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지도부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걱정과 고생이 많으시죠? 도대체 왜 우리 노고를 몰라주고 공격만 하는지 안타까우시죠? 하지만 드릴 말씀은 드려야겠습니다. 물론 저 역시 전교조 간부인지라 누워서 침뱉기지만, 그래도 침은 입안에 있는 것보다는 얼굴에 묻는 것이 더 낫습니다. 닦을 수 있으니까요.

정부는 합법화 이전에는 전교조의 주장을 그냥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교조의 주장을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비합법 시절에는 지구장(위원장-지부장-지회장-지구장-분회장 순서죠?)조차 유력인사 대접을 받아서 지역 신문에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무시하지 못할 힘이 합법화를 이끌어 낸 동력이었습니다. 그런데 합법화 이후에는 서서히 정부가 전교조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임명장도 받기 전에 교육부 장관을 반대 성명 하나로 교체할 수 있었던 전교조는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지금은 지구장은 커녕 지부장도 그냥저냥한 사람 취급 받습니다. 합법화 이전이나 이후나 이명박 이전에는 정부가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변수는 전교조에 있습니다.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 합법화 이전에 오히려 더 영향력이 있었나?

전교조가 언제 대안을 내지 않았냐 볼멘소리를 합니다. 네, 전교조에서 나온 각종 정책은 총론부터 각론까지 산더미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아무도 그것을 하고있지 않는 걸. 단지 정책안에 불과하지, 정작 교실에서 학교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 승화된 것이 아닌걸.

비합법 시절에는 교사들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먼저 변했습니다. 전교조 본부는(당시는 본조) 제일 나중에 말했습니다. "봐라. 선생님들이 이렇게 하지 않느냐?" 합법화 이후에는 거꾸로 되었습니다. 본부가 먼저 말합니다. 지부가 말합니다. 분회장에게 공문이 날아옵니다. 전교조는 이러자, 저러자고 말하는데, 실제 조합원 교사들이 그걸 바라는 것인지, 그럴 단초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받기 시작합니다. 그 이러자, 저러자도 항상 총체적이었습니다. 국가의 교육 제도 전반을 뒤집어야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걸 "관념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전교조 교사들은 "국가 교육제도가 이런데, 나 하나 뭐 해서 바뀌겠어?"하는 환원론자가 되어갔습니다. 말은 복잡하고 감동적으로 하지만 결론은 항상 "입시교육철폐","교육과정전면개편"이 되었습니다. 그럼 그 동안에 전교조 교사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할것이며,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전교조 교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사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단협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학교의 이런저런 관행에 맞서 싸우기나 했습니다. 그러나 단협으로 이런것도 깨끗하게 해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층부가 해결해주며 조합원은 돈만내는 구조로 바뀌어갔습니다.

비합법시절 전교조의 업적은 주로 필부필녀 조합원 교사들의 세세하고 소박한 실천들의 집대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합법화 이후 전교조의 연구실적은 거의 대부분 상층부 활동가들이 머릿속에서 끄집어 낸 것들입니다. 참교육실천대회에 논문들이 몇트럭분씩 나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은 해가 갈수록 낮아져서, 이제는 거의 유명무실해져서 이 행사를 계속 존치할 이유가 있는가 까지 논의되고 있습니다.

여러 선배님들! 조합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자칫 냉정한 현실을 외면할까 작은 걱정이 됩니다. 지나온 과거는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럽지만, 그건 과거입니다. 과거는 단지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정"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단 부정 해서 그 외부로 눈을 돌린 뒤, 부정했던 그 과거의 유산을 한 계기로 포괄할수 있는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여, 이제부터 제가 여러분들을 부정해 드리려고 합니다. 부디 널리 혜량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학종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학종 다음의 셀프학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