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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그 존재론적 모순(1)

 

음악, 그 존재론적인 모순

 일찌기 화이트헤드가 서양의 모든 철학이 그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했던 플라톤은 그의 대표작인 ‘공화국’에서 모든 서사 시인들을 폴리스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 영리하게도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서 말이다. 플라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저작인 ‘이온’에서는 비극 시인과 서정 시인들을 매섭게 공격한다. 서사 시인들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대어 사실을 호도하기 때문에 위험한 사람들이며, 서정 시인들은 건전한 이성을 혼란케 하는 지나친 정념에 사로잡힌 존재들이라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플라톤이 시인이라고 부른 사람들은 오늘날의 시인, 문학가와는 별 관계가 없다. 당시 시인이란 직접 노래를 만들어서 즉흥적으로 부르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요즘말로 한다면 싱어 송 라이터라고 할까? 밥 딜런이나 닐 영이 플라톤적인 의미에서의 시인에 가깝다. 따라서 플라톤이 말한 시인은 문학가가 아니라 음악가다. 당시 문학가는 주로 헤로도투스나 투키디데스 같은 저술가들이나 사용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단어였다. 플라톤은 여기에서 서사적인 예술과 서정적인 예술 전반을 공격한 것이며, 특히 음악과 결합된 예술을 공격한 것이다.

오늘날은 교양 있는 척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필수 아이템인 음악을, 그래서 3류 치정극도 주인공이 음악가가 되면 난데없이 수준 높은 드라마로 변신하는(아 꼭 베토벤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 음악을, 고명하시고 덕망 높으신 플라톤 선생께서는 왜 이리도 싫어하신 것일까?(물론 플라톤은 국가의 수호자 교육에서 당시 그리스 전통에 따라 플루트 교육을 정식으로 배치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지만). 선생의 한마디를 들어보자. 편의상 내가 좀 거칠게 뜯어 고쳤다.

“시인이란 뮤즈-음악의 여신-에 사로잡힌 자들이다...... 뮤즈에 사로잡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코레이아(일종의 열광이라고 하자)라고 하며, 음악이란 (원문에선 서정시) 바로 이 코레이아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음악이란 정신 나간 상태에서 귀신들린 소리이며, 사이비 골수 개독들이 잘 내지르는 이른바 방언과 비슷한 것이다.”

자.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플라톤이 구상했던 이상적인 폴리스는 타고난 이성을 갈고 닦아, 세상의 모든 원리를 완전히 관통하는 그야말로 순수하고 무조건 옳을 수밖에 없는 그런 법칙, 즉 이데아를 관조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그가 바라본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당연히 순수 합리의 세계인 수학의 세계이다. 그런데 음악이란? 정신 나간 사람들이 귀신들린 상태에서 내지르는 마성이고 귀곡성이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상실하고 방탕한 마음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독약일 뿐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자기 혼자 비이성적인 열광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빠져들게 하는 집단 광란의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은 시민들의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는 적이 되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플라톤은 음악에서 정확하게 “디오니소스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며, “아폴론의 세계”를 세우고자 하는 자신의 기획의 가장 큰 방해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1960년대 미국이나 유럽의 록 공연에서 볼 수 있는 그 오도방정 완전개판(어른들의 눈으로)의 모습을 플라톤이 본다면 “그래. 바로 저것 때문에 내가 음악을 두려워하는 것이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플라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음악이 오도방정의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더하여 정치적 선동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중우정치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즉, 이렇게 코레이아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며, 급기야 잘못된 사실과 이야기를 확신의 대상으로 삼아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플라톤은 아주 어렵게, 자신의 젊은 시절 우상이었던 호메로스의 작품들조차 폴리스에서 추방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아름답고 매혹적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 속에 기록된 허구적인 역사와 허구적인 신화가 사실로 그럴듯하게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히틀러가 플라톤의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또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틀어놓고 살육을 즐기는 장군의 섬찟한 모습을 통해서도 그러한 사실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플라톤이 두려워 한 것은,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감정 조작적 속성이었다. 음악은 감정을 조절하고 그것을 극대화함으로써, 이성까지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 조작적 속성이 마냥 선전, 선동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음악의 속성은 또한 도전적이고 전복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력 앞에 굴복한 노예들의 마비된 의식 속에 어떤 이성적인 설복으로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불어 넣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쇼 생크 탈출”에 보면 폭력과 명령에 복종하는데 완전히 길들여진 죄수들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유를 순간적이나마 갈망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감옥이라는 제도는 사실상 무너지는 것이다. 또 영화 “라스트 액션 히어로”에는 막강하고 거친 액션 주인공인 쉬왈쩨네거가 피가로의 결혼을 들으면서 부드러운 남자로 변모한다. 이렇게 되면 액션영화의 세계는 전복되고 만다. 혹은 그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서 바빌론으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의 합창은 어떠한가? 이것을 오스트리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열망과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며, 그 오페라를 관람한 거의 모든 이탈리아인들은 특별한 해설없이 이를 직관했다. 완고한 노예제 옹호자였던 플라톤이 실제로 두려워 한 것은 바로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감쪽같이 이를 폴리스 전체의 이해관계로 포장한 것이다.

어쨌건 우리는 플라톤이 두려워했던 것을 통하여 음악의 중요한 속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현인이란 반드시 옳기 때문에 현인이 아니다. 그는 틀리기도 하고, 교활하게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그가 그릇된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 혹은 왜곡에 동원한 수법이 또한 가르침이 되기 때문에 현인인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현인임에 분명하다. 그가 두려워한 나머지 히스테리에 가까울 정도로 왜곡한 사실 속에서 음악의 중요한 속성을 유추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두려워한 바 음악의 속성, 그것은 모든 기성의 굳어진 사고를 집어던지고(현상학자들 말대로라면 판단중지), 그것을 음악에 맡겨버리는 열광을 통한 해방감과 그 감정의 집단 전이였던 것이다. 음악의 이러한 속성을 반드시 정확한 의미는 아니지만 흔히 쓰이는 용례대로 “디오니소스적 열광”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제 기왕 플라톤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그리스 노인분을 한 사람 더 초대하기로 하자. 플라톤을 전후하여 음악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사람을 열심히 뒤지다가 보면 수학 선생님들 한테는 좀 황당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단연 피타고라스의 이름 앞에 눈이 가서 멈추게 된다. 더욱이 흥미로운 사실은 피타고라스는 플라톤과 정 반대의 관점에서 음악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음악이라면 진저리를 쳤던 플라톤과 달리 피타고라스에게 음악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최고로 조화로운 세계의 표식이었다. 그는 음악이 조화의 세계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음계와 음정 등을 수학적으로 풀이해 내었다. 즉, 시인들이 정신 나가서 마구 내지르는 그 소리가 가만히 뜯어보니, 어떤 수학자의 공식보다도 정확한 조화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래서 피타고라스는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수학공식으로 환원시키는 일을 거의 필생의 작업으로 삼다시피 했다.

그런데 실제로 음악에는 그런 수학적인 신비함이 있다. 예컨대 ‘도’ 소리를 내는 현의 길이를 절반으로 줄이면 한 옥타브 위의 도가 된다. 그러니까 현의 길이를 계속 1/2, 1/4, 1/8로 줄이면 여전히 높이만 다르지 같은 음정이 나오는 것이다. 1/3로 줄이면 레가 되고 1/5로 줄이면 솔이 된다. 이런 방법으로 1/12까지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계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오묘한 조화의 세계인가? 음악은 사실상 수학적으로 짜여진 법칙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피타고라스는 음악이야말로 소우주이며 모든 법칙과 조화의 총아임을 확신했고 결국 “우주는 거대한 교향곡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도를 완전히 완성해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정말로 교향곡을 들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물론 피타고라스한테 물어보면 “네 귀에는 안 들리지만 내 귀에는 들린다”라고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플라톤과 달리 그는 음악을 무질서와 혼돈이 아니라 조화의 극치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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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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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