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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교사 복직 소식을 들으며 떠오르는 기억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액션을 취했다는 이유로 어이없이 해직되었던 교사들의 복직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이제 교단에 돌아갈 일만 남았겠지. 애초에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그 소회는 다른 분들만큼 크지는 않다. 다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2008년 처음 그 분들이 해직되었을때, 20대 젊은 분들이 계셔서 특히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블로그를 통해 상담, 혹은 조언,  태클? 비슷한 것을 구해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었다.

1) 너무 심려치 마라. 짧으면 2년, 길어도 3년이면 복직 된다. 법리적으로 검토해 봐도 이건 무조건 당신들이 이길 사안이다.

2) 그렇게 되면 그 동안 밀린 임금 왕창 이자까지 받게 될테니 그냥 아주 긴 방학이라고 생각하라. 혹은 교수들에게나 주어진 연구휴식년이라고 생각해라.

3) 그렇다면 문제는 그 2년간의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그 기간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잡아라. 그 동안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괜찮고, 여러 학술단체나 학습모임을 하는 것도 괜찮다. 복직했을때 전문인으로서 훨씬 업그레이드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준비하라.

4) 다만, 해직교사라는 상징성때문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게 될 집회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마라. 아스팔트에 날린 시간은 그야 말로 매몰비용이다.

그랬더니 그 분은  가르치는 방법, 내용 같은 것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위 아스팔트 일, 그러니까 운동권 용어로 실천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중요한 공부가 아니겠는가 하는 답변을 했다. 그리고는 별 교류가 없었다. 그리고 들리는 소식으로는 곳곳에 다니면서 아스팔트의 전사가 되시고, 투쟁의 상징이 되신 것 같다. 그리고 끝나면 어김없는 술자리도.....결국 4)로 일관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그 분들 모두 복직을 하게되었다. 그런데 그 분들 중 어느 분이 트위터로 "2년 8개월의 경력 중 2년 3개월이 해직기간인 선생이 온다니 교장이 바들바들..." 계열의 글을 올리시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상당한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걱정해야 할 사람은 교장이 아니라 복직하실 분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졸업시킨 학생 어머니 중 의사가 있었다. 그 의사는 아들이 초등학교때 담임과 트러블을 일으키자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의사를 잠시 쉬고 아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아들이 위기를 넘겨서 의젓한 중학생이 되자 다시 복귀하려 했으나, 이미 몇년 사이에 의학이 너무 많이 달려나가서 복귀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게 전문직의 세계다. 그래서 의사가 대접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는? 그 뜻이야 아무리 고귀했다 할지라도 2년 이상 현직에서 벗어나 있었던 교사는 복귀에 앞서 상당한 두려움과 걱정을 느껴야 정상이다. 나는 1년간 전교조 부대변인으로 현직에서 벗어나 있었다가 이대로는 내 전문성이 썩어버릴까봐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그 나마 대학교에서 6학점 정도 강의를 했으니 그럭저럭 선생으로서의 능력은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1년간 정말로 소위 활동가로만 있었다면 아마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상당히 고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젊은 해직교사들에게는 학교로 돌아감이 주는 설레임과 또한 현직에서 벗어났었다는 두려움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니다.

물론 나는 그 분들의 운동성과 의기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운동성이 교사의 가치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운동성은 전문성의 한 부분이지 전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문성은 무엇보다도 튼튼한 기본이 있을때 비롯되는 것이다. 부디 저 젊은 해직교사들이 해직기간 2년여 동안 철저하고 피나는 기본지식과 기본기 수련을 놓지 않았기를 기원하고 또 그렇게 빋어 본다.

1995년(96년?) 전교조 해직교사 1500명이 복직했을때 그들이 겪은 가장 큰 고통은 두가지였다. 1) 5년만에 아이들이 엄청 달라져 있어서 적응이 안된다는 것 2)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기술이 더 이상 참신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운동가로서는 몰라도 적어도 교사로서는 매우 평범한 수준 이상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보다 2년 선배 복직 교사가 있었는데, 85학번이셨으니 겨우 1년만에 해직되신 분이었다. 그리고 5년을 해직교사로 보내다가 학교로 돌아오셨는데, 불행히도 그 5년간 교사로서 요구되는 기본지식과 기술을 꾸준히 연마하지는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뜻의 고매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수업에서 학생들의 흥미를 모으지 못해서 고통스러워 하셨고, 거의 부적응 교사같이 힘들어 하셨다.

교사는 앞에 학생이 있으면 가르치고, 없으면 공부하는 사람이다. 이 기본적인 삶을 해직기간동안 깨지 않고 꾸준히 연마했기를, 그리고 앞으로 해직될 교사들도 이 기본을 늘 견지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교조가 해직자들에게 생계비나 대줄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원할 체계를 갖추어 두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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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