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수학여행 보고서(3)

수학여행 시리즈의 마무리입니다. 평가에 해당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진 등의 볼거리는 없습니다. 소집단 수학여행이 처음 거론될때 사람들은 1) 학생들의 경험의 질이 높아지고, 2) 학생간, 학생 교사간의 친밀감이 높아지며, 3) 각종 비리가 차단된다 는 점에서 찬성하기도 하고, 1) 교사의 부담이 너무 가중되고, 2) 전반적으로 비용이 높아지며, 3) 학생관리가 어렵다 는 점에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직접 다녀온 결과 나름 평가를 내려보면 학생들의 경험의 질 부분은 생각만큼 깊어진 것 같지 않습니다. 애초에 이건 여행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성숙도의 문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중학교 3학년 수준에서는 여행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다니면서 뭔가를 진지하게 보는 것 보다는 친구들과 숙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즉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학생간의 친밀감은 확실히 높아졌지만, 학생-교사간의 친밀감은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대규모로 갈 경우 학생들의 숙소 생활을 통제할때 교사는 "학교측"이라는 조직의 얼굴로 통제합니다. 하지만 한두학급이 갈 경우 그 통제는 "학교측"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며, 따라서 학생들의 반감이 훨씬 더 즉각적으로 표현됩니다. 대한민국특수지역인 송파구 학교가 아니라 다른 지역 학교 학생들이었다면 통제의 필요성이 훨씬 커졌을 것이고, 그럼 아마 담임과 학생 사이는 상당히 험악해졌을 것입니다.

이런 소규모 수학여행 행정이 매우 투명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비리 차단을 위해 수학여행 방식을 바꾼다는 발상은 상당히 웩더독 스럽습니다.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사 부담의 경우 이 부담의 대부분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행 전문가가 아닌 교사들이 우왕좌왕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 부분을 교사의 '헌신'에 기대는 모델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이건 당연히 이런 일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할 일이고, 교사는 이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보고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선택하는 일 정도를 해야 합니다. 다만 올해의 경우 수학여행 전문 여행사들조차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아서 이 부분을 교사들이 직접 담당하려다 보니 갖가지 혼선과 어려움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 미묘한 문제가 생기는데, 소규모 수학여행의 목적이 학생의 경험인가 아니면 투명성인가의 문제입니다. 자꾸 후자쪽으로 이야기가 기울면서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교사가 직접 기획부터 집행을 다 하는 쪽으로 압력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투명성은 수학여행의 규모로 해결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학생의 경험의 질이 문제라면 여행의 기획과 수속은 아마튜어 교사가 아니라 전문 여행가가 담당하는게 옳습니다. 즉 교사가 자기반 수학여행의 목적과 방문하고자 하는 지역, 그리고 여행의 기본 콘셉을 제출하면 여행 플래너가 이를 세팅해주고 이렇게 세팅된 맞춤 상품을 판매하는 형식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대학생 도우미를 붙여준다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는데, 이건 오히려 자살골 정책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교사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왜 우리가 여행 전문가 까지 되어야 하는가?"에 있지 일손이 더 있고, 덜 있고에 있는게 아니거든요. 가족여행과 책임을 져야 하는 수학여행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저는 내년에 경주에 데려갈 계획입니다. 불국사, 석굴암 외에는 참신하게 코스를 짜고 싶습니다. 패키지에서 잘 안가는 괘릉, 늠비봉, 배리삼존불, 석골사 이런 곳에 데려가고, 시간이 되면 양동마을과 현대자동차 공장 이렇게 한번 넣어보고 싶습니다. 교통편은 KTX와 현지 대절 버스를 이용하고요. 숙소는 경주 시내에 있는 콘도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자, 지금같은 상황에서라면 이걸 교사가 다 자료 찾아서 경주까지 가서 현지답사까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지에서 어레인지 다 하고 예약수속, 계약까지 다 해야 합니다. 이게 잘 되겠습니까? 30명 데리고는 현지 업자한테 문전박대만 당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규모 학생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 플래너가 있다면, 이 사람이 교사가 요구하는 코스를 잘 조합해서 코스를 만들고 현지 교통사와 계약하고, 콘도와 계약합니다. 이 사람은 우리 반과만 거래를 하는게 아니라 경주를 오고자 하는 수많은 학급과 거래하기 때문에 콘도, KTX,관광버스는 이들을 괄시할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좋은 조건에서 계약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량 계약한 상태에서 교사의 요구에 따라 프로그램을 조금씩 손질해서 총액 개념으로 상품을 교사에게 판매할 것입니다.

저 역시 석가탑 둘레에 수백명의 학생들이 겹겹의 인의 장막을 치는 그런 대규모 수학여행은 아무 소용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핵심은 소규모에 있습니다. 여행업체의 개입 유무, 준비과정의 교사의 직접 개입 등이 에 있는 것이 아니라요.

그런데 서울에서는 자꾸 여행업체의 개입유무에 촛점이 맞춰지면서 교사들이 수업을 결손시켜가면서까지 1박2일동안 수백킬로미터 출장을 미리 다녀오는 등 일대 아우성이 있었습니다. 이건 잘 생각해서 판단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소규모 수학여행에 찬성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전 사후 과정에 교사들의 아마튜어적인 헌신을 요구한다면 반대로 돌아설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