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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썼던 참실련 탈퇴의 변

아직도 제가 참실련에 미련이 있는 걸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참실련의 몇몇 친우들과의 우정만이 남아있지, 참실련이란 정파 자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문득 2007년(8년이던가?) 엄청나게 긴 성토의 글을 남기고 참실련을 탈퇴했던 기억이 나서 옛 폴더를 뒤져 봤더니 그 글이 아직 남아 있네요. 일단 옮겨 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전교조, 혹은 유일한 희망

이 글은 여기 계신 분들의 심기를 몹시 거스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참에 아주 매장될 수도 있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이 글을 씁니다.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글은 저 자신을 속이는 글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운동을 운운할 자격도 없는 법이죠. 제가 전교조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바로 이 집행부가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당착에 빠져있기 때문이며, 그 악순환의 고리를 이미 곪을대로 곪은 이 조직에서는 더 이상 끊을 수 없으리라 보기 때문입니다.

조금 지루하겠지만 제 옛날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저는 원래 조직 중심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분회장이었습니다. 다만 전교조가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비판의 글을 간혹 쓰곤 했습니다. 그 글을 한국교육연구소에서 알게 된 심모 선생님이 가끔 참교연 카페에 어느 현장 분회장의 쓴소리라는 이름으로 올리곤 했습니다. 나중에 참교연에 가입한 뒤 그 글에 대한 반응을 보니 뜨끔하다, 찔린다, 떨린다등등이었습니다. 참교연에 가입한 뒤에도 지금까지 전교조 운동의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왕왕 올렸었고, 그러다가 이모 선생님, 김모 선생님, 황모 선생님, 그리고 중학교 때 은사님인 윤모 선생님 등 여러분이 저를 만나기를 희망하셨고, 몇 차례 접촉하면서 저의 문제의식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드린 이야기를 요약합니다.

.......교실에서 교육 실천과 전문성으로 말하지 못하는 교육운동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처음 전교조 창설 했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오죽 했으면 선생님들이 이렇게 데모까지 하겠느냐?” 였습니다. 즉 교실에서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에 거리에서도 지지를 받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선생들이 왜 거리에서 지랄들이냐?” 입니다. 교실에서 이미 배척받은 이상 거리에서 무슨 짓을 하건, 농성을 하건, 아니면 국회를 폭파를 하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교조는 교사들의 전문성을 지원하고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의 권리를 보장하는 그런 단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투쟁의 방법도 농성이나 시위는 최대한 아끼고 대신 시범수업과 논문과 각종 심포지움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연구와 교육실천활동이 잘 조직되어야 하고 전교조는 가장 부유한 시민단체로서 이러한 연구와 교육활동을 지원해야 합니다. 이런 실천들이 누적되어서 전교조 교사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참 잘 가르치며, 교육의 방향을 잘 제시한다.”라는 평판이 다시 살아난다면, 그때는 가두가 아니라 청와대를 점거해도 욕먹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는 오죽하면 저 선생들이 저러겠어?” 하는 말이 들릴 것입니다.....

대략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이모 선생님이 권선생과 만나고 나서 다시 활력이 돈다.”, 혹은 황모 선생님이 이제 뭔가 해 볼만하다는 자신이 생긴다.”는 말씀을 하실 때 전교조 가입한 1992년 이래 가장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가 본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본부 전임을 완강히 거부했었습니다. 다만 교사들의 교육학을 수립하기 위해 학술지를 발간하는 일이 긴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 일이야 현장에서 맡을 수 있고, 본부에는 제 연봉 절반만 주어도 일 잘할 사무직원을 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 집행부가 참교육 사업을 중심에 둘 것이라 강조하고 있고, 이를 위해 연구역량을 강화하는데 관심이 많다고 들었으며, 또 힘만 빠지는 각종 농성, 시위, 연가투쟁만 하고 도통 교육에는 어떤 비젼도 지원도 없는 전교조의 한심한 모습에 염증을 느낀 교사 대중들의 표를 가벼이 여기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전임노릇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남는 것은 회한과 원망 뿐입니다. 이런 조직에 내 힘을 보태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 어느 왕년 활동가가 내 아이가 내가 전교조였다는 것을 잊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뼈 속 깊이 다가왔습니다.

참교육?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죄다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포장은 화려합니다. 아이들 건강도 세우고, 교육희망도 세우고.... 그 정책을 수립하느라 고생하신 선생님들의 노고는 제가 옆에서 직접 봐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건강도, 교육 희망도 누가 세웁니까? 일선 교사들입니다. 뭘 가지고 세웁니까? 수업입니다. 그럼 그 수업은 무엇을 가지고 짭니까? 교육학입니다. 기성의 교육학으로? 그건 안 되죠. 지배자들의 손길에서 아이들을 자립 시킬 수 있는 참된 교육학을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요? 공부하고 토론하고, 실천하고 다시 피드백 하면서 해야 합니다. 이게 과연 얼마나 걸릴까요? 하루 종일 연구하고 연구해도 평생을 거의 걸어야 할 일일 것입니다(여기 카페 선생님들 중에는 이 평생을 걸어야 할 원점부터 교육학 다시 세우기 작업에 동참하신 용감한 분들이 계십니다).

이 고단한 작업은 지난 20년간 전교조 운동에 대한 통절한 비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왜 비판해야 하냐고요? 20년이 지났음에도 아이들의 상황은 오히려 최악이고 사교육비는 하늘을 찌르고 교사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전교조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습니다. 더더군다나 전교조 교사들은 보통 교사들보다 특별히 나을 것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고, 참교육은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고, 그것을 실천하던 선생님들의 동력은 각종 출판사와 교육청에 다 흡수되고 말았습니다. 사정이 이런데 지난 20년을 비판하지 않고, 지난 20년을 회고하면서 뿌듯해 하면서 무용담이나 자랑하고 있다면 그는 선생의 자격도 없는 자입니다. 오히려 난 참 열심히 운동했다. 그런데 왜 이 모양인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원점에서부터 다시 고민해야겠다.” 이래야 이게 제대로 된 선생입니다.

이런 고민들을 이미 많은 조합원들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지난 선거 압승의 동력입니다. 그리고 많은 조합원들이 그런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 집행부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뭐든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옛날부터 해왔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관행적으로 진행되는 일들은 모두 정지하고 따져 보아야합니다.

농성, 집회? 그 동안 이런 거는 수없이 많이 해오지 않았나요? 그거라면 오히려 한 수 위인 교찾사가 난리 버거지도 수없이 쳤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전교조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게 교찾사의 시위, 농성이 과격해서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도통 교실에는 관심 없고 걸핏하면 밖으로 기어 나와 뻘건 조끼 입고 하늘에 주먹질이나 하는 모습이 전혀 선생답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공청회 장을 난입하건, 아니면 천막 속에 멍거니 앉아있건 선생답지 못하긴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과격한 데모건, 덜 과격한 데모건 간에 말입니다.

참실련은 다만 순한 교찾사!” 누군가가(아마 2번진영의 누구였던듯)붙여 준 이 쪽팔리는 칭호, 이게 딱 현실을 한 마디로 보여주는 말임을 느꼈습니다. 어떤 결의 과정도 없이 마치 교육청에서 학교별로 과제 시달하듯 농성이 있다고 전달됩니다. 그러한 농성의 이슈에 동의 하는가 마는가는 아예 전제되어버립니다. 본부에서 일 하면 개인의 생각과 소신은 없는 것입니까? 우리가 옛날에 6월 혁명을 일으켰을 때 거리에 왜 나갔고, 명동 성당에서 왜 농성을 했습니까? 총학생회가 시켜서? 당번을 정해서? 당번을 정해서 해야 할 정도의 농성이고 시위면 이미 그건 날 샌 싸움입니다.

정말 그 이슈가 절절하고, 그 싸움에 동참함이 그야말로 시대의 의무처럼 다가온다면 당번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의기 넘치는 자는 앞장서고, 참여하지 않은 자는 지금 저처럼 적반하장 하는 것이 아니라 죄책감과 수치심에 잠자리를 뒤척일 것입니다. 비합법 시절에 가입은 못하고 후원회비만 걷어서 주면서도 못내 미안해하던 그 선생님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농성에 불참했다고 부끄러워하는 조합원은 심지어 본부에서조차 본 적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전임자들은 교육부에서 옛다, 전교조 마음대로 각 시도별로 학교 하나씩 정해서 참교육 해 봐라!” 할 때 정말 그걸 할 수 있을 만큼의 참교육 요원이 없다는 현실에는 자괴감들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조합원들도 조합 탈퇴하겠다는 말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도대체 이 집행부가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무엇이었고, 조합원들은 왜 찍어주었습니까? 집회 시위를 좀 순하게 하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다가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공부하고 가르치는 그 기본적인 선생의 일. 이것을 충실히 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승부 걸겠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새 조직 이름도 참실련 아닙니까? 이건 참교육 사업을 여러 사업 중 하나로 두는 게 아니라 참교육 사업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는 그것을 지원하는 역할이라는 의미 아니었습니까? 참실련이 참교육도 가끔 실현 하려고 하는 연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진보는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 설 땅이 없습니다. 진보는 따라서 미학적인 개념입니다. 진보적인 교육운동이라면 미래의 희망적인 교육의 상, 아름다운 교사의 상을 보여주고 바로 지금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지금 젊은 교사들을 데리고 전교조 본부에 와 보십시오. 그리고 10여년 뒤 닮고 싶은 선생님이 있는 지 꼽아 보라고 하십시오. 자신 있습니까? 금연 건물을 자욱하게 채운 담배 연기 속에서 젊은 교사들에게 ! 너도 나이 먹거든 이렇게 되어라!”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젊은 교사가 , 나는 언제 저렇게 되나?” 하며 부러워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니 본부 뿐 아니라 전교조 전체를 통틀어서 젊은 교사들에게 자신있게 보여 줄 간판 스타급교사들을 몇이나 확보하고 있습니까? 아니 그런 일에 관심이나 있었습니까?

2001년 까지만 해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꾸자꾸 투쟁가들에 의해 소외된 그 분들은 지금 전교조에 사실상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연구역량 결집하려고 그런 분들을 접촉하고자 하였으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저의 능력부족이기도 하겠지만....전교조에서 빠져나갈 타이밍만 노리고 있는 교과연합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사태에 전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지도부를 보면서 혼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사실은 한 번이군요).

다들 저더러 튀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교조 교사는 늘 학교에서 튀는 교사였습니다. 그 튀던 분들이 이제는 경직되어 다른 튀는 동료를 억압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도서관으로 대학으로 출판사로 돌아다니지 말고 할 일이 없어도 사무실에 짱 박혀 있으라고 합니다. 갑자기 집회, 시위, 농성 생길지도 모르니 5분대기조 처럼 말입니다. 이건 바로 댁들이 그토록 욕해마지 않았던 원영만 집행부의 운영방식 아닙니까?

오히려 제대로 정신 박힌 운동단체라면 본부에 박혀 있지 말고 밖으로 좀 나가라고 등을 밀어야 할 겁니다. 에컨대 편집실장! 당신은 발로 취재해야 할 것 아니야? 그리고 광고도 직접 다니면서 따 와!”, “대협실장! 대협실장이 대내협력실장이야? 나가! 대외 협력을 해!”, “사립위, 초등위 등등. 이 건물에 사립학교, 초등학교가 있나? 나가서 직접 대중들을 만나!”, “연구소! 학술단체, 도서관, 대학으로 뛰지 못하겠어?” , “조직실장! 우리 조직이 서울에만 있나? 당장 지부로 지회로 돌아다녀!” 등등 말입니다. 그럼 본부에는 누가 남나요? 아침에 간단하게 메신저 등으로 미팅 한 뒤 현장으로 불나게들 뛰어 나가면 본부에는 사무처, 기관실만 남겠죠. 선생님들 수업하러 가고 텅 빈 교무실에 교감만 남는 것 처럼 말입니다. 사무처, 기관실은 곳곳에서 자기 영역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그들 사이의 업무를 조정하고, 연락체계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살아있는 조직이고, 이게 창조적인 운동을 만들어 내는 조직의 모습입니다. 불행히도 이런 조직의 모습은 이미 개발원, 평가원,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이 먼저 선점했습니다. 이 낡은 관료제 조직으로 그들을 당할 수 없습니다.

, 이렇게 말했더니 다들 그 말 자체는 옳다는군요. 그런데 그건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군요. 옳은 말이고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거 많이 들어 본 말 아닙니까? 교장, 교감한테 말입니다. 걸핏하면 시기상조 운운하던 보수언론한테 말입니다. 어쩌면, 어느새 이렇게 닮아버렸단 말입니까?

정작 참교육을 세워야 할 사람들은 기껏 농성장의 대가리 하나로 취급하면서 참교육 운운하는 정책안은 빨리 만들어내라고 독촉이 대단합니다. 하지만 정책안이 나와도 그걸 수행할 일선 교사들이 없고 그걸 뒷받침 할 교육학적 기반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본부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선국면용이랍니다. 할 수 도 없고, 할 의지도 없는 참교육 실천을 대선 국면 때 선전용으로 구두선만 늘어놓겠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문서 만들고 기자회견 팡팡 하면서. 이런 위선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어느 열렬 조합원이 교장하고 싸우는데 교장이 당신의 모습은 활동가 같고, 선생 같지가 않다.”라고 했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활동가인데 그 영역으로 선생을 골랐습니까, 아니면 선생인데 제대로 선생질 하기 위해 모여서 활동가가 되었습니까?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선생입니다. 그것도 미래형 선생의 모습을 늘 보여주려는 그런 선생입니다. 그래서 참교육을 단지 구두선으로만 여기고, 실상은 20년간 늘 하던 대로 그냥 굴러가려는 지금 전교조의 모습을 견딜 수 없습니다.

아무 의욕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전임기간이 끝나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전임 기간이 끝나면 아마 저는 조합을 탈퇴할 것입니다. 전교조의 핵심에서 지낸 한 달 만에 제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몸을 둘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해직까지 당하시고 고초를 겪으셨던 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정말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실 것입니다.

지금 전교조는 난파하고 있습니다. 여론이 조금 호의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그 착한 말들이 알고 보니 모두 구두선에 불과했음이 밝혀지는 순간, 시쳇말로 뽀록나는 순간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럼 결국 이런 저런 현안 투쟁 줄줄 따라다니다가 또 조합원 줄고, 그렇게 한 5년 뒤에 자연사 하는 겁니다. 요행히 살아남아도 이미 운동의 생명은 끊어지고 관행적인 이익단체 하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난파선에서도 침몰하기 직전까지 선장, 항해장, 갑판장은 자기들의 명령권이 훼손될까봐 다른 배에 SOS를 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미련덩어리, 이제 끊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미 마음에서 지웠습니다. 죄송합니다.

, 제목에 있는 유일한 희망은 뭐냐고요? 바로 미련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이 희망입니다. 미련을 끊어야 출발이 가능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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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