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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시험문제입니다.

한 번 풀어 보세요. 중3 사회입니다.
다음은 페리클레스의 연설문 중 일부이다. 당신은 이 글을 이용해서 스파르타인에게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그런데 스파르타인은 말 많은 것을 싫어해서 딱 세 문장으로만 말하라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10점: 한 문장 당 3점. 작성 점수 1점)우리의 정치체제는 권력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민주정치라고 부릅니다. 우리 법은 사적 분쟁을 해결하는 경우, 모든 사람의 평등한 정의를 보장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공직을 부여할 때 출신이 아니라 능력의 탁월함만을 고려합니다. 우리는 모든 성취와 재능을 환영하고 영예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국가에 봉사할 능력만 있다면 가난하다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빛을 보지 못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치 생활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나 일상생활에서도 자유롭고 개방적입니다. 우리는 이웃이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해를 끼치지 않음은 물론이려니와,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불쾌한 표정조차 드러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생활에 대해 자유롭고 관용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적인 문제에서는 법을 준수합니다. 우리는 사적인 일 뿐 아니라 폴리스의 일에도 관심을 가집니다. 자기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정치문제 전반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을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 우리와 아무 관계 없는 살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아테네인들은 민회 안에서 정책을 의결하거나 적절한 토론에 회부합니다.가장 나쁜 것은 적절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기 전에 성급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우리와 또 다른 점입니다. 문장 1:문장 2:문장 3:다음의 소설을 보고 물음에 답하십시오.(10점: 각 3점. 작성점수 1점)아라키스 이야기 아라키스는 사막으로 이루어진 행성이다. 이 행성에는 프레멘이라고 불리는 사나운 종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우주에서 …

이 사람들이 나를 뭘로 보고서?

2008년 참실련이라는 전교조내 다수파를 떠난 뒤, 한 동안 그쪽 동네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걸려오는 전화도 묵살했으며, 때로는 신문이나 잡지에 전교조에 대해 상당히 날선 비판의 글을 싣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 쑥스럽게도 2011년 들어 결국 전교조를 다시 찾게 되었다. 2010년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시원하게 밀어붙여지지 않는 상황, 혼선과 갈지자 행보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 현장에서 진보교육감에 대한 실망감이 높아지는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진보적 교육자들의 유언, 무언의 압력 때문이었다. 그들의 압력을 요약하면 "이 사람아. 자네가 은둔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였다.
사실 나도 진보교육감 주변을 맴도는 전교조 명망가, 진보진영 명망가들의 하이에나 같은 모습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끼곤 했다. 그들의 속셈이 너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주저하게 만든 것은 두가지였다.
1) 자칫 나 역시 저 하이에나의 하나처럼 될 지 모른다는 우려 2) 내가 서울사대 출신이라는 점 3) 더더군다나 주류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도 모두 갖추었다는 점
특히 2)번의 우려가 컸다. 서울대 패권주의의 폐단이 가장 극명한 곳이 교육계이며, 당연히 그 중에서도 서울교육이기 때문이다. 이 패권주의는 어찌나 그 위세가 당당한지 서울대 출신인 공정택 조차 사대가 아니라 상대라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니 중앙대 출신의 유인종 교육감의 어려움이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어려움의 빈틈을 공정택 등 동향라인이 치고 들어갔던 것이다.
어쨌든 교육감은 엄청난 권력이 있는 자리이며, 교육청은 권력의 복마전이다. 거기 발을 잘못 들여 놓으면 헛된 야심과 욕망 때문에 평생 운동가로 쌓아온 부동심도 흔들려서 순식간에 신기루 같은 권력을 쫓는 하이에나로 전락할 수 있다. 더군다나 나는 눈만 살짝 돌리면 바로 주류로 전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른 하이에나의 전향은 그저 손가락질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내가 전향한다면 그건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하…

뭐가 정책 홍보고 이념 선전이라는 것일까?

동아일보 기사 타이틀의 요염함이 이제는 조선일보를 능가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창조성은 조선일보는 물론 H학교의 S교수마저 능가하고 있다. 그 압권을 보여주는 기사가 바로 "이념교육장 된 4. 19 민주 올레" 라는 기사다.
이것도 법적으로는 신문이니 저작권은 존중해 주기 위해 본문은 링크 걸어준다. 하지만 저들 트래픽 늘려줄 필요 없으니 굳이 저 링크로 들어가지는 말고 나의 요점정리를 보기 바란다.
http://news.donga.com/3/all/20110419/36518646/1
이 기사의 요점은 이렇다.
1. ‘4·19 민주올레’가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16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렸다.(이건 단지실 기사)

2.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여러분의 교육감 곽노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 중고교생 900여 명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행사장이 이승만 대통령 하야에 큰 역할을 했던 교수단 시위대의 출발지라며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여기까지도 사실 기사... 그리고 4.19에 대해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내용)

3. “지금 같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대는 목숨을 내던지며 독재에 맞선 4·19혁명 열사들이 만든 것입니다........ 오늘 체험학습으로 서울 곳곳에 있는 4·19혁명의 정신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이걸 보고 이념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하긴 이념교육이긴 하다. 민주주의도 분명 이념이니까. 그렇다면 동아일보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가르치지 말라는 뜻일까? 아니 언제부터 이념=나쁜것 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마 유인촌이 자주 그런 표현을 한 것 같은데, 이념=나쁜것이라는 정치적 신념 역시 이념이다. 그리고 모든 공교육은 이념을 가르친다. 모든 시민, 교사, 학생은 나름의 정치적 이념이 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념 중 민주주의는 가장 보편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이념이다. 설마 이걸 가르치지 말라는 것인가?

4. 이어 곽 교육감은 “민주올레를 만든 분”이라며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소개했다. 이 전 국무총리는 “효자…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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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아이들의 유난한 헤맑음의 원인은 둘인것 같다. 아름다운 학교 풍광 그리고 군것질할 매점이 반경 1킬로내에 없다는것.
복지란 물질을 제공하는게 아니라 삶을 아룸답게 해주는 것임을 다시 느낀다. 송파지역 주민들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들이며, 공원으로 감싸인 우리학교 아이들도 복받았다. 이런게 복인데 왜 학부모는 엉뚱한걸 찾는지 모르겠다.Published with Blogger-droid v1.6.8

교육희망선언

2007년 5월 전교조 전국교사대회때 전교조 위원장(당시 정진화) 이름으로 발표된 선언문입니다. 사실 작성자는 정진화 위원장이 아니라 저입니다. 이제는 꽤 시간이 지났으니 원작자를 공개해도 될듯 합니다. 그 당시 전교조 지도부는 이 글을 낭독은 했으되, 뜻은 새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교육희망 선언교육은 원래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빠질 때마다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 희망을 찾으려 했다. 나폴레옹에게 초토화가 된 독일인들은 군대를 키우는 대신 학교를 세웠고, 일제의침략을 받던 우리 선조들은 “청년학도”에게 미래의 희망을 걸었으며, 마침내 우리는 교육의 힘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의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희망이 되어야 할 교육이 어느 새 절망이 되고 있다.학부모들은 희망도 신념도 없이 늘어만 가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아이들은 끝도 보이지 않고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입시교육에 시달리며 몸과 마음을 상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신뢰를 잃어버린 공교육과 교사들은 거의 공공의 적이 되어 온국민의 질타를 받고 권위마저 상실해 심지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구타당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최근 들어 많은 학자들이 올바른 교육을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민주주의를완성할 수도, 지식·정보사회의 성장 동력을 키울 수도, 구성원들에게 공감과 행복을 줌으로써 공동체의 유대를 이룩할 수도 없다고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니 미래의 희망이 되어야 할 교육이 그리고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절망적상태에 빠지고 있다면 이는 단지 교육만의 절망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절망이다.그러나 우리 교사들은 이러한 절망 앞에 그저 탄식하거나 냉소할 수 없다.교사들은 미래의 희망을 키우는 책무를 가지고 있다. 일찌기 뒤르켐은 학교는 새로운 시대의 성전이며 교사는 사제라고 하지않았던가? 우리는 이러한 장엄한 책무를 무거우면서도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 아울러 우리는 이러한 책무와 자랑을 바탕삼아 절망적인상황에서도 오히…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썼던 칼럼

최근에 아이패드나 태블릿 피시에 교과서 내용을 담아두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를 놓고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논란은 2007년에도 있었다. 그래서 옛날에 이런 주제로 국민일보에 칼럼을 썼던 기억이 나서 뒤져보니 아직 원문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잠시 옮겨 본다.
(당시 칼럼)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공부다교육인적자원부의 디지털교과서 사용화 계획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한쪽에서는 디지털 교과서가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학습 환경을 제공하고, 학생들의 흥미와 학업성취도 향상시키며, 풍부한 학습 자료를 손쉽게 제공해 사교육비를 경감한다고 한다. 다른 쪽에서는 검증작업 없이 성급한 진행, VDT증후군, 인터넷 중독증 등의 신체적 정신적 위해 등을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찬반 논거들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으니 새삼 재론하지 않겠다.여기서는 디지털 교과서에 숨어있는 ‘공부’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따져보려 한다. 그 동안 공부는 주어진 시간에 많은 답을 구하고 암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른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똑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답을 알아 낸 학생이지, 답을 알아내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학생이 아니며, 하물며 즐겁게 답을 찾는 학생도 아니었다. 과정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오히려 답을 구하는 과정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것은 효율적인 것이며 더욱 좋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디지털 교과서는 답을 구하는 과정을 최소화 시키거나 사실상 제거해 버렸다는 점에서 이런 왜곡된 공부관의 극치다. 디지털 교과서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답을 그것도 시대 변화에 따라 업데이트 해 가면서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다. 하지만 클릭만 하면 답이 즉각 나오는 디지털 교과서, 지식을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과정을 모조리 컴퓨터에게 맡겨버리고 빨리빨리 답만 찾아가는 디지털 교과서가 향상시켰다는 학습효과가 학생의 정신적, 신체적 위해까지 감수하면서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

몇 년 전에 썼던 참실련 탈퇴의 변

아직도 제가 참실련에 미련이 있는 걸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참실련의 몇몇 친우들과의 우정만이 남아있지, 참실련이란 정파 자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문득 2007년(8년이던가?) 엄청나게 긴 성토의 글을 남기고 참실련을 탈퇴했던 기억이 나서 옛 폴더를 뒤져 봤더니 그 글이 아직 남아 있네요. 일단 옮겨 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전교조, 혹은 유일한 희망 이 글은 여기 계신 분들의 심기를 몹시 거스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참에 아주 매장될 수도 있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이 글을 씁니다.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글은 저 자신을 속이는 글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운동을 운운할 자격도 없는 법이죠. 제가 전교조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바로 이 집행부가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당착에 빠져있기 때문이며, 그 악순환의 고리를 이미 곪을대로 곪은 이 조직에서는 더 이상 끊을 수 없으리라 보기 때문입니다. 조금 지루하겠지만 제 옛날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저는 원래 조직 중심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분회장이었습니다. 다만 전교조가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비판의 글을 간혹 쓰곤 했습니다. 그 글을 한국교육연구소에서 알게 된 심모 선생님이 가끔 참교연 카페에 ‘어느 현장 분회장의 쓴소리’라는 이름으로 올리곤 했습니다. 나중에 참교연에 가입한 뒤 그 글에 대한 반응을 보니 ‘뜨끔하다, 찔린다, 떨린다’ 등등이었습니다. 참교연에 가입한 뒤에도 지금까지 전교조 운동의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왕왕 올렸었고, 그러다가 이모 선생님, 김모 선생님, 황모 선생님, 그리고 중학교 때 은사님인 윤모 선생님 등 여러분이 저를 만나기를 희망하셨고, 몇 차례 접촉하면서 저의 문제의식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드린 이야기를 요약합니다. .......교실에서 교육 실천과 전문성으로 말하지 못하는 교육운동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처음 전교조 창설 했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오죽 했으면 선생님들이 이렇게 데모까지 하겠느냐?” 였습니다. 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