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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을 말한다(5)-장학사, 연구사, 그 이름 값도 못하는 목적 전치의 자리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교육행정 공무원이라고 한다. 즉, 그들은 교사도 아니며, 교육자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을 일반 행정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 행정직이 교육이라는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수 있기 때문에 교사 출신 공무원을 일부 채용하게 되는데, 그것을 일컬어 교육 전문직 공무원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장학사, 장학관,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별 다른 것 없다. 단지 가르치던 교사가 행정일 하는 공무원으로 전직한 것에 불과하다. 이들을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것도 교사가 전문직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교사였기 때문에 일반행정직과 구별하여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교사가 교육전문직이 되는 것은 승진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강임에 가깝다.

장학사, 연구사가 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사범대학·교육대학졸업자로서 5년이상의 교육 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5년이상의 교육 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2. 9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9년이상의 교육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이 중 2번은  오늘날에는고졸 학력으로 교사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문화된 조항이다. 결국 정상적으로 교사로 임용되어서 5년을 근무하면 장학사의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장학사를 하겠다는 지원자들이 많다보니 자연히 경쟁이 생겨서 시험을 보지만, 절대 이것은 승진시험이 아니며, 국가고시도 아니다. 자격기준을 5년으로 한 것은 공무원임용시험령에 의거한다면 통상 7급으로 간주되는 초임교사가 6급 주사급으로 간주될수 있는 근속연한을 채워야 한다는 뜻이 된다.

다음, 장학관, 교육연구관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사범대학·교육대학졸업자로서 7년이상의 교육 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7년이상의 교육 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2. 2년제교육대학 또는 전문대학졸업자로서 9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9년이상의 교육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3. 행정고등고시 합격자로서 4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교육 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4. 2년이상의 장학사·교육연구사의 경력이 있는 자
5. 11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11년이상의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6. 박사학위를 소지한 자

앞서 장학사의 경우와 같은 이유로 5번은 사문화된 조항이다. 그리고 나머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7년 이상의 교직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교육경력과 무관하게 박사학위가 있다면 누구나 장학관이나 연구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학관, 연구관은 공개적으로 채용되고 있지 않으며, 오직 장학사, 연구사가 승진하는 것만 허용되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단지 경력이 7년 이상인 교사, 혹은 박사학위를 가진 교사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어야 하는 장학관, 연구관이 먼저 장학사, 연구사를 거쳐 힘들게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샌가 장학관, 연구관이 학교로 수평이동하면 교감이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자, 여기서 사단이 났다. 앞에서 보듯이 장학사, 연구사는 2년을 근무하면 장학관, 연구관이 될 수 있다. 즉, 초고속 승진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장학관, 연구관이 되면 교감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견적을 뽑아보자. 26세 교사가 5년이 지나 장학사에 도전한다. 대략 7년만에 장학사가 되었다고 치자. 그리고 다시 이런저런 방법(뇌물이던, 실적이던, 뭐던)을 동원하여 장학사 4년만에 장학관이 되었다고 치자. 그리고 장학관으로 한 4~5년 근무하다 교감이 되는 것이다. 그럼 43세의 교감이 탄생한다. 
교사가 20년 경력평정에 이런저런 가산점 챙겨가며 교감이 되는 지난한 코스에 비하면 이거야 완전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장학사, 장학관으로 근무한 기간은 차후 교장 승진을 위한 경력 평정에서 가 경력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교사출신 교감보다 훨씬 빨리 교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49~50세면 교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교사로서 경력을 계속 쌓은 교감은 빨라야 56~58세나 되어야 교장이 될 수 있다. 지름길도 보통 지름길이 아닌 것이다.

자, 이게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교육경력보다 행정경력이 더 우월하다는 국가적인 선언인 것이다. 그 결과 일찌감치 승진을 생각하는 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장학사나 연구사가 되려고 거의 발악을 한다. 즉, 하루라도 빨리 가르치는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교사가 아니게 되려고 발악을 한다. 하루라도 빨리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각종 서류작업, 행정업무보는 자리로 가야 승진할수 있다. 그렇다 보니 교사로 있을때 부터 이미 가르치는 일 보다 서류작업, 행정업무에 자기 정체성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교장, 교감이 되기 때문에 결국 서류작업, 행정업무 열심히 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인정 받는다. 기실 가르치는 일은 자격을 가진 교사만 해야하는 전문적인 일이고, 각종 행정업무는 아르바이트 생을 써도 조금만 훈련시키면 잘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가치전도다.

이런 가치전도가 해소되지 않는한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이를 해소하려면 먼저 연구사니 장학사니 하는 무리들을 법적으로 규정된 자기 지위로 복귀시키고, 이들이 교사에게 상전행세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장학사보다 상관인 장학관, 연구관을 규정대로 교사와 순환보직해야 하며, 교감으로 전직하는 일도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아무런 이유 없이 장학사, 장학관 경력에 교장 승진에 가 경력을 부여하는 폐단도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교감이나 교장을 승진이 아니라 공모나 선출로 뽑거나, 아니면 완전히 직제 개편하여 단지 행정직으로 바꾸어야 한다.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이 이렇게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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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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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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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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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