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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정책 홍보고 이념 선전이라는 것일까?

동아일보 기사 타이틀의 요염함이 이제는 조선일보를 능가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창조성은 조선일보는 물론 H학교의 S교수마저 능가하고 있다. 그 압권을 보여주는 기사가 바로 "이념교육장 된 4. 19 민주 올레" 라는 기사다.

이것도 법적으로는 신문이니 저작권은 존중해 주기 위해 본문은 링크 걸어준다. 하지만 저들 트래픽 늘려줄 필요 없으니 굳이 저 링크로 들어가지는 말고 나의 요점정리를 보기 바란다.


이 기사의 요점은 이렇다.

1. ‘4·19 민주올레’가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16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렸다.(이건 단지실 기사)

2.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여러분의 교육감 곽노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 중고교생 900여 명이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행사장이 이승만 대통령 하야에 큰 역할을 했던 교수단 시위대의 출발지라며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여기까지도 사실 기사... 그리고 4.19에 대해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내용)

3. “지금 같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대는 목숨을 내던지며 독재에 맞선 4·19혁명 열사들이 만든 것입니다........ 오늘 체험학습으로 서울 곳곳에 있는 4·19혁명의 정신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혹시 이걸 보고 이념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하긴 이념교육이긴 하다. 민주주의도 분명 이념이니까. 그렇다면 동아일보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가르치지 말라는 뜻일까? 아니 언제부터 이념=나쁜것 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마 유인촌이 자주 그런 표현을 한 것 같은데, 이념=나쁜것이라는 정치적 신념 역시 이념이다. 그리고 모든 공교육은 이념을 가르친다. 모든 시민, 교사, 학생은 나름의 정치적 이념이 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념 중 민주주의는 가장 보편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이념이다. 설마 이걸 가르치지 말라는 것인가?

4. 이어 곽 교육감은 “민주올레를 만든 분”이라며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소개했다. 이 전 국무총리는 “효자동은 이승만 대통령이 학생들에게 총을 쏴서 100여 명이 죽어간 곳입니다. 요즘 중동에서 사람들 많이 죽는 것 봤죠? 그게 우리나라에서 시작됐습니다”라고 말했다.
행사 전에 곽 교육감은 “4·19 올레를 개발한 민간단체가 친노 단체라는 이유로 이 행사를 비난하는 건 헌법정신 계승을 위한 교육활동을 비난하는 겁니다. 헌법정신이 정치색?”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여기서 슬슬 색깔이 나오네)


아하, 이제야 본색이 나온다. 결국 전 국무총리가 이 행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이건 정말 생트집이 아닌가? 보수애국(?) 단체의 천조국인 미국을 가 보라. 전직 대통령, 전직 부통령, 전직 국무장관이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청소년 교육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이런 식이라면 오바마를 만나러 고등학생 대표가 백악관 들어가는 것도 티파티 등 보수단체에서 반대시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공산주의같은 특정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악과 동일시 하는 시대가 지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동아일보의 이념자는 공산주의 수준도 아니고 "노무현"이다. 그들의 이념자는 "노무현"에 얼마나 가까운지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이 무슨 지하 게릴라 우두머리였나? 합법적인 전직 대통령 아닌가? 합법적인 전직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 합법적인 전직 국무총리가 청소년들을 위해 봉사하면 박수는 치지 못할망정 무슨 이 해괴한 행패란 말인가? 이거야 말로 대한민국을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을 자기들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송두리째 부정하는 이념적 패륜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는지 동아일보는 이렇게 변명한다.

5. 지난해 이 행사를 시민단체인 ‘시민주권’(대표 이해찬 전 국무총리)이 진행하면서 반정권 성격의 집회로 흘렀고......학생 참여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음을 의식한 내용이다.

위의 곽교육감의 트위터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음을 알수 있을 뿐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한심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죠 로 읽을수도 있다. 도대체 이렇게 교묘하게 사실을 호도하는 기사쓰기를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하다.

6. 시교육청은 최근 학생들의 행사 참여를 창의체험활동으로 인정한다는 공문을 서울시내 일선 중고교에 보낸 바 있다.

이게 뭐 그리 신기한가? 이거 말고도 다양한 창의체험활동이 인정된다. 그나마 봉사활동 점수도 안주는 이 행사는 차라리 솔직하다. 그냥 가족행사, 가족여행도 인정되는 창의체험활동인데, 이걸 국가의 헌법 전문에 나오는 사건 현장에 바로 그날 모이겠다는데 당연히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걸 가지고 시비거는 신문은 대체 어느 나라 신문인가?

7. 이 전 총리 다음은 학생의 자유발언 시간. 경기도에서 왔다는 여고생이 무대에 올라 곽 교육감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그는 “곽 교육감님은 누구보다 학생 인권과 복지를 위해 애써주시는 분이다. 김상곤 교육감과 추구하는 정책이 비슷해 좋아한다”면서 호소했다. “입시 위주가 아닌 재능과 적성에 따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체벌을 금지했지만 끝이 아닙니다. 아직도 감정적으로 학생을 때리는 선생님들이 계시니 지속적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야자(야간자율학습)도 자율이라지만 아직도 타율로 운영됩니다. 주민발의 중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서울학생인권 조례안도 시행될 수 있게 애써주세요.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지역별로 정책이 다른데 교육감님이 설득해 주세요.”

이건 학생의 발언이지 교육감의 발언이 아니다. 그런데 신문 기사 제목은 교육감이 자기 정책을 선전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상상력이다. 아마 이 여고생이 교육감이 되어 있는 미래라도 상상한 모양이다. 게다가 이 여고생이 김상곤, 곽노현을 동시에 언급하니 얼씨구나 하고 인용한 모양이다. 그런데 감정적으로 학생 때리는 교사 없애 달라고 호소하고, 학생인권조례 응원하고, 야간자율학습 강제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호소가 그렇게 못 들을 말인가? 이 기사 쓴 기자의 자녀부터 밤새도록 매 때려가며 공부시키는 그런 학교에 보내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이 대목에서도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다.

8.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원 앞에서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와 라이트코리아, 부모마음교육학부모회 등 6개 단체가 규탄 시위를 열었다. 이들 단체는 “민주올레 행사는 곽 교육감이 특정 정치세력에 이념교육의 장을 열어준 관치 동원”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 행사가 특정이념교육이라는 근거는 딱 여기밖에 없다. 특정 단체가 그렇다고 주장했다는. 그렇다면 "이런저런 단체들이 이 행사를 이렇게 비난했다"가 기사 타이틀이 되어야 마땅하지 어떻게 이 행사가 이념교육장이 되었다고 쓸 수 있는가?

아하 그 비밀을 알았다. 저 뉴라이트 단체들이 자기들 이념 선전하러 학생들에게 위협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4.19 민주 올레 행사가 이념교육장이 되었다는 기사 타이틀은 정당하다. 저 단체들이 바로 이 행사를 이념 교육장으로 만들었다. 비록 학생들의 반응은 썰렁해서 교육 효과는 없었지만. 이런 취지로 썼다면 이 기사는 문맥이 다소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제목과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걸 게임계에선 이렇게 말한다. "팀 킬"

9. A고 교사는 “강제동원이 아니라지만 학생에게 창의체험활동 4시간 인정은 엄청난 매력”이라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앞두고 자신의 정책 홍보를 제대로 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 교사가 누군지 궁금하다. 아마 교사가 아닌 모양이다. 어차피 수업 안하고 이런 저런 활동하는 토요일에 창의체험활동 인정이 뭐 그리 엄청난 매력이겠는가? 오히려 학교 수업보다 늦게 끝나는데? 차라리 봉사활동시간 4시간 인정이 훨신 더 큰 매력이라는 걸 3년 이상 경력의 교사는 다 안다. 아마 저 자는 교사를 참칭한 뉴라이트 회원이거나, 뉴라이트 하다가 교사자질이 훼손된 자이거나, 교직 감각이 둔해진 교감, 교장일 것이다.


어쨌건 이 기사는 참 재밌는 기사다. 이념교육의 장이 되었다는 근거는 기껐 몇몇 단체의 주장에서 인용하고, 정책홍보로 흘렀다는 주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느 교사의 멘트에서 따 오고, 정작 행사 스케치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식이면 대통령이 사대강 행사할때 누군가가 "이명박은 친일파다"라고 집회하면 타이틀도 "친일 행사로 흐른 사대강 행사" 이렇게 되어야 할 지경이다. 그리고 행사 참석자들 중 누군가가 "일본에 대한 홍보는 제대로 했다"라고 말하면 부제로 "일본 홍보에 열중해"가 붙어야 할 것이다. 요즘 동아일보가 정말 많이 망가졌다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졌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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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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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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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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