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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5) 째째함의 우상

쫀쫀함, 째째함의 우상

불과 10년전만 해도 교사가 되겠다고 희망하는 남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시절의 공기를 여전히 마시고 있는 부모들은 딸에게는 교사가 되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면서 아들이 교사가 되겠다고 하면 손사래를 칩니다. 심지어 자기 딸이 교육대학에 다닌다고 자랑하는 어느 어머니는 그런 한편 혹시 딸이 남교사와 결혼하게 될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라고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합니다. 소위 “남자가 째째하게 선생이나 한다.”라는 통념 때문입니다.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또 영남권보다 호남권에서 이런 통념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럼 도대체 이런 해괴한 이데올로기는 어디서 왜 생긴 것일까요?
사실 교사가 큰 뜻을 품고 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교사는 뭔가 확인 가능한 큰 실적을 올리고, 경우에 따라 짜릿한 모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그런 직업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게 좋은 사람은 문자 그대로 ‘벤처’기업을 창업하거나 종소기업의 기획팀 등에서 일하면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교사는 흔히 야망과는 거리가 멀고, 안정되긴 하지만 지루하고 활동의 폭도 집-학교로 한정되고, 만나는 사람도 교사나 학생들로 제한되어 세상물정에 어둡게되는 그런 직업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이런 통념은 부분적으로 사실인 면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통념이 유포된데는 사회적 편견 뿐 아니라 교사들 자신의 책임도 상당히 있습니다. 즉, 교사의 일 자체가 째째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교사들이 째째하게 일해왔기 때문에 이런 통념이 유포된 것입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미국의 극동담당자는 “한국인들은 쥐와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한국인에 대한 세계의 통념이었습니다. 한국인은 지도자를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쥐떼같은 겁장이들로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어떤 미국인도 한국인을 이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건 이후 518과 610을 통해 한국인의 역동성과 용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통념은 행동을 통해 뜯어고칠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교사는 째째하다 따위의 생각을 버리십시오. 교사는 학교-집을 오가면서 아이들이나 상대하는 작은 세계에서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면서 쪼잔한 일이나 한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수 교사들이 여전히 째째하게 산다면 교사에게 주어지는 교사의 높은 대우는 곧 삭감되어 ‘째째한 수준’이 되고 말것입니다.
교육사를 한번만 훑어 보아도 교사는 표면적으로는 째째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웅혼한 일을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잇습니다. 이런 점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동안 역사를 보는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역사는 항상 정치와 전쟁을 중심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정복자를 웅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은 웅혼해 보이지만 실제 그가 한 일은 창조가 아닙니다. 오히려 파괴에 가깝습니다. 실제 역사를 이끈 사람들은 이런 파괴자가 아니라 그들이 이런 정복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창조자들이지만 이들은 역사의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창조자들의 관념이 널리 보급되고 대를 이어 전달되어 보편화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빠르게 진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생물학적 진화에만 의존하는 동물이 수십세대에 걸쳐야 하는 적응과정을 인간은 문화를 통해 단 한두세대만에 해치울수 있습니다. 집단 중 한 두사람의 창조적 존재가 있어도 이들의 업적은 문화로 보편화되고 세대를 거쳐 전수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이 “교육”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일 뿐 아니라 교육하는 동물인 것입니다. 인류가 이렇게 지구상에서 번성할 수 있는 것은 용기, 힘, 투쟁 따위가 아니라 문화와 교육의 힘인 것입니다.
용맹과 무력만을 숭상하고 문화와 교육을 등한시한 민족이 얼마나 허무하게 스러져 갔는지 우리는 힉소스, 히타이트, 아시리아, 흉노, 몽골의 성쇠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무력에 의해서는 정복당했지만 사실상 정복자를 정복한 그리스와 중국을 통해서도 문화와 교육의 위대함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교육은 위대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교육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위대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 즉 교육자, 교사들이야 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 역사의 중추를 담당하는 웅혼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 많은 교사들은 째째하거나 쪼잔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이는 그만큼 교사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섬세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너무도 중요한 인류의 위업이며, 그 영향은 사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가해집니다. 그러니 교육은 함부로 자신의 용기를 뽐내고 통큼을 자랑하며 객기를 부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교육은 오히려 항상 신중한 판단과 정교한 선택에 직면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저는 우리 나라 교사들이 지나치게 째째하다는 점에서는 동의 합니다. 그들에게 용기, 대담성, 창의성이 지나치게 부족함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을 다 갖추기가 어렵다면 째째할지언정 신중하고 사려깊은 교사가 무모하고 대담하지만 째째하지는 않은 교사보다는 더 바람직한 교사가 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교육자 뿐 아니라 심지어 장군들에게까지 적용됩니다. 용맹함과 신중함을 겸비하기가 어렵다면 그 중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용맹한 장수 보다는 신중한 장수가 군대를 지휘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예를 보십시오. 그 분은 결코 용맹한 장수가 아니었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기 전에는 출격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소위 “째째”해 보이기도 합니다. 조선의 조정은 수군이 궤멸된 다음에야 그의 째째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째째함을, 신중하고 사려깊음, 그리고 섬세하고 꼼꼼함으로 받아들여야지 결코 비겁하고 우유부단함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과 위험을 우려하여 째째해 보일정도로 조심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이지, 다른 이유 -동료들의 비난, 행정적인 규제, 교장의 압력, 관행이나 관례-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교육적 결과라는 잣대에 의거해서 째째하게 좌고우면해야 하며, 또 이 잣대에 의거해서 때로는 용감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젊은 여러분에게는 유감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대개는 대담한 선택보다는 째째한 선택이 올바른 경우가 많습니다. 남이 뭐라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교사는 결코 객기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교직생활의 대부분은 이 째째한 선택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확신이 섰다면, 그리고 그것이 교육적으로 마땅한 것이라고 결정되었다면 여러분은 대담해 지는데 조금의 두려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규범은 오직 하나 교육입니다. 교육이 여러분을 주저하게 만들고, 교육이 여러분을 대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교육에 대해서는 상충하는 여러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옳기도 하고 모두 그르기도 합니다. 이 중 한 관점에 입각해서 대담하게 행동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다른 관점에 의해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 주장도 가능한 것이 교육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용감해지기 전에 먼저 째째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현 상태가 어떤지 째째하게 살펴보아야 하며, 여러분이 처한 교육적 환경, 여러분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 또 다른 대안의 가능성도 째째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입장을 가진 교사들과도 째째하게 토의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여러분의 입장이 처음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도출된 최종 입장이 있다면, 이 때가 여러분이 째째함을 그만두고 용기있게 밀고 나가야 할 순간입니다.

사업가는 과감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이익을 놓칠수 있습니다. 물론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가는 기대되는 이익과 예상되는 리스크를 비교합니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이익 쪽이 크면 용감하게 달려 나갑니다. 하지만 교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익이 손실보다 큰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이익은 크지 않더라도 손실이 없는 쪽이 교사가 선택해야 할 방향입니다. 그래서 교육에는 공리주의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총효용 입장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불리한 학생 입장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업가에게 안 팔리는 상품은 버려야 할 대상이지만, 교사에게 가장 불리한 학생은 오히려 가장 공들여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불리한 학생이 가장 적게 나오는 안이 나올때까지 계획을 수정하고 수정해야 합니다. 이건 사람을, 더군다나 미래를 짊어질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째째합니다. 하지만 그 째째함은 위대하고 영웅적인 째째함이며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째재함입니다. 여러분은 째째해질 수 있는 용기와 그 째째함을 유지할 수 있는 끈기와 절제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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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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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