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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철학자들

 

로버트 하일브로너 저/ 장상환 역

세속의 철학자들

도서출판 이마고

 

 

 

흔히 경제학이라고 하면 마치 물리학처럼 수학적 법칙으로 정리된 그런 학문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경제현상이 정말 물리현상 같다면, 왜 그토록 경제 정책을 세우고 조정하는 것이 어렵고, 경제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인간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법칙에 따라서만 움직이지 않으며, 경제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은 경제 영역에서도 경제법칙 뿐 아니라 여러 사회적, 규범적, 문화적 차원에 따라 행동한다. 따라서 인간의 경제현상은 이런 차원들을 두루 살펴보아야 그려낼 수 있다. 이는 경제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관점들을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일브로너는 고전경제학의 대가이며, 경제학설사의 최고봉에 오른 분이다. 그가 쓴 세속의철학자들은 경제학설사를 고등학생이나 학부 초년생에게 읽히기 위해 쓴 책이다. 이 책은 특정 경제학파에 치우치지 않고 경제현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학설을 그 시대배경과 함께 알기쉽게 서술해 놓았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경제현상을 편협한 관점이나 기계적 관점이 아니라 폭넓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차례

Chapter 1 서론 : 흥미로운 모험과 위험한 탐구의 학문
무질서 속의 질서를 찾아 떠나는 여행

Chapter 2 경제혁명 : 새로운 비전의 탄생
생존문제 해결을 위한 제3의 방법ㅣ부의 추구는 곧 탐욕의 죄ㅣ시장체제 이전의 사회ㅣ
변화와 혁신이 몰고 온 공포ㅣ경제적 인간의 탄생ㅣ경제의 철학적 이해가 요구되는 시대

Chapter 3 애덤 스미스의 놀라운 세계
기이한 성격의 위대한 통찰자ㅣ개인과 시대의 혁명적 산물,<<국부론>>ㅣ우리사회의
'보이지 않는 손'ㅣ사회의 보편적 부를 향하여ㅣ축적의 법칙과 인구의 법칙ㅣ
시장을 그냥 내버려두라ㅣ애덤스미스가 미처 보지 못한 것

Chapter 4 맬서스와 리카도의 우울한 예감
유토피아적 낙관론에 제동을 건 멜서스ㅣ진보의 수혜자는 지주라고 본 리카도ㅣ
찬양받은 증권업자와 지탄받은 목사ㅣ인구 증가율을 둔화시킨 변수들ㅣ리카도와 멜서스의 논쟁ㅣ
스미스의 낙관론에 비관론으로 맞선 두 사람

Chapter 5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꿈
협동조합의 아버지,오언ㅣ산업종교의 창시자,생시몽ㅣ푸리에의 휴양지형 이상 사회ㅣ
밀이 꿈꾼 정의와 자유의 사회

Chapter 6 카를 마르크스의 냉혹한 체계
대조적 성장 배경과 공통의 관심사ㅣ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본 자본주의ㅣ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궁핍의 이중고ㅣ마르크스의 결정적 공헌ㅣ자본주의경제에 관한 상반된 전망

Chapter 7 빅토리아시대와 경제학의 지하세계
경제학의 수학적 원리와 균형ㅣ경제적 궤변을 공격하는 풍자와 조롱ㅣ단일토지중과세로 경제의
근본 치유를ㅣ저축과 제국주의와 전쟁의 상관관계ㅣ빅토리아시대의 대표 주류, 마셜

Chapter 8 베블런의 눈에 비친 야만사회
사회의 본질을 파고든 괴짜 경제학자ㅣ체제 부적응자의 비타협적 세계ㅣ현대사회의 야만성을
성토한 <<유한계급론>>ㅣ기업귀족에 대항하는 기계의 시대ㅣ
시대를 앞서 기술과 과학의 중요성에 주목하다

Chapter 9 케인스의 이단론
다재다능한 엘리트의 순조로운 출발ㅣ돈과 명성을 동시에 거머쥐다ㅣ탁월한
분석,실패한 문제 해결<<화폐론>>ㅣ장기적 경기침체의 진단과 치유책ㅣ경제학자의 이상적 모습에
가장 근접한 사람

Chapter 10 슘페터의 모순
혁신적 기업가가 이윤을 창출한다ㅣ불황의 세 가지 형태와 그 이유ㅣ
마르크스는 명예를,슘페터는 승리를ㅣ비전이 만드는 분석적 차이

Chapter 11 세속철학의 끝?
경제학의 종말ㅣ21세기 경제학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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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