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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현의 교육이론 비판(2)


2. 잘못 설정된 공격 대상

1) 그의 주장은 무엇인가?

허수아비 후려치기의 오류라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되다시피 했다. 이 오류는 학자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이론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공격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어서 인용한 뒤 마음껏 후려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비판은 보기에는 매우 통렬해 보이지만, 비판을 받은 상대방이 현재 비판받고 있는 이론이 자신의 이론이 아님을 입증하면 그걸로 끝나고 만다. 이 점에서 심광현은 가장 전형적인 허수아비 후려치기를 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지금까지의 교육 프레임은 지식=교육이라는 계몽주의적 교육관이라는 주장에서 나타난다.

나도 허수아비를 만들 위험을 무릅쓰고 심광현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사실 이 분이 워낙 현학적 미사여구를 많이 구사하는데다가 페이지가 넘어갈 때 마다 같은 의미를 다른 용어로 사용하는 신출귀몰한 수사법을 구사하는지라 이 분의 글을 정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1) 지금까지 보수·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교육혁신 노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은 심층에 도사린 프레임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2) 더구나 진보진영조차 이 프레임을 보수진영과 공유하고 있었기에 아무리 권력이 바뀌어도 교육은 변할 수 없었다.

3) 그 프레임은 바로 교육=지식교육의 프레임이며, 이것이 표층으로 나타난 것이 입시위주 교육이다.

4) 따라서 교육=문화교육지식교육으로 심층 프레임이 바뀌어야, 입시위주 교육이라는 표층 프레임이 창의적 문화교육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5) 이 새로운 프레임은 스피노자와 칸트의 철학,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 바렐라/톰슨과 조지 레이코프/마크 존슨의 인지과학 등 고전과 첨단 인지과학의 인식론적 연결망을 토대로 구체화될 수 있으며, 이에 의하면 기존의 표층 프레임들의 상당수도 그 내용과 표현 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6) 이렇게 되면 교육혁신은 물론 이것이 사회발전에도 기여하고 사회발전이 다시 교육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진다.

더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 보수·진보 막론하고 모두 낡은 지식교육관에 사로잡혔어. 2) 문화교육관으로 확 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돼 3) 스피노자, 칸트, 가드너, 바렐라, 레이코프를 동원해서 내가 확 갈아주겠어. 4) 멋진 세계가 올 거야.

혹시 심광현의 주장이 이것과 다른 것이라면 누군가가 지적해 주기 바란다. 단 내가 한 것처럼 몇개의 명제로 제시해 주기 바란다. 만약 명제들의 집합으로 제시될 수 없는 Argument라면 정당화 해야 할 지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론으로 성립되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일단 내가 정리한 저 명제들을 심광현의 이론이라고 전제한다. 이게 또 다른 허수아비가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적어도 저 상태에서는 어느 부분에서 무엇이 정당화되어야 이 이론이 성립될 수 있는지가 분명하게 보인다.

2) 그가 입증해야 할 것

한 때 패러다임이란 말이 유행하더니, 요즘은 프레임이란 말이 유행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패러다임이란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어쨌든 패러다임이란 말을 유행시킨 토마스 쿤은 기존 패러다임에 입각한 정상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누적되면서 과학혁명의 압력을 받는다고 했다. 결국 과학은 증명이 생명인데, 이 경우 과학혁명의 편에 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증명의무가 주어진다. 정상과학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름 정당하다고 판단해 온 지식들의 집합이다. 그러니 당연히 갑자기 튀어나온 이설에게 더 많은 증명부담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이설이 증명싸움에서 이긴다 해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과학사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과학혁명은 논문싸움에서 이설이 기존 정상과학을 분쇄함으로써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교수들은 퇴직하고, 신진 교수들은 이설을 추종함으로써 서서히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의 교육을 보수, 진보, 교육운동까지 싸그리 몰아붙이려는 심광현은 실로 엄청난 증명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게다가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그 학설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아서 신진 학자들의 압도적 다수가 자신을 지지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기존의 패러다임이건 프레임이건 간에 깨어진다. 교육계는 예술계와 달리 직관적인 설득에 넘어가지 않는다. 여기는 방법론이 지배하는 과학의 세계. 따라서 그는 앞에서 제시한 여섯 개 명제들 각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것을 입증해야 한다.

V01: 1), 2), 3)과 관련해서 기존의 교육과정, 교육학, 그리고 교육운동이 교육=지식교육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같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V02: 3) 과 관련해서 교육=지식교육의 심층 프레임이 입시위주 교육의 보수적 교육프레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입증해야 한다.

V03: 4) 와 관련해서 교육=지식교육의 반대편에 어째서 교육=문화교육이라는 프레임이 서게 되는지 입증해야 한다. 다만 문화지식 이라는 측면에서 즉 광의협의 의 측면에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이 둘 간의 관계가 대척되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

V04: 5)와 관련해서 이 새로운 프레임이 어째서 위에서 제시한 학자들의 이론을 연결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입증해야 한다.

V05: 1)~5)와 관련해서 기존의 교육학자들 중 이런 생각을 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학문의 세계에서 뒷북처럼 허무한 일도 없다. , 18세기 이후 근대 교육학은 근대성=계몽에 사로잡혀 교육=지식이라는 베이컨적 믿음에 사로잡혔으며, “교육=문화라는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해서 계속해서 분과화 전문화 구획화 되어 갔고, 아무도 여기에 대한 대안이 될 만한 교육이론을 내어놓지 못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만약 그런 이론이 있다면, 그냥 그 이론을 발전시키거나 그 이론에 자기 이론을 접목시켜야 한다. 하지만 심광현은 인지과학, 칸트, 스피노자는 거론하지만 교육학자는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그 유명한 구성주의 교육학조차 거론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육학들 모두 즐을 증명해야 한다. 이건 정말 교육학의 일대 혁명이요 파란일 것이다. 단 증명부담은 도전자가 져야 한다. 문화교육을 중심으로 두고 지식교육, 분과교육에 반대한 기존의 교육학자가 하나라도 나오면 이 이론은 접거나 그 의의를 크게 축소시켜야 한다.

v06: 6)과 관련해서 이제 엄청난 증명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림2을 보면 문화교육 프레임의 귀결은 결국 학과간의 경계를 허문 통섭교육이다. 이게 어째서 문화교육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에드워드 윌슨 같으면 이 통섭교육은 바로 과학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이 통섭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이라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듀이도 여기 동의할 것이다. 반면 슈타이너는 이 통섭교육은 예술교육이라야 한다고 주장했겠지. 어쨌든 이 선순환 고리, 악순환 고리는 단지 학습자의 심리뿐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구조, 경제의 발전까지도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공감과 소통능력이 증대되어 네트워크된 대중이 늘어나면 일자리 능력이 증대되어 일자리가 늘어나며, 따라서 경쟁이 줄어든다는 주장은 노벨 경제학상을 노려볼만한 엄청난 이론인 것이다. 케인즈도 이렇게 대담한 주장은 하지 못했다. 케인즈는 경기 변동의 원인(완전고용이냐 실업증가냐)이 실물이 아니라 화폐적 현상이라고 주장하여 일대 파란을 일으켰지만 심광현은 분과형 전문교육이 바로 불황의 원인이라는 경천동지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심광현은 이 어마어마한 증명부담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다시 밝히지만 난 심광현에게 어떤 유감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쓰는게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심광현은 우리 과 12년 선배다. 그래서 가능하면 보수적인 교육학자들의 포화를 맞고 좃중동의 쓴맛을 보기 전에 먼저 예상 문제를 출제해서 대비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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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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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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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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