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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괴담 타령인가?

먼저 동아일보의 사설을 좀 보자. 다음의 링크를 따라 갔다가 재빨리 돌아오기 바란다.


우리 나라의 보수를 자처하는 집단들은 2008년의 촛불 시위를 "광우병 괴담"때문에 멋도모르고 사람들이 준동한 사건, 그리고 그 괴담은 방송에 포진하고 있던 좌파세력의 조작 때문에 유포된 것으로 아주 단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국민 대부분이 그런 주장을 믿는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광우병 괴담론을 아주 기정사실화 하고, 뭔가 비판적인 주장만 나오면 괴담론+좌파음모론을 들이댄다. 대통령도 그걸 믿으니 "이제는 촛불세력들 공개 사과하고 반성하라"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 그때 체신머리 없이 허리를 깊이 숙여 사과한 대통령 역시 깊이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번 방사성 물질 사태만 해도 그렇다. 실제 이 사태 때문에 어떤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광우병의 경우야 쇠고기 수입협상을 다시 하라는 구체적인 압력이 있지만, 이건 어쩌겠는가? 편서풍 외에는 어떤 바람도 불지 못하게 하라고 정부에 요구할 수도 없고, 방사성 물질을 배출하는 일본을 매장하라고 요구할수도 없다. 어차피 이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사태다. 이렇게 통제할 수 없는 사태, 예측도 할 수 없는 사태에서 아무리 사소하지만 예측이 빗나간 일이 발생하면 불안은 엄청나게 증폭된다. 이때부터는 구체적인 위험이 아니라 이 불안에 대한 관리가 문제가 된다. 즉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정치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과학으로는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에 도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도달하고 말았다. 그러자 다시 과학으로 "도달은 하지만 별로 위험하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빗나간 과학적 예측은 설사 그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 이미 국민들은 "위험은 하지만 치명적은 아니다." "치명적이긴 하지만 소수에게만 해당된다." 이런식으로 계속 발뺌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를 통해 말하고자 한 상황도 바로 이런 상황이다. 정말 세상이 엄청나게 위험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위험할지도 모를 가능성 때문에 불안이 일상화 되고, 이 불안을 공식적인 과학적 언술로 진정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인데, 시민들이 공식적 과학자들이 나와서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만 듣고 있는것이 아니라 직접 과학을 하는 것이다. 실제 실험을 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제시되는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추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 국민이 과학적 추론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아마도 "예측가능한 위험"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공공의 토의가 형성될 것이며, 이 속에서 어느 수준의 합의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사회가 바로 "위험에 대해 성찰하는 사회"다. 위험에 대해 성찰하는 사회에는 괴담이 유포되어 패닉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적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우리 사회가 위험에 대해 성찰하는 사회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답은 소통성 밖에 없다. 즉 위험에 대한 모든 정보와 위험에 대한 모든 의견을 개방하고 여기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공식적 견해를 발표할 수 있었던 집단이 계급장을 떼고 위험에 대해 공동운명체로서 시민사회와 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위험의 과학적 관리라는 근대의 신화가 의심받고 있는 위험사회를 관리할 수 있는 길이다. 이런 점에서 위험사회는 위험에 대한 더 나은 관리술의 개발이라는 과학적 해법 뿐 아니라 위험에 대한 공공의 성찰이라는 정치적 해법이 더욱 중요해지는 사회다. 안전하다던 음식은 치명적일 수 있고, 관리될 수 있는 원자력은 누출사고를 일으키고, 케인즈와 프리드먼 덕분에 대공황은 이제 없다던 경제는 난리를 치는 세상이다. 공식적 과학의 이름표만으로 사람들의 주장을 윽박질러서는 안된다.

사실 2008년 촛불사태만 해도 그렇다. 그때 광우병 걸릴 확률이 번개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미국소 먹으면 다 죽는거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확률이 낮더라도 치명적인 위험이 있다면, 그것에 대하여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거기에 대한 반론을 묵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당시 촛불의 외침이었다. 즉 촛불시위가 그토록 커진 까닭은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광우병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에게 물대포와 군홧발을 날렸기 때문이다. 만약 우희종 박사 등등의 분들과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는 과학자들, 그리고 FTA관련자와 이정우 등의 그 반대편 경제학자 등의 토론을 정부가 주선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확산시켜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게 했다면, 아예 이 토론을 시청앞 광장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했다면 사태가 그렇게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괴담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정부가 위험의 정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괴담이라고 부르고 있는 마당에 무슨 거기에 대한 토의가 가능하겠는가? 이렇게 공식적 발표 이외의 주장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괴담으로 치부하는 비정치가 계속된다면 결국 그 정권은 예상도 못한 큰 위험에 처할수 있다는 2008년의 교훈을 아직도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아무리 뻘짓을 해도 하나님이 지켜준다는 괴담을 믿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정부 혹은 여론 주도층은 방사능 공포를 괴담으로 치부하기 전에(음, 정확히 말하자면 방사선 공포라고 해야 하지만...) 먼저 그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과 수평적으로 대화하라. 그리고 시민사회에서도 충분한 수준의 전문지식인이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 위험에 대한 토론을 확산시키고, 그럼으로써 위험에 대한 이성적인 대응이 보편화되도록 하라. 그러자면 먼저 "괴담"을 일단 "토론해 볼 만한 안건"으로 인정하라. 그게 순서다.

그리고 교육감의 경우는,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걸 이상한 색안경을 끼고 괴담, 좌파 운운하는 뇌구조 자체가 매우 수상하다. 그들도 배울만큼 배우고 합리적인 사람을 자처하니만큼, 생각없이 그럴거라고는 여겨지지 않으니, 결국 좌파 교육감을 흠집내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나 아닐지. 그렇다면 불순한 괴담을 유포하는 쪽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있음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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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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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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