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보고서(2)

다음 날이 밝았습니다. 5시30분에 어김없이 내 전화기는 주걸륜 노래를 크게 울려대며 잠을 깨웁니다. 부시시 일어나서 같은 방에서 주무시는 졸업앨범 사진 기사님을 깨우지 않고 각종 위생활동을 마친뒤 방문들을 두드리며 "기상!"을 외치러 나갔습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아무도 자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이 녀석들 밤을 꼴딱 샌 것입니다. 방문 밖에는 밤새 먹은 과자, 음료수, 심지어는 양념치킨의 흔적까지 쓰레기통에 포장되어 나와 있었습니다. 기특한 것들이 밤새 그 난리를 쳤는데, 쓰레기를 정리함은 물론 설겆이까지 다 해 놓았더군요.

위에 있는 사진은 숙소입니다. 정선에 있는 메이힐스 리조트입니다. 가격대비 만족도가 괜찮습니다. 숙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정말 강원도 스럽습니다.

내심 기쁘더군요. 애들이 기특해서가 아니라 이것들이 밤을 새었으니 잘 굴리면 오늘 밤은 다 골아 떨어지겠구나, 이런 생각에요.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우선 숙소에서 오늘 첫번째 프로그램인 맹방해수욕장까지(이것들이 한사코 바다를 봐야 한다고 해서...)버스로 두시간 가까이 달렸습니다. 버스 안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모두 죽은듯이 자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맹방 해수욕장에 도착했더니 날씨는 정말 심술궂기 짝이 없었습니다. 비는 내리고, 기온은 5월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춥고, 바람까지 불어대었습니다. 겨우 몇몇 아이들만 내려서 바다를 찍고 해변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민물고기 전시관을 들렀다가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레일바이크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사단이 났습니다. 학생이 5명이 모자란 것입니다. 너무 깊게 잠들어서 버스 좌석 아래에서 찌그러져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버스가 빈차인걸로 보이고, 그래서 다들 레일바이크 탑승장으로 향했던 것이죠. 버스는 이미 레일바이크 도착역에 가서 기다리고 있고 말입니다.

간신히 가이드 팀장이 버스기사에게 연락을 해서 버스가 다시 와서 잠들었던 5명을 바이크에 탑승 시켰습니다. 그리고 팀장이 바이크 요금을 계산하려고 아이폰을 두드리고 있는데, 그때마다 자꾸 잘못된 전화가 걸려 옵니다. 계산좀 할만하면 전화가 오고, 또 하다보면 전화가 오고... 바이크 직원은 빨리 돈 내놓으라고 독촉이고. 짜증 폭발 하십니다.

그래도 우여곡절끝에 모두 바이크에 태워서 출발 시켰습니다. 바이크는 환상입니다. 내내 바닷가를 달리는데, 힘들긴 해도,.... 단 여름에는 햇살 작열이겠더군요.

원래 계획은 환선굴에 갈 생각이었는데, 바이크까지 타고 나니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지 애들이 걷기 싫다고 합니다. 일단 밥을 먹기로 하고 미리 예약한 "춘도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만약 학년 전체가 움직이는 수학여행이었으면 지역 명물 식당에서 식사하는건 꿈도 꿀수 없었겠죠. 300명을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이라야 뻔할테니까요. 하지만 66명 정도야... 게다가 식사시간 살짝 지난 다음에 갔기에 문제 없습니다.

식당 주인이 감당 못할 인심을 씁니다. "게장 리필!" 난리가 납니다. 애들이 게장을 이렇게 잘 먹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게장과 명태(? 하여간 흰살 생선)의 대 학살의 날입니다. 그 식당 괜찮을런지.....

애들이 배 터지겠다고 하면서 만족스럽게 나왔습니다. 배가 부르니 나도 환선굴 가서 걷기 싫습니다. 그래서 또 협의해서 코스를 당골 석탄박물관과 단군성전으로 변경합니다. 삼척에서 태백 가는 동안 또 무서운 침묵이 흐릅니다. 정작 애들은 계속 자는데 나는 버스에서 잠이 안와서 갈수록 초췌해 집니다. 당골에 도착하자 거의 꼴이 이렇습니다.


이제 승부는 불문가지.... 버스에서 충분히 회복한 아이들과, 계속 체력이 저하된 나....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아까 배터지게 먹었다는 말은 어디로 갔는지 이 식신들이 또 먹어대기 시작합니다. 방방에 지글지글, 보글보글, 꺅꺅!... 새벽 1시에 여학생들이 방방을 기웃거리다 걸렸습니다. 그래서 왜 남의 방들 기웃거리냐고 했더니 배고파서 잠이 안 온답니다. 그래서 내 라면 세개를 주었더니 좋아라 달려갑니다.

새벽 세시.... 마침내 조용해졌습니다. 휴우... 그런데 호텔 로비 소파에 애들 몇명이 노숙자처럼 찌그러져 자고 있습니다. 두드려 깨워 자초지종을 물으니, 밖에 나와서 놀다가 다시 방에 가려고 하니 룸메이트들이 이미 다 골아떨어져서 문을 안 열어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방에 가서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이미 아주 깊이 잠들었는지 반응이 없습니다. 전화도 걸어보지만 별무소용... 내 방에는 공간이 많지만 이 학생들은 여(!)학생들입니다. 별수 없이 내 방에서 담요들 꺼내서 주는것 이상 해 줄 것이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또 날이 밝습니다. 아, 이틀동안 토틀 다섯시간 잤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마무리가 되기는 되네요.

마지막날 숙소 정리하고, 짐 정리하는데 애들이 정말 빠르게 움직입니다. 월정사도 가고 허브나라도 갔습니다. 허브나라의 활짝 핀 꽃들은 마지막 서비스입니다. 이렇게 파란의 수학여행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애들은 "퍼펙트"한 수학여행이었다고 난리들입니다. 그리고 나는 시체처럼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도착하자마자 "교원업무경감 대책회의"를 하러 배낭을 맨 체 서울시 교육청으로 택시 타고 갑니다. 아, 팔자야!

이렇게 가니까 애들하고 밀착도 되고 재미있기도 하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데리고 다닌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 매우 예외적인 지역인 서울시 송파구 아이들이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밤새 풀어놔 봐야 치킨이나 먹고 라면, 삼겹살이나 해먹으며 즐거워 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래서 두세시간이라도 내가 잘 수 있었고, 내 방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만약 어려운 지역 중3들이라면 술, 담배, 폭력, 남녀상열지사가 난무하면서 밤새도록 호텔 복도를 뛰어다녀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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