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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교육 4 - 키시야스가 보는 프랑스 교육의 핵심

수요일날 시험인데 난 뭐하고 있는걸까요? 나는 어디? 여기는 누구? 아악 살려줘...
일단 시험은 봤으나..패배...개강은 5일도 안남은 상황이네요...안구에 육즙이...

일단 주제도 떨어져가고 그러니 댓글에 관심있으실 주제를 적어두시면 관련글을 구상해 보도록 하겠으니...여러분 모두의 참여로 만들어가는 블로그를(퍽)....


필 자가 교육에 관한 글을 써 내려가면서 프랑스 교육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배운 점들과 함께 프랑스 교육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자 프랑스 교육이 다른 국가랑 비교해서 전혀 다른 양상을 띌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여 보았다. 그러던중 몇가지 프랑스 교육에 있어서 핵심적이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쉽게 배우기 힘든 점들을 찾게 되었다. 그러한 요소들이야 말로 프랑스의 교육이 현대적 교육이라는 증명이며,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데 핵심적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교육 시스템에 대한 계획 도안
이런거 백날 해봐야 기본 사상이 있어야 뭔가 나오지.

1. 시민들 스스로가 당사자인자 감시자인 교육

프 랑스 교육을 정말 한문장으로 압축하라면 필자는 주저없이 이 부분을 고를정도로 필자는 이 내용을 중요시 한다. 그 어떠한 제도, 시스템이라 할지라도 결국 운영하는 것은 인간이며 편법을 통한 제도의 의도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면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큰 효과를 볼 수 없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 스스로가 교육의 당사자가 됨과 동시에 교육을 감시하고 그에 대한 영향력을 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와 교수들에 대한 임금 인상"을 위한 시민들 혹은 학생들의 시위라던지, 대학 자율화에 대한 반대등은 그러한 모습을 가장 많이 투영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고사 반대 교사 징계 반대 시위
교사들은 학생들이 저곳에 자진해 나올만큼 존경받진 못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특 히 교사와 교수들의 월급 인상을 외치는 학생들의 행진은 매우 재미있다. 그들의 논리를 살펴보면 노동에 비해서 많은 물질적 보상을 받지 못하는 교육직 종사자들이 비 인기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교육직에 매력을 느끼게 하려면 보상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단순히 교육에 대한 관심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직접적 당사자가 되지 않더라도 더 나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투쟁하며, 그 뒤에 남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정말 사회 변혁의 과정을 스스로 실천해 가는 장이 되어가는 것이다.

2.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


물 론 저러한 감시만이 목적이 되면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고 단순한 불평만이 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감시의 방향은 언제나 한가지, 인재를 잘라내기 위한 교육이 아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을 한다. 가장 단적인 예가 바로 평가 제도에 있겠다. 하나는 절대평가이며, 하나는 재시험이다.


슈렉 2 패러디
(클릭하면 커집니다.) 누굴 위한 평가인가?

절 대평가는 한국에서는 매우 불합리한 제도로 알려져 있지만, 예전에 필자가 쓴 교육 글을 읽어보면 상대평가야 말로 매우 비합리적인 교육 제도임을 알 수 있다. 그렇듯 평가 자체가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서가 아닌, 정말 어떠한 분야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그리고 성숙한 민주 시민으로써의 역량을 위해서 교육 시키는 것이다.

한편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 정말 능력이 되었느냐의 평가이기 때문에 실수할 경우를 대비하여서 재시험의 가능성을 줌으로써 특수한 상황에 대한 불이익을 최소화 하고 학생의 능력 그 자체를 평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의미없는 경쟁을 최소화 하며 서로가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관이 왜 필요하며, 국가라는 단체는 왜 필요하다 생각하는가?)

3. 선택의 자유에 대한 넓은 문


마지막으로 프랑스는 선택의 자유가 매우 넓다는 점이다. 이 자유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국의 자유와 프랑스의 자유의 개념은 다르다는 것, 그것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만약 "평일과 휴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마약을 허용합니다."라는 말에 대해서 이것이 자유를 보장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매우 단적인 예이지만 한국과 프랑스의 자유에 대한 인식을 한국식 자유는 저 말이 자유를 허용한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것이 자유를 허용하지 않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서울광장을 둘러싼 버스들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렇듯 실질적 자유를 위해서 프랑스는 거의 무료(년 1만원 수준의 등록금이면 무료라고 해도 무방하다 생각한다.)교육을 실시하며, 공부하는걸 선택하는 학생들에게 주거 보조금, 싼 식비등을 보조해준다. 이렇듯 현실적인 제약을 줄여줌으로 인해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것 이것이 바로 선택의 자유이다.

4. 맺으며

미 국조차도 프랑스의 교육과 정 반대로 경쟁논리에 의해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해외의 인재를 받아들여서 발전을 하고 있지, 정말 좋은 인재를 양성하는데에 있어서는 의구심을 표할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유럽, 그리고 프랑스가 2차대전 이후 훌륭한 인재들이 미국으로 대부분 이주하고 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그 격차를 줄일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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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