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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의 최하급 직원은 부장님

이 글은 전교조를 비판하거나 두둔하는 글이 아니다. 그냥 실상을 그대로 건조하게 기록하는 글이다.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전교조 본부나 지부에는 전임자와 상근자라는 두 종류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전임자는 전교조에서 근무하기 위해 학교를 휴직한 교사들이다. 이 휴직은 교원노조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으며, 휴직기간동안 봉급은 전교조에서 휴직당시 호봉에 맞추어 지급한다. 이들은 휴직기간(1~2년)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복직한다. 전임자가 되기 위해 휴직한 기간은 호봉승급기간과 경력에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전임자는 교사가 전교조에 파견근무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상근자는 전교조가 직접 고용한 직원이다. 상근자는 같은 경력의 교사의 95%의 보수를 받도록 전교조 규약에 못박혀 있다. 필경 이는 해직되었다가 복직하지 못한 교사들을 위한 규정이었겠지만, 이제는 그냥 채용직원들로 충원되고 있는 전교조의 실정과 비교하면 상당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 아마도 각종 시민단체, 노동조합 직원들 중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이 전교조 상근직원들일 것이다. 민주노총과 비교하면 거의 두배에 달한다. 게다가 상근직원들은 1년에 연가 15일, 매달 월가, 여름과 겨울에 특별휴가 각 5일씩, 그리고 매년 특정한 달을 지정하여 안식월 휴가 30일 등 근 50일에 달하는 휴가혜택도 가지고 있다. 이 역시 해직교사가 방학이 있는 학교생활과 비슷한 리듬을 유지하라고 배려한 것 같지만, 다른 시민단체, 노동조합과 비교하면 정말 파격적인 대우가 아닐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신이내린 직장을 넘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불리는데, 그 내막은 나중에 다시 말하겠다.

어쨌든 이렇게 전임자와 상근자가 본부에는 합하여 근 50명, 16개 지부에 각 4명 정도씩 근 100명 정도 된다. 게다가 이들 100명은 모두 직책이 화려하다. 전교조는 가히 직책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할만한데, 우선 본부에 위원장, 부위원장 이하 사무처장과 각 실장들이 있다. 각 실장들 휘하에 상근직과 전임자가 서너명씩 배당되는데, 이들의 직책은 모두 국장이다. 따라서 전교조 사무실에서 국장이라고 하면 최 하급 직원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간혹 신규채용 직원이나 비정규직 직원이 채용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들의 직책은 부장이다. 나이 스무살 경리직원이 "부장님"소리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이 아마 전교조 사무실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본부와 지부의 직책이 같다는 것이다. 본부뿐 아니라 각 시도 지부에도 똑같이 사무처장과 각 실장들이 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최하위 직원은 부장이다. 전교조 사무실은 그래서 수많은 국장들과 약간의 부장, 꽤 많은 실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라도 이렇게 불리면 기분 좋을지 모르지만, 이들 수많은 부장, 국장, 실장의 인건비로만 연 40억 가량이 소모되고 있다. 세상에 인건비로 수십억을 쓰는 NGO는 대한민국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인건비를 쓰고, 이렇게 많은 부장님, 국장님들을 모시고 있는 전교조가 교원평가 대안 하나 변변히 내놓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합비 그만내고 싶다는 생각이 욱 하고 치미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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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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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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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