 역동적인 자기 파멸적인 힘이 음악을 오로지 듣게 만든다. 연주와 작곡은 이와 다른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아니 대관절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벌써 야유 소리가 들린다. 진중권이 흉내 내려고 하는 짓거리면 이쯤에 그만 두라고 하는. 그러나, 염려하지 마시라. 난 진중권 보다는 훨씬 겸손하니까. 그래서 난 앞으로 이름 깨나 알려졌다고 하는 양코백이 철학자들의 글은 가급적 인용 안 하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들먹여야 하겠지만, 난생 처음 들어보는 학자의 이름과 그의 야릇한 문장이 인용됨으로써 읽는 이들의 기를 죽이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개똥철학 같은 문장을 만들어낸 것은 순전히 복잡하기 짝이 없이 생겨먹은 음악의 탓이지 절대 내 탓은 아니다. 그러니 탓하려면 음악을 탓하시길. 나도 음악이 너무도 복잡해서 울궈도 울궈도 끝이 없어서 지쳐 쓰러질 지경이니까. 어쨌건 이제 함께 개똥철학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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