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음악의 발생학(1)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말씀은 그 발생학적 순서상 소리에 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구절은 바뀌어야 한다.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소리와 함께 살았다. 화산이 터지는 소리. 비가 쏟아지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짐승들이 울부짓는 소리. 벼락 치는 소리. 좌우지간 온 갖가지 소리가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기를 통하여 전달되는 온 갖가지 파동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파동들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위험을 예측하거나, 먹을거리(먹거리란 말은 문법적으로 틀립니다. 먹을거리란 말을 씁시다. 바른말 고운말)를 찾거나, 서로 동료들을 알아보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이 파동들이 자신들의 감정에 묘하게 작용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울하게 하는 밝기, 기분 좋게 하는 밝기, 경쾌하게 느끼는 온도, 짜증나게 만드는 온도가 있듯이, 소리라고 부르는 이 파동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기쁘게도, 슬프게도, 즐겁게도, 고통스럽게도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고 조작하는데 소리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주: 인지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 즉 대뇌 변연계에 활발한 변화를 야기하는 감각은 시각>청각>후각>촉각 순이지만, 사실상 인간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한다. 후각은 금새 마비되어버리기 때문에 너무 지속성이 없고, 촉각은 너무 단순하여 복잡미묘함이 부족하며, 시각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지적이고 구체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있는 청각이야 말로 충분히 복잡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시각과 달리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절묘한 위치에 있는 감각인 것이다. )

그 다음에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불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온도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조명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빛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내었듯이 사람들은 그런 소리들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하였다. 보기에 좋은것, 즐거운 것만 보고 싶다는 욕망이 미술을 만들었듯이 듣기에 좋은 소리, 그리하여 유쾌한 감정만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음악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음악은 이러한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공통감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하였다. 루소가 최초의 언어는 노래였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였으리라. 인간의 언어가 서로간의 공통감을 생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 최초의 형태는 구체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그런 언어가 아니라, 단지 감정적 진폭만을 담고 있는 음악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원시적인 부족일수록 노래와 담화의 구별이 모호하며, 사실상 노래에 가깝다. 이렇게 인간은 소리를 조작함으로써 좋은 감정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이를 타인에게도 전달하여 좋은 공통감, 즉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다. 물론 이 가설은 최초의 언어가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 소통하는 도구였다는 하버마스를 따를 때 가능하다. 최초의 언어가 타인을 조작하고 지배하기 위한 명령어였을 것이라 주장하는 들뢰즈를 따른다면, 음악의 설 자리는 없다.

이것은 사람뿐 아니라 신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성경에는 하느님의 예술적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신은 왜 세상을 만들었을까? 성경에 나오는 답은 이렇다. “ 보시니 좋더라.” 하느님은 세상을 예술작품으로 창조한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기에 좋기 때문에 만든 것이다. 그러니 성경에 따르면 이 세상은 신의 일종의 즉흥연주다. 그래서일까?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노래”로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이렇듯 신이 예술적이니, 즉 유쾌한 감정을 느끼고 유지하고자 하니, 그 신의 영혼의 입김을 부어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필경 사람들은 세상의 여러 소리들을 듣기에 좋은 것과 나쁜 것,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종류에 따라 분류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듣기에 좋은 소리를 내는 여러 경우들을 나름 데이터 베이스화 했을 것이며, 후손에게 전승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그 데이터는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슈퍼 컴퓨터 역할을 대신 하던 노인의 머리 속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테이타 베이스의 출력 도구로서 언제든지 저장된 듣기 좋은 소리를 인위적으로 낼 수 있는 도구, 즉 악기를 만들어서 자연에서 저절로 그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원할 때면 언제든지 그 소리를 만들어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가 유희라고 하는 것을 시작하면서부터 인류는 이 소리의 성질을 유희에 이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유희의 역사는 상상보다 훨씬 길 것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들이 유희의 개념을 알고 있다. 개와 고양이를 보라. 어쨌든 인류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듣기 좋은 소리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모방하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많이 사용된 도구는 자신의 성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차츰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을 이용해 악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음악이라는 것이 기분을 좋게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온갖가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도구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면 어떤 성질의 소리가 나는지 오랜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축적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에게는 듣기에 좋은 소리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혹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할 때 소통적 행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방, 혹은 집단을 대상으로 다양한 감정을 조작할 필요도 생긴다. 즉 전략적 행위가 요구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감정의 조작을 위해 소리가 유용하게 활용 될 수 있음은 이미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면 전투를 하기 전에 사람들의 호승심을 일으키기 위해 타악기를 두드리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걸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것 보다는 타악기의 소리 속에 사람의 심정을 씩씩하고 호전적으로 만드는 성질이 있음을 경험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한결 합리적이다.

물론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만 음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신성함, 숭고함을 통한 집단적 일체감을 일깨우고 이를 통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 할 때도 특별한 종류의 소리는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또 평소에 두렵다고 느꼈던 소리들을 흉내 냄으로써 그 두려움의 대상을 무력화시킬수 있다고 믿는 주술의 도구로도 소리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을 사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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