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썼던 칼럼

최근에 아이패드나 태블릿 피시에 교과서 내용을 담아두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가를 놓고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논란은 2007년에도 있었다. 그래서 옛날에 이런 주제로 국민일보에 칼럼을 썼던 기억이 나서 뒤져보니 아직 원문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잠시 옮겨 본다.

(당시 칼럼)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공부다

교육인적자원부의 디지털교과서 사용화 계획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한쪽에서는 디지털 교과서가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학습 환경을 제공하고, 학생들의 흥미와 학업성취도 향상시키며, 풍부한 학습 자료를 손쉽게 제공해 사교육비를 경감한다고 한다. 다른 쪽에서는 검증작업 없이 성급한 진행, VDT증후군, 인터넷 중독증 등의 신체적 정신적 위해 등을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찬반 논거들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으니 새삼 재론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디지털 교과서에 숨어있는 공부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따져보려 한다. 그 동안 공부는 주어진 시간에 많은 답을 구하고 암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른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똑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답을 알아 낸 학생이지, 답을 알아내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학생이 아니며, 하물며 즐겁게 답을 찾는 학생도 아니었다. 과정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오히려 답을 구하는 과정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것은 효율적인 것이며 더욱 좋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디지털 교과서는 답을 구하는 과정을 최소화 시키거나 사실상 제거해 버렸다는 점에서 이런 왜곡된 공부관의 극치다. 디지털 교과서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답을 그것도 시대 변화에 따라 업데이트 해 가면서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다. 하지만 클릭만 하면 답이 즉각 나오는 디지털 교과서, 지식을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과정을 모조리 컴퓨터에게 맡겨버리고 빨리빨리 답만 찾아가는 디지털 교과서가 향상시켰다는 학습효과가 학생의 정신적, 신체적 위해까지 감수하면서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개발진들은 이 교과서가 답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답을 찾는 이미 정해진 방법과 절차를 제공하는 것은 자기 주도적 학습이 아니라 사실상 답만 제공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공부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 문제 해결력은 모니터를 주시하는 고독한 학습에서 얻어지지 않으며, 동료, 교사와의 협력, 토의, 상호비판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이 과정 속에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것 까지가 문제 해결력이며 공부다. 모니터만 주시하고 가끔가다 메신저로나 생각을 주고받는 교실에서는 이런 경험을 기대할 수 없으며, 어떤 학부모도 이런 교실에 자녀를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러다이트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정보화 기술이 학생들에게 유용한 학습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이를 적극 활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보화 기술이 모든 학습과 공부를 획일적으로 포괄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마틴 셀리그만은 고대 그리스인이 우리보다 더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가졌다고 단언했다. 정보기술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이 기껏 석판이나 도자기에 글자를 새긴 고대인보다 더 지혜롭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조금 달라진 생각)

그런데 최근에는 이 칼럼을 썼던 당시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일단 아이패드 같이 스스로 작용하는 도구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그 도구가 킨들 같이 그야말로 전자책 기능에 충실한 것이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아이들 가방 무게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 같고. 하지만 교육에서 계속해서 편리와 효율을 추구하다보면 매우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는 것, 그리고 교육은 솔루션을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역시 교육은 아날로그적인 것이 원칙일 것이다. 디지털은 다만 물리적인 한계나 부담을 줄이는 정도로 한정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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