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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 인사와 진보교육감에 대한 어느 선생님의 생각

전교조 조합원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의미 있는 글 같아서 널리 윤독합니다. 원래 글쓰신 분은 강서구에서 교사로 근무하시는 황* 선생님입니다.

지금은 무너지는 소리가 크다.

1. 인사문제
① 가장 큰 문제는 초빙교사제이다.
교장의 임용이니 전문직의 임용에는 관심이 없다. 문제는 나의 학교와 내가 가야 할 학교가 없다는 것이다.
그 중, 학교의 모습을 보면, 교장을 중심으로 한 패밀리가 바늘하나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원인은  ‘초빙교사’제에 있다. 정작 학교에서는 말을 못한다. 그 만큼 분위기도 똥 되었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연시 씹는다. 눈빛에서는 분노가 있음을 본다. 전교조에게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 초빙 안에 전교조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 진보를 위한 전교조의 진화인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인정받았단 말인가? 그런가? 학교는 열심히 하면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인가? 학교장이 그 정도의 분별력과 판단력과 선한 품성을 가졌나? 그런 사람 어쩌다 있겠지만 과연 그런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장 선출  보직제를 주장하고 공모제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들은 결코 선 할 수 없고, 바른 교사를 선택 할 수 있는 능력 만져 없다.

그런데 그들에게 선택을 받아 ‘초빙교사’로 남아 다른 교사에게 아픔을 주어야 하는가? 누가 아프다고???? 누가 쪽팔려 그리 말하겠는가? 그래도 4년제 대학 나왔는데?  그 정도의 시선으로 그 정도의 품성으로 학교를 보고 있으니, 가관인 것이다. 우리 조합원, 서열3위 교무부장 많이 있다. 그럼 학교가 좋아졌나? 보기에 행복하던가? 그래,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장학사의 길로 간다. 고개 90도 꺽고 나이 어린 선배 장학사에게 따뜻이 인사하고 그의 삶의 족족을 인정하며 산다. 교감. 되어 있는 이들 어떤가? 뭐 다른 것 있나? 허허...다. 그저 웃길 뿐이다.

하나, 포기 할 수 없는 것은 어제보다 내일이 조금이라도 좋아야 하기에 이 짓하는 것이다.

인사는 교육감의 100% 권한이다.

감언이설로 주변에서 설쳤는지 모른다.
서울의  ‘2011학년도 중등학교 교원 및 교육전문직 인사관리원칙’을 놓고 비난을 하겠다.  교사이동만을 보며 말한다. 또한 2010년 한해 이루어졌던 ‘2010년...인사관리원칙’과 비교해서 말한다. 그것은 구속, 공정택과 MB가 협작하여 전교조와 진보를 극단적으로 죽이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리 똑같이 지침이라 만들 수 있나? 그럼 그 전해인 ‘2009년도... 인사관리원칙’은 어떤가? 그것은 적어도 그런 것은 없다. 한 해 살이 정책이고 그가 구속되고 실재로 7월1일 이전까지 3월부터 그러니까 고작 4개월간 만 살아 있던 시한부‘인사관리원칙’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내년의 인사원칙이 만들었단 말인가? 진보교육감의 시대, 그 체제인데 말이다.

돌아 버릴 일 아닌가?

누군가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관료들은 적어도 행정가로서 ‘대장’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던지 아님, 제대로 된 정보를 교육감에게 알려 주던지 했야한다. 그러나 하지 않았고 노골적으로 능멸하고 있으며 지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걱정반 기대반으로 많은 교사들은 인사를 기다리고 있다. 12월30일에 교감회의를 통해 발표 되면 기대는 전혀 없을 것이다.

이로, 모든 진보교육감에 대한 기대는 무너질 것이다.

정치와 경제적 가치는 ‘기대’에 의해 성공 여부가 판단된다. 걱정이다. 혁신학교에 대해서도 기대도 없다. 그러다보니 원칙에서는 동의 할지 모르지만 하는 짓 마다 반대하고픈 마음이란다. 체벌에 관한 것도 그렇고 이번 21일에 있었던 학력평가를 보지 않고 문화체험활동을 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정확히 말해 이러한 일을 추진한 사람들에게는 징계를 내려야 한다.
체벌금지, 학력평가폐지는 목적도 방향도 맞다. 하나, 행정이 전혀 받침이 되지 못했다. 적어도 준비 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해야 하는 것은 행정가들이 다. 문화체험활동을 공문으로 발생 시켰다면 ‘학력평가’을 보지 않은 이유야 설명 하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그날 어떤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제공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많은 시간을 마치 법률적 하자가 있다는 둥, 하면서 미적거렸을 것이다. 그것은 교육감의 권한으로 한달전부터 거부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전혀 일을 하지 않았다.   모두 교사가 갑자기 떨어진 하루일과를 학교 밖에서 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준비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온통 비난일 것이라 본다. 출구가 없는 짓을 한 것이다.

박물관의 입장료와 어디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교통은 어떻고 미술관은 어떻고 공연은 어떻고 영화는 어떻고 나갈 수 없이 학교에서 할 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고, 무엇 무엇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이 적어도 2-300개는 있어야 700개교가 선택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늦었다.

그러기 때문에 징계를 해야 한다. 그들은 실패를 위해 존재한다.

또한 체벌금지는 어떤가?
대책이 없다고 하니, 성찰교실 보조원인 전문상담원을 222명을 채용한 것이다. 222명이 어찌 적은 숫자인가? 그 많은 교육예산을 정말 땜빵용으로 사용했단 말인가? 비록 1,5개월이라 하지만 지금까지 학교에 있어보았지만 채용했다가 자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말 필요한 것이 성찰교실보조원일까? 그분들의 채용목적은 성찰교실 보조원이기 때문에 교무실 한 구퉁이에서 하루를 보내신다. 이 또한 시급히 검토되어야 하고 이러한 행정을 진행한 놈에게는 징계기 불가피하다.

비용을 계산해 보자 160만원이니 5억 정도를 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 생각한 것으로 1.5개월 후에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원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 이유는 2가지이다. 한가지는 이들이 있으면 교감은 절대 성찰교실의 업무를 하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지금 학교에는 그런 분들이 필요한 것 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숨 쉬고 직접 그들의 마음으로 들어가 사는 ‘복지사’가 필요한 때이다. 그런 이유이다. 이보다 더 시급하고 가치 있는 일은 교무보조 1인을 더 채용해 주어 ‘잡무’를 전부 교감직속으로 이관 시키는 것이다. 이는 교육감의 지시 사항이라면 100% 따른다. 우리보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것이다. 모가지가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봐라!
도대체 진보교육감이 출현하여 했던 일이 무엇인가?
토론의 시간이 길었다.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라면 무엇을 볼 수 있겠는가? 교육이 변했나? 무엇이 전혀 없다. 그럼? 인사가 변했나? 전혀 아니다. 그럼 학교예산의 쓰임이? 교육에 몰빵 할 수 있도록 방침을 만들었나? 그것도 아니다. 불안하다... 없다!!!!
조금 있으면 진보라는 말까지 듣기 싫은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교조 또한 입만 살아 있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교육감의 권한이라면 교사입장으로 노동자입장으로 모든 일을 틀어라!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으로 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 그것을 모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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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