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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기록 (2) 뒤르껭 ;교육과 사회학;

이 책도 몇 년 전 무산된 교육운동 네트워크의 세미나 흔적입니다.

아주 짧고 간단한 책이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근대 공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전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칸트와 뒤르켐을 통해 근대 교육의 상을 잡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근대교육의 상에 비추어 봄으로써 우리는 탈근대 교육의 나아갈 바를 살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하 발제===


제1편 교육의 본질과 역할

1. 교육의 정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


뒤르켐은 우선 교육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논문을 시작한다.

밀은 교육을 "우리 본성을 완전하게 만들 목적으로 취하는 모든 행동"으로 정의했다. 뒤르켐은 이 정의는 너무 넓고, 심지어 타인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라면 뭐든지 교육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혼란을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칸트는 "각 객인의 목적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개발하는 것, 즉, 인간의 모든 능력을 조화롭게 계발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뒤르켐은 이는 사회분업을 무시한 개인주의적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현대사회는 고도로 분업화되어 있으며, 모든 인간이 모든 능력을 계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분업화된 사회에서는 특정 분야에만 정통해도 되며,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공통적 기반을 상실한다고 볼수 없다.

그 외에 공리주의와 스펜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뒤르켐은 선배들의 공통의 결함이 이상적이고 완전한 교육의 실체를 가정한 데 있다고 결론내린다. 즉 모두에게 타당한 보편적인 교육의 상 같은 것이 있을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훌륭한 교육이 로마시대에는 나라 망칠 교육이며, 반대로 고대의 위대한 교육은 오늘날 전체주의 교육으로 질타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교육은 역사적으로 부단히 변화할수 밖에 없으며, 그 중 하나만 완전하고 나머지는 다 오류라고 볼수 없는 것이다. 교육은 이상이 아니라 제도이며, 따라서 사회구조의 반영이다. 따라서 각 시대마다 그 시대와 사회에 가장 적합한 교육제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논리적으로 구상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앞서와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 정당, 정치기구, 과학의 발달수준, 산업발달수준과 교육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과 분리되면 교육체제는 이해불가능하다. 따라서 교육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이 체제와 제도를 역사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이런 연구 결과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불변하는 몇몇 요소들을 추출할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교육의 예비적 개념을 정립해서 이론적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2. 교육의 정의

역사적 고찰의 결과 뒤르켐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찾는다.
1)교육은 세대간에 이루어진다. 2)교육은 성인이 아동, 청소년 세대에게 영향을 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영향이 어떤 종류이며, 어떤 식으로 주어지는가가 바로 그 사회의 성격과 연결된다.
또한 역사적 경향 속에서 뒤르켐은 교육이 점점 다양화 전문화 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심지어 완전평등사회라도 직업의 분화가 교육의 다양성을 초래한다. 절대적인 동등성, 동등한 교육은 선사시대에나 가능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교육은 각 사회분업에 적합한 영역별 전문교육의 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교육들에도 공통의 기반이 있다. 그것은 계층 직업을 불문하고 가르쳐야할 공통의 사상, 정서, 관습이다. 모든 사회는 그 나름의 이상적인 인간상과 의무를 지덕체 측면에서 설정하기 마련이며, 이것은 특히 종교가 기반을 상실한 근대사회에서는 결정적인 사회통합 기제다.

따라서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교육의 기능은
1) 사회가 구성원에세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신체, 정신적 제 기능의 육성과 계발, 2)특정 사회집단(분업에 의한)에서 공통적인 여러 기능의 계발(전문교육)  이 두가지다.

이 둘은 사회의 역동을 보여주는데, 사회는 어느정도 동질성을 가져야 유지된다. 그러나 다양성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통합과 분업, 이 둘은 모두 중요한 과제며, 이는 교육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한국교육과정의 국민공통과정과 전문심화과정과도 같이.

이리하여 뒤르켐은 교육을 정의하기를 "교육은 아직 사회생활의 준비가 되지 않은 어린 세대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그 목적은 전체 사회로서의 정치사회와 그가 종사해야 할 특수환경 양편에서 요구하는 지덕체 특성의 육성과 계발이다."

3. 정의의 적용: 교육의 사회적 성격

교육은 어린세대 사회화를 위한 여러 방법으로 구성되는데, 바로 이들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형성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사회적 존재는 인간이 타고나는 소질이 아니며, 자연적으로 발달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는 새 세대가 등장할때마다 자신을 새겨넣어야 할 백지에 직면한다. 교육은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과학적, 성찰적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속에서 기능수행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과학 학습이 의무로 요구된다.마찬가지로 문화, 체육 조차도 이런 사회에서의 기능수행을 위해 요구되며, 따라서 교육된다.

그렇다면 개인을 사회라는 폭군의 압제에 적응시키는 것이 교육인가? 아니다. 인간은 사회 안에 살기 때문에 인간이다. 도덕은 개인의 실천이성이 아니라 공동생활에서 연유되는 것이며, 지식 역시 사회적으로 형성된 기본개념, 방법론 등에 의존한다. 만약 사회에서 얻은 것을 제거한다면 인간은 동물이 되고 만들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억압이 아니라 도리어 개체를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참인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4. 교육과 국가의 역할

따라서 교육은 가정의 소관사항이 아니다. 교육은 사적과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교육에서 소극적 행위자일수 없다. 교육의 방향을 지시하는 근거다. 아동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부과될 사고, 정서의 내용을 교사에게 제공, 상기시켜 주는 것은 국가의 임무다. 만약 교육적 영향의 사회적인 방법의 시행을 보증하지 못한다면, 교육은 사적 신념의 시녀가 되고 말며, 이는 교육의 기본목적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국가의 수업독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문의 진보는 개인의 창의가 허용되어야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의 다양성은 보장하데, 그 면허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국가는 까다롭고 신중하게 교육에 관여한다.

따라서 사상, 감정의 공동체를 국가가 억지로 만드는 것은 불가하다. 국가는 다양한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기저에 있는 공통성 즉, 이성의 존중, 과학의 존중, 민주적 도덕의 기초를 이루는 사상과 감정의 존중 등을 바탕으로 교육의 대강을 규정하고, 그것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역할로 삼아야 한다. 국가의 영향력은 덜 공격적이고, 한계내에서 현명하게 행사해야 실질적인 효력을 볼 것이다.

5. 교육력과 교육방법

개인은 어느정도의 기질적 차이는 타고난다. 그러나 그것을 구체적인 결과로 만드는 것은 교육의 영향력이다. 같은 공격적 기질을 타고난 아동도 교육의 결과에 따라 범죄자가 될수도 개혁가가 될수도 있다. 즉 소질과 사회적인 역할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이 거리를 교육이 아동에게 인도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적절한 수단은 교사와 아동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아동은 암시받기 쉬운 자연스러운 수동성의 상태에 있으며, 교사는 우월한 위치에서 아동에게 힘을 미칠수 있다. 교사나 부모의 모든 행위나 사태는 반드시 아동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며, 순간순간의 수많은 무의식적 영향을 남긴다.

따라서 교육은 즉각, 순간적, 분명한 성공을 추구하거나 여기 따라 일희일비하면 안되며, 일관성을 갖고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교사의 권위다. 교사의 권위는 아동의 수용성에 작용하는 우월한 힘(교육력)의 가장 중요한 근원이다. 교사는 아동이 장차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직면할 의지, 의무의 화신이라야 한다. 따라서 교사의 권위는 순전히 도덕적 우월에서 비롯된 것이라야 한다.
이 도덕적 권위는 교사가 의지력을 가지고, 자신의 기능과 직무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을때 비로소 구성된다. 따라서 교사의 권위는 자유와 배타적이지 않다. 교사의 권위는 의무와 이성이 가진 권위의 한 측면이다. 아동은 이런 권위의 우월성에 복종하도록 훈련받아야 하며, 그래야 장차 양심적으로 발견한 권위도 존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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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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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