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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그다드카페]

바그다드 카페 Bagdad Cafe!

참 좋은 영화입니다. 예전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문을 적었는데, 오늘 다시 보면서 내용도 좀 다듬고 또 스틸사진도 군데군데 삽입하여 편집해봤습니다.

 

솔직히,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이 아무 생각없이 이 영화를 본다면 지루하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작품성 따위도 대단히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가 훌륭하다는 것은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판단일 것임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내가 이 영화를 좋게 본 것은 낯선 사람들끼리 따뜻한 관계를 조심스레 뜨개질 해가는 과정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교육자로서 나의 화두는 항상 "인간대 인간의 관계, 관계의 교육학"입니다!

 

 영화 시작과 더불어 간간히 비춰주는 커피메이커와 부메랑(주1)... 그리고 맑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하늘... 도로에서 차가 지나가는 따위의 미쟝센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상상을 유발합니다.

등장인물의 배치도 참으로 기발합니다.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주변인이나 아웃사이더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다지 위험스런 인물들로 그리지 않습니다.

놈팽이 같은 놈들과 어울려 다니는 여고생 딸 ; 새파란 나이에 어미 없이 애기를 키우고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 아들 녀석 ; 일 하기 싫어하는 무능한 남편 ; 그리고 모텔방에 세들어 사는 제비같은 늙은 화가와 ... 파리만 날리는 남의 집 점빵 앞마당에 텐트 치고선 부메랑만 날리는 떠돌이 ; 미성년의 딸을 제외한 이 모든 한심이들은 죄다 남성들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영화 속의 '바그다드 카페'는 라스베가스 근교의 어느 도로 상에 위치한 카페로서 주유소와 허름한 숙박시설을 갖춘 휴게소인데 찾는 손님이 거의 없어 가세가 기울대로 기운 낡은 영업점입니다. 장사가 잘 안되는 것은 길목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방금 말했듯이 식솔들이 하나같이 꼴통들이어서 그렇게 된 듯 합니다. 어느 정도로 한심하냐 하면, 명색이 카페라는 곳에 커피메이커가 고장 났는데 아내가 아무리 성화를 부려도 남편이란 양반이 고쳐올 생각조차 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참다가 우리의 주인공 아지매 브렌다가 폭발을 합니다. 남편 보고 "차라리 내 눈 앞에서 사라지라"며 쫓아냅니다.

남자는 그나마 착한 성품의 소유자여서 순순히 낡은 자신의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어 집을 나갑니다. 그 뒤로 남편은 먼 발치에서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중에 모든 일이 잘 풀려 행복한 상황에서 아내와 재회합니다.

 

 아무튼, 시작 부분에서 바그다드 카페의 분위기는 영 엉망입니다. 위 사진은 떠나는 남편을 뒤로 한 채 자신의 한심한 신세에 아내 브렌다가 오열하는 하는 장면입니다. 피부색이 다를 뿐, 우리 어머니의 모습 혹은 우리네 여성들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즉, 여성의 이러한 비극적 모습은 이 영화에 나오는 가정이 특별히 한심해서가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리라 생각됩니다.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흥합니다!

이 한심한 동네에서 사람 노릇하는 인물은 딱 두 사람... 카페의 여주인 브렌다와 조용한 방문객 야스민입니다. 야스민은 독일계 여행자로서 여행 도중에 독재적인 남편의 횡포를 참다못해 차에서 내려 그 육중한 몸으로 사막길을 걸어가 바그다드 카페에 이릅니다. 위의 장면은 브렌다가 오열하는 장면 바로 다음 씬(scene)입니다. 그리고 그때 이 영화 주제곡 [Calling You]가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위의 그림들과 이 노래를 조각맞추기 해보면, 브렌다의 슬픔을 씻어주기 위해 야스민이 운명처럼 나타난 것이 됩니다. 찌든 삶에 지칠대로 지친 브렌다의 부름(calling)에 부응하여 야스민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연약한 여성의 구원자로 나타난 인물은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같은 여성, 그것도 몸짱 얼짱도 아니고 돈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파워풀한 그런 존재가 아닌 아주 평범한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 [콜링 유]의 노랫말은 이 영화의 내용과 그대로 일치합니다. 이 영화를 위해 특별히 만든 곡인 것 같습니다. 이 글 아래에 가사를 덧붙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안목을 가진 브렌다의 눈에 야스민은 그저 수상한 여자로 경계의 대상이지만, 둘의 갈등은 야스민의 소박한 장기인 '매직쇼'로 인해 마술처럼 앙금이 풀립니다.

그간 하루에 트럭 한 두대 밖에 찾지 않던 폐허나 다름없는 바그다드 카페는 야스민의 활약으로 인해 갑자기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그리고 물적 조건이 바뀌니 사람도 바뀝니다. 그같은 상승 분위기에 힘입어 그간 꼴통짓만을 일삼던 이 집안의 사람들도 그때부터 새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이 매일 일은 안 하고 (심지어 어린 제 새끼도 보기 싫어 의자에 묶어 놓고) 피아노만 쳐대던 아들 녀석이 쇼의 분위기를 돋우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랙타임(rag time 주2) 풍의 음악을 신나게 연주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 역할이 제대로 주어지면 인간은 누구나 제 본연의 가치를 발휘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하겠습니다.

 

 바그다드카페에 위기가 찾아 든 것은 비자 만기가 지난 것을 알게 된 보안관의 최후통첩 때문이었습니다. 제도란 것은 항상 선량한 사람의 행복을 앗아가는 괴물인지...

 

하지만, 브렌다와 야스민은 다시 만납니다.

Jevetta Steele의 [Calling You]이 흘러나오고 둘은 롱 테이크의 화폭 위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재회를 합니다. 부메랑처럼!!! 힘차게 포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볍게 절제된 포옹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감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의 젊은 오빠(늙은 제비 화가)가 뚱뚱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중고처녀(?) 야스민에게 말라비틀어진 꽃 한송이 들고 와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A hot dry wind blows... 뜨거운 모래바람이 일면서...) 화가가 야스민의 창을 노크합니다.

- May I Come in? 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As a painter, or a gentleman? 화가로서요? 아님 신사로서요?

- As a man. 남자로서요...

... Will you marry me, Jasmin? 자스민, 나와 결혼해주시겠소?

- (잠시 생각한 다음) I'll talk it over with Brenda. 브렌다와 상의해볼게요.


 그리고선 [Calling You]가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 영화가 대단한 것은 백금녀 뺨치는 풍채를 가진 여성을 주인공으로 배치시킴으로서 '눈요기'거리라곤 1퍼센트도 찾아볼 수 없음에도 - 그래서 헐리우드에선 흥행에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 여성을 매우 아름답게 나타낸 점과... 독재적이거나 무능한 남편과 미련 없이 등 돌린 두 여성이 의기투합해서 생산적인 결실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아마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도 찬사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바그다드'의 감독은 브렌다와 야스민을 리들리 스콧의 [델마와 루이스]처럼 대단한 히로인으로 만들지도 않지만, 영화 특유의 절제의 미학은 그 메시지가 매우 위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그다드 카페]... 웨인 왕의 [스모크]처럼 따끈따끈한 영화입니다. 안 보신 분 꼭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 Calling You >>

 --- Jevetta Steele

A desert road from Vegas to nowhere

Some place better than where you've been

A coffee machine that needs some fixing

In a little cafe just around the bend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라스베가스에서부터 끝 모를 곳으로 이어진 사막 길

당신이 아는 어떠한 장소보다도 더 좋은 곳

고장난 커피메이커가 있는

언덕 너머 자그마한 이 카페에서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내 당신을 부르고 있답니다.


A hot dry wind blows right through me

The baby's crying and I can't sleep

But we both know a change is coming

Coming closer,sweet release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무덥고 메마른 바람이 사납게 몰아쳐와도

애기 울음 소리에 잠 못 이룰지라도

우리 두 사람(야스민과 브렌다겠죠)은 안다네

새로운 삶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내 당신을 부르고 있답니다.


주1)

특정 소품이 영화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비춰질 때, 이것은 반드시 어떤 의미를 상징하는 '신호'로서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고장난 커피메이커'는 남편의 무능과 게으름을 부각시키는 것이며, '부메랑'은 "돌아옴(회귀, 귀환)"을 예고합니다.

'돌아옴'은 주인공 야스민의 귀환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 글 적으면서 상상력을 좀 더 넓혀 볼 때, 야스민과 브렌다가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회복하는... 그런 '큰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주2)

랙타임은 재즈 탄생에 영향을 준 초기 재즈음악의 한 장르입니다. '랙타임'이 뭔지에 대해서는 어떤 '뜻풀이'보다 영화 [스팅]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엔터테이너, the Entertainer]란 곡을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요즘 어린 아이를 키우시는 가정에서는 [패트와 매트]라는 영상물을 누구나 아실텐데, [패트와 매트]의 배경음악이 전부 '랙타임'입니다.

랙타임은 대부분 경쾌한 피아노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영화에서 '랙 타임'은 두 가지의 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1) 바쁜 어머니의 일손을 돕지 않으며 또 울고 있는 자기 애기를 의자에 묶어놓고 무슨 심각한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경쾌한 랙타임을 연주하게 함으로써...... 가정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네요. - 적고 보니 우리집 풍경인 것 같습니다. 아내가 집안일로 바쁘게 움직일 때 나는 싸가지 없이 기타만 쳤는데, 반성해야겠슴다. ㅎㅎ

2) 그 자체가 하나의 배경음악으로서 이야기의 흐름을 너무 심각하고 느슨하지 않게, 즉 하나의 양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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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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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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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