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6) 고달픔의 우상


고달픔의 우상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그 기원을 상고하기 어려운 속담이 있습니다. 교사의 일이 스트레스 덩어리임을, 그래서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되기 때문에 교사의 똥에는 남아있는 영양가가 하나도 없음을 비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거 정말 무서운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건 매우 잘못된 비유이기도 합니다. 이 비유 속에는 똥에 영양가가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고달프게 일하는 것이 마치 교사의 전형적인 모습인양 몰아 붙이는 은근한 강제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문제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마에는 내천자가 새겨지고 몸은 파김치처럼 늘어진 채 간신히 집에 들어오고, 집에 들어와서도 밀린 숙제 검사하고, 자다가도 말썽부리는 녀석 야단치는 꿈 때문에 벌떡 일어나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야 말로 참교사다라는 해괴한 믿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 우상도 의외로 널리 퍼져 있어서 신규 교사들 중에는 그야말로 아이들 속에 푹 빠져 들어서 휴식도 없이 매진하는 그런 정열을 보여주는 분들이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고달프게 일하는 것이 당연한 교사의 상, 이것은 잘못된 믿음이며 우상입니다. 이 우상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모른척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교사가 인간이라는 사실, 감정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굳이 루돌프 슈타이너 같은 인지학자들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신체, 정신, 그리고 감정이 상호연관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즉 고달픈 교사가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기 어려우며, 냉철한 이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은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해 교육에 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달프다고 느껴질 정도, 이마에 내천자가 새겨질 정도, 그야말로 똥도 메마를 정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흔히 나이 먹고 게을러진 교사들이 젊고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교사들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너도 나이 먹어봐라. 나도 젊었은 적에...”운운하는 말이 있습니다. 게으른 선배교사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들의 말 속에 일련의 진리가 숨어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들도 젊었을 때는 매우 헌신적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쉽게 달아오른 불이 쉽게 꺼지며, 피로를 느끼고 있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재앙이 됩니다.

특히 이 책을 읽고 있는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여성임을 감안한다면 이 충고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왜냐하면 여성들에게는 그 정열을 전가할 우회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아이입니다. 저는 경력 초기에는 학교의 아이들에게 엄청난 정성을 쏟아 붓다가 출산 후에는 그 정성을 모조리 자기 아이에게 퍼부으면서 학교의 아이들에게 소홀해지는 그런 변절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변절이 아닙니다. 그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흔히 직장여성들을 슈퍼우먼이라고들 하지만 세상에 슈퍼우먼은 없습니다. 특히 교육은 한 사람의 일생을 기울여야 하는 막중한 과업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자녀에게 다른 엄마들에 비해 소홀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만약 그것을 거부한다면 학교의 아이들에게 소홀해질 것입니다. 둘 다 지키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심신이 고달파질 것입니다. 그리고 고달픈 교사는 아이들에 어떤 상처를 줄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요? 해답은 남편에게 있습니다. 흔히 남자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면 그가 가정에 조금은 소홀해도 용서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왜 안됩니까? 생각해 봅시다. 어느 기업체에서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대기업 사원인 남편과 국가의 인재를 기르는 교사인 아내, 어느 쪽이 더 가치로운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왜 가치로운 일을 하고 있는 아내가 남편의 한같 사업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다시피 해야 합니까? 여교사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전문성, 곤란성, 공공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남편에게 보다 많은 가사분담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남들 눈에는 고달플 정도의 일이라도 본인에게는 고달프지 않게 일을 바꾸어 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확장 뿐 아니라 일의 효율적인 배분과 조절을 통해 가능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의 목록을 나열해 보고 가치 우선순위에 따라 노력의 투자 정도를 배분합시다. 이때 가정, 육아가 교육보다 상위에 서게 되는 분은 학교를 떠나거나 아이가 상당히 자랄 때 까지 학교를 쉬셔야 할 분입니다.

교사는 부임하고 나서 3~4년의 적응기, 1년 가량의 회의·환멸기, 그리고 5~6년간의 원숙기(시기와 기간은 학설에 따라 다르지만)라는 발달의 단계를 거쳐간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학설들은 한 사람의 교사가 완성되어 최고의 전문성을 발휘하기 까지는 대략 20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실정은 어떻습니까? 4, 5년차때 닥쳐오는 회의·환멸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교직을 떠나거나 자녀양육과 병행할 수 있는 널널한 일자리 정도로 전락시키거나, 아니면 산 송장처럼 되어 시간표나 마지못하게 채우며 시간을 보내거나 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많은 젊은 교사들이 3~4년간 불필요한 과도한 정열을 쏟아붓다가 그만 고달픔의 포로가 되어버리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정열이 과할수록 고달픔도 거치며, 고달픔이 거질수록 정신이 흐려지며, 흐려진 정신은 자칫 교사-학생 관계를 왜곡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는 결국 교육에 대한 심각한 환멸로 나타나 학교를 떠나게 만들거나, 이후 수십년간 월급도둑놈으로 출퇴근이나 반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자. 지금까지 교사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들을 몇가지만 짚어 보았습니다. 물론 교사에 대한 오해는 앞에서 소개한 것들이 다가 아니지만, 나머지 것들은 다른 주제를 다루면서 같이 언급하기로 합시다. 다만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낸것은 여러분의 마음가짐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정도 읽고 나면 여러분은 과연 교사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망설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읽고도 더 읽을 용기가 남아있는 분들은 학교에 오셔야 할 분들입니다. 그 분들만 다음 페이지로 넘겨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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