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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머리말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머리말

그다지 품위 있는 말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표현을 사용하려고 할 때 “시쳇말 한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저의 16년 교사 경험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면 저는 시쳇말로 “맨 땅에 헤딩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는 아마 다들 아실 겁니다. 이 말은 아무런 준비 없이, 그리고 어떤 충고나 지침, 그리고 도움 없이무작정 어떤 과업이나 책무를 감당해야 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아무런 도움과 준비 없이 발령과 동시에 무작정교실에 투입되었고, 어떤 사전 지식도 기술의 전수도 없이 그냥 무작정 학생과 부대끼면서 닥치는 대로 교육이라 불리는 행위를해왔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교육을 했다기 보다는 16년 동안 교실에서 그냥 허우적거렸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연 가르치기나 하긴 했는지 의심스럽고, 또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저를 잘 아는 동료교사들이나 제자들에게 이런 말은 필경 환상을 깨뜨리는 그런 말이 될 겁니다. 민망한 이야기지만 저는 나름 꽤능력있는 교사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가 허우적거리면서 맨땅에 헤딩했다니! 혹은 이 말은 저를 잘 모르는일반인들에게는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가 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명색이 한 해에 수백 명의 청소년들에게 어쩌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영향을 끼치는 교사가 아무런 준비도, 지침도, 조언도 없이 무작정 닥치는 대로 교실에서 허우적거리며 다녔다니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소름끼치는 말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걸 의사에게 적용시켜보면 됩니다. 만약 처음 병원에 부임하는 의사가 아무런 지침도 없이, 선배들의 조언이나 도움도 없이, 바로 단독으로 환자와 대면해서 각종 치료나 심지어는 수술까지 감당해야 한다면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방치했을까요? 아마 당장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떤 의사가 16년 동안 그렇게 의사생활을 해 왔다고 고백한다면? 아마 병원장부터 의대학장, 보건장관까지 이어지는 큰 파문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없다는 것을 알기에, 의사들은 의대 6년으로도 모자라서 다시 5년의 고된 수련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단독으로 환자를상대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의사들에게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 아니라 사물을 다루는 직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방금 자격증을 획득한 신출내기 기사가 대뜸 혼자 달려드는 그런 정비소에 자동차를 맡기지 않습니다. 그 어느 직종에서도 소정의 교육을 마쳤고 약간의 실습과 자격고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불쑥 실무를 맡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또한 실무를 맡은 뒤 그 분야 선배들로부터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선배들과 같은 종류의 업무를 대뜸 들이대는 경우도 없습니다. 어느 직종에서나 신참자는 베테랑의 인도를 받아 업무에 친숙해지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유독 교사는, 그렇게 중요하고 고결한 직업이니 “노동자”를 자처해서도 안 된다는 충고까지 듣는, 사람을 다루는 직업인,소위 백년지 대계를 다룬다는, 그리고 적어도 통계청 직업분류표 상에는 ‘전문직’이라고 명기된 교사는 신규교사가 발령을 받자마자 베테랑 교사와 동등한 책임, 자격, 권한을 가지고 아무런 준비 없이 불쑥 교실에 던져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발령장 들고 학교에 찾아가서 착임계 쓰고, 그날 오후부터 바로 수업에 투입되었습니다. 그 때는 그러려니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병원이나 자동차 정비소에 비유해보니 이건 정말 아찔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물론 그것이 선생님을 워낙 존중하는 유교적 전통의 흔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을 워낙 존중하다보니 일단 선생님의 자격을 얻은이상 혼자서 충분히 교육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바로 교실에 베테랑 등과 동등한 자격으로 투입한다고 좋게 볼 수도있겠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의 교육 정책과 시스템에서 교사에 대한 존중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곳곳에 교사에 대한 멸시와 모욕의 장치가 도사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신규교사를 곧장 투입하는 것도 그러한 멸시와 모욕의장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신규교사를 교실에 곧장 투입한다고 해서 베테랑교사의 혹은 교감, 교장의 조언과 관여가 전혀 없는 것은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만 교실 수업에 대해서만 선배, 교감, 교장의 조언과 관여가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정작 교실에서는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고 내던져 두고는 엉뚱하게 각종 공문서를 작성하고, 각종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그 외 교실 청소, 질서지도,학생 복장 지도 따위에 대해서는 거의 잔소리라고 할 만큼 소위 조언과 관여가 빈번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교실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찌 풀어가야 하며, 예상되는 곤란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도리어 연구수업, 공개수업, 시범수업 등의 행사라도 있으면 젊은 저에게 미루었습니다. 그들의논리는 “대학 졸업한지 얼마 안 되었으니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 아니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나한테는 매우해괴하게 들렸습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대학 때 배운 것에서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은 채 세월이 갈수록 점점 까먹어가는 존재란말입니까? 그런데 처음 교사가 된 1992년에 제 눈에 비친 선배교사들은 실제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하찮은 수업따위’는 대충 진도만 맞추고, 그나마도 해가 갈수록 더욱 무성의하게 그리고 형편없이 하고, 그 대신 공문서 처리, 청소 감독,혹은 자습시간에 조용히 시키기, 운동장 행사 때 줄 잘 세우기 따위의 ‘거룩한 일’에 전념해야 교장, 교감에게 높은 평가를받는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교장은 저의 수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교실 상호작용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설사 관심이 있었다 해도 저를 지원해줄 지적, 정신적 자원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명색이 한국 최고의 교원양성기관 출신이라는 서울사대 출신 교장인데도그랬습니다. 교장의 관심사는 교육청이 기한을 정한 공문서를 제 때 처리하는지, 혹은 전교조라도 가입하지 않았는지(당시에는 전교조에가입하는 것이 불법이던 시절이었습니다.)따위에나 관심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때로 그들이 교실에 관심을 가질 때가 있기도 했는데,유감스럽게도 그들의 교실 수업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 소란/조용 척도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교사란 무엇인지,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없었습니다.

교사에 대한 표면적인 수사와 실상은 너무 달랐습니다. 표면적으로야 백년지 대계를 책임지는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수다스럽게 떠들었지만, 실상은 말단 행정직 노릇과 학생들에 대한 간수 노릇만 잘 하면 되는 그런 자리였던 것입니다. 말로는 입시교육이 아이들을 멍들게 하네 어쩌네 하지만(요즘은 아주 뻔뻔해져서 입시교육을 대 놓고 주장하는 판이니 더 말할 것도없습니다만), 정작 입시교육을 하지 않으면 비난받는 존재가 교사였습니다. 말로는 창의적 지식인, 전문직 어쩌고 했지만 실상은 늘하던 것, 늘 있던 것만 반복 수행해야 인정받는 곳이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나이만 먹고 호방만 올라가면 그게 베테랑교사였고, 행정, 경영 분야의 진짜 전문가가 보면 아마츄어 수준에 불과한 거짓 공문, 거짓 보고서나 잘 작성하면 그게 유능한교사였습니다. 젊은 신임교사가 수업을 더 잘하고 학생들의 호응을 독차지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나도 젊을 때는 그랬다. 너도 나이 들어 봐라.”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소위 선배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들 선배교사들은 도대체교사로서 나이 먹어가는 것, 그렇게 교사로서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의 의미도 가치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나이 들더라도 절대 저런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그리고 나중에 후배 교사들에게 베테랑으로서 많은 지원, 격려, 조언을 주고, 절대 맨땅에 헤딩하지 않게 하겠다고. 




이제 저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어느덧 교사로서 살아온 나날이 살아갈 나날보다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이제 저도 베테랑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적어도 공식적인 타이틀만 놓고 따진다면 제법 화려한 베테랑이 되었습니다. 40대인 저는 20대때의 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며, 지식과 자신감은 몇 갑절이며 열정도 식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호응도 여전해서 20대 젊은 선생님들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진부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입니다. 자화자찬이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고 질책할런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교사로서 일궈낸 저의 삶에 대해 이 보다 더 한 자화자찬을 해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너도 나이 먹어 봐라”하고 말하던 그 때 그 선배교사들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여준 셈입니다. 게다가 지금 내 나이는 그때 그 선배교사들보다도 더 많습니다. 하지만 절대 후배들을 맨땅에 헤딩하지 않게 하겠다던 두번째 결심만큼은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아무래도 새로 부임하는 젊은 교사들이 여교사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 천성적으로 낯을 가리고 수줍음이 많은 제가 그쪽에서 먼저 다가오기 전에 먼저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해야겠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심지어 박사학위를 받아도 공식적인 직함은 신규교사와 동등한 교사인 참으로 재미있는 제도, 엉뚱한 평등 덕분에 제가 나서서 이러쿵 저러쿵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물론 어려움을 호소하고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에게는 아낌없이 도움을 주었습니다만, 그래도 너무 소극적이지 않았느냐 하는 비난을 면키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비난을 좀 모면해 보고자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무래도 책이라는 매체를 거치게 되면 수줍음을 타는 제 성품도 장애가 되지 않아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다 제가 원래 말보다는 글을, 전화보다는 이메일을 선호하고 더 잘한다는 점도 감안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하게 만든 도기는 자신의 교육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들을 책으로 남기는 베테랑 교사가 늘어나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말보다는 글이 보다 체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요. 물론 저는 저의 조언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 그런 종류의 책이 꼭 정답만 수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오는 과오대로, 오류는 오류대로 그대로 드러내면 됩니다. 그래서 비판과 질정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서로의 경험을 교류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의 조언이 아주 허황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 저의 조언은 젊은 교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울러 저 말고도 다른 베테랑 교사들이 이런 종류의 책을 계속 내어 주신다면, 새로 교사가 되려는 혹은 방금 교사가 된 젊은이들이 실로 엄청나게 많은 간접 경험과 조언을 듣고서 현장에 투입되는 그런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는 실습기간이 턱없이 모자란, 그리고 임용고시 준비 때문에 교직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가지기 어려운 우리나라 현실에서 무척 많은 도움이 될 것이며, 적어도 저 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그런 일은 예방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경우는 가르치는 일이 어떤 것이며 어떤 고충에 싸여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교실에 투입되고, 아무런 지원과 조언도 없이 악마구리 같은 아이들에게 사정없이 시달린 끝에 사실상 교직에 넌더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철밥그릇이 아까워서, 또 교사가 되기 위해 들인 공이 아까워서 그야말로 교사로서의 생명을 근근히 연명하는 그런 조로한 젊은 교사들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교직이 지금처럼 최고의 직업으로 각광받지 않았던 90년대 초반에는 이런 안타까움이 덜했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고, 견디기 어려우면 그만둘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러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험담을 총 동원해서 교사란 무슨 일을 하며 또 해야 하는가, 교사는 어떤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떤 곳에서 삶의 가치를 얻어야 하는가를 최대한 드러내 보이려고 했습니다. 즉, 교사로서 살면서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최대한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래서 버리기 아까운 철밥그릇을 받기 전에 미리 생각해 보고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미 밥그릇을 받아버리면 너무 늦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같이 감격하거나, 아니면 비판하고 싶어지는 분, 즉 긍, 부정을 막론하고 반응이 오시는 분은 학교로 오셔야 할 분입니다. 반면 긍, 부정을 막론하고 도통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으시는 분들은 유감스럽지만 학교와는 좀 거리가 있으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아까운 철밥그릇을 받기 전에 미리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것이 본인이나 아이들 모두에게 좋을 것입니다. 모쪼록 이 보잘것 없는 책이 교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교사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참고로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하지만 더 시간 낭비 하시기 전에 이 책을 덮으시기 바랍니다.


1) 이 책은 교원 임용고시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다루지 않습니다. 물론 교육학적 내용을 다루다 보니 우연히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실상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자질은 임용고시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데 필요한 능력, 자질과 무관합니다. 어쩌면 정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모적은 당연히 전자에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2) 이 책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처방을 제시하는 핸드북이 아닙니다. 하임 기너트 같은 분이 이런 핸드북 류의 책을 많이 쓰지만, 사실 우리가 교실에서 마주치게 되는 상황은 너무도 다양하여 이를 모두 예측해서 처방을 제시하는 핸드북을 만들고자 한다면 아마 핸드북이 아니라 백과사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제 경험상 지금껏 어떤 교육관련 핸드북도 구체적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 헤르바르트의 ‘일반교육학’, 화이트헤드의 ‘교육의 목적’같은 교육 전반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도록 하는 책이 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육에 대한 관점이 생기면 거기 따라 구체적은 상황은 스스로 대처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스스로 대처하도록 저를 고무시켰습니다. 이 책 역시 그렇게 여러분을 고무할 목적으로 쓴 것입니다. 이 속에는 저 나름의 교육학이 녹아 있습니다. 다만 저는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교육학은 죽은 지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의 교육학, 즉 교육에 대한 저의 성찰을 그 상황, 맥락과 함께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주제에 대해, 제가 다루는 문제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보시고 여러분 나름의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하십시오. 수업방법, 기법 하나 익히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이 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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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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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