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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내 운동권 정파들을 비판함(1)

파들을 비판함이라고 제목은 되어 있으나, 저는 사실 우리나라 운동판에 정파따윈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전교조도 물론입니다. 사실 이 생각은 제가 먼저는 아닙니다. 이미 여러해 전에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심상정 전의원이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동창회였던가?)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예리한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저나 심상정의원은 무슨 근거로 정파가 없다고 말한 것일까요? 정파와 족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연성과 변경가능성입니다. 사실 정파는 언제든지 바뀔수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같이 가는것이고, 생각이 바뀌면 째지는게 정파입니다. 하지만 족보는 절대 불변합니다. 설사 다른 집에 양자를 가더라도 어디에서 양자를 갔다는 원천기록은 남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은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고 하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운동권의 이른바 정파는 대개 처음 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써클의 선배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학 졸업후에도 그 정파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나이가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운동권으로 남아 있는 한 그 정파는 거의 유지됩니다. 심의원 말대로 동창회기 때문입니다.

진보 운동권에서 조직 내 투표를 할라치면 개인적 선택의 표는 찾아보기 어렵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정파표만 난무합니다. 이게 나중에 제도권 정당을 세운 다음에도 계속된 버릇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난게 통진당 사태죠. 진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정파가 이렇게 족보가 되고 말았을까요? 그건 우리나라 양대 정파라는 NL과 PD가 이념적 불임상태에 빠져 사실상 정파로서의 생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끝났으니 젊은이들은 더 이상 없고 나이들어 가며 뭉쳐있는 일종의 친목회, 동문회에 불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들 중년, 노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중년의 위기속에 정체성은 더욱 붙들고 싶어서 수십년 전의 그 이념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이른바 정파의 내부 결속은 더 강해지고, 외부와의 소통은 마비상태에 이릅니다. NL과 PD는 원수가 되고 "NL+PD"와 다른 민중들은 아예 다른 차원 사람이 됩니다. 두 정파의 차이가 샛강이라면 두 정파와 일반민중들과의 차이는 가히 은하계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빨갱이라고 욕먹던 시절이 더 나을 지경입니다. 이제는 아예 관심의 대상도 아닙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자신이 믿는 바를 한번도 의심하지 않는 습관, 자신의 외부의 시선들을 돌아보지 않는 습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80년대에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군바리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온갖 보도통제를 했습니다. (저 역시 보도지침의 잔재에 저항하다 방송사에서 짤린 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용고시를 봤죠).  그 시절 비선을 타고 흐릿해질때까지 복사에 복사를 거듭한 타자글씨의 팜플렛들은(심지어는 필사본) 한가닥 진실의 샘물이었습니다. 그걸 돌려보고, 보자마자 불태우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은 속고 있지만,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우쭐함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그 우쭐함이 실상 운동의 큰 동력이었습니다.  자본론의 번역자가 체포되던 시절, 골방에 모여앉아 거친 제본의 자본론을 강독하고, 때론 단파 라디오로 한민전 소리도 몰래몰래 들으면서 말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TV, 신문만 접하던 민간인(?)들보다 운동권들은 확실히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비선 등을 통해 더 넓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러다가 고약한 버릇이 두 가지 생겼습니다.하나는 시민들의 상식적인 생각을 무시하는 버릇입니다. 저들은 자본에게, 파쇼에게, 미제에게 세뇌되어, 허위의식에 사로잡혔다, 우리만 진실을 알고 있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원에 대해 무비판적이 된 버릇입니다. 이 엄혹한 시절에 목숨걸고 전달되는 이 소중한 정보와 사상을 어떻게 의심한단 말입니까? 그 결과 신문에 나오는 사실은 의심하면서도 문건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100% 수용하고, 의심이 생기면 오히려 의심이 생긴다는 사실, 즉 "자신의 사상적 허약성"을 자아비판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누구나 금단의 정보를 얻을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미제에게 세뇌된 정보만 접해서 그렇다고 합디다. 하지만 저 역시 그분이 말하는 소위 미제에 세뇌되지 않은 그 정보를 충분히 찾아 봅니다. 물론 원한다면 누구나 그 정보를 얻어 볼수 있습니다. 청소년들 조차 손쉽게 그런 정보를 얻어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운동권(?)은 더 이상 특별히 더 많은 정보를 가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정보화에 지체되고, 영어 등 국제감각에서도 지체되었습니다. 80년대 후예들의 영어와 정보화 울렁증은 이들이 접하는 정보의 폭에서 일반인보다도 협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상식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가진 협소한 정보를 "신앙"하는 버릇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한국 진보진영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고", 도리어 "후미에 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시민들을 내리깔며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80년대를 함께 호흡했던 동지 여러분들..(저는 이제 이 동지란 말도 도통 듣기 싫습니다. 어떻게 뜻이 같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일반 시민들에게 전혀 친화력이 있는 말도 아닙니다. 이런 자뻑용 사투리는 쓰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동료 여러분들.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지금의 우리 고립, 우리의 무력, 우리의 자괴감이 과연 신자유주의 때문에, 조중동 때문에, 미제의 압박때문에, 순전히 외부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물론 자신이 믿어왔던 바, 더군다나 수십년 믿어왔던 바를 의심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믿어왔던 바가 "종교"가 아니라 "이념"이고 "운동"라면, 사실 매 순간 남김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상식적 생각이 우리 생각과 다를때 저들이 세뇌된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오만함도 버려야 합니다.

사실 저는 NL과 PD를 다 거쳐온 놈이고, 지금은 NL, PD 양측에게 모두 원수가 될 작정을 하고 있는 놈입니다. 처음 NL이었다가 뛰쳐나온 이유는 도통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식반론, 30년대 항일무투의 일반화, 또한 반민주적인 수령론 등에 대해 질문하자 도리어 질문한다고 집단적으로 화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PD에서 뛰쳐나온 이유는 89년 이후 현실사회주의권의 완전 소멸(몰락도 아니고 소멸입니다.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버렸고, 그걸 되살리자고 생각하는 사람마저 없다는 점에서)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전위당론, 정투/경투, 통전론 등만 되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두진영 모두 공히 소련과 그 언저리는 모조리 망했고, 북한은 분명 우리가 지향할 목표가 아님이 명백해졌는데도, 즉 제시했던 모델이 이미 소멸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 그 경직됨을 우직함과 신념으로 착각하는데 질렸기 때문입니다.

서론은 이 정도 해 두고, 앞으로 NL과 PD의 운동론을 틈날때 마다 낱낱이 비판하려 합니다. 사실상 이미 사회적으로 80년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가망이 거의 없어진 저 이념들을(인정할 건 인정 합시다), 굳이 확인사살하려는 것은 저 유령들이 진보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이미 스스로 무엇을 되게 할 힘은 상실한 저 이념들이, 새로운 무엇이 되는 것은 붙잡고 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운동입니까? 진보를 가로막는 것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 과거 우리의 신념들이라면, 그것들은 무슨 근거로 진보의 거센 물결앞에 소멸되지 않을 특권을 가진단 말입니까?

"너의 당파성,계급성이 의심스럽다"이런 질문이 혹시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답을 말하자면 나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당파성과 계급성이 있을 이유가 뭐람? 이게 제 답입니다. 지금 상태는 진실을 보다 가까이 알기 위해, 데카르트처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의심하는 단계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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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