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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에게 바란다

곽노현 교육감님. 매우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하루에 결재할 서류만 수백건이라고도 합니다. 장학관, 장학사들은 교묘하게 말을 안듣고 일을 엉망으로 합니다. 아마 힘드실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힘을 내어 주시고, 이 말들을 좀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교육감님. 진보교육감은 이미 정해진 그 무엇이 아닙니다. 진보가 지지한 교육감이 진보 교육감이지 진보 교육감이기 때문에 진보가 지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진보가 서서히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하면 결국 다만 교육감이 되고 말 것입니다. 흔히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욕이 아닙니다. 그만큼 진보는 역동적이란 의미겠죠. 따라서 진보 교육감은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역동적인 진보의 흐름을 같이 호흡함으로써 저절로 지지를 얻어내는 존재라야지, 진보교육감이기 때문에 지지해 달라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2. 교육감님. 우리가 교육감님을 지지하는 것은 교육감님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교육을 좀먹어 왔는 부패한 교육관료집단을 일격에 굴복시킬수 있는 통쾌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교육을 사랑하는 교육자들에게는 더없이 열려있고 자애롭지만, 교육을 좀먹어왔던 교육관료, 부패집단에게는 때로는 범처럼, 때로는 여우처럼 대할 수 있기에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육감님은 너무 착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착하지만 저들에게도 착합니다.

심지어 장학사, 장학관들을 모아놓고 호소까지 하시더군요. 안됩니다. 교육관료들에게는 단호한 명령을 내리십시오. 그들에게 민주적 리더십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상명하복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온, 그리고 상명하복의 상 자리에 올라갈 꿈 하나에 평생을 살아온 그들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처사입니다. 그들을 진정 존중하는 길은 그들에게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착한 교수님을 사랑합니다. 착한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착한 교육감이 아니라 강하고 올곧은 교육감을 원합니다. 우리는 교육감님의 트윗터에서 그 선량하고 감상적인 글들이 아니라 단호하고 방향성 있는 글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3. 교육감님. 교육은 대단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흔히 교육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는 쉽습니다. 시민운동 했다는 사람들 중 교육에 대해 말 안해본 사람 없을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 대부분 서울시내 중학교 학급 하나 맡겨 두면 1주일 견디기 어려울겁니다. 제 나이가 44세입니다만, 이 나이 되도록 매 한대 치지 않으면서 아이들과 웃고 지내는 교사들이 제법 있습니다. 이건 그저 사람좋아서만 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이건 그 동안 누적된 노하우이며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걸 하루아침에 얻을수는 없습니다.

교육감님은 곧고 노련한 교사들의 지혜를 많이 빌려야 합니다. 교육에 대해 쉽게 개혁을 이야기하는 학교 밖의 운동권 세력들의 섵부른 제안에 휘둘리면 안됩니다. 또 아무것도 바뀌길 원하지 않는 장학사, 장학관들의 그럴듯한 설득에 넘어가서도 안됩니다. 물론 이런 분들은 개혁을 느리게 가져가고 뭘 하자고 하면 학교에서의 부작용을 우려할 겁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치료법이 나올때 효과보다는 먼저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사를 생각하시면 이해 되실겁니다. 그래서 교사는 전문직인 것입니다. 교육감님이 적극적으로 이런 교사들의 지혜를 빌리려는 태도를 보여주실때, 곳곳에 은둔해 있던 참 스승들의 백가쟁명이 꽃 필 것입니다. 일단 그렇게 되면 교육관료도 막을수 없고, 조중동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육감님 주변에는 노련한 교사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다만 착하게 시민운동 해 왔던 교육비전문가들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이들의 나름 역할이 있겠죠. 하지만 이들이 학교를 좌지우지 하는 정책을 함부로 던져놓게 해서는 안됩니다.

훌륭한 교사 풀을 확보하면 좋은 점이 뭐냐 하면, 이 분들은 학교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직책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작은 카페 같은 공간 하나 만들어 놓고, 여기에 마음껏 교육적 소신을 펼치라 하면 됩니다. 짧은 댓글 하나가 이들을 감동시킬 것이며, 교육감님이 그토록 목말라하는 진보교육의 청사진도 신나게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4. 교육감님. 험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귀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교육감님은 참 선량하십니다. 그러다 보니 착한 말 하는 사람을 선호하시는듯 합니다. 하지만 착한 말 속에는 반드시 꿍심이 들어있기 쉽습니다. 교육감님이 진보교육감이 되느냐 그냥 교육감이 되느냐는 험하고 거칠고 비판적인 말을 날선 그대로 내보이는 그런 사람들을 용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교육감님이 좋아하시는 단어인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권력이 있다거나 선배라거나 등등의 이유로 할말을 안하고, 비판의 날을 무디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의를 차리고, 착하게 말하는 사람을 경계하고, 거칠고 날선 주장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진보는 모이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흩어지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참교육에 매진해온 우리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하는 교육감님을, 그리고 그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저 부패관료집단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교육감님을 원하지, 학교 밖에서 이런 저런 운동한다던 사람들이 불쑥불쑥 던지는 섵부른 아이디어를 학교에 마구 구현하려다 현장의 반발에 철회하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교육관료 집단의 빈축을 사는 교육감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학교에 던지려면 신중하게 교사풀의 검증을 먼저 받아 보셔서 각종 사태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셔야 하며, 일단 던졌으면 누가 뭐래도 관철시켜야지 우왕좌왕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교사들의 업무가 과중해진다는 목소리가 들리면 "교감히 할 것. 장학사들이 할것"이렇게 지시하면 됩니다. 지시하면 그들은 하거든요. 어차피 그들은 괴롭히나 안괴롭히나 교육감님을 지지할 가능성이 없는 집단입니다.

일단 이 글을 멘션으로 날려 봅니다만, 과연 읽으실지 안 읽으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교육감님의 혹은 이글을 쓰는 사람의 운수소관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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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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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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