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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현 교육이론 비판(3)-완결

이제 완결편이다.
드디어 완결이다.
심광현의 자료와 이 글의 1편과 2편을 링크해 둔다


3. 과연 증명 혹은 정당화는 가능할까?
교육학에서는 소심하고 꼼꼼한 정당화 없이 진보를 말할 수 없다
심광현은 아직 위에서 제기된 혹은 제기될 가능성이 큰 물음에 대해 어떤 증명도 혹은 정당화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저런 문제가 제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육학이란 마당은 영화판하고는 다르다. 여기서는 비평문이 통하지 않는다. 마땅히 예상질문에 대해 정당화 내지는 증명의 준비를 하고 뭔가를 내어 놓아야 한다. 그래서 교육학자들의 주장은 항상 조심스럽고 소심하다. 그래서 보수적이고 주류라고? 천만에. 그들의 마음이 진보로 충만하다 할지라도 그들의 주장이 조심스러운 것은 바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고, 사회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매우 무섭고도 중요한 일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건 한예종의 통섭 프로그램하고 다르다. 그건 하다 아무 성과 없이 중고생 수준의 UCC사이트 하나 만들고 문 닫으면 그만이지만, 교육판은 그랬다가는 수백만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미래를 일대 혼란에 빠뜨린다. 지금도 이해찬 세대라는 말은 저주로 통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해찬이 엄청 급진적이었나? 아니다. 그게 교육이다. 그렇다면 심광현은 꼼꼼한 증명과 정당화의 준비를 마치고 저 주장을 펼치고 있나?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다. 저 주장은 한편의 화려한 문학작품이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밟아보자.
교육에 대한 통념과 교육학은 다르다
우선 심광현은 교육자가 아니며, 교육학자도 아니다 보니 교육담론혹은 교육에 대한 통념교육학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즉 흔히 사람들이 교육이 말이야~”하고 떠드는 말들과, 거기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교육 정책은 말이죠~” 하고 떠드는 말을 전문 교육자나 교육학자들이 논하는 교육 이론과 구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모든 교육학은 지식교육=교육프레임에 갇혀서 입시교육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대담하게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심광현은 진보적인 교육자나 교육운동가까지 싸그리 몰아다가 입시교육의 틀에 가두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입시교육의 틀에 가두어진 사람들은 교육자, 교육학자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이 그렇게 가두어진 까닭은 입시교육(이른바 교육파시즘)을 강요하고자 하는 권력의 담론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이 파쇼적 담론이 은연중에 입시교육의 프레임을 심층에 구성하지 않도록 담론싸움, 용어 싸움, 즉 프레임 싸움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그 싸움에 현란한 수사법을 동원할 수 있는 미학자들의 참전을 환영한다. 그러나 담론 싸움과 교육학 이론 싸움을 구별하지 못하는 미학자라면 사절하겠다.
예를 들면 좋은 영화=재미라는 프레임 때문에 좋은 영화= 관객 드는 영화라는 통념이 널리 퍼져서 예술영화가 고사되고 있다면 이는 영화 미학이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영화판에서 권력을 쥐고있는 집단의 담론 때문이겠는가? 그런데 심광현은 느닷없이 좋은 영화=재미라는 프레임에 모든 영화전문가와 평론가가 사로잡혀 있으며 이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갇혀있기 때문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사실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문제는 교육학자들의 학설, 교사들의 신념, 심지어는 공식적인 교육과정과도 무관한 교육이 무언의 압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시된 공식적인 교육과정 어디를 보아도 입시교육이 정당화될 여지는 없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최종 목표는 수미일관 홍익인간이며, 지덕체의 고른 함양을 통해 이를 달성해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상당수는 새로운 교육 프레임(?)을 들여올 필요 없이 법대로, 교육과정대로만 해도 상당부분 해소된다. 그렇다면 프레임(?)을 뜯어 고쳐야 할 곳은 학교와 교육계가 아니라 소위 교육 수요자들의 마인드다. 나는 심광현이 교사들, 교육청을 향해 계몽(!)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학부모들을 설득했으면 한다. 물론 그러자면 저 현란한 미사여구는 좀 버려야 할 것이다.
지식교육이 입식교육의 원인이라 할 수 없다
심광현은 지금까지의 교육, 교육이론, 심지어 교육운동까지 모두 근대 계몽주의에 기반을 둔 교육=지식프레임에 사로잡혔다고 하며, 이게 입시교육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문화교육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 교육=지식프레임이라 하면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베이컨주의를 말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를 근대성 비판이라는 파리8대학 빠의 논리에 억지로 끼워 붙이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심광현은 이런 대담한 주장을 하기 전에 교육학 개론이라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근대 교육학, 교육제도, 그리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현행 교육과정 어디에도 교육=지식이라는 대담한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심광현은 교육학에서 지식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를 먼저 탐구했어야 했다. 아마 심광현은 파편화된 지식을 암기하고 익히는 그런 교육을 지식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교육학에서는 그런 정보의 조각은 지식이라 불리지 않는다. 그것을 자신의 삶의 맥락 속에서 활용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어야 지식이다.
교육철학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인 R.S. 피터즈와 J. 듀이, 그리고 최근 활발하게 연구중인 L. 비고츠키 등 누구를 떠들쳐 봐도 지식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피터즈에게 지식교육은 실용적, 기능적인 정보와 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형성되고 논증되는 과정과 형식을 음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음미하는 것과 흡사하다. 따라서 지식을 익힌다는 것은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며, 그 자체로 autotelic한 행위다. 반면 듀이의 지식교육은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지식이 있어서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지식이 형성되고, 다시 이 지식이 삶을 재구성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이 삶의 재구성은 다만 개인적인 삶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사회와 세계의 개혁에까지 확장되게 된다. 비고츠키 역시 지식교육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식을 구성해가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듀이와 비고츠키는 모두 지식교육이란 빈 항아리 같은 아동에게 정해진 내용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했다.
, 우파라 할 수 있는 피터즈, 중도파인 듀이, 좌파인 비고츠키에 이르기까지 교육이론을 망라해 보아도, 지식교육에서 입시교육 따위가 도출될 수 있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만약 우리 나라 교육에 큰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기존의 교육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기초적이고 공식적인 교육이론마저 제대로 숙지되지 않고있는 천박한 현실의 문제다. 그리고 그 까닭은 교사의 교육적 전문성에 근거한 자주적 판단이 학부모의 이기주의와 정부의 포퓰리즘, 그리고 관료의 권위주의에 의해 압살되는 구조 때문이다.
문화교육은 이미 교육학의 전통이자 상식이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지식교육의 대상이 입시교육을 정당화 하는 그런 종류의 지식이 아니며, 그런 종류의 지식은 지식이라 불리지도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설사 백보를 양보해서 그런 종류의 지식이라 하더라도, 기존 교육이론과 교육운동가들의 주장이 지식에 편중되어 문화를 소홀히 했다는 주장은 여전히 창작에 가깝다. 만약 이런 주장을 듣고 감동과 충격을 받은 교사나 교육운동가가 있다면 그는 여기에 동조하기 보다는 자신의 교사자격없음, 교육운동가 자격없음을 한탄해야 한다.
흔히 근대교육학의 뿌리를 코메니우스로 잡는다. 그리고 코메니우스의 가장 큰 기여가 바로 에라스뮈스 표현대로 학생들의 따귀를 쳐 가며 단어를 쳐 넣는교육을 종식시켰다는 것이다. 그 놀라운 결과물이 세계도해. 요즘 말로 하면 시청각 교재라고 할수 있는 책인데, 코메니우스는 예술적, 학문적, 영성적 체험을 점차 고조시켜 궁극적으로 하나의 통일적인 앎에 도달하는 범지학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근대 교육학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루소의 에밀은 먼저 신체교육, 그 다음에 감성교육, 이 모든 것이 충분히 성숙한 다음에야 지식교육이라는 교육이념을 제시했다. 여기서 두 가지 교육학의 흐름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아동의 발달과 성숙을 기다려주고 맞추어 주는 아동중심의 교육, 또 하나는 계몽주의의 폐단을 극복할 자연스러운 신체와 자유롭고 심미적인 감성 교육의 강조다.
루소 교육학은 철학적으로는 칸트에게로 실천적으로는 페스탈로치에게로 계승되었으며, 지식과 감성, 그리고 도덕성의 조화라는 교육목표는 이론적, 실천적으로 더욱 체계화 되었다. 이들은 모두 16세 이전까지는 도덕성과 감성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16세부터 분과학문이나 구체적인 직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권장하였다. 당시에는 16세가 넘으면 성인으로 간주했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들이 생각하는 교육은 감성, 덕성 교육에 기울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교육의 영역에서 배제해버린 16~20세까지 과정을 포함하여 감성, 덕성, 그리고 지식교육까지를 일관하는 교육 원리를 수립한 사람은 헤르바르트다. 그리하여 그는 이 모두를 망라했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교육학을 일반 교육학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를 감성, 도덕 교육에 치우쳤던 박애주의 교육과 구별하여 인문주의 혹은 신인문주의 교육이라고 불렀다.
이들 고전 교육학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교양교육을 통한 인격의 도야. 설사 지식교육을 하더라도 그 지식은 도야의 도구가 되는 교양으로서의 지식이지 직접 생산력과 연결되는 그런 지식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서 전통적인 문사철 교육과 예술교육, 그리고 도덕 및 종교교육으로 구성된 독일의 공교육 체제가 발전하였으며, 이것이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아무리 교육과정이 개편되어도 도덕, 음악, 미술은 어떻게든 살아 남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듀이로 대표되는 진보주의 교육학이나 피터즈로 대표되는 보수주의 교육학 역시 이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듀이는 기존의 인문교육을 모두 낡은 전통이라고 매도하는 급진주의적 교육자들을 비판하며, 다만 인문학, 예술, 문화유산 등을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으로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라고 역설했다. 반면 피터즈는 이런 인문적, 문화적 유산들을 경험의 재구성을 위한 도구나 재료로 간주하는듯한 듀이를 비판하면서 이런 인문적, 문화적 유산들은 그 자체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교육은 “~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기때문에 배우는 것이지, 뭔가 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듀이와 피터즈 모두가 역설하는 것은 심광현이 협의의 지식교육을 넘어 광의의 문화 교육으로 가자고 역설한 바로 그 교육이다. 듀이에게나 피터즈에게나 교육=협의의 지식교육 이라는 공식은 교육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들에게 교육은 당연히 광의의 문화교육이다. 듀이에게는 문화와 자연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과정이 교육이며, 피터즈에게는 문화를 익히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교육이다. 여기 어디에 낡은 지식교육의 프레임이 도사리고 있는가?
오히려 심광현이 지금까지 교육으로 싸잡아 평가하는 소위 계몽적 교육”, 노골적인 지식교육관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스프투닉 충격을 받은 미국에서 수학과 과학에 경도된 학문중심 교육과정이 강조된 지식교육이 강조된 1960년대 이후의 일인 것이다. 이 교육과정이 우리나라에 한창 수입되고, 또 당시는 우리나라 교사들이 현장에서 연구하는 교육학자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던 때인지라 이게 마치 교육학의 전부인 것처럼 유통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2011년 현재 그 본바닥인 미국에서조차 그런 교육학은 거의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교육 영역의 신자유주의와 진보의 대결은 보수적 교육학자 vs 진보적 교육학자의 구도가 아니라 경제학자 vs교육학자의 구도로 짜여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교적 주류로 여겨지는 교육학자들 조차 광의의 문화교육을 주장하고 있으니, 이른바 대안교육 쪽으로 분류되는 교육학자들까지 여기서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몬테소리, 프뢰벨, 슈타이너, 헬레네 랑에, 그리고 프레네 학교의 설립자들 말이다. 그들은 심광현의 저 복잡한 수사와 미사여구 없이(슈타이너는 예외, 좀 종교색이 강함) 일반 대중조차 문화교육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썼다.
그러니 왜곡된 지식 교육을 비판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이 거의 사기꾼 취급하거나 이미 반세기 전에 존 듀이가 경험과 자연”, “철학의 재구성에서 충분히 한 2분법의 극복을 자기 전매 특허인양 떠들어대는 브뤼노 라뚜르까지 들이 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교육학사한 권만 정독해보면 면면히 내려오는 도야론의 전통에서, 인문주의 교육의 전통에서 지금의 교육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그리고 교육의 본령을 찾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홍우 교수가 번역한 서양교육사와 피터즈의 교육철학의 재음미, 그리고 몰렌하우어의 가르치기 힘든 시대의 교육을 강추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결국 심광현의 문제는 그 주장 자체의 타당성 여부 보다는 이미 충분히 검토된 의견을 마치 자신의 의견인양 내세웠다는 것, 그것도 그 이전에 열심히 연구하고 실천해 온 교육자들을 싸잡아 모욕하는 방식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게다가 혹시 그와 비슷한 교육학 이론이 이미 있는지나 않는지 꼼꼼한 리뷰도 하지 않았고, 또 이런 식의 교육이론이 현실에 적용될 때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세심하고 과학적인 예상과 증명 시도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따져서야 어떻게 새 이론과 혁신이 되겠냐고? 물론 교육학자들의 이론이 둔탁하고 발전 속도가 느리며 심광현의 글처럼 날렵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예민한 사람을 다루는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다루는 의사를 예로 들어보자. 당신은 새로운 의학을 덥썩 덥썩 날쌔게 주장하고 실행하며, 기존의 의학을 삽시간의 쓰레기로 몰아붙이는 의사와, 기존의 의학을 충실하게 리뷰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충분한 임상 실험자료의 분석 뒤에야 조심스럽게 하는 의사 중 누구에게 당신의 몸을 맡기겠는가?
이제 교사로 돌아와 보자. 당신은 대담하고 새로운 주장을 화려하게 펼치는 교사와, 교육학의 여러 이론들을 꼼곰하게 리뷰하면서 조심스럽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교사 중 누구에게 자식을 맡기겠는가? “내 말을 들어라. 교육을, 댁의 자녀를 획기적으로 바꿔 주겠다.” 이게 바로 사교육 비즈니스맨의 전형적인 수사법이다. “내신 확 올려 드리겠습니다!” 교육 확 혁신해 드리겠습니다!”나 위험하고 무책임하기에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날렵하고 참신하게 혁신해야 할 것은 학교를 움직이는 각종 관행과 제도이지, 교육학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관행과 제도가 혁신되어야 하는 까닭은 병원으로 치면 의사가 아니라 행정직원이 환자의 치료를 주도하고 있어서 치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 낡은 의학을 갈아치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설사 의학이 낡았더라도 그것을 갈아치우는 것은 의사의 몫이며, 한 두 명의 의사가 아니라 끈질기고 부단한 의사들의 수많은 컨퍼런스들의 몫이다.
이는 학교와 교사에게도 마찬가지다. 지금 진보적인 교사들에게 진정 필요한 사람은 교육학을 갈아치우고, 갈아치운 교육학을 세례처럼 내려먹이는 메시아가 아니라, 낡은 관행과 제도를 뜯어 고치고, 교육이라는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학교를 재구성할 유능한 행정전문가이다.
참고로 몇몇 전교조 활동가들이 이 심광현의 강연을 듣고 속이 시원해졌다고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진정 참교육 실천가라면 이미 십수년전부터 해오고 생각해 왔던 일과 생각을 마치 자기가 처음 창안이라도 한 양 떠벌리는 강연을 듣고 분노가 아니라 시원함을 느끼다니. 아마 그 활동가들은 말로만 참교육이라고 떠들고 다녔지 실상 교실에서는 낡은 교육으로 일관해 왔고, 참교육이 어떤 교육이라야 하는지 고민도 하지 않았고, 또 이 고민을 풀기 위해 교육학 전문서적들을 리뷰 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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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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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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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