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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4) 박봉의 우상

박봉의 우상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20세기에는 특히 1970~80년대에는 ‘박봉’이라는 말이 많은 교사들의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면벌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꽤 오랜 시간동안 국민들의 동정과 온정적인 대우를 끌어낸 주된 자원이기도 하였습니다. ‘박봉에 시달리는’ 이 한 마디면 웬만한 잘못은 눈감아도 되는게 되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교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1997년까지는 “박봉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아이들을 가르치는....”이라는 담론이 성립 가능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까지도 정말 교사가 박봉이었는지 의심하는 입장입니다만. 하지만 2009년 현재 교사의 보수 수준은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결코 박봉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교사는 지금 보험사에서, 은행에서, 해외여행사에서, 자동차 판매사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잠재고객층입니다. 치과에 가서 진료를 해도 교사라는 것이 밝혀지면 갑자기 아말감 보철은 선택지에서 사라지고 특수 세라믹과 금 중에서 선택하도록 유도됩니다. 시장은 정직하고 냉정합니다. 교사가 정말 박봉이라면 이런 대접을 받지 않겠죠. 하긴 현실적인 요즘 젊은이들은 이미 이 정도는 다 알고 교직을 선택했겠죠.
그럼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볼까요? 1996년 당시 우리나라 1인당 GDP는 약 12,000 달러였습니다. 당시 환율은 1000원 정도 되었으니 1200만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경력 5년차였던 제가 받은 연봉은 1600만원 정도 되었으니 3:4 정도의 비율이 나옵니다. 즉 경력 5년차 교사가 1인당 평균 소득의 1.3배를 벌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10년 뒤인 2006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인당 GDP는 대략 16,000 달러, 환율도 1000원 정도였으니 1600만원이 됩니다. 그리고 당시 경력 5년차 교사의 연봉은 2400만원이 넘었습니다. 따라서 2:3, 즉 평균 소득의 1.5배를 받았습니다. 이건 기준 근속연수인 경력 15년차 교사의 연봉이 아니라 젊은 교사들의 연봉이라는 걸 유념합시다. 경력이 15년이 넘으면 1인당 국민소득의 3배에 육박합니다. 교사들이 이 정도로 고소득을 올리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알아둡시다. 아, 독일이나 핀란드 교사들이 상당히 고소득층에 속하긴 하지만, 그 나라는 교사의 가방끈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길다는 것도 유념해 두고요. 하긴 88만원 세대가 운위되는 2009년인데, 1995년에도 100만원 이상을 20대 초임자가 수령했던 직장을 박봉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스트랄한 이야기긴 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교사가 박봉이라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직도 남아있는 박봉의 논리가 문제입니다. 이는 교사 사회 내부에서 또 외부에서 작동하는 기괴한 메카니즘입니다. 교사들의 내면에는 뿌리 깊은 박봉 심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교사가 되면 가장 놀랄 일 중 하나가 바로 선배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그 기묘한 피해의식, 그리고 끝도 없는 불만일 것입니다. 자신을 선택받고 승리한 5%라고 생각할 젊은 교사들에게는 정말 남사스럽고 혐오스러운 모습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월급날만 되면 사방에서 터지는 월급 타박은 듣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물론 한국인의 3/4이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봉급이 너무 적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지만, 교사들의 월급 불만은 정말 그냥 들어넘기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월급 타박을 많이 하는 교사일수록 정작 다른 직장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주로 고령층 교사들인데 교사가 박봉이던 시절에 교직에 입직해서 “교사=박봉”이라는 인식이 아주 내면화되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자신의 연봉은 항상 실수령액(세금과 연금기여금 공제된 액수)을 기준으로 보고, 다른 직종의 연봉은 세전소득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이거야 그저 나이 먹은 교사들의 잘못 형성된 습관이려니 하면 됩니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박봉의 교사” 우상입니다. 이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동정적 측면으로 박봉에 시달리는 교사들을 가여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단언컨대 여기에 대해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정심이란 그것을 받는 자가 아니라 하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즉, 동정심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정서적 보상을 꾀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크건 작건간에 교사를 존경하고 어려워했던 어린 시절을 공유합니다. 그런데 그 크기만 했던 선생님을 “박봉”이라고 측은하게 여길 수 있을때 비로소 자신의 위치가, 자신의 성공이 실감나는 것이며 살 맛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70, 1980년대 중산층들에게 “박봉의 노동자”, “박봉의 공무원”이라는 담론은 별로 유포되지 않았고, “박봉의 교사”라는 말만 애처로운 어조를 띤채 널리 공유되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아래에 노동자, 공무원이 있는 것과 교사가 있는 것을. 후자가 훨씬 더 어깨가 으쓱거리지 않습니까? 교사는 중산층인가 중하층인가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척도였던 것입니다. 이건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도 교사는 중산층의 여성이 계급을 유지하고, 노동계급의 남성이 장차 계급을 상승 시킬 수 있는 직업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박봉의 교사 우상은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교사들의 피해의식이 결합되어 만든 괴담에 불과합니다.
그러다가 1997년 이후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교사는 더 이상 중산층과 중하층의 기준이 아닙니다. 교사는 이제 중산층과 상류층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이건 우리 나라의 수 많은 “나도야 중산층”들에게 큰 타격이 되었습니다. 이 나도야 중산층들은 아무리 자기들 처지가 딱해도 “그래도 선생들 보다야 났지” 이 마음 하나로 버텨왔습니다. 교사의 박봉은 중산층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마지노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교사는 저 위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사를 “중하층”으로 간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어제의 중산층들에게 이렇게 교사의 위치가 올라가 버린 상황은 자신들의 몰락에 대한 확인 사살과도 같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교사에 대한 질투와 증오심이 빠르게 쌓여갑니다. 이때부터 박봉의 교사 우상은 동정이 아니라 하나의 규범적 성격을 띠게 됩니다. 즉, 교사는 마땅히 박봉이라야 하며, 박봉이 아니라면 훨씬 더 유능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교사에게 박봉이 되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우니, 교사가 보수에 비해 너무 무능하고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퍼부어대는 것입니다.
물론 교사들이 받는 것에 비해 너무 산출이 초라하다는 지적은 타당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무능하고 부도덕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사실 교사들이 가장 무능하고 부도덕했던 시절은 지금이 아니라 1990년대 이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창 촌지가 극성을 부리는 시절에는 “박봉의 교사”라며 측은히 보다가 상위 5%들의 직장이 된 지금 새삼스레 무능하다, 부도덕하다고 삿대질을 하는 것일까요? 결국 문제는 무능과 부도덕이 아니라 박봉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상당수 교사들까지 동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박봉이라는 이유로 나도 중산층들에게 심리적 우월감을 제공한 대가로 우호적 여론 속에서 마음껏 나태해도 되었던 과거를 그리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봉급이 얼마가 되었든 간에 무조건 박봉이라고 우기며, 또 박봉이라고 믿고싶어합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교육운동을 한다는 많은 전교조 교사들도 이 박봉의 우상에 관한한 낡은 교사들과 한편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많은 어제의 중산층들은 교사가 박봉이 되기를, 그게 안된다면 고용조건, 근로조건이라도 나빠져서 그들과 비슷하거나 더 열악해지기를, 그럼으로써 자신을 드높이고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봅시다. 의사, 회계사, 변호사, 또 교사의 유사업종인 교수들의 봉급이나 대우에 대해 중산층들이 저런 격렬한 반응과 적대감을 보인 적 있나요? 왜 여타 전문직들에 비하면 사실은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교사들에게만 유독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요? 그것은 불행히도 그들이 의사, 변호사의 일과 달리 교사의 일은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즉 기회만 준다면 자신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치과의사를 들어봅시다. 우리 동네에 아주 번창하는 치과의원이 있습니다. 시쳇말로 송파구 돈을 다 쓸어담는다고 해도 될 정도로 잘 나가는 치과의원입니다. 그 의사는 나이도 30대 후반이지만 아마 엄청난 재산을 모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재산을 부러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네가 저 일 할래?”하고 석션이나 드릴을 건네준다면 모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물러 설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받는다 해도 남의 입 속에 고개를 들이대고서 바늘구멍같은 치근관을 쑤시는 일을 하루 종일 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고, 또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은 교사의 일을 “그까짓 애들 가르치는 일 따위”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사를 시기합니다.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따위를 하면서 왜 그렇게 많은 보상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교사는 통계청 직업 분류에는 전문직으로 되어있지만 사회 통념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사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들 스스로가 기껏 중하위직 공무원이나 사무직 정도로 자신을 여기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교사보다 월급도 더 많이 받고 방학도 더 길며 수업시수는 절반밖에 안되는 교수들이 맞을 매와 욕을 교사가 홀로 맞고 듣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한국 중산층의 허위의식 뿐 아니라 교사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박봉의 박자도 꺼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매우 좋은 대우를 받고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십시오. 그 대신 교사가 그 정도 대우를 받을만하며 사실은 그 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십시오. 그 대신 그 말이 부끄럽지 않도록 전문직다운 모습과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교직단체에서는 그런 전문직다운 모습과 일을 잘 조직하여 사회적으로 퍼뜨리고 기여하면 됩니다. 만약 교사가 보육자에다가 잔소리꾼, 그리고 교과서 앵무새로 머무른다면 당연히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인 보호자, 창의적이면서 성실한 연구자, 그리고 존경받고 사랑받는 교육자가 된다면 이 정도는 대우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런 교사가 되고, 또 다른 교사들이 그런 여러분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껴(아직 이들에게 그런 염치가 남아있을지는 회의적이지만) 이렇게 되려고 노력한다면 저 지긋지긋한 박봉의 우상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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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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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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