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까기 (1) 김규항 -1

요즘 이명박 정권은 바야흐로 공포물에서 코메디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 덕분에 이 정권에 대한 비판의욕이 그만 사라졌다. 이미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어가고 있는데 거기에 말 보태봐야 예능감 모자라는 내가 할 일은 없으리라.


그런데 요즘 나를 열받게 만드는 집단은 저들이 아니라 소위 진보진영의 지식인(무슨 지식을 갖췄는지는 모르겠지만)들이다. 이명박 정권이 스스로 무너져 내릴때 기회를 잡기는 커녕 스스로의 꼴통성을 폭로하면서 진보진영 전체를 좌꼴로 전락시키는 몇몇 수구 좌파들 말이다. 그래서 이들 몇몇을 골라서 좀 치려고 한다. 그 중 1번 타자는 김규항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아무 감정이 없다. 일면식도 없을 뿐 아니라 이 사람이 쓴 책을 사 본적도 없고, 이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른다. 다만 간혹 여기 저기 굴러다니는 잡문들을 보다가 하도 기가 막혀서 반쯤 읽다가 던져버린 기억 뿐이다. 왜 집어던지냐고? 김규항. 이 사람은 소위 좌파라고 자처하는 집단에서 꼰대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기독교 방송 보면 볼수 있는 목사들 있다. 신도들에게 한바탕 호통을 치면서 "당신들이 주님을 위해 뭘 했소? 주님이 당신들께 너희들은 나를 외면하고 .... " 이렇게 말하는 목사들... 그럼 신자들은 흐느끼며 깊이 반성한다. 그런데 김규항의 화법이 딱 그렇다. 여기서 주님을 빼고 "근본적인 변혁"만 집어넣으면 된다. "너희들은 근본적인 변혁을 주장하지 않았다. 고로 너희들은 좌파 아니거나 기회주의자다." 여기서 다시 깊숙한 한 마디, " 나같이 고결한 사람도 B급 좌파 밖에 안되는데, 너희들이 무슨 좌파며 진보냐? 썩 물렀거라."


이런 식으로 김규항에 의해 진보로부터 축출된 사이비들의 목록은 이렇다.


1) 학문이나 예술의 영역에 정진하는 지식인들
2) 소수자 운동, 여성 운동 등 신사회운동들
3) 환경 생태 운동
4) 진중권 등 개인의 자유를 숭상하는 무리들
5) 조국 등 범민주 연대를 주장하는 세력들


이들의 혐의는 모두 같다. "근본적인 변혁"을 주장하지도 않으면서 감히 "진보"를 사칭해서 우매한 대중들에게 "진보"의 신성함을 오독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이들은 한나라당보다 더 나쁜 놈들이다. 진보편이 아니면서 진보편인척 하는 2중대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 "근본적인 변혁"이라는 말이 참 묘상하다. 왜 이리 베베 꼬고 있나? 차라리 오세철 교수처럼 "사회주의"라고 말하는게 더 진정성있고 솔직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변혁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체의 운동은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이렇게 말하지 않고 묘상하게 진보, 근본적 변혁 따위 말을 사용하니 싸움이 벌어지고 종교재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잡혀갈까봐 겁나서일까? 아니다. 책을 팔고 글을 팔아야 하는데 "사회주의"라고 선명한 용어를 썼다가는 금민 처럼 소수파로 전락할까봐 두려워서다. 즉 상당한 대중들에는 영합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선명성은 보이고 싶고 하니 이 두 마리 새를 다 잡기 위해 저런 애매한 용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것이 진정 좌파를 자처해서는 안될 민족주의 진영에 대해 김규항이 이마를 들이대며 싸우는 꼴은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남한 진보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민족주의가 우파가 아니라 좌파에 가서 붙어있고, 그것도 다수파가 되어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 김규항이가 뭐라고 한바탕 붙는 꼴은 본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당연하다. 어차피 김규항의 책이나 글은 범진보진영 울타리 밖으로는 한 발자욱도 나가지 못하며, 중도파 한 사람도 설득해내지 못한다. 그러니 범진보진영에 만연해 있는 민족주의 정서를 건드릴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등등을 미루어 볼때 김규항은 선명한 사회주의자라기 보다는 교묘한 이념비즈니스맨이자 좌파 기회주의에 더 가깝다. 그런데 그 시장이 점점 조국, 진중권 같은 굵진한 인물들에게 잠식당하니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마치 삼성이 애플까 언플하듯이 말이다.


문득 김규항 본인이 누가 진보인가를 규정한 기준이 생각난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불온함이 중요하다.  그런데 겉보기에 아무리 불온해보여도 지배체제가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한다면 불온함이 아니다. 반대로 그다지 불온해보이지 않지만 지배체제가 더 위협을 느끼고 적대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불온한 것이다. 이건 김규항의 기준이다.


그렇다면 김규항은? 그 강직하고 비타협적인 언설에도 불구하고 지배체제가 김규항에게 위협을 느끼긴 커녕 그 존재나마 인식하고 있을까 싶다. 반면 그가 자유주의자로, 엘리트중간계급으로 몰아세운 진중권과 조국은 어떠한가? 김규항이 평생 구경도 못해봤을 여러가지 교묘한 탄압과 방해공작을 받지 않았던가? 혹은 곽노현이나 김상곤은 또 어떠한가? 이들 역시 지배체제가 김규항의 무시무시한 발언보다 더 위협을 느끼지 않던가?


아, 물론 여기서 지배체제란 현 정권을 말하는게 아니라 자본주의 부르주아 집단을 말하는 것이라고 둘러대면 또 할말이 없다. 자본주의가 입이 있나, 손이 있나? 자본주의가 위협을 느끼는지 아닌지 어찌 확인하겠는가?


그럼 김규항은 이렇게 대답하리라. 신자유주의에 얼마나 맞섰는가가 기준이라고. 그런데 정작 김규항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분석적으로 정리한 글, 혹은 자신의 신자유주의 이해를 밝힌 글을 본 적이 없다. 대체 이 사람은 뭘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걸까? 그런데 그것과 맞서 싸우라고 외치니 대체 상대를 보여주고 대적시켜야 할게 아닌가?


본인이 안 밝히니 내가 밝힐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김규항이 구사하는 몇몇 개념과 용어들을 좀 정리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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