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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교수님에 대한 추억

얼마 전 손봉호 교수님이 한국 개신교회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한국 개신교회는 사상최악으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사실 손봉호 교수(이하 존칭 생략) 나의 은사님이다. 나의 석사 논문 지도교수이셨으며, 박사과정때도 네번의 코스를 빠짐없이 수강했었다.

그 분은 정년퇴임하기 직전까지도 총명함을 잃지 않은 대단한 지성인이셨으며, 그 명망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는 상당히 격의 없이 지내셨다. 나는 아직까지도 교수님 댁 마당에서 "구제역이 유행이라는데 돼지고기나 실컫 구워 먹세" 하신 말씀에 따라 바베큐 파티를 벌였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때 지금 경인교대 교수인 설 아무개 선생은 교수님 마당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서 과일을 따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는 노인은 미덕인 현명함, 무게있고 신중함에 약간의 젊은이 스러운 장난기와 가벼움이 가미되었을때 가장 훌륭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로 진중하고 근엄하시지만 때때로 가벼운 농담과 장난도 즐길줄 아셨던 손봉호 교수는 참으로 훌륭한 노인이며, 이 나라 노인의 귀감이라 할만했다. 이 사회가 그분에게 보냈던 신뢰는 2003년 이른바 네이스 파동때 교육부와 전교조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도 입증되었다. 이 사회에 참으로 원로라 부를만한 몇 안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 분에 대한 내 신뢰는 매우 깊어서 지난 몇년 별안간 뉴라이트의 앞잡이(!)가 되어 나타났을때도 뉴라이트의 내막을 잘 모르고 저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경석이란 인물이 그 분의 눈을 흐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은 뉴라이트 앞잡이 명단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떡하니 나타난 것이 한국 개신교를 맹비난하고, 그걸로 모자라서 한기총 해체운동을 하겠다는 폭탄 선언이었다.

평소에 손교수는 "나는 살아서는 검사의 미움을 받고, 죽어서는 목사의 미움을 받는다."고 했는데, 정말 연세가 아주 지긋해 지시자 하신 말씀을 책임 지려고 나서는게 아닐까 싶다. 목사의 미움은 이제 확실해 졌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시당초 개신교 자체가 그렇게 썩을 수 밖에 없음을 진작 몰랐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때때로 그 명철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라는 신앙이 그 명철함을 가리는 경우를 왕왕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마 한동안 뉴라이트 앞잡이 노릇 하신것도 개신교 신앙에 눈이 가려져서 이용당하는 줄 모르고, 저 개신교 집단이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리라.

이 분의 개신교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했다. 예를 들면 한국은 시민운동이 발달해서 6월 항쟁 등이 가능했지만, 일본은 시민운동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 까닭은 일본에는 기독교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놀라운 주장을 하신다거나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개신교가 시민운동을 담보하는 도덕적 보루이기는 커녕 이 땅에서 가장 썪어빠진 집단이었음이 드러났으니 저리 분노하실만도 하다.

하지만 손봉호 교수의 비판은 한기총에서 멈춰서는 안될것 같다. 진정 양식있고, 양심있는 철학자라면 어쩌면 개신교 자체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의 눈길을 던져야 한다. 한국에서 부패한 사기집단인 개신교가 미국에선 거대한 비즈니스집단 아니면 정치집단화 되고 있는 등  피장파장이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이구동성 "종교 같기 때문"이다. 즉 개신교는 종교가 줄 수 있는 영적인 체험이란 기능 자체를 거의 상실하고 있단 뜻이다. 아니 애시당초 개신교는 그것을 부정하고 합리적인 신앙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개신교 철학자들은 카톨릭을 "비합리적인 미신"이라고 거침없이 비판했던 것이다. 애덤 스미스, 퍼거슨, 버크 같은 사람들... 오직 데이빗 흄만이 개신교 역시 또 다른 미신이라며 그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다.

은사님더러 개종하라거나 신앙을 버리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를 지도할만한 위치에 있는 철학자라면 자기 신앙 때문에 너무도 오랜 시간동안 볼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신앙의 대상에 대해서조차 철저하게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적어도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정년때까지 금전과 명예의 보상을 누렸던 분의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분은 신학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하신 것은 아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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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