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이 위험한 교장, 교감, 그리고 교사들

이 글도 몇 해 전에 포스팅 한 글입니다. 그때는 이 블로그가 방문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묻혀버렸는데, 조금 손질해서 새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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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의 자녀가 정신병 환자의 손아귀 아래에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고 하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질문이 너무 극단적인가? 그럼 바꿔 물어보자. 당신은 자녀가 영리하고 유능한 정신병자와 둔하고 무능한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중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가? 당신이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답은 학생도, 학부모도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학생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교사의 정신건강에 대해 너무도 무신경한 것이다. 항공기 승무원 5700명에 대해 정신과 상담의가 1명에 불과하다는 걱정은 하면서, 그 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중요한 교사 30만명에 대해 정신과 상담의 0명인 현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설마 교사들의 정신이 문제가 있을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면접 등등에서 그런 사람들은 다 걸러냈다고 믿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건강은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튼튼한 것이 아니다. 정신질환은 감기만큼이나 쉽게 걸릴수 있다. 인간의 정서적 건강이 매우 불안하고 예민한 균형상태에서 유지되고 있음은 이상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 개론 수준의 책만 읽어도 대번에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이다. 특히 자아의 존재론적 안전감은 그것을 지켜주는 든든한 배경이 무너질 경우 정처없이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존재론적 안전감이 위태로워질때 자아는 본능적으로 만사를 자아의 안전을 위해 재배치한다. 즉, 정신적 정당방위를 시도하는데, 신체적 정당방위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정당방위는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우선 자신부터 보전하고자 한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교사는 늘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존재론적 안전감의 배경에는, 공유되는 신념, 반복되어 온 관행, 자연, 전통, 가족과 같이 비교적 영속적인 친밀한 관계 등이 있다. 즉 아무리 풍파가 닥쳐와도 큰 변화 없이 의존할 수 있는 그런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대상들이 있다. 오늘날에는 이런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 요동치는 금융 위기, 일본의 핵발전소 위기 등은 안전하지 않은 현대의 상징이다. 어떤 변화에도  불변이었던 재산의 상징이었던 "금"과 같은 상품은 존재하지 않고,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달러"도 한낱 유동성이 되었다. 그 어느 가치도, 제도도, 관행도, 가족관계도 안전하지 않다.

우리에게 학교는 그 동안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었다. 입시교육이라는, 그리고 관료주의라는, 권위주의라는 불변의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위협받거나 해체되고 있다. 해체되는 관료주의 하에 교사들은 스스로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던 각종 관행들이 무너지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교사들은 권위와 관행이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상황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학생들과의 친밀감도 저절로 생기지 않아, 늘 협상하고 타협하고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아야 한다.

특히 여기에서 몸부림을 치게 되는 존재들은 교감, 교장들이다. 이들은 과거처럼 단지 교장, 교감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놓고 내릴수 있었던 네크로필리아적 명령들이 번번히 반발과 항의에 부딪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결국 이들의 명령 혹은 고집이 관철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사들이 인간적인 감정과 관계가 더 악화되는것이 싫어서 마지못해 하는 것이지, 과거와 같은 내면화된 복종이 아니다. 교장, 교감들 역시 그것을 잘 안다.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예"하는 교사들이 아니라 앙앙불락한 얼굴로 마지못해 하는 교사들과 계속 같은 공간에서 얼굴보며 생활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교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공동체가 되려면 교장, 교감의 권력이 무너져야 한다. 그 권력을 지키려면 자신을 적대시하고 백안시하는 수십명의 교사들 가운데 섬처럼 존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교장, 교감들을 자기도취적 장애 상태로 이끈다. 그리하여 이들은 난초, 바둑 같은 개인적인 취미에 탐닉하거나, 아니면 교사들을 괴롭히는 가학성 변태행위에서 쾌감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더 자신의 아집에 집착한다. 이로써 이들은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고, 정서적으로 망가진다. 이런 정서적 망가짐은 수시로 솟구치는 분노의 형태로 내장되며, 이는 많은 교장, 교감들을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만든다. 문제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교무실이란 시한폭탄들로 득실대는 무시무시한 장소다. 여기서는 멀쩡한 사람도 상처받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것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신뢰하는 이유중 하나인 것 같다. 직접 누가 해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학원 강사들이 학교 교사들보다 정서적으로 더 건강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경력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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