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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이 나를 뭘로 보고서?

2008년 참실련이라는 전교조내 다수파를 떠난 뒤, 한 동안 그쪽 동네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걸려오는 전화도 묵살했으며, 때로는 신문이나 잡지에 전교조에 대해 상당히 날선 비판의 글을 싣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 쑥스럽게도 2011년 들어 결국 전교조를 다시 찾게 되었다. 2010년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시원하게 밀어붙여지지 않는 상황, 혼선과 갈지자 행보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 현장에서 진보교육감에 대한 실망감이 높아지는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진보적 교육자들의 유언, 무언의 압력 때문이었다. 그들의 압력을 요약하면 "이 사람아. 자네가 은둔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였다.

사실 나도 진보교육감 주변을 맴도는 전교조 명망가, 진보진영 명망가들의 하이에나 같은 모습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끼곤 했다. 그들의 속셈이 너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주저하게 만든 것은 두가지였다.

1) 자칫 나 역시 저 하이에나의 하나처럼 될 지 모른다는 우려
2) 내가 서울사대 출신이라는 점
3) 더더군다나 주류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도 모두 갖추었다는 점

특히 2)번의 우려가 컸다. 서울대 패권주의의 폐단이 가장 극명한 곳이 교육계이며, 당연히 그 중에서도 서울교육이기 때문이다. 이 패권주의는 어찌나 그 위세가 당당한지 서울대 출신인 공정택 조차 사대가 아니라 상대라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니 중앙대 출신의 유인종 교육감의 어려움이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어려움의 빈틈을 공정택 등 동향라인이 치고 들어갔던 것이다.

어쨌든 교육감은 엄청난 권력이 있는 자리이며, 교육청은 권력의 복마전이다. 거기 발을 잘못 들여 놓으면 헛된 야심과 욕망 때문에 평생 운동가로 쌓아온 부동심도 흔들려서 순식간에 신기루 같은 권력을 쫓는 하이에나로 전락할 수 있다. 더군다나 나는 눈만 살짝 돌리면 바로 주류로 전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른 하이에나의 전향은 그저 손가락질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내가 전향한다면 그건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마리 해충이 있다면 그 중 덜 해로운 벌레를 고르라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어차피 하이에나 판이라면 덜 해로운 하이에나가 맴돌게 하는게 더 나을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차피 권력자 주변에 하이에나가 맴돈다면, 고기 찌꺼기만 얻어먹는 하이에나 보다는 때로 전투력에도 보탬이 되는 하이에나가 맴도는 게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른 하이에나들 보다는 좀 더 성능 좋은 하이에나가 될 것이라는 점은 그들조차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나의 적극적인 행보에 대한 간단한 이유다. 그래서 요즘 연락 끊고 지냈던 전교조 원로님들에게 연락도 시도해 본다. 어차피 하이에나라면 그래도 투지가 남아있는 하이에나를 찾기 위해. 하지만 그들은 영 탐탁치 않은 모양이다. 마치 내가 숨어 지내다가 진보교육감 당선 되니까 슬그머니 숫가락 하나 더 얹으려고 자기들한테 "줄을 대려는 줄" 아는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나에게 투사한 다음 나를 미워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들은 진보교육감 임기내에 확대될 것이 분명한 내부형 공모교장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려는데, 나름 강력한(?) 경쟁자가 뛰어드는 것을 경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아끼는 지인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면서 "욕심을 감추고 있는 운동가들이 너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지나온 삶을 반점이라도 돌아본다면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조금 굽히고, 조금 빈말하면 지킬수 있는 자리, 그 따위것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다. 나는 교장이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교장이라는 자리를 별볼일 없게 만들어서 아무도 교장이 안되려고 하는 그런 체제를 만들려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거기에 숫가락을 얹을 생각이 없다. 나는 어떤 자리를 통해 보상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보상 받는 사람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연구하고 책을 쓰는 학자이지, 자리를 차지하는 정치적 인물이 아니다. 불행이라면 그야말로 순진한 학자가 아니라 그런 정치적인 다툼을 읽고 수를 쓰는 능력이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은 나의 학자로서의 능력에는 관심이 없고, 저런 책사로서의 능력만 빌려 쓰려고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은 그 능력을 빌려 쓰고는 즉시 나를 외면하곤 했다.

참실련... 내가 그들을 박찼다고 해서 그들은 나에게 원망해선 안된다. 그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 2005~2006년 교찾사의 강경노선이 조합원들을 염증나게 하고 정치투쟁 위주의 전교조에 염증을 느낀 조합원들이 대거 이탈할때 "전문성, 대안"이라는 새 프레임을 들이 밀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들은 기억해야 한다. 내가 피땀흘려 쓴 수십쪽의 문건을 전교조 원로분들이 자기들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을 용인한 것은 그 문건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략을 세워서 참신한 집행부가 들어서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글만 훔치고, 내 글의 정신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교원평가라는 외통수를 빠져나갈수 있는 "대안적 교원평가 모델 개발"이라는 수를 제시했고, 실제 그 모델을 개발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모델을 개발해 놓고는 "교원평가 수용론이냐?" 하는 교찾사의 공세가 두려워 그걸 감추었다(그들은 정작 교원평가가 법제화 되자 그제서야 우리도 대안이 있다 하면서 들이밀었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안을 들이 밀어도 그건 노무현 정부때 들이 밀었어야 했다). 그러고도 내가 그들과 함께 하리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너무 뻔뻔한거다. 내가 그들 집행부에서 얼마나 큰 내상을 입었는지 저 무심한 원로들은 알지 못하리라.

그래도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 분노와 원한을 누르고 연락을 해 보는 것이다. 그들의 싸늘한 반응이 과연 나에게 무슨 영향을 줄까?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나는 지금 바쁘다. 지금은 엄청나게 빠른 행보를 가져가야 할 때다. 내가 그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이 중요한 시기에 조금이라도 더 힘을 모으기 위한 절박함 때문에 나의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다. 나의 몇년만의 생뚱맞은 연락을 반갑게 맞이하는 분들은 함께 짐을 지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분들은 설득할 시간이 없으니 두고 가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전교조 원로 선배들에게 해직과 고난의 보상을 교장 한번 되어 보는 것으로 받을 생각 말고, 교장이라는 블랙홀을 해체하는 것을 통해 받자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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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