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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하스킬- 평생을 고통속에 산 여신

15세의 하스킬

15세의 하스킬

고통과 싸워 이긴,아니 평생 고통과 함께 살아간 예술가들의 작품은 눈물겹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고통의 소산을 너무 쉽게 받아먹는지도 모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피아니스트로 손꼽히는 클라라 하스킬, 이제 전설, 아니 여신처럼 추앙받고 있는 하스킬도 그렇다. 그녀는 1895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에서 알프레드 코르토에게 배웠으니, 같은 루마니아 출신 천재 디누 리파티의 동문 선배가 된다. 실제로 디누를 무척 아꼈으며, 디누가 백혈병으로 고통받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엄청난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남 걱정할 처지가 못되었으니,

그녀 자신도 "평생토록 병마에 시달렸다.". 한창 젊은 18살, 여자 모차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음악계를 평정할 준비를 하고 있던 하스킬은 세포경화증이란 불치병에 걸린다. 이 병으로 온 몸의 신경이 모두 마비되고 말았는데, 무려 7년 간의 투병생활을 하게 된다. 그럭저럭 활동을 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간신히 일어난 하스킬은 등과 허리가 모두 굽어 꼽추가 되었고 아름다웠던 미모도 모두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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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부모님은 일찍 죽었고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친 세월이 무려 7년이었다. 그 불치병은 치료가 된게 아니라서 평생 그녀의 뼈와 근육을 괴롭혔으며, 그 외에도 온갖 잡병으로 늘 고통을 달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사진에는 웃는 모습이나 밝은 모습이 없다. 그렇게 평생을 고통속에 싸우면서도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동료의 고통을 먼저 애닮아 하며, 항상 수줍고 겸손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부모를 일찍 잃어버리고, 세계대전뒤에는 완전 외톨이가 되었으며(남은 가족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는....),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아끼고 가족처럼 사랑했던 디누 리파티마저 먼저 저세상에 보내야 했던....

젊어서는 천재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정신적 지주이자, 플라토닉 연인이었으며(거의 엄마 같은 존재), 나이 들어서는 역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튀르 그뤼미오의 환상적인 파트너였다. 그렇게 하스킬은 고통속에서 꽃피었기에 더욱 신성한 위대한 연주를 들려주다가 65세에 눈을 감았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65년이나 살았던 것이다. 하스킬에 대한 평가는 이 한마디면 족할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전설이요, 두번다시 태어나지 않을것이라 칭송한 천재 디누 리파티가 말했다. "여러분, 하스킬에 비하면 내 연주는 하찮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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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스킬 사진

안타깝게도 하스킬은 음반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전성기를 거의 다 지난 50대에야 이미 자신을 엄습하고 있던 죽음과 싸우며 녹음을 했다. 그나마도 피아노 독주보다는 총애하던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를 위한 녹음이 많았다.

하지만 몇 안되는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종종 올려보려 한다. 용량이 많지만 무리해서 그녀의 가장 중요한 레파토리였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2,3악장을 올려본다.(아이고, 호스팅 용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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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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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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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