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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 기록(1);칸트의 교육학 강의

몇해 전에 세미나 정리한 글들도 조금씩 올려보려 합니다.



우리 모임에서 가장 먼저 읽었던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감상을 올려 봅니다. 다른 회원님들도 이 책에 대해 하실 말씀 있으면 글을 올리시던가 트랙백 달아 주세요^^

===이하 논평==

우선 이 책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주지의 사실이지만 근대 교육학의 효시는 코메니우스지만, 그 속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갈등을 간파하고 그 화해를 꾀한 최초의 종합자는 루소다. 루소는 "개인적 자유를 신장하는 교육방법"을 통해 "공동체의 시민을 양성하는" 모순적 목표를 놓고 골몰했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속에 개인적 자유의 교육, 즉 인간으로서 완성되는 교육이 곧 공동체 구성원, 즉 시민으로서 완성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그의 교육은 도리어 잘못된 공동체와 그 문화로부터 아동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를 자연주의 교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루소의 교육방법은 큰 문제에 봉착했는데, 그것은 1:1 교육이며 10여년을 함께 지내는 멘토에 의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이래서는 현실적인 적용이 어렵다. 루소의 영향력을 크게 받은 손꼽히는 두 사람, 루소의 두 제자라고 불리는(실상 루소는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던) 페스탈로치와 칸트는 공히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데, 한 번에 여러명을 모아놓고 하는 공식적인 교육을 통해서도 루소가 꾀했던 인간으로서 완성됨으로써 시민으로서 완성되는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페스탈로치는 이를 실천으로, 그리고 그가 세운 위페르돈 학교로, 또 그의 영향을 받은 데싸우 학교로 보여주었고, 칸트는 이를 이론적으로 정당화 했다(비록 둘은 만난 적 없지만). 바로 이것이 이책을 읽는 이유다. 근대 공교육의 시작점에서 최초로 그 내적 모순과 긴장을 통합하려한 이론적인 시도라는 것이다. (루소의 에밀은 소설 형식이고, 페스탈로치의 저작은 죄다 수기 형식이라....)

그런데 이 책의 특징은 방대한 서론에 있다. 사실상 서론에서 할 말을 다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바쁜 사람은 서론만 제대로 이해해도 충분하다. 본론에 나오는 각종 상세한 각론들은 사실상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낡거나 틀린것이 많다.

칸트는 루소의 두 가지 교육목표에 대한 고민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다른 방식의 교육 및 교육기관을 제시함으로써 넘어서고 있다. 즉, 자연적인 교육/ 실천적인 교육, 사교육/ 공교육이 그것이다. 그런데 칸트는 같은 책에서 교육에 대한 분류를 매우 다양한 차원에서 시도하여 혼동을 일으킨다. 이건 차차 살펴보기로 하자.


서론


서론에서 제일 먼저 분류한 교육은 양육, 훈육, 교수다.

1. 양육은 자신의 능력을 해가되지 않게 쓰도록 보살피는 것으로 유아기때 행해진다.

2. 훈육은 기율과 규율을 익힘으로써 본능을 억제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장차 스스로 이성적 판단에 의해 본능을 조절할 준비를 갖추는 것으로 아동기에 행해진다. 훈육을 받음으로써 인간은 동물적 본성과 충동의 지배 받지 않고 인간성을 지킬수 있다. 그러나 훈육 단계에서 아동은 어떤 행동을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게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를 법칙에 의거해 인식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양육과 훈육은 주로 억제하는 것으로서 소극적 교육이라고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칸트는 양육/교육 의 분류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교육에는 훈육과 교수가 포함된다.

3 교수는 다시 지식교육과 도덕교육으로 나뉜다. 여기에서 칸트는 교육의 목적에 대해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인류의 완전성을 고취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소명에 대한 개념적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지식교육), 선으로 향하고자 하는 성향을 계발해야 한다(도덕교육).

칸트는 교육이란 바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기예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인간의 본성을 충분히 성취시키는 방향으로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는 기예다. 따라서 이는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방식의 모방학습으로는 불가하며 반드시 의도적인 탐구, 연구의 양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은 당장 투입된 예산의 효과에 대한 당장의 결과를 확인하기 곤란한 영역이므로 국가가 직접 관여하거나, 부모에게 마냥 맡길 것이 아니라 의식이 충분히 계몽된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이 실현되고 완성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에서 칸트는 교육의 일반적인 네가지 목표를 상세히 제시힌다.
1) 야만성, 동물성을 버리고 충동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훈육이 담당)
2) 문화화 되어야 한다. 즉 신체와 마음의 능력을 기르고 키워야 한다.
3) 문명화 되어야 한다. 즉, 처세, 사교술, 실용적 분별력, 사회생활 요령등이 있어야 한다.
4) 도덕화되어야 한다. 즉 보편적인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씨를 길러야 한다.

1)의 결과 아동은 한 개인으로 완성되며, 2),3)의 결과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완성되며, 4)의 결과 인류사회의 구성원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각 연령별로 잘 배분되면, 루소가 고민한 한 인간으로서의 완성과 시민으로서의 완성은 동의어가 된다. 그러나 현재 교육은 2),3)에 너무 치중하여 4)가 너무 등한시되고 있다는 탄식도 빼놓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이 네가지중 하나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물론 이는 모든 인간이 보편적인 실천이성, 즉 선험적인 도덕법칙을 가지고 있다는 칸트의 윤리학이 지탱될 때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교육방법의 측면에서 칸트는 이루어지는 장소에 따라 사교육/공교육, 그리고 주로 사용되는 방법에 따라 기계적 규제와 도덕적 규제로 나눈다. 사교육은 우리나라에서 쓰는 의미와 달리 가정교육, 기타 면식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육을 말한다. 공교육은 공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인데, 칸트는 공교육기관인 학교를 지식교수활동과 도덕교육활동의 기관으로 못박고 있다. 즉 훈육의 단계까지 마친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인수받아 시민과 인류로 완성시키는 곳이 학교인 것이다. 이때 칸트는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보편타당성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 우월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 사교육은 한 가정 안에서 발생한 오류와 실수가 계속 세대를 통해 이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적 규제는 아동들이 반복에 의해 습관화되어 따르게 만드는 방식이다. 즉 순종과 복종에 의해 행동한다. 도덕적 교제는 아동들이 일정한 행위법칙에 따라 자유를 향유하는 것이다. 똑 같이 규칙을 따르더라도 전자는 따르도록 지시되어 있으니까 따르며, 후자의 경우는 그것이 타당함을 알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이는 선의지를 결국 실천이성의 명령으로 본 주지적인 칸트의 윤리학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칸트는 자신의 윤리학에서 직면한 딜레마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것은 행위규칙, 행위법칙이 가하는 규제와 구속을 자유의 능력과 어떻게 조화시킬것인가 하는 것이다. 결론은 그의 윤리학과 마찬가지로 규제와 구속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어디까지나 자유의지에 의해 스스로 복종함으로써 받아들여야 한다. 칸트는 이것을 자유와 규율의 합성어인 자율로 부르고 있다. 교육에서 이것은 어떻게 나타날까? 학생들이 규제와 구속에 익숙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 향유할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개판과 기계적 복종 사이에 길이 있는 것이다.

물론 칸트는 이 모순적 목표가 동시에 달성된다고 보지 않았다. 앞에서 보았지만, 가정과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 충분히 훈육된 다음(규제, 구속이 우선), 10세 이후부터 그 규제 구속의 이유를 이성적으로 추론하는 교육이 이루어짐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이를 칸트는 어릴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 반드시 타인의 저항에 부딪침에 익숙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모든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기에 서로 상대의 저항이 될 수 있음을 터득하고, 타인의 목적 성취를 허용할때 자신의 목적도 성취할 수 있음을 터득하도록 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게 될때, 이것이 인격교육이라고 불리게 된다.

그런데, 어릴때 타인의 저항을 경험하지 못한 귀족, 왕족 자제들은 결국 훈육이 제대로 되지 못해 이후 교육도 잘 안되어,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나 마찬가지라고 개탄한다. 바로 이 점에서 칸트는 공교육을 강조한다. 신분귀천 무관하게 보편적인 훈육과 교육을 받아야 이런 폐단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여러 아동들이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저절로 타인의 저항, 제한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자유를 사용하는 법을 익힐수 있으니, 미래 시민을 기르는 가장 모범적인 교육방식이라는 것이다. 이게 뭔소리인가 하겠지만, 당시에는 "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상당히 실험적인 모델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18세기 칸트의 눈에도 한국의 교육은 낙후되고, 목적이 전치된 타락한 모습일테니 참으로 한심한 상황이 아닐수 없다. 칸트가 제시한 목표 네가지중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기계적 방식만 행해지며, 도덕적 규제는 언감생심인 상황.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인류의 구성원은 커녕 한국의 구성원으로도 생각안하는 지독한 이기주의. 즉 칸트의 말을 빌리면 아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이만 먹은 어른들이 다시 자기 아이를 키우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가정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권위가 이양된 공교육을 제안한 것인데, 저 아동같은 학부모가 여전히 입김을 수요자란 이름으로 가하고 있으니, 칸트가 보면 경을 칠 노릇이 아닐까?

본론

이제 본론이다. 그런데 서론에서 이미 개요를 다 이야기 했기 때문에 정작 본론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칸트는 나름 교육의 각 단계, 즉 양육, 훈육, 지식교수, 도덕교육에 해당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좀 시대에 맞지 않고, 때로는 이 책의 품위(?)와도 맞지 않는다. 특히 양육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그러나 그렇게 구체적인 부분들(이를테면 아기에게 무엇을 먹이고, 옷은 어떻게 입히고 등등)까지 세심하게 연구하고, 그 바탕 위에 교육학을 세우려 한 칸트의 자세를 배우자면 배워야 할 것이다.

본론에서 칸트는 교육과 교육이론이 자연적일수도 있고, 실천적일수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자연적인 교육은 인간이 동물과 공유한 것과 관계하고, 실천적인 부분이 바로 인간이 인격적 존재가 될수 있는 교육이다.

칸트는 지난 발제에도 나왔듯이 이 실천적 교육을 다시 세 단계로 나눈다.

1) 문화화 하는 교육(지식교육): 시민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또 여기에 영향력을 끼치고 이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능력을 계발하고, 여기에 숙달, 숙련되게 함. 다소 기계적인 방식으로 수행되며 주요 무대는 학교. 실제 우리나라 학교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교육과정은 아직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2) 문명화 하는 교육(사회교육):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실용적인 능력, 분별력, 예절 등을 익혀서 자신을 공동체에 적응시킬수 있는 능력을 키움. 이것은 일종의 사교와 관련된, 그리고 각종 의례 등과 관련된 교육으로 시민사회가 주된 교육의 장소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종류의 교육은 어디에서도 하고 있지 않다. 칸트는 지식과 도덕의 중간단계로 이 문명화 교육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3)도덕교육: 학생들의 도덕성, 품성과 성격을 함양하여 인류공동체 속에서 제자리를 찾게 하는 교육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유로이 행위하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칸트는 이런 실천적 교육이 어린이의 발달단계에 맞도록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훈육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에 숙련이나 실용적 분별이 먼저 깨친 어린이는 교활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자연적교육으로서 양육과 훈육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데, 이는 건너 뛰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나서 실천적 교육의 구체적인 사례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첫단계가 여러 능력들을 기르고 키우는 교육인데, 그 중에서 특히 마음의 능력들, 정신의 능력들을 키우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어떤 체계적인 학습이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데, 이는 그의 제자인 헤르바르트에 가서야 완성되는 부분이다. 다만 몇 가지 경구적인 충고들은 귀담아 들을만하다.

70절, 인간에게 가장 좋은 휴식은 일을 한 뒤 향유할 수 있는 휴식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일하는 것에 습관적으로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아동교육은 일정한 규제와 강제, 즉 외부로부터의 의무를 함축하고 있는 방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지만, 비열한 노예근성이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

71절, 아동의 마음의 능력은 마음의 높은 능력들을 주로 고려하여 키워야 한다. 즉 기지와 재기는 지성의 능력을 고려하여 길러야 한다. 어떤 한 능력만 따로 길러서는 안되며, 다른 마음 능력들과 관계지워서 키워야 한다.

칸트는 저차 능력으로 기억력, 기지, 재치, 상상력 등을 들고 있으며, 고차능력으로 지성(일반적 원리 인식하는 능력), 판단력(이를 개별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이성(여러 일반적 원리들의 연결을 통찰하는 능력)을 들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기억, 단지 상상은 의미가 없다.

결국 칸트가 제안하는 교수방법은 지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의 능력들이 유기적으로 발휘되는 통합적인 교수다. 물론 이는 기계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학생들이 지성의 규칙을 사용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즉 지성의 규칙은 그 사용과 그 습득이 같은 과정이라야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칸트는 교육의 목적에 대한 체계적 개념화 뿐 아니라(이는 주로 서론에서 완결됨), 그 목적을 성취하는 방법에 대한 체계적 개념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본론이 이것을 다루고는 있으나 미진함).

우선 지식(마음의 능력 기르는 교육)교육에 대한 방법론은 통합교수로 귀결되었고, 칸트는 다음으로 도뎍교육의 방법론으로 이행한다. 여기서 그는 습관이 아니라 자기의 행위규칙에서 말미암아 선핸행위를 수행해야 한다는 그의 대표작인 "윤리형이상학의 정초"의 근본 원리를 재확인한다. 즉, 자기가 해야 할 행위의 정당한 이류를 알고, 이를 도덕적 의무 개념에서 추론, 정당화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과 악의 행위 규칙에 따라 추론하여 행위할수 있을때 훈육과 구별되는 도덕교육이 성립되며, 이는 그의 앞서 도식에 따라 교육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그는 상벌에 의존하는 교육을 도덕교육을 훈육 수준으로 격하시킨다고 보아 거부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어 버릇을 망쳐서도, 혹은 의도적으로 거절하여 노예근성을 배게 해서도 안된다. 그 바탕에서는 항상 일관된 원칙이 있어야 하며, 정당한 행위규칙의 정당성을 아동이 통찰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와 교사가 가장 조심해야 할 원칙이 도출되는데 그것은 바로 보편성이다. 부모와 교사는 자신의 경향성,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보편적 원리 아래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아동들을 대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칸트는 하나의 난제를 남겨 두는데, 이러한 도덕교육이 어릴때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훈육이 완료된 다음에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어릴때도 처벌, 상이 아니라 원리를 깨닫고 받아들이면서 운운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아동의 복종은 청소년의 복종과 다른데, 청소년은 의무에서 비롯된 복종을 한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이는 루소의 잔영으로 보인다. 그래서 훈육기 아동의 처벌을 인위적인 강제, 무력으로 보지는 않는다. 자연적인 결과가 가장 훌륭한 처벌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도덕적인 경멸과 수치감이 발전된 처벌이 되며, 마지막으로 의무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잡다할 정도로 많은 제안들이 있지만, 일일히 고려할만하지는 않다.


포스팅이 도움 되었으면, 지속적인 포스팅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주인장이 쓴 책들도 한 번 읽어보는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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