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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테초에 소리가 있었다(3)


 어찌어찌 하다보니 쉽게 쓰겠다던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훨씬 잘난척한 꼴이 되고 말았는데, 결국 말 하고자 하는 요지는 음악의 역사는 날이 갈수록 폴라톤적인 요소와 피타고라스적인 요소가 화학적으로 분해되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감상자는 플라톤이되고, 제작자는 피타고라스가 되고 만 것이다. 즉 음악듣기를 좋아하는 것과 음악 만들기는 별로 상관이 없는 심지어는 적대적인 관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을 나는 음악의 존재론적인 모순이라고 부른다. 플라톤적인 코레이아, 이른바 넋 나간 열광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인간은 음악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완전한 이성적 존재였다면 유희라는 것이 필요 없었을 테니. 그러나, 음악이 디지털화(수학화)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음악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음악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마침 주변에 즐거운 소리 잘 내는 친구가 있으면 다행이고, 없다면 하는 수 없이 스스로 나무막대기를 두드리던, 활줄을 튕기든 하면서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 마치 우리나라의 다듬이돌 합주처럼.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모순인가? 우리가 음악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모순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사람들이다. (베토벤의 고뇌는 무엇을 말하는가? 열광을 따르자니 수학이 울고 수학을 따르자니 열광이 우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베토벤의 슬픔”이라는 장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애초에 음악적 열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지 뛰어난 수학자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과학적으로 곡을 만드는 법을 착실히 익혀서 그 뛰어난 기술로 곡을 만든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음악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같은 것이다. 실제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만 키보드로 요란하게 두드린 다음 주문한 사람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는 음악가도 있다. 이미 음악도 하나의 사업인 것이다. 흔히 팝음악이나 영화음악을 상상하겠지만, 실제로 이른바 클래식 음악계라는 곳에서도 이런 현상은 심각하다. 작곡과에서는 음악을 만듦에 있어 필요한 감각과 정서를 키우지 않고, 그런 훈련도 하지 않는다. 그저 디지털화된 악보의 수학적 분석만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예술가가 아니라 작곡 엔지니어의 양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음대 작곡과 졸업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일 보다 남의 악보에 분석식 써 놓는 일을 더 좋아한다.

또한 그 분석식을 적음에 있어서도 대체로 대학 작곡과 출신들을 보면 19세기 이전의 작곡가로는 바하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그 이후의 작곡가로는 라벨이나 스트라빈스키, 혹은 안톤 베베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수학적이니까. 일반인이 들을 때는 따분하거나, 혹은 듣기 거북한 소리이지만 자신들이 바라보는 악보에서는 피타고라스가 우주의 심포니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그런 조화로운 세계가 펼쳐지니까. 소리로는? 그것은 알 바 없다. 피타고라스의 법칙이나, 유클리드 기하학을 한창 공부하고 있는 수학도가 직각삼각형 그림을 보면 단지 썰렁한 도형으로만 보이는가? 마찬가지로 온갖 음악의 수학으로 머리를 무장했는데, 아무리 따분하고 전혀 아름답지 않은 소리라 한들 그렇게 들리겠는가?

그런데, 대중들은 전문가를 동경한다. 음악을 감상하는 자들이 음악을 만드는 자들에게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당연히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음악의 원초적 열광은 어디로 갔는가? 클래식 뿐 아니라 록 음악까지 그렇게 들으려고 한다. 영국의 댄스음악인 테크노를 심각한 표정으로 깊이 감상하는 한국대학생은 흔한 풍경이다.

당연히 내겐 이런 현상이 반갑지 않다. 음악이 소리를 주물럭거려서 만든 공산품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 주가 되는 것은 플라톤적인 열광(코레이아)이며, 피타고라스적인 요소는 단지 그것을 용이하게 하고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음악계는 주객이 전도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갑작스럽게 일기 시작한 바하에 대한 외경의 움직임, 그리고, 그 거룩한 아름다움의 표상이었던 모차르트가 1990년대 이른바 모차르트 재조명 작업(그의 서거 200주년을 맞아 이루어진 집중적인 연구)을 통하여 신산(神算)이라 불릴만한 계산의 대가로 그 이미지가 엄청나게 변모되어 가는 과정 등이.

불과 10년 전만 해도 모차르트의 41번 교향곡을 말할 때 “태양과 같은 광채에 휩싸여 있고, 범접하기 힘든 장엄한 위엄에 가득 찬 제왕과 같은 기품....”운운 하는 것이 주조를 이루었었는데, 최근 5년 전 부터는 “모차르트가 아니고서는 누가 감히 무려 6개나되는 모티브를 푸가로 엮을 시도를 하였겠는가? 기껏 1주제, 2주제에 발전부 주제까지 쳐서 2-3개의 주제만을 사용하고도 쓰기 어려운 소나타 형식을 무려 5개나되는 주제를 가지고 엮어내는 절묘한 테크닉...”운운하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음악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긴 하지만, 모차르트의 41번 교향곡을 주제가 5개라서 즐겨듣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곡을 즐겨 듣던 사람들 중에 모티브를 일일이 따져가며 그 수를 세어가며 왼쪽 뇌를 맹렬히 혹사시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딴 얘기는 악보 상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른바 5개나 되는 주제를 사용해서 엮어낸 소리, 그 소리 자체인 것이지, 주제의 개수와 그것을 엮는 테크닉이 아닌 것이다.

베토벤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나타난다. 베토벤 탄생 200주년을 계기로 활발히 이루어진 연구의 결과 “열정의 작곡가”는 “오묘한 기법과 지극히 까다로운 기법의 작곡가”로 변신되었다. 최근 나타나는 베토벤과 관계되는 글은 거의 대부분 아주 단순한 동기를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는 이른바 “아주 평범한 벽돌들을 쌓아서 굉장한 건축물로 만드는” 그의 수학적 능력에 집중되어있다.

아! 이제 음악은 종말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 그 존재론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기껏해야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 아니면, 소수의 지배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암호체계로 변해가고 있다. 음악을 듣는 자는 아직도 플라톤적인 열광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음악을 만드는 자는 더 이상 열광에 의지하지 않는다. 음악은 수학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수학 같은 음악에서 열광을 느낄 수 없다고 불평하는 청중들에게 그것은 너희들의 무식 탓이라고 우긴다. 이제 청중들도 수학을 공부한다. 그럼 작곡가는 더 어려운 수학을 만든다. 그리고 또 청중들을 꾸짖는다. 때로는 청중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펑크록 같은. 그러나, 그 반란은 이내 진압된다. 펑크는 쉬운, 그러나 열광적인 음악의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U2를 통하여 록음악을 더 어렵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결국 무엇이 남을까? 전문가는 곡을 만들겠지만, 듣는 자는 다른 곳에서 열광을 구한다. 음악이 아닌 스타의 표상에서, 아니면 과거의 음악에서. 그렇게 음악은 사라져 간다.

실제로, 오늘날 음악의 영향력은 형편없이 약해져 가고 있다.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진영은 거의 고사상태이다. 오늘날 더 이상 모차르트 같은 인기 클래식 작곡가는 없다. 죽은지 200년이 지난 사람의 음악이 아직도 가장 많은 발매 부수를 자랑한다는, 그래서 오늘날 살아있다면 저작권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그 위대한 생명력을 찬양하기 보다, 그럼 도대체 오늘날 작곡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200년 전의 음악보다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클래식 뿐만이 아니다. 소위 대중음악의 분야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늘날 왕년의 비틀즈나 롤링스톤즈 같은, 아니 하다못해 레드제플린이나 딥퍼플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소위 대중 음악가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대중음악에서도 진지한(!)음악을 한다는 사람들과 풀빵 음악이 분화 되어버렸기 때문이고, 그 진지한(!)그룹은 악기만 전기기타 등등일 뿐이지 알아먹기 힘든 어려운 음악으로 대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는 오늘날 클래식 음악가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평론가가 생기고, 그 평론을 또다시 논쟁거리로 만드는 학자가 생기면서, 이젠 더 이상 록도 왕년에 보여주었던 플라톤적인 열광의 힘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풀빵 음악이 뭐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른바 스타 시스템의 현대판 집단매춘(결국 모든 스타 시스템은 성 상품화다)이나, 영화 사운드트랙의 형태로 기생할 뿐이다. (벌거벗은 모습에 기생하던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는 이제, 그녀의 나이가 들고 성상품화가 힘들어지자 영화에 기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이른바 영계에 대한 남자들의 성욕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풀빵 음악이 만들어진다. 한국의 S.E.S 나 미국의 Jewl이나 마찬가지다. 99년 트렌드의 특징. 미소녀 밴드. 본인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구자가 된 앨라니스 모리셋. 그녀의 성공이 풀빵 장수들에게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주었으니까.)

이건 음악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걸작이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 보다 대중적으로 더 유명하다고는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렘브란트는 몰라도 피카소는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그라피나 만화를 보지만, 그래도 이른바 순수미술의 영향력은 아직은 상당하다. 예술 중 가장 빨리 죽어 가는 음악. 이제 나는 여기에 음악을 위한 묘비명을 새기려고 한다. 내가 사랑했던 음악들에 대한 비망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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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