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휘발유 값 앞에선 안면 몰수?

마침내 정유사가 기름값을 내리겠다고 한다. 정부의 압력이 통한 모양이다. 정부는 왜 압력을 가했을까? 여론의 압력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참 묘한 일이다. 다른 압력은 잘도 견디더니 이건 못견딘다. 그 만큼 사람들은 기름값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양이다.

유류세 붙이는 정부를 욕하고, 폭리를 취한다면서 기업을 욕하며 원가 공개하라고 난리였다. 물론 폭리를 취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국민들은 자기 탓은 도통 할 줄 모른다.

사실 기업은 가격이 한계수입과 같거나 많은 쪽에서 형성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되도록 높게 형성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정유시장이 완전경쟁시장이라면 기업에게 가격은 이미 주어진 것으로 나타나서 어쩌구저쩌구 할 여지가 없겠지만, 몇몇 정유회사가 과점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이런 대규모 산업에서 완전경쟁 시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사실상 자연독점까지 가능한 분야 아닌가?) 한계수입보다 높으면서 경쟁사와 비교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 어느 선에서 서로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눈치들을 보고 있을 것이다. 담합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과점시장에서 담합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지난번 LCD에서 삼성이 대만과 일본을 배신한 것 처럼 반드시 배신의 유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유사들에게 폭리니 뭐니 하면서 욕할 것 없다. 욕하려면 과점시장을 욕해라.

가격을 서로 눈치봐가면서 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기업들은 매출이 유지되어 수입이 늘어나는 한 가격을 절대 내리지 않는다. 간혹 어떤 한 기업이 폭탄 세일을 하면서 고객을 끌어오려 할 유인이 있을 수 있지만 SK라는 강자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SK와의 출혈경쟁을 할 위험이 있어 감히 그러지 않는다. 그러니 아마 이 시장은 SK와 GS가 묵시적으로 어느 정도 선에서 가격을 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가격이 정상적인 균형가격보다 훨씬 높은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수입이 있을 경우다.

균형가격보다 훨씬 높게 파는데도 매출이 유지되는데 가격을 내릴 바보는 없다. 기름 값이 아무리 올라도 어차피 차 몰고 다닐 놈들 다 몰고 다니는데 왜 가격을 내리겠는가? 수요가 가격에 대해 단위 탄력적이거나 거기에 가깝다면 아마 함부로 기름값을 올리지 못할 것이다. 또 기회만 되면 내릴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값을 조사해 봐야 할 문제이지만, 우리 나라에서 자동차 기름 수요의 가격 탄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그러면서 말한다. "자동차는 필수품 아니냐? "

자, 요지부동 기름값의 범인은 여기에 있다. "자동차= 필수품"이라는 최면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자동차 운행은 소득이 감소하거나 물가가 올라갈때 우선적으로 줄여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적어도 1997년 외환위기때는 800원대이던 휘발유가 1200원대로 오르자 차량운행이 현저하게 감소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기름값 인상은 없었고, 어느 시점에서 꺾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900원이던 환율이 1600원까지 치솟고 9000원이던 CD가 2만원을 호가한 거에 비하면 휘발유 값은 그리 많이 뛰지 않은 셈이다. 물론 그 당시 정부의 유류세 인하 효과도 있었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1200원 하던 기름값이 2000원까지 치솟았어도 현저하게 차량운행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여전히 4000원짜리 커피 파는 커피전문점에 발렛 주차가 성행하며, 7000원짜리 국수먹는 집에 큰 주차장이 가득 차 있다. 약국에도 차, 병원에도 차... 차 없으면 죽는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쌀값이 오른다고 밥을 줄일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자동차가 필수품인가? 우리나라가 대중교통수단 케안습에 이동거리 먼, 미쿡 같은 나라인가? 이동거리도 짧고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거미줄 같고 저렴한 대중교통망을 자랑하는 나라 아닌가? 그런데도 자동차가 필수품인가?

자동차를 그렇게 필수품으로 여긴다면 수직으로 벌떡 선 수요곡선을 스스로 그린 셈이다. 수요곡선을 계속 수직으로 밀어붙이면서 외부충격으로 인한 공급변화에 따라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원망하면 안된다. 더더군다나 정부더러 값을 내리게 해 달라고 졸라대서는 더더욱 안된다.

기름값이 너무 비싼가? 그럼 걸어라. 그럼 기름값은 내려갈 것이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